젊고 힘이 넘치던 시절에 무겁고 힘겨운 일은 나하고 겨룰 생각 없이 모두 멀찍이 피해 있었다. 나이 들어 기운이 없어지자 차례차례 나를 찾아와 늙어버린 사람을 괴롭혔다. 아무래도 이런 게 바로 운명이지 싶다. - P13

나는 나무에 앉은 참새 떼를 다른 나무로 몰아내고 도랑에 흐르는 물을 다른 도랑으로 끌어들였다. 나는 내 모든 행동이 예사롭지 않고 보람차다 믿는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이다지도 작고 외진 마을에 살면서 하는 일 없이 평생을 빈둥거릴 팔자다. 나는 나 자신에게 쓸데없는 일을 찾아줘야 한다. 그래야 살아갈 이유가 생긴다. - P15

그날의 해를 내가 떠나보내는 줄은 아무도 모른다. 저물녘마다 모래언덕에 홀로 서서 해에게 손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하는 그 사람이 바로 나다. 나 아니면 이런 일을 누가 하겠나. 손님이 돌아갈 때면 마을 어귀까지 바래다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온종일 우리를 환히 비춰준 해가 돌아갈 때는 배웅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이 곧 내 일이다. 나는 해가 멀리 떠나는 모습을 내내 지켜본다.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새빨간 얼굴 반쪽이 아쉬운 듯 나를 바라볼 때, 이 마을에 해가 알아보는 사람은 오직 나뿐임을 깨닫는다. 내일 아침 일찍 마을 동쪽 끝에 홀로 서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손 흔드는 사람 또한 나일 테니까.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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