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 어떤 소리, 빛, 자태 심지어 온도와 분위기에도 다 호응하고 공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원래부터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주 많은 일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영원히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아마도 형식의 힘이 아닐까 한다. - P203

차안은 영원히 부족하고 결핍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피안은 무너지고 말 테니. - P221

사람들은 한 뭉치의 향을 사서 통째로 향로에 꽂았다. 은은한 향불이 아니라 불길이 치솟았고, 연기로 온 하늘을 하얗게 뒤덮었다. 사람들은 진심을 다해 꿇어앉아 승진을 기도했고, 복과 장수를 기도했고, 재난을 피하게 해달라 기도했고, 돈을 벌게 해달라 기도했다. 그런 현생이 어렵다면 내세를 원했다. 어쨌든 부처 앞에서 모든 것이 잘되게 해달라고 자신에게만 전폭적인 우대를 요구했다.
절은 오랫동안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니 이제는 극도로 현실적인 곳이 되었다. 이곳에서 주저하고 머뭇거릴 일은 없어졌다. - P222

그때 깨달았다. 할머니가 왜 그토록 종이봉투를 붙이고, 이불에 수를 놓으며 쉬지 않으려 했는지. 부모님이 봉양하고 있었으니 돈이 필요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돈이 아니라 노동 자체가 필요했다. 할머니의 출신성분은 할아버지를 따라서 지주였다. 그 지주 할아버지는 서른 몇 살에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 홀로 세 아들을 키우느라 수십 년간 온갖 고생을 했지만 사람들 눈에는 그게 아니었다.
다들 할머니를 지주라고 비판했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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