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성격은 공격에서 방어로 바뀌었다. 전쟁 첫해와 같은 격렬한 전투는 줄어들었다. 그 대신, 중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변덕스러운 동맹관계, 비밀 외교, 앞으로 자신들의 진로를 영원히 바꾸게 되는 사회적인 변화였다. 변화의 중심에는 사회복지라는 새로운 발상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서는 국가가 인민의 일상적인 복지에 직접 관여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제는 전쟁 상황 속에서 새로운 체제들이 서로 경쟁해야 하는 처지였다. 국민당과 공산당은 국가가 인민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만큼 인민 또한 국가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 P206

정부는 피란민들의 처우가 공산당이나 일본과 비교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많은 중산층, 특히 진보 성향의 사람들에게 확실한 대안은 공산당이었다. 가난한 농촌 출신 피란민들은 일본의 지배를 받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적어도 자신들에게 익숙한 고향 땅에서 살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군이 과거 수십 년 동안 중국을 휩쓸었던 대다수 군벌들보다 더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보니 국민정부는 피란민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민족적인 자긍심 문제를 넘어 이들이 ‘자유중국‘의 현실을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P215

일본군은 국민당이 철수한 뒤 점령한 지역을 떠맡을 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 침략자들은 1937년 7월의 사건이 전면전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따라서 급격하게 확대되는 새로운 정복지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결여되어 있었다. 전례는 있었다. 일본군은 특히1931~1932년 당시 만주 점령의 경험에서 정치적, 경제적인 지배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보편적인 수법은 나름 영향력이 있는 친일 부역자들을 찾아내 일본을 위해 일할 현지 정부를 조직하는 일이었다. - P220

산시성 주변은 지독하리만큼 가난했으며 거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했다. 이 점이 그곳에서 공산주의자들의 메시지가 먹혀들 수 있었던 한 가지 이유이기도 했다. - P229

일본은 완고한 반공주의 국가이면서도 정작 주된 목표는 장제스였다. 전중국이 일본의 지배에 결코 굴복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상징하는 쪽은(마오쩌둥이 아니라) 장제스의 항전이었다. 끝없는 폭격에 시달리는 국민당 정권은 중국 언론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었다. 옌안은 고립된 곳이라 충칭에 비해 피란민의 수가 훨씬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공산주의자들은 외부의 관찰과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들이 하려는 일을 마음껏 추진할 수 있었다. 옌안은 미지의 장소로 남았다. - P231

저우포하이와 그의 보스였던 왕징웨이는 생애 마지막까지 자신들을 가장 진정한 애국자라고 생각했다. 일본의 공격으로 중국이 파괴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소련에 의해 공산 중국이 세워질 것인가 두 가지 미래에 직면한 왕징웨이 일행은 평화 협상만이 전란에서 중국을 구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영국, 미국과 동맹을 맺기보다는 소위 대아시아주의의 미래를 건설한다는 순수한 이념적 열정에 스스로 도취되었다. 또한 중국에서 제국주의를 강요하는 열강들의 행태는 그들에게 일본을 보다 선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왕징웨이는 일본의 생활 방식을 동경한 열렬한 부역자라는 의미의 "친일"은 결코 아니었다. 젊은 시절부터 민족주의 혁명의 대의에 그토록 헌신했던 한 사람에게는 기묘한 입장이었다. - P250

왕징웨이는 변절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대중 연설문을 준비 중이었다. 저우포하이는 토론에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강조하려고 애를 썼다. 첫 번째,
일본은 중국을 침략하고 굴복시키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두 번째, 일본은 중국인들의 항전(왕징웨이가 위원회에서 투표에 부쳤던)이 "국가의 독립과 생존"을 지키기 위함이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두 가지가 평화적으로 실현된다면 (즉, 협상을 통해서) 중국은 "전쟁 목표를 달성하는" 셈이었다. 왕징웨이는 어떠한 합의에서도 자신이 정의로운 전쟁에서 애국적인 승리자로 비추어지기를 원했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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