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에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을 제기했을 때 의도했던 것은 일본의 역사를 동아시아와의 공통성이라는 시각에서 보려고 한 것이었다. 일본의 역사학계는 오랫동안 일본의 역사를 서구와 비슷한 것으로 인식하려고 애써왔다. 그것은 역사인식에 있어서의 ‘탈아‘적인 경향이라고 할수 있는데, 이러한 인식을 비판하는 데 있어 소농사회론이 아주 주효했다. 그 핵심은 15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집약적인 벼농사 농법을 기반으로 소농들이 생산을 주도하는 사회가 등장한다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에 주목한 것이었다. - P91
지금까지의 근대사 연구는 19세기를 분기점으로 삼아 일본의 제국주의화와 한국, 중국의 종속화라는 큰 틀로서 파악하려 하는 연구가 그 대종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19세기 패러다임을 극복해서 21세기의 현실에 맞는 패러다임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 P94
동아시아 각국에서 작성된 토지대장에는 강한 공통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공통성을 만들어낸 요인으로서, 특권적인 토지 지배의 부재, 바꾸어 말해 토지에 대한 지배가 국가에 집중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었다. 다만 일본 근세의 경우 중국이나 한국과는 달리, 토지 지배가 국가에 집중되었다고 할수 없는 면이 있다. 극히 일부의 상층 무사인 쇼군, 다이묘, 하타모토, 고케닌 및 그 신하의 일부 등은 독자적으로 영역 지배를 했고, 중세보다는 한층 토지 지배가 단순화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국가에 완전히 집중되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 P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