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ㅡ‘N포 세대‘ 명명이 전제하듯ㅡ취업, 연애, 결혼, 출산 등 청년 세대에 기대되는 생의 과업을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단순히 포기한 게 아니라 거부했다. 부모 세대의 젠더 위계를 거부하고, 성별 분업구조에 기반한 정상 가족을 거부하고, ‘나‘를 조직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는 노동 윤리와 규율을 거부했다. 이러한 단절과 거부의 정치를 거쳐 다시 만들어야 할 미래는 막막하기도, 두렵기도, 설레기도 했다. - P317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 다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1990년대 후반 경제 위기에 유년기를 보냈고, 예측 불허의 삶을 온몸으로 경험한 부모로부터 때로 과도한 관심과 투자를 받으며, 또래와 살벌한 경쟁을 거듭 치르고 첫 관문인 중상위권 대학에 진입했다. "자기 착취에 가까운 자기계발"로 삶을 마모시키다 보니 우울이라는 집단 감염을 겪고, "첫 일자리로 사실상 ‘신분‘이 결정되는" 노동시장에서 기회의 공정에 강박적으로 몰두하며 불평등에 예민한 감각을 벼려냈지만, 동시에 국가라는 대서사에 개인을 접붙여온 삶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교육·문화 자본도 축적했다. 이들 다수가 (논술에서 학생부 종합 전형까지) 변화된 입시 환경에서 일찌감치 인권과 민주주의를 학습했고, 외국어 실력과 디지털 소통 능력, 다양한 국외경험을 바탕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글로벌 지식의 소비자이자 생산자가 되었다. - P319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가 자의든 타의든 청년을 공론화 · 정책화하는 중심 역할을 맡으면서 딜레마도 커졌다. 청년이 처한 조건이 어떻게 그려지느냐에 따라 청년에게 부과된 규범도 대책도 바뀌는 상황에서, 어떤 청년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재현하고 어떤 청년은 재현되기만 한다면 위계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전자가 교육·문화 자본을 갖춘 청년들이라면, 후자는 전자에 의해 또는 미디어에 의해 이따금 호명되고 발굴되는 청년 프레카리아트, 예컨대 지방 청년, 실업계 청년, 산업 현장의 청년, 플랫폼 노동자 청년, 수급자 청년, 성매매 청년 등이다. - P321
기존의 빈곤 레짐에서 가난한 사람을 타자화 · 형벌화하는 사고와 행위의 준칙으로 단단히 똬리를 튼 자립이야말로 불안정성을 자기 고통의 서사로 선취한 청년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였던 셈이다. 청년 프레카리아트가 자신의 불안을 제어하고 인적 자본으로 거듭나기 위해 강박적으로 몰두한 담론들은 그렇게 다른 프레카리아트의 불안정성을 심화하고 있었다. - P331
오랫동안 가난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연대를 도모해온 활동가들은 빈곤층을 무기력한 인간, 자립 자활훈련을 통해 하루빨리 거듭나야 할 인간으로 가정하면서 추진되는 여러 제도가 가난의 시간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역설했다. - P331
인터뷰, 토론, 분석, 발표, 글쓰기를 거치면서, 학생들의 질문은 ‘빈곤층은 왜 자립할 수 없는가‘ 내지 자립하지 못하는가‘에서 우리는 왜 자립·자활에 이렇게 집착하게 되었을까‘ 또는 ‘자활·자립 담론은 어쩌다 이렇게 범람하게 되었을까‘로 바뀌었다. 신자유주의 경쟁 속에서 청년들이 사회적 인정을 획득하기 위한 암묵적 근거였던 자립은, 자격 있는 빈민과 그렇지 못한 빈민을 구분하며 빈곤의 위계를 만들어내는 수사로 비판의 대상이 됐다. - P333
교육·문화자본을 갖춘 청년 프레카리아트에게 불안정성이란 단순히 위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열망을 지폈는데, 이 열망을 표현, 조직, 확산하는 데 페미니즘이 끼친 영향은 상당하다. 여성의 결혼, 출산, 양육을 책무로 만든 근대적 시간성, 가부장적 가족제도, 남성중심적 조직 문화를 거부하면서 다르게 살아갈 자유는 ‘정상‘ 규범을 이탈하는 데 따른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추구할 가치가 있었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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