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선진국 가운데 일본만이 경제 성장의 반열에서 뒤처졌다고 여기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 수치는 경제성장률의 저하가 국가별 경제 정책의 우연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성장 끝에 이루어진 문명화, 즉 물질적 생활 기반의 완성으로 인해 발생한 숙명적인 사태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 P53

모든 국가의 GDP는최종적으로 미국 달러를 기준으로 산출되는데, 각국의 통화를 달러로 환산할 때 환율을 기준으로 해 달러로 환산하느냐 아니면 물가 수준(구매력 평가)을 기준으로 환산하느냐에 따라 10% 이상 차이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GDP 성장률이 0.5%만 오르락내리락 해도 법칙을 떨지만, 애초에 GDP 란 그러한 미미한 차이의 논의를 감당할 수 있는 하드 데이터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합의된 방침‘에 따라 각국의 통계 담당자가 자의적으로 골라낸 수치로, 말하자면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 P55

우리가 해야 할 일은, GDP를 산출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더 좋은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를 논의한 뒤에 그렇다면 무엇을 측정해야 그 달성 정도를 측정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일이다. 경제학자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가 이런 종류의 논의를 꺼리는 이유는 명백하다. 이렇게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논의 과정에서는 전문가로서 권위를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58

‘신규 대졸 사원 일관 채용‘ ‘연공서열‘ ‘종신고용‘ 같은 고용 형태는 무한히 계속되는 성장을 전제로 하고 있어 오늘날 일본 기업을 둘러싼 상황과는 명백히 모순을 보인다. 이들 시스템이 구축된 것은
‘내년에는 경제가 두 자릿수 성장을 이룬다‘는 전제가 당연시되던 1950년대다. - P75

우리가 판단의 근거로 삼는 수많은 도덕과 규범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수단화한다는 사고방식을 전제로 하며, 이 사고방식은 미래를 완성하기 위해 역사가 진보한다 또는 내일은 오늘보다 분명히 좋아진다는 확신을 기저에 두어야 비로소 합리화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규범과 가치관의 근거는 와해되고 만다. - P93

슈밥은 ‘고원사회의 고도를 이 이상 더 높이려 하지 말고 이 고원사회를 우리에게 더욱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인간관과 사회관이 필요하다. - P94

근대부터 계속되고 있는 상승 포물선의 관성 안에서 무한 성장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측을 당연한 전제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성장이 끝나버린 고원 상태의 사회는 자극이 없고 정체되어 매력 없는 세상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본질적인 과제가 있다.
진짜 문제는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경제 이외에 무엇을 성장시켜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빈곤한 사회 구상력이며, 또한 경제 성장을 멈춘 상태를 풍요롭게 살아갈 수 없다고 여기는 우리의 빈곤한 마음이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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