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미리 대비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싫어하는지‘, ‘불가능한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일종의 국민적인 ‘병‘입니다.
전쟁이나 경제공황이나 자연재해는 모든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반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높은 확률로 위기가 예측되는데도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 국민성‘은 ‘일반적인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위기입니다. ‘위험 요소는 우리 의사와는 상관없이 외부에서 찾아오지만, ‘위험 요소의 도래가 예측되는데도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는 집단적 무능력은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 P15

 지구환경이 지속가능한 상태까지 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은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일입니다. 인구 감소 그 자체를 마치 ‘나쁜 일‘처럼 취급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납니다. 모든 선진국은 (미국을 제외하고) 앞으로 인구 감소 국면에 접어듭니다. 22세기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 세계가 저출생과 인구 감소 국면을 맞이합니다. 이것은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먼저 이 사실을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P16

일본인은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여 다양한 계획을 준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기이한 일본인의 민족지誌적 습관입니다. - P18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연성에 불과합니다. 개연성의 전망에 주관적인 희망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앵글로색슨 문화권의 지성인이 생각하는 ‘상식‘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상식이 아닙니다. 일본의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일어날 확률이 낮은 파국적 사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가 일본의 전통입니다. - P20

막상 파국이 도래하면 사회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책임자는 누구냐?"며 비난조로 책임의 소재를 추궁하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파국으로 치닫는 편이 개인적인 책임을 면할 수 있으니 ‘이득‘이라는 것이바로 ‘패배주의가 패배를 불러온다‘는 논리의 이면에 숨겨진 계산입니다. - P23

지금도 일본의 지도층은 인구 감소가 어떤 ‘최악의 사태‘를 초래하며,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지금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비관적인 미래를 생각하면 사고가 정지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은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근거 없는 이상행복감에 가까운 망상에 빠져 있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판단할 뿐입니다. - P26

전국지의 소멸은 일본 사회의 국민간 의사소통과 합의 형성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소멸을 어떻게 연기할 것이며, 전국지가 소멸된 이후에 그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국민 여론을 위한 토대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는 대단히 중요한 국민적 과제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전국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자신들의 업계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보도하지 못하고, 분석하지 못하고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는 매체가 다른 업종의 고용 상실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보도하고 있다는 사고방식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 P37

경제활동은 인간이 사회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사회적 성숙을 지원하는 기능이 없는 활동은 아무리 많은 금액, 아무리 많은 상품과 서비스가 오가더라도 엄밀한 의미의 ‘경제활동‘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금융경제는 이미 경제활동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P43

인간이 그 안에서 ‘생기‘를 공급하는 체계,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참가자들에게 인간적인 성숙을 요구하는 체계, 주변 사람들이 참가자를 ‘좋은 사람‘, ‘성실한 사람‘, ‘자기가 한 말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체계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체계, 이것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체계입니다. 동의하는 사람은 적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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