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창문은 최대한 활짝 밀어젖히면서 정치의 창문은 완전히 닫거나 최대한 닫아걸려고 노력한다. 문화는 반쯤 열려 있어 때로는 열렸다가 때로는 닫히는 창문의 빛과 그림자 아래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개를 들었다가 숙이기를 반복하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리고 문학, 즉 작가들의 글쓰기는 바로 이런 위치에 멈춰서 있다. 다시 말해서 창문이 때로는 열렸다 때로는 닫히고, 빛이 때로는 밝았다 때로는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이 창문 앞에 모여 호흡하고 생존하는 사람들, 즉 14억의 중국인은 밝기와 어둡기가 일정치 않고 냉기와 열기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보니 인간의 정신과 영혼, 인성마저 항상성을 나타내지 못해 갈수록 타락하고 어두워지는 것이다. - P169
모든 계획경제의 최종 목적은 경제 번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영혼을 국가가 소유하고 당이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다. 국유경제 (기업)라고 하는 것보다 인간의 ‘국유‘ 혹은 정신 및 영혼의 ‘당유(黨有)‘라고 하는 게 나을 것이다. - P169
정치는 작가들에게 불꽃과 환한 빛, 눈에 보이는 이른바 ‘긍정적 에너지‘의 현실과 존재를 쓸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문학 자체는 작가들에게 ‘긍정 에너지‘만 쓸 것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 ‘긍정적 에너지가 아닌‘ 존재와 진실,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와 존재하지 않는 진실도 쓸 것을 요구한다. - P171
그리고 작가들은 절반은 열려 있고 절반은 닫혀 있는 이 창문 아래서 생존과 명예, 지위를 위하여 글을 쓴다. 그 과정에서 이 창문을 관리하는 사람의 휘하에서 세 가지 글쓰기 방식을 취하게 된다.
첫째는 빛을 받아들여 글을 쓰는 것이다. 빛을 보고 빛을 얻는 것이다. 빛을 써서 더 빛날수록 명예와 지위가 아침에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일처럼 자신의 팬과 인생을 온통 찬란한 빛으로 비춰줄 것이다. 둘째는 빛을 차용하여 쓰는 것이다. 빛을 빌려 쓰는 작가들은 전부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고 일정한 양심과 지혜를 갖춘 사람들이다. 빛을 받아들여 쓰고 싶지 않지만 내면의 예술적 감정과 심리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은데, 이 절반은 열려 있고 절반은 닫혀 있는 창문의 그림자 아래서 어쩔 수 없이 남의 빛을 차용해서 글을 써야 한다. (중략) 그리하여 이처럼 남의 빛을 차용한 글쓰기는 어둠과 빛 사이를 떠다니면서 예술이라는 평형의 장치를 사용하여 양자 모두에게 손해가 나지 않는 문학적 이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셋째는 빛을 넘어서 곧장 어둠 속의 진실로 다가가는 것이다. 이러한 글쓰기는 일종의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빛을 넘으면 빛을 배반하게 되고 빛과 어둠의 주변을 오가며 글을 쓰는 대다수 작가의 인정된 글쓰기를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빛과 빛 주변의 존재는 전부 일종의 공통된 인식이라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어둠 속의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직접 가서 접촉하고 느끼며 증명해야 한다. 때문에 글을 써도 종종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거나 공통 인식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모든 사람에게 회의와 쟁론, 비난의 대상이 된다. 또한 바로 이런 이유로 이처럼 빛을 뛰어넘어 곧장 어둠에 다가가는 글쓰기, 밝은 창문을 벗어나 닫힌 창문 뒤로 다가가는 글쓰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좀더 큰 재능과 창조력이 필요하다. (중략) 작가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밝은 곳에서의 인간의 즐거움과 순조로움, 그리고 어둠 속에서의 몸부림과 한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절반은 닫혀 있고 절반은 열려 있는 창문의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빛과 어둠의 상호 변화, 그 빈번한 상호 변화 속에서 인간의 내면이 겪어야 하는 불안과 구체적인 상황이다. - P174
국가의 검열에 대해 작가들은 마음속으로 매우 익숙해져 있다. 아들이 폭력적인 아버지를 잘 알고 현신이 폭군의 기질을 잘 아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작가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어느 쪽을 따라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것은 구체적인 문학예술 정책을 집행하고 당을 대신하여 장악하는 구체적인 집행자들이다. - P176
문학에 대한 심사와 검열에 있어서는 범죄나 과실이 아니기 때문에 대응할 수 있는 명확한 법률 조문이 없다. 또한 변호사도 없고 검찰도 없기 때문에 범죄에 대한 변호도 없고 법원과 법관의 집행에 대한 감독도 없다. 모든 것이 집행자들의 정책 기준에 대한 감각과 파악, 양심의 깊이에 따라 결정된다. - P177
상황은 종종 집행자들이 머리에 ‘오사모‘를 쓰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당에 충성하기 위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함으로써 권력을 확대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원래 탄력적인 검열의 수준을 최대한 확대하고 삼엄하게 만들어 중국식 운동과 혁명에 일관되었던 확대의 습성이 검열에서 더욱 강화되게 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털을 불어 헤쳐서 상처를 찾듯이 억지로 결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중략) 검열은 검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권력이 되기도한다. 수많은 책이 검열 과정에서 ‘관계‘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검열을 집행하는 권력이 임의로 통과될 수 없는 책을 통과시켜 출판할 수 있게 해주고 통과되어야 할 책을 통과시키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 P178
검열을 집행하는 과정에서의 권력 남용과 출판사들의 과도한 긴장이 오늘날 검열의 집행 단계에 나타나는 두 가지 가장 큰 특징이다. 출판사들은 너무 신중하여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하고, 그럴수록 검열은 더 확대된다. 권력의 남용은 중국의 모든 권력 기관이 공유하고 있는 특징이다. - P179
검열 집행자는 위에서 아래로, 또 아래에서 위로 철저한 검열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소리나 형태도 없이 검열의 피라미드가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이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는 문학예술 정책의 제정자들이 있고 중간에는 검열 제도의 집행자들이 있으며 맨 아래층에는 출판기구의 편집자들이 있다. - P181
작가들의 자기 검열의 자각성과 본능성이 예술에 미치는 피해는 사람들이 가시적으로 파악하는 검열과 삭제, 금지의 폐해를 훨씬 초과한다. 자기 검열은 출생하기도 전에 거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인에 의한 거세다. 심지어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거세라고 할 수 있다. - P182
전업 작가 제도의 근본적인 목적은 예술의 멀고 높음과 자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글쓰기와 사상, 상상에 대한 관리 및 규제, 통제를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로 이러한 장점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소수의 작가만이 이러한 집단적인 관리 속에서 작가로서의 글쓰기의 독립성과 문학 인격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전업 작가 제도의 가장 큰 폐단 가운데 하나는 작가들로 하여금타성에 빠져 창조성을 잃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제 내에서 전업 작가들은 지금까지의 국유화와 당유화, ‘큰솥 밥‘처럼 노동을 하든 안 하든 보수가 같고 창조를 하든 안 하든 같은 결과를 맞게 된다. - P183
전업 작가의 두 번째 폐단은 작가들이 글쓰기의 개성을 상실하여 쉽게 집단화되고 국유화된다는 것이다. - P184
작가들이 기본적인 생활의 보장을 바란다면 반드시 전업 작가의 대오에 들어가야 한다. 전업 작가의 대오에 들어가면 반드시 사상의 깊은 곳이 집단화되고 당유화되며 국유화되어야 한다. 또한 글쓰기에 대한 국가의 모든 정책과 권력의 규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출판에 임해야 하고 이러한 출판은 수십 년 동안 양성해온 독자들의 가치관을 반영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개체에서 집단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로써 문학의 국유화와 당유화를 완성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대단히 통속적이고 효과적인 연계이자 체제의 가장 효과적인 사상 관리의 사슬이 된다. 작가가 이런 사슬의 한 고리 또는 마디가 되면 그의 문학관과 세계관 내지 인생관과 가치관이 독립성과 개성을 상실하게 되고 집단과 국가의 글쓰기 이데올로기만 남게 된다. - P186
전업 작가 제도의 세 번째 폐단은 작가들로 하여금 자아를 잃고 독립적 인격을 상실하게 하는 것이다. (중략) 작가의 업무는 글을 쓰는 것이고 언행은 그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회사는 중국의 위에서 아래까지의 모든 작가협회 조직이고 사장은 인민을 대표하며 이끄는 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체제 안에서 조직이 작가를 양성하고 키워주면 작가는 자신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글쓰기와 자기 상상의 궤적 및 역동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조직을 위해 일을 하고 글을 쓰고 복무하게 된다. - P187
한마디로 말해서 중국작가협회의 근본적인 목적은 수많은 특수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모든 작가를 ‘당의 작가‘가 되게 하는 것이다. (중략) 중국작가협회의 목적은 전혀 변하지 않고 방법만 변할 뿐이다. 강제성과 압박성, 학생들에 대한 억지 주입식 교육 같은 정치적 주입으로 유도와 교육, 회의와 학습을 통해 전통적 방식인 명예와 수상, 문학예술 가치의 훈육과 양성 등의 방식으로 ‘당의 작가‘가 되게 하는 목적을 달성하고 작가들에게 ‘순수한 예술의 자유‘이기는 하지만 인격의 독립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가 아닌 일종의 타협의 방법으로 글을 쓰게 하는 것이다. - P188
오늘날 중국 작가들 가운데 중·노년층의 80퍼센트는 모두 이런 전업 작가 대오에 속해 있다. 1980, 1990년대에 출생한 작가들에 대해서도 중국작가협회는 회원제로의 흡수와 정기 회의(전국작가대표대회나 청년작가창작대표대회), 평가 및 장려 제도(마오둔문학상이나 루쉰문학상 등) 등의 표창 및 수상 방식을 통해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젊은 작가들과 새로 등장하는 인터넷 작가들을 흡수하여 당을 중심으로 ‘단결‘시키고, 더 나아가 동화시키거나 양성하고 변화시킨다. 우선은 이런 대오의 일원이 되게 한 다음, 점차 독립된 인격이 없는 문학의 가치 판단을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작가들의 글쓰기에서 독립과 자유, 사상을 상실하게 하는 궁극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 P189
문화대혁명처럼 철두철미한 극좌의 독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민주와 자유가 보장되지도 않고 부분적이며 가변적인 정치 개방과 경제의 시장화, 정치의 폐쇄화 등의 이중 모순을 보이고 있는 환경에서 작가들은 독립적 사유와 상상의 가능성을 갖추고 있고 동시에 거대한 정체성의 장애 및 유혹에 직면해 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작가는 나름의 대응 방법을 갖고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순종과 호응으로 이익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문학과 재능을 명예와 지위, 물질적 이익의 교환 조건으로 삼는 셈이다. (중략) 두 번째 방법은 거리 두기와 도피다. 이는 대단히 숭고하고 가치있는 글쓰기 전략으로서 "나의 모든 것은 문학 자체를 위한 것이다"라는 숭고한 신념의 발현이기도 하다. 문학을 상아탑‘의 부속물로
여기거나 혹은 ‘상아탑‘의 명예로 주류와 권력, 복잡한 사회의 온갖 어지러운 현상에서 이탈하여 혼자 서재 안이나 무릉도원에서 조용하고 한적한 마음으로 산보하는 것, 문학을 귀삼아, 장자의 출세를 이유와 근거로 삼아 맑고 조용한 생활과 글쓰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중략) 세 번째 방법은 문학에서는 독립된 사유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독립 인격을 갖춘 작가가 되는 것이다. 이런 작가들은 과감하게 인간의 경과 현실을 직시하고 용감하게 글쓰기에 임하며 현실 속에서 문학의 존재를 직시하고 용감하게 문학 속에서의 인간과 현실적 존재를 직시한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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