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체제론‘ 지지자들의 일본 경제체제 비판은 이와 같은 사례에 맞춰져 있다. 이른바 ‘생산자 우선주의‘와 ‘경쟁 부정‘이 일본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쟁 수행을 위한 생산력 증강을 모든 것에 우선했고, 국민 단결을 위해 경쟁보다 팀워크와 성과의 평등 배분이 중시돼 이 두 가지가 절대 원칙처럼 여겨졌던 것인데, 패전 이후에도 그대로 고착됐다고 지적한다. - P216

‘생산자 우선‘으로 생산자인 일본 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에만 정책의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정작 공원과 같은 사회자본 정비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늦춰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서구 국가들보다 훨씬 적은 공공투자 때문에 국민은 낡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해 풍요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경쟁 부정‘은 유통업과 서비스업 등 생산성이 낮은 산업에 개혁의 메스를 들이대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들 산업의 자체 혁신이 늦춰지면서 세계 기준에서 도태되는데도 방치했다는 것이다. - P217

일본은 지금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에서는 과거의 성공 방식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일사불란을 강조하는 일본 시스템은 다른 산업에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직적인 일 처리와 인간관계는 소통부족과 창의력 결핍으로 이어졌고, 사회와 기업의 활력과 성과를 모두 떨어뜨리고 있다. 경제체제와 쌍을 이루는 권위주의적 교육과 제도, 관행은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 과거의 강점이 오늘날에는 개선해야 할 약점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진단은 한국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 - P223

공동운명체를 강조하는 일본식 노사 관행은 장시간 근로의 만연과 과로사라는 달갑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회사 사회‘는 안정적인 고용을 제공하는 대가로 직원에게 무한에 가까운 헌신과 희생을 요구했다. "회사가 전부" 이고 "취미는 일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바람직한 남성으로 여겨지고, 장시간 근로가 미덕이 되고 관행으로 정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 P230

유독 일본에서 블랙 기업 문제가 심각한 배경에는 일본적 고용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즉 블랙 기업이 ‘회사와 나는 하나‘라는 일본의 ‘전통‘을 악용해 청년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이다. 실제로 사례를 보면 일본 청년들이 블랙 기업에 충성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일본적 고용 관행에 대한 믿음이었다. 청년들은 과거처럼 기업을 위해 목숨 바쳐 일하면 기업이 알아줄 것이라고 믿지만, 블랙 기업은 처음부터 짧게 뽑아 쓴 다음 버릴 계획이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변절‘한 기업과 과거처럼 ‘순진‘한 노동자의 헌신과 복종의 조합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 P234

회사주의는 ‘고도성장 시대의 일본‘ 이라는 특수한 조건에서잠시 나타났다가 ‘평생직장‘ 이라는 환상만 남기고 사라진 신기루일지 모른다. 일본에도 우리에게도 그것은 지속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었다. 이면을 들춰보면 지금 시대에는 감내하기 어려운 단점과 부작용도 적지 않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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