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우리가 위화감을 느끼는 이유는 일본 정치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중 기본인 "국민이 나라의 주인" 이라는 명제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국민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의 민주주의가 국민의 힘으로 일궈낸 게 아니라, ‘위로부터‘, ‘밖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 P137
메이지 헌법이 규정한 일본의 입헌군주제는 사실상 전제군주제에 가까웠다. 의회는 민의를 대표하는 입법기관이 아니라 ‘건의 기관‘ 또는 ‘협찬 기관‘에 불과했다. 서둘러 의회를 개설하고 헌법을 만든 가장 큰 목적은 서구에 일본이 근대국가임을 보여주고 서구와 맺은 불평등조약을 개정한다는 것이었다. 형식적인 기구였을 뿐 민의의 반영 같은 인식은 희박했다. 겉으로는 서구의 근대 정치체제를 갖췄지만 서구와 같은 시민혁명 과정이 없었기에 정치의식은 전근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조선이나 중국은 더했지만 말이다. 이후 1910년대에서 1920년대에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민주주의 개혁 바람이 잠시 불었지만, 경제공황의 발생과 잇따른 군인의 쿠데타와 전쟁으로 ‘민주주의의 암흑기‘인 전체주의 시대로 들어갔다. 분명히 일본은 아시아에서 제일 앞서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했지만,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이 성숙해질 시간이나 계기가 없었다. 오히려 전시체제에서 민주주의는오랫동안 위협받고 위축돼 소멸 직전이었다. - P138
일본은 미국의 강력한 후견‘ 덕분에 다른 나라보다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실제 일본은 1990년대 탈냉전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는 아시아에서 상대적으로 앞선 민주주의 국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딱 거기에 멈췄다는 점이다. - P139
세습 정치인은 비교적 손쉽게 권력을 이어받기 때문에 공정성의 가치를 훼손하고 사회통합을 해친다고 비판받는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는 부정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본 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대체로 찬반 의견이 거의 반반으로 나뉜다. 과거 봉건시대 신분제도의 잔재가 강한 탓일까? 유권자들이 세습에 관대한 것이다. 그중에는 장인정신을 들먹이며 대를 잇는 정치가 장점이 많다고 옹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봐도 세습의 만연은 득보다 실이 많다. 유능한 인재라도 진입장벽을 뚫기가 쉽지 않아서 정치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 P141
일본 정치부 기자들이 자국 정치인들을 비판할 때 종종 쓰는 표현이 ‘위로부터의 시선‘ 이다. 아직도 정치를 베푸는 걸로, 국민을 그저 ‘통치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국민의 수준을 가리키는 ‘민도民度‘나 ‘분수에 맞게‘ 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사적인 자리에서는 ‘백성‘이란 단어를 쓰는 정치인이 아직까지 있다니 말 다했다. 정치인이 쓰는 단어가 여실히 보여주듯이 일본의 민주주의는 더는 성숙해지지 못하고 정체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에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는 인상도 준다. 분명히 제도는 민주주의인데, 실제 제도를 운용하는 모습은 여전히 먼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스스로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달은 것이 아니라, 위에서‘, ‘밖에서 떠먹여 준 민주주의여서 그런 것일까. - P144
관료들은 ‘아마쿠다리‘, 즉 낙하산 인사로 관청에서 퇴직 후 민간회사의 간부로 들어가는 관행도 만들었다. 낙하산인사는 관료와 기업 간의 정보교환과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면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훗날을 대비한 봐주기식의 행정과 인맥 형성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이 컸다. - P151
일본 학자들은 쇼와 노스탤지어 현상의 배경에는 일본의 현재에 대한 강한 불안과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한다. 노스탤지어는 ‘나쁜 현재‘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생겨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 P160
자숙경찰은 어떤 대상에 딱지를 붙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콕 찍어서 쉽게 공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다. 코로나19 긴급사태에서는 외출이나 영업 등을 ‘자숙‘ 해달라는 정부 지침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는 명목일 뿐, 실제로 가해대상은 ‘괴롭혀도 별 탈이 없을 것 같은‘ 사회적 약자였다. 대형 점포는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은 것과 달리, 지침을 잘 지킨 작은 음식점과 주점이 표적이 됐다. 재일교포와 차이나타운이 공격 대상이 된 것도 ‘소수자 차별‘이라는 맥락이었다. 그래서 일본 학자들은 자숙경찰의 공격은 학교나 직장에서의 이지메(집단 따돌림)와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고 지적한다. 일종의 집단 내 편 가르기와 희생양 만들기 현상으로 본 것이다. - P172
만주사변부터 태평양전쟁 패전까지의 이른바 ‘15년 전쟁(1931~1945년)‘ 기간 동안 국가주의가 득세를 부리면서 일본인의 국민의식은 과잉으로 치달았다. 군국주의는 잦은 전쟁의 원인이자 결과물이었다. 반성을 통해 비대해진 국민의식을 ‘순화‘하고 정제 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 P178
극단적으로 흐르는 그들의 밑바탕에 깔린 정서는 ‘상실‘이다. 내면에 상실의 울분이 켜켜이 쌓여 있고, 보상받고 싶은 심리로 가득 차 있다. 현실에 좌절한 나머지 자기긍정의 계기를 아찔하게도 전쟁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문제는 정치권이 이런 분노를 약한 존재 또는 이웃 국가를 희생양 삼아 돌리려 한다는 점이다. 과거처럼 손쉽고 편한,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 P182
일본어로 안은 ‘우치‘, 밖은 ‘소토‘라고 한다. 귀속감은 ‘소토‘가 아닌 ‘우치‘에 속하려는 욕망이다. 그러나 ‘우치‘는 어디에도 없다. ‘우치‘에 귀속한 인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우치‘에 귀속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만이 존재한다. 일본사회에서 ‘우치‘에 귀속되라는 유혹에 저항하기는 너무 어렵다. 또 끊임없이 소토‘에 적을 만들어 문제를 타개하려는 경향도 여전하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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