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의 핵심 전략은 차별과 폭력이 아니다. 차별과 폭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여성에 관한 거대하고도 체계적인 무지를 당연시하는 세계에 살게 되었다. - P4

세상에 존재하는 불합리와 불평등을 감추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디폴트값을 특정 집단에 유리하게 설정하는 것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 여성 상원의원들은 전용 화장실이 없어서 방문객용 화장실을 써야 했다. ‘상원의원 전용 화장실‘에서 ‘상원의원‘은 남성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남성 디폴트 뒤에 숨겨진 차별을 낱낱이 드러낸다. - P5

남자를 디폴트 인간으로 간주하거나 여자를 크기만 작은 남자로 간주하는 것은 제설 작업에서부터 안전벨트, 의학에 이르는 모든 것 또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 P7

젠더 데이터 공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는 그것이 대개 악의적이지도, 심지어 고의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존재해온 사고방식의 산물일 뿐이기에 일종의 무념이라 할 수 있다. 남자들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고, 여자들은 아예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중 무념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인간이라통칭하는 것은 남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 P16

만약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전부 비장애인 백인 남자라면 - 미국의 경우 90%가 그러하다 -또한 데이터 공백을 형성한다. 의학 연구에서 여성의 신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것이 데이터 공백을 형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차후에 상술하겠지만 여성의 관점을 포함하지 않는 것은 (대개 선의에서) ‘성 중립적‘인 척하는, 의도치 않은 남성 편향의 큰 요인이다. - P17

여성의 신체, 여자의 무급 돌봄노동, 여자를 대상으로 한 남자의 폭력, 이것들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서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부분과 연관되고 대중교통부터 정치까지, 일터에서부터 외과수술에까지 이르는 모든 경험에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여성의 신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들은 여자가 하는 무급 노동의 극히 일부만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씨름하는 남자의 폭력은 여자들이 직면하는 폭력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이러한 젠더 간 차이는 계속 무시되고 우리는 마치 남성의 신체와 그에 수반되는 삶의 경험이 성 중립적인 것처럼 살아간다. 이것은 여성에 대한 일종의 차별이다. - P18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초공정한 슈퍼컴퓨터에 의해 통제되는 초합리적인 세계에서도 여성은 여전히 드 보부아르가 말한 제2의 성에 불과하며, 남성의 아류로 격하되는 것이 초래하는 위험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건재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 P20

‘별도 지표가 없는 이상 남성‘이라는 접근 방식은 민족지학의 모든 분야에 전염된 듯하다. 예를 들어 동굴벽화는 대개 사냥감 그림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사냥꾼, 즉 남자가 그렸을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동굴벽화 옆에 찍힌 손자국을 분석해보니 대부분 여자가 그린 것으로 드러났다. - P23

남성명사를 변형하여 여성명사로 만드는 방식이 미묘하게 여성을 남성의 아류, 드 보부아르의 표현처럼 "타자"로 생각하게 만든다. - P27

우리는 14~17세기를 르네상스기로 분류한다. 그러나 사회심리학자 캐럴 태브리스는 1992년 저서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은 이유>에서 여자들에게는 그것이 르네상스가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그 시대에도 여자들은 여전히 지적, 예술적 생활로부터 대부분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18세기를 계몽주의 시대라고 부르지만 그때에도 인권은 확대된 반면 여권은 오히려 축소됐다. 여자들은 자신의 재산과 수입을 마음대로 관리할 수 없었고 고등교육과 직업교육을 금지당했다. 우리는 고대 그리스를 민주주의의 요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구의 절반인 여자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다. - P36

남자들은 여자가 아주 조금만 나와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들이 볼 때는 운동장이 기울어 있지도 않고 남자만으로 이루어진 라인업은 단지 남성이 객관적으로 우월하다는 증거인 것이다. - P39

백인 남자로 태어나 살면서, 아무 말 없으면 당연히 백인이고 남자라는 사실에 너무 익숙해지면 ‘백인‘과 ‘남자‘도 정체성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 P49

남성이 보편이라는 추정은 젠더 데이터 공백의 직접적인 결과다. 백인이라는 점과 남자라는 점을 말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다른 정체성이 아예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 보편은 젠더 데이터 공백의 원인이기도 하다. 여자들이 보이지 않고 기억되지 않기 때문에, 남성 데이터가 우리 지식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남성이 보편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이 소수자의위치로 끌어내려진다. 특수한 정체성, 주관적 관점의 취급을 받게 된다. 이러한 설계를 통해 여자들은 문화에서, 역사에서, 데이터에서 잊어도 되는 존재, 무시해도 되는 존재, 없어도 되는 존재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여자는 투명 인간이 된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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