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어떠한 정책을 채택할 경우, 언제나 단기적인 합리성은 보여왔습니다. 백악관 대변인의 설명을 들어보면 늘 그럴싸한 얘기를 하지요. 그런데 그와 같이 단기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정책을 반복해서 채택하지만 그만큼 또 반복해서 실패합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패턴이 있습니다. 왜 그들은 대부분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면서까지 같은 실패를 되풀이할까요? 매번 정당화를 위한 적당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말이지요. - P202
성가신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만이 미국과 통하는 파이프 또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지요. 친미노선을 충실하게 받드는 사람만이 이권을 독점하는 구조는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었겠지만, 그래도 이전에는 마음속에서 그런 물음을 파고들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친미 노선 이외의 가능성을 상정하기만 해도 특정 이익 공동체로부터 배제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시 노부스케와 아베 신조 사이의 질적인 낙차가 아닐까 싶습니다. - P204
분명히 일본은 경제 영역에서 미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지만 자각하지 못했고, 나아가 전쟁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승리한 시점에서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허둥지둥하다가 어느 사이엔가 반전 공세에 직면했고, 아차하는 사이에 수탈당하는 대상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 P210
"왜 우리만 나쁜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영국과 미국은 더 나쁘지 않은가!" 라는 외침에도 일말의 진실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패전했다는 의미이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어른이라는 얘기겠지요.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경의를 표할 만한 태도를 갖출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P231
미국은 일본이 위험 요소였기 때문에 일본 연구에 자본을 투입했지요. 1980년대까지 일본은 미국 입장에서 동반자이자 위험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쇠퇴하면서 리스크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한정된 지역 연구 자원을 일본에 투입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루스 베네딕트의 저서 《국화와 칼》같은 일본 연구가 필요 없게 된 이유도 일본이 더 이상 ‘적‘으로서나 파트너로서나 대단한 존재가 아니게 된 데에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정말 기이하다. 속을 알 수 없는 놈들이다. 잠재적인 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큰돈을 들여가며 일본을 연구했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기 때문에 연구하지 않는 겁니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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