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사고를 말하자면, 전후 일본의 다테마에가 정말로 다테마에에 지나지 않았다는 모든 증거가 튀어나왔습니다. 대표적인 다테마에가 평화주의와 민주주의입니다. 이 나라의 지배 권력은 평화와 민주, 그 어떤 가치도 진심으로 추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덮은 채 감추고 있던 어두운 것, 어렴풋이 알아채기는 했지만 보고 싶지 않아 내팽개쳤던 진실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P106
왜 패전을 부인해야만 했을까요? 전쟁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전후에 또다시 지배적 지위에 계속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래대로라면 그런 지위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패전 사실을 가능한 한 애매모호하게 처리해야 했죠. 그렇다면 왜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미국이 원했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부터 냉전 구조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일본을 자유주의 진영에 붙들어 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일본 통치를 맡기겠습니까? 일단 좌익은 제외입니다. 일본이 소련 진영으로 내달릴지도 모르니까요. 또 하나 선택지는 이전의 파시스트입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파시스트는 좌익이든 별 볼 일 없기는마찬가지이나 그들은 파시스트 쪽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전전의 보수 세력이 계속해서 권력의 자리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후 일본은 민주 국가가 되었다고들 얘기하지만 허구입니다. 일본을 패전으로 이끈 무리가 그대로 머물렀고 계속해서 후계자들이 권력의 자리를 지키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나라에 진짜 민주주의 따위는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 P108
안에서는 패전을 속이고, 미국에는 아무런 조건 없이 항복했습니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죠. 일본의 보수 정치 세력은 미국의 허락 아래 권력의 자리에 머무를 수 있었던 터라 미국에 감히 맞설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대미 종속 구조를 형성한 근본 원인입니다. 이리하여 일본은 미국에 영원히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입니다. - P109
윗사람의 총애를 받아 입신출세하는 것이 일본인에게는 정통적 경력 쌓기 방법입니다. 강자에게 철저히 충의를 다해 이루어진 이해관계의 완벽한 일치를 과시함으로써 독립을 획득합니다. 종속성을 강조함으로써 독립성을 획득하는 프로모션 형식을 서구인은 선뜻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일본인은 별다른 위화감 없이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역대 일본 총리가 미국 대통령과 친밀한 표정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 주인과 지배인이 찍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 P113
기본적으로 자민당이라는 정당은 CIA로부터 돈을 받아 결성된 경위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의 꼭두각시나 다름없습니다. 다른 한편 야당 중 제1당인 사회당은 우여곡절 끝에 소련에 기대고 맙니다. 소련의 앞잡이 비슷한 역할을 했지요. 그러니까 미국의 앞잡이와 소련의 앞잡이가 제1당과 제2당이었던 셈입니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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