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일본의 트라우마는 메이지유신으로부터 150년이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주제로 떠오르지도 못했고 언어로 표현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정신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현대 일본의 정치인이 정치적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 P87
영속패전 제제가 드러내는 단면은 미국에 종속하는 비굴한 모습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를 향해 오만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비굴한 종속과 오만한 태도가 뿌리깊게 자리 잡은 까닭은 메이지 이래 제국주의 정책이 성공했고, 또 1945년 전쟁에서 패배했음에도 살아남은 데 있습니다. - P89
"어떻게 가난한 중국인을 좋아할 수 있었겠는가. 먹고살 만해지니까 주제넘을 짓을 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내려다볼 수 있는 선에서 사이좋게 지내자. 대등한 건 싫다." - P90
실제로 우리 세대가 어렸을 때 학교 선생님은 진지하게 "너희들은 민주주의의 자식이다. 모든 전쟁 책임으로부터 결백한 너희들이 일본의 미래다"라고 늘 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세대는 전쟁에 "전혀 책임이 없다"는 말을 앞선 세대로부터 되풀이해 들어왔습니다. 그랬던 까닭에 그로부터 50년이 지나 이웃 나라 사람이 "전쟁 책임을 어떻게 다룰 생각이냐?"고 따지고 들면 깜짝 놀라곤 했지요. 참으로 미안한 얘기지만 이런 상황은 전쟁 세대가 전쟁에 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난 데 따른 부정적인 귀결입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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