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의 공산당에 대한 신임이 (적어도 건국 초기에) 높지 않은 점은 확인된다. 군중들은 공산당 간부에 대해 과거 국민당의 경찰이나 법원과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또한 공산당이 표방한 신민주주의사회 초기의 관대한 정책을 오히러 두려워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즉 군중운동을 통해 ‘나쁜 사람‘과의 투쟁에 나서게 되었지만, 공산당이 그들을 쉽게 석방해버림으로써 그들이 다시 나와 보복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존재했다는 말이다. 이른바 군중 속의 ‘세상이 오래지 않아 변하리라는 생각‘이 적극적 참여를 제어하는 요소였다. - P190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면서 중국사회는 신민주주의사회로 접어들었는데 그 핵심을 간단하게 말하면, 공산당의 지도 아래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 노선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정치 면에서는 공산당 지도하에 각 민주당과와 연합정권을 구성하는 인민민주통일전선, 곧 연합정부론이다. 경제 면에서는 생산력 발전을 핵심으로 하되 국영경제 부문의 주도하에 각종 부문이 병존하여 공동 발전하고 공과 사를 모두 고려하며 노동과 자본에 모두 이익이 되면서 도시와 농촌이 서로 돕는 것 곧 혼합경제론이다. 사상적 측면에서는 민족적이고 과학적이며 대중적인 문화와 교육의 발전, 곧 신민주주의문화론이다. - P198

1954년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이 제정되었는데, 건국 초기 건립된 ‘중앙인민정부위원회‘ 체제 속의 ‘연합집정‘ 기록은 완전히 삭제되었다. 1954년의 헌법은 민주적 협상의 느낌이 약간 남아 있던 연합정부를 당국체제로 재편한 정치체제의 전환을 보여준다. - P207

군중운동은 사회 각 부문, 공작 단웨이, 가정, 심지어 개인의 구체적인 행동과 내면세계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운동에 힘입어 이들은 구미 열강이 중국을 침략해 안겨준 굴욕과 좌절감을 청산하고 민족과 국가에 대한 자신감을 증강시킬 수 있었고, 이와 더불어 광범위한 사회동원과 교육운동을 통해 신정권과의 일체감을 높였다. - P2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