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특정한 사회집단이자 국가의 발전을 이끄는 주체로 적극 평가하는 것은 근대적 현상이다. 동아시아에서는 변혁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면서 그것을 담당할 새로운 주체를 세대론이란 도식에 기대어 전략적으로 호출할 사회문화적 - 국가적 필요가 생겨나며 각 지역에서 청년의 발견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 가장 앞서 (1880~90년대) 청년담론과 청년단체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중국과 한국에서는 그보다 늦게 주목되었다. 중국에서는 1910~20 년대에 청년담론과 청년단체가 활력을 얻었다. - P59
당시의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 숭양(洋)풍조, 특히 미국문화에 대한 몰입은 미국 영화 유학생 · 선교사 등에 의해 조성되었지만, 근원적으로는 중국 지식청년의 자기 문화에 대한 자대(自大)‘와 ‘자비(自卑)‘라는모순된 이중심리의 소산이었다. - P61
신문화운동이 청년, 학생들에게 해방과 동시에 번뇌와 좌절감을 가져다주어 당시 ‘인생‘의 의미를묻는 것이 유행하던 ‘큰 질문‘이었고, 각종 사조가 다투어 그에 대한 해답을 제공했으나, 사회혁명의 길, 그의 표현에 따르면 ‘새로운 신앙‘ 격인 신주의(新主義)‘가 출로로서 ( ‘주의시대主義時代‘로 규정되는) 당시의 대세를 이루었다고 한다. - P64
한 중국 문필가는 ‘많은 학생들이 즐겨 사회혁명에 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고 말한다. 학생들은, 장님이 장님을 이끄는 격이나 다름없지만, 노동조직의 지도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경향은 또한 맑스의 인기나 러시아 투쟁에 대한 공감에서도 드러난다. 60명의 교사와 학생 들이 쏘비에뜨를 가까이서 직접 배우기 위해 최근 러시아로 떠났다. - P64
전통적 가치관이나 생활습관과 신문화운동의 영향 사이에서 번민하고 민족적 위기에 대해 인식하면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던 청년기의 개개인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의논할 곳이 마땅치 않자, 자기 또래에 눈을 돌려 개인적인 연결망을 매개로 소규모이긴 하나 공동체를 만들어 그것을 통해 정체성의 위기를 해소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려고 했음이 확인된다. 그리고 이것은 청년 개개인이 정치에 대한 불신과 개성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해 자발적으로 결합한 단체를 통해 윤리혁명(또는 문화혁명)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전통시대 문인(사대부)의 사(社)와는 구별되는 청년 학생들의 정말로 새로운 문화운동이었다. - P68
당시 ‘일과 학업의 병행‘과 ‘노동‘을 중시하는 것은 신문화운동 진영에서 중국 사회문제 해결의 지름길로 널리 수용되었다. 그 사상 배경은 아나키즘(그중에도 끄로뽀뜨낀의 상호부조)뿐만 아니라 노동주의, 신촌주의(新村主義), 인도주의, 길드주의 및 세계대동, ‘노동신성‘ 등의 사조가 뒤섞인 시대적 분위기였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노동과 호조(互助)를 통한 도덕적 변혁이야말로 진정한 중국의 구원의 길로 지식인 사이에서 인식되고 있었다. - P76
5.4 사건이 한창일 때 천두슈가 주장했듯이, 중국 국민이 바라는 것은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전제정치가 아니므로 다수의 평민 — 정당이 아니라 학계 · 상회 · 농민단체 ·노동단체 — 스스로가 정부를 정복하지 않으면 안 되며 평민의 힘이 ‘민주정치의 정신‘으로 발휘되어야 한다는 그 관념이 공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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