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라는 미디어가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의 눈앞에 ‘물질로서의 책=그 최고 형태로서의 종이책‘과 ‘물질이 아닌 책=전자책‘ 이라는 두 갈래 방향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는 그 역사적인 분기의 장에 맞닥뜨렸다.
종이책에는 할 수 있는 것(예를 들면 물리적 고정)도 할 수 없는 것(예를 들면 멀티미디어화나 인터넷 유통)도 있고, 그러한 점은 전자책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무언가 하나의 기준으로 종이책과 전자책의 우열을 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공존밖에 없다. 여태까지는 한줄기 길이었던 책의 역사가 두 방향으로 나뉘어, 각각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함께 가진 두 종류의 책이, 부분적으로 상호 중첩되면서도 별도의 영역에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그러한 복잡한 공존 관계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P226

2004년, 구글사는 구글 프린트 (현재의 구글 북스)라는 새 프로젝트를 발족해 세계 각지의 대학 도서관이나 공립 중앙 도서관과 손을 잡고, 여태까지 출판된 종이책 전부를 디지털 스캔해서, 그로부터 작성한 전자책을 전 세계에서 온라인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대사업에 착수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그 옛날부터 많은 도서관인이 ‘전 세계의 책을 한곳에 모은 거대 도서관‘ 이라는 꿈을 허무하게 좇아왔다. 그 ‘전 세계 도서관‘의 꿈을 지금은 구글이라는 글로벌 기업이 막대한 자금과 기술력을 투입하여 일거에 현실화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 P231

훌륭한 구호 뒤꼍에 그들을 여기까지 밀어붙여 움직이게 한 것은 결국, 종이책이라는 형식으로 보존되어온 인류의 지적 자산을 자신들의 손으로 뿌리째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어 그것에 대한 접근권을 독점하고 글로벌한 정보 권력을 장악하려는 욕망뿐이었던 것이다. - P231

저명한 서적사가인 로버트 단턴이 하버드대학 도서관의 관장으로 선출되어 구글 북스 계획의 제휴 상대인 구글사를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거기서 그는, 이 회사에는 변호사나 기술자가 수천 명이나 있다고 하는데 한 명의 서지학자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프로젝트는 반드시 실패한다‘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 P235

독서의 황금시대로서의 20세기가 실은 줄곧 안정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 혁명의 충격으로 종이책이 처음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것처럼 아주 심하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차페크에 따르면 이미 전세기의 1920년대, 독서의 황금시대가 그 전성기에 들어서려고 하던 무렵 영화의 성숙 때문에 그 자신을 포함하여 책을 좋아하는 사람마저도, 재빨리, 그 위기를 예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점과 관련하여 하나 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동시에 이 위기가 사람들이 종이책의 힘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 P239

마이니치 신문사가 패전 후 계속해온 독서 조사에 따르면 근년에는 "요즘의 젊은이들은 조금도 책을 읽지 않는다"라고 탄식하는 노인들이 젊은이 이상으로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무엇도 ‘젊은이들‘ 에 한정되지 않는다. 중년, 고령층을 포함한 모든 일본인이 점차 책을 읽지 않는 가운데 그들도 책을 읽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듯하다.
- P241

일반적으로 말하면 패전 전부터 이어져 오는 교양주의적 · 권위주의적 ‘독서의 계단.‘의 질서가 드디어 이 단계가 되어 거의 완전하게 붕괴된 것이다. 기다 겐에서 시바타 모토유키, 이케자와 나쓰키까지, 전술한 사람들의 작업도 아마 이 붕괴 현상에 진지하게 대처하려던 데에서 시작되었을 터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 독서가 이기고 인텔리 독서가 패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게 아니라, 인텔리가 인텔리라는 것의 오랜 구속으로부터, 그리고 대중이 대중이라는 것의 마찬가지로 오랜 구속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이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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