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쇼 시대에서 쇼와 시대에 걸쳐, ‘딱딱한 책‘과 ‘부드러운 책‘을 불문하고, 낮에도 밤에도 일상적으로 책을 읽는 것이 계층을 넘어 일본인의 생활 습관이 되었다. 어쩌면 그리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방향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이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백만 잡지와 엔본(염가판 전집)과 문고라는 새로운 출판 형태의 출현이었는데, 그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에 사람들의 독서와 직접 관련된 몇 가지 변화가 병행해서 일어났다.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이 일반 가정에 전등이 보급된 것이다. - P141

오랜 꿈을 실현한 소시민들은 기대했던 대로 자신의 서재에서 많은 명저와 차분히 교분을 나눌 수 있었을까?
동기야 어떻든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서재 생활의 꿈은 의외로 일찍 시들어버린 것 같다. 무엇보다 일이 바빴고, 읽기보다는 겨우 손에 넣은 새로운 생활과 그 미래를 보증해줄 문화적인 누름돌로서의 장서, 그런 상징적인 의미가 더 강했다. - P148

비록 자신은 읽지 않더라도 그들의 장서는 아들이나 딸, 나아가 손자 대에까지 계승되었고, 그 결과 가가같이 여하튼 ‘책이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숫자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 P149

노마도 이와나미도 출판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중학교나 여학교 교사를 했었다. 그 덕도 있는지 그들은 "국내외의 고전을 읽고 스스로의 품격을 고양한다"라는 교양주의적 독서의 이념에 공명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런 독서 습관을 "몇 안 되는 서재와 연구실" 등의 "좁은 부류의 사람들"(「독서인에게 부쳐」)에서 보다 넓은 세계로 해방시키고자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즉, 엘리트적인 교양주의의 민중화 · 대중화다. 그를 위해서도 일본의 가정 집집에 동서고금의 고전이나 명작의 처소를 만들자. 바꾸어 말하면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가정 도서관‘의 실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제공하는 엔본 전집이나 문고가 진정으로 지향하는 목표라고 생각했다. - P150

결국 책장의 책들은 단순히 아버지의 장서였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세대나 시간을 넘어 살아남을 수 있도록 구성된 가정 도서관이기도 했던 것이다. - P150

사회 각층에서, 독서를 건전한 생활을 어지럽히는 악덕의 일종이라 간주하던 종래의 관습이 그 힘을 상실해갔다. 도시뿐 아니라 농촌에서도 무조건 독서를 금했던 니노미야 긴지로의 친척 아저씨나, .‘책만 읽어서 어쩌냐‘라고 꾸짖던 나카노 시게하루와 미키 기요시의 모친들 같은 사람들의 숫자가 줄고, 그를 대신하여 ‘우리의 인생에서 독서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좋은 습관이다‘ 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상식이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20세기 독서‘의 기본이 되었고 지금도 아직 무언가 살아남아 있는 것이 이 새로운 상식인 것이다. - P152

1927년, 이 신작가들을 결집하여 헤이본샤에서 『현대대중문학전집』이라는 엔본 전집이 출간되었다. 전 60권. 1권 시라이교지집은 초판이 33만 부가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어지는 권들도 잘 팔려서 그것을 계기로 ‘대중문학‘이라는 새 명칭 (시라이의 명명이라고 여겨지고 있다)이 널리 사회에 정착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대중문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다만 현재와는 달리 이 단계의 ‘대중문학‘이라는 말은 주로 오래된 강담본을 대신할 만한 새로운 시대소설을 의미했다. - P155

책에는 실은 두 개의 얼굴이 있다. 하나가 상품으로서의 얼굴, 그리고 또 하나는 공공의 문화 자산으로서의 얼굴이다. 출판사는 책을 사고파는 상품으로서 생산하고, 도서관은 그 책에서 상품성을 떼어내 누구나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의 문화 자산으로 취급한다. 그러므로 서점에서는 돈을 지불하고 사야 하는 책도 도서관에 가면 무료로 읽을 수 있다. 실현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얼굴의 공존을, 출판사와 도서관 쌍방이 함께 나란히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들과 함께 책을 읽는다"라는 20세기 독서의 기반에는, 하나는 이러한 이중성을 허용하는 관용과 대담한 제도적 결단이 있었던 것이다. - P159

소형에 가벼운 문고판이라면 몰라도 작은 활자로 소설이나 평론을 빽빽이 적어 넣은 두꺼운 엔본을 통근 전철에서 읽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관심은 ‘그만큼 집중력을 필요로 하지 않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이나 짧은 시간 안에 다 읽을 수 있는 것‘으로 흘러갔고, 그에 대응하여 새로운 장르의 읽을거리가 등장했다.
하나는 수필, 탐방, 좌담회, 실화, 수기 등 한마디로 ‘잡문‘이라 불린 가벼운 읽을거리, 1923년에 창간된 후 이 흐름을 타고 매상을 늘렸고 이윽고 신시대의 국민 잡지라 여겨지게 된 것이 기쿠치 간이 편집한 <분게이산주>다. 그리고 또 하나 신흥 대중소설, 앞에서언급한 시대소설이나 통속소설이다. - P162

그것과 관련하여 또 하나 예를 들면, 친천히 읽기‘에서 ‘빨리 읽기‘로의 변화가 있다. 이것도 20세기에 들어 우리의 독서에 생겨난 특유한 습관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일찍이 메치니코프가 지적한 것처럼, 전대의 목판본에 비해 문자의 개성을 지우고 규격화한 활판인쇄본은 압도적으로 읽기가 쉽다. 거기에다 구독점이나 후리가나의 채용, 글자 수 맞추기나 행간의 궁리, 환자서체의 세련화, 인쇄 기술의 향상과 같은 혁신이 겹쳐져 읽기 쉬운 책이 한층 더 읽기 쉽게 되었다. 그에 따라 읽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뿐 아니라 출판 유통이 정비되어 읽고 싶은 책을 구하기 쉽게 되었고, 전기 보급 덕분에 밤에도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천천히 읽기‘에서 ‘빨리 읽기‘로의 변화는 무엇보다도 우선 이러한 근대화 과정이 초래한 필연적인 결과였던 것이다.
그리고 ‘빨리 읽기‘는 바로 ‘다독‘으로 이어진다. 소수의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 그것이 전대의 독서의 기본적인 자세였지만, 그것이 출판 근대화 이후에는 대량생산된 책을 가능한 한 많이 읽는 것으로 바뀐다. 그 변화가 결정적이었던 것이, 대략 말해서, 역시 교양주의 독서의 시대였던 것이다. - P163

과거의 유교적인 ‘수양‘의 시대라면 한권의 책을 경전처럼 반복해서 읽으면 된다. 그러나 ‘세계인‘이 되려고 하는 현대인의 지적 · 윤리적 기초가 되는 ‘교양‘이 되면 그렇게만 할 수는 없다. 미키뿐 아니라, "동서고금에 걸쳐" 대량의 책을 읽는 것은 교양주의적 독서에서는 필수적인 전제가 되어 있는 것이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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