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화하자면 독서 사회의 한복판에 ‘대중‘이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등장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20세기를 독서의 황금시대로 만든 최대의 사건이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P118

근현대에 이르면 책을 읽는 우리 안에 어느새인가 또 하나 다른 의식이 생겨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이 책을 혼자서, 그러나 다른 장소에 있는 미지의 타인들과 함께 읽고 있다.
라는 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책을 사든 도서관에서 빌리는 지금 우리가 생활하는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나 열의만 있으면 누구나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고, 실제로 읽고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두툼한 역사서나 사상사든 그때그때의 베스트셀러는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은 나만이 아니다. 나 말고도 계층이나 지역이나 성별을 불문하고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같은 책을 읽고 있을 것‘이라는 의식이 생겨난다. - P118

‘혼자서 읽는다‘ 라는 의식이 개인의 자유와 관련되어 있다면 ‘알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읽는다‘ 라는 또 하나의 의식은 오랜 역사끝에 20세기가 되어 비로소 실현된 독서의 평등화라는 국면과 대응하고 있다.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 평등화를 현실화한 요인의 첫째는 메이지 정부가 국책으로서 강력하게 추진한 문해 교육일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읽고 쓰는 능력의 향상으로 가속도가 붙어 확대된 독자층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책을 만들고(책의 대량생산), 그 책들을 그들 앞에 신속하게 배달하는 구조(전국적인 유통망)를 갖춘-즉,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자본주의적 산업으로서의 출판의 구조가, 이 시기에 놀랄 만한 기세로 충분히 마련되었다는 것. - P119

‘백만 잡지‘와 ‘엔본‘과 ‘문고‘라는 신종 출판 형태가 한꺼번에 출현함으로써 일본인의 독서 환경이 송두리째 변화한다. 일본의 독서 역사에서 유수의 대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125

메이지 초기가 ‘신문의 시대‘였다는 것은 이미 전술했다. 그 다음이 바로 이 ‘잡지의 시대‘ 이고, 그것을 뒤에서 밀어주는 형태로 ‘서적의 시대‘가 찾아온다.
(중략)
이 잡지의 시대‘를 일본에서 선도한 것이 하쿠분칸의 대중 종합잡지 〈다이요>다. - P125

잡지들의 다수가 대량출판 · 대량판매를 전제로 하는 대중잡지로 발간되었다. 지식층을 대상으로 <주오코론〉 〈가이조> 등의 딱딱한 종합지도 있었지만 중심은 역시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대중 지향의 큰 바람을 타고 선행 잡지인 <다이요>를 추월하여 모든 잡지의 독자들을 한꺼번에 모두 묶어버리고자 했던 고단샤가 새로운 대중 종합지를 창간했다. 그것이 <킹>이다. 내로라하는 ‘모든 잡지의 왕‘이다, 라고 과감하게 대대적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 P126

쇼와 시대 초기에 간행된 균일한 1엔 전집본, 그것이 엔본이다. 공무원이나 큰 회사 샐러리맨의 초임이 75엔이던 시대에, 통상 장편소설 세 권이 담긴 박스를불과 1엔이라는 저가로 구입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이 이름이 생겨났다. - P129

엔본 붐을 경험함으로써 일본 사회의 독서 풍경은 급변했다. 엔본 붐 이전에 일상의 독서 재료로 존재하던 것은 신문·잡지를 제외하면 강담본뿐이었다. 그러나 엔본 붐 이후에는 동서고금의 문학 사상과 관련된 양질의 거대한 저장품이 각 계층의 바로 곁에 대량으로 축적되었다. 사람들의 독서환경은 현격히 향상되었다. (…) 엔본이라는 이름의 독서 혁명으로 초래된 것은, 강담을 대신하여 『부활』 『레미제라블』이 마을의 술집 여성이나 온천 여관 여급의 일상적인 읽을거리가 된 독서 세계였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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