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가나 혼용문의 보급에 따른 독자층의 확대와 그로 인해 촉진된 인쇄에 대한 관심의 증대가 그 징후였다. 단 하나밖에 없는 육필 텍스트에서 인쇄 덕분에 일거에 다수의 복사본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사회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그때까지의 사본(또는 적은 부수의 목판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성능 복제 기술이 지닌 엄청난 힘. - P65
그 증거로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임진왜란) 때에는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 등의 무장들이 조선의 선진적인 활판인쇄기, 대량의 동활자와 그 주조기를 모조리 약탈해 오는 난폭한 사태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리고 기묘하게도 이와 같은 시기인 1590년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구텐베르크식의 활판인쇄기와 활자주조기를 나가사키 · 고토열도의 거점(가즈사)으로 가지고 들어와, 주로 히라가나와 소수의 한자로 ‘기리시탄판‘으로 알려진 활판본을 간행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일본인과 활판인쇄술과의 최초의 만남이다. - P66
기리시탄판은 아무리 생각해도 활자형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히라가나의 초서연면체草書連綿體를 감히 활자로 재현하려고 했다. 불가사의한 것은, 예수회는 왜 이 시기에 일부러 이런 귀찮은 작업에 착수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 근본에는 아마도 1551년, 오다 노부나가의 등장으로 무로마치시대가 끝나기 20년쯤 전 일본에 파견된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Francisco Xavier의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일본인의 다수는 읽고 쓰기가 가능하다. 따라서 문자에 의한 포교나 선전이 효과적‘ 이라는 판단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 P67
당시의 사원에서는 아이들을 ‘데라코‘로 받아들여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습관이 있었고 그것이 후에 데라코야로 이어졌다. - P67
조선식과 유럽식, 두 가지 활판 기술방식의 이례적 만남에 자극을 받아 이 나라 일본에 때아닌 활판인쇄 붐이 생겨났고, 그로부터 거의 반세기에 걸쳐 목판을 대신하여 활판(주로 목활자)이 인쇄의 중심을 차지하는 ‘고활자본 시대‘가 이어진다. 『겐지 이야기를 필두로 『고금 와카집』『다케토리 이야기』『이세 이야기』 『호조키』 『쓰레즈레구사』 등 지금도 계속 읽히는 고전의 인쇄본이 처음으로 간행된 것이 바로 이 시기의 일이다. - P70
목판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초기 투자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주로 비영리 사업이었던 고활자본의 몇 배, 때로는 열 배 이상의 부수를 팔아야 한다. 그런 목적도 있고 해서, 간에이 시기가 되자 영리 목적의 시내 서사(종종 출판사를 겸한 서점)가 잇달아 출현하여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책의 대량생산과 안정된 유통망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일본에서 시작된다. 그 변화를 추진하는 강력한 엔진의 하나가 된 것이 이하라 사이카쿠의 『호색일대남」이었다. - P71
그러나 과거에 『겐지 이야기』가 ‘독서하는 여성‘이라는 새로운 독자층을 만들어낸 것처럼 여기에서는 『호색일대남이 신시대의 『겐지 이야기』 역할을 하더니 이윽고 ‘독서하는 대중‘이라는 새로운 독자층을 사회 표면에 일거에 부상시켰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단초를 귀족도 승려도 무사도 아닌 가미가타 상인의 아들, 이하라 사이카쿠가 제공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 P75
같은 시기, 그때까지 귀족이나 승려가 담당해온 ‘학자식 읽기‘의 전통은 어떻게 되었을까? 최대 변화는 시대사의 공기가 불교에서 유교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무사가 새로운 독자로서 ‘학자식 읽기‘의 반열에 본격적으로 추가되었다. - P75
단순히 지배(치국 평천하)의 사상일 뿐 아니라 개인의 ‘수신‘에도 깊이 관련된 사상. 평화로운 시대의 행정 관료가 된 사무라이 개개인이 칼이나 창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법 대신 자신들의 동일성을 확립해가려고 했다. 주자학은 그런 그들의 정체성 재확립에 직접 관련된 사상이기도 했다. - P75
전투로 날을 새우며, 책과 친숙해지는 습관과는 무연하게 살아온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우선은 그를 위한 입문서, 책은 어떻게 고르고 어떻게 읽으면 좋은지 등 즉시 효과를 발휘하는 매뉴얼이 필요했다. 그래서 에도시대에는 지속적으로 그런 부류의 책이 왕성하게 출판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이 읽힌 것이 후쿠오카의 번사이자 유학자이기도 한 가이바라 에키켄의 일련의 저작이다. - P76
독서 습관이 사회에 널리 정착하는 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필요가 있다. 신분이나 성별을 불문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다수가 책을 읽는 힘, 즉 읽고 쓰는 능력을 지니고 있을 것. 그것이 첫째다. 그리고 둘째로, 누구나가 비교적 간단히 책을 구할 수있는 유통 구조가 마련되어 있을 것. 이 두 가지 조건이 일본에서는 에도시대에 이르러 겨우 갖춰지기 시작했다. - P80
보통은 서민이 데라코야에서 읽고 쓰기의 기본을 배운 후 공부를 더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민간의 유학자가 연 사숙을 다닐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돈과 시간이 든다. 그런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니 하쿠넨이라는 유학자가 유교의 기본이 되는 사서(『논어』 『대학』 『중용』 『맹자』)를 비롯하여 많은 경서를 자학자습하기 위한 새로운 스타일의 입문서를 궁리하여 출간했다. 그것이 『게이텐요시』다. 즉, ‘선생이 필요 없는 유교 경전 입문‘인 것이다. - P84
이 "게이텐요시』 붐을 타고 18세기 말, 덴메이에서 간세이에 걸친 시기에 히라가나로 된 고전 자학자습본이 잇달아 간행된다. 이 자학자습본 중에,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출판인 쓰타야 주자부로가 관여한 효경 히라가나즈키』『약해 천자문』 『그림책 24 효』 등 히라가나로 쓰인 대중계몽서가 있었다. 그것들을 놓고 판단해보면 당시 출판업에 막 들어선 쓰타야는 『게이텐요시』의 성공에 "새로운 독자층, 즉 서적 구매층의 대두"를 간파했음이 틀림없다. - P85
에도시대 후기의 기뵤시에서 고칸에 이르는 대중오락서가 이처럼 현란하게 꽃피게 된 토대에 실은 『게이텐요시』에 의한 대중의 자발적인 공부열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 P86
일본에는 "가나로 쓰인 서민적인 책"(부드러운 책)과 "일본어, 한자의 혼용문으로 쓰인 교양 계급 대상의 책"(딱딱한 책)이 있다. - P88
1000년 전 극소수의 상층 귀족 사이에서 시작된 독서의 습관이 에도와 교토, 오사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윽고 일반 서민을 포함해 일본 사회 내 모든 계층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메이지유신도, 그리고 뒤이은 문명개화도 그 배경에는 이처럼 에도시대 후기에 급속도로 두께를 더해간 독자층의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 P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