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서도 다루었지만, 비록 독서의 황금시대로서의 20세기가 끝났어도 그것으로 우리의 독서 습관까지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 터이다. 당연하다. 끝난 것은 책 자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영화, TV, 라디오, 연극, 무용, 음악, 회화, 사진, 디자인 등 다양한 미디어가 자아내는 그물망의 중심에 책이 묵직하게 위치한다는 황금시대의 구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이나 독서를 특히 우위에 있는 것이라 느끼는 심성이 엷어진 것만으로 책 자체의 가치가 줄어들지도, 책을 읽는 일상이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디지털 기술의 개입도 있고 책을 포함한 제 미디어의 배치가 와르르 변용되어가는 가운데 반드시 새로운 독서 습관이 다시금 천천히 양성되어갈 것이다. 이 책을 쓰고 난 지금 나는 ‘황금시대‘의 종언을 그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 P10
과학사학자인 나카야마 시게루가 자신의 저서 『패러다임과 과학혁명의 역사』에서, 유럽의 학문을 추진하는 엔진은 ‘논쟁‘이었는데 중국의 학문에서는 ‘기록의 집적‘이 우선시되었다는 의미의 주장을 했다. 그러므로 중국의 교육에서는 타인을 설득하는 ‘변론력‘이 아니라, 종이나 죽간에 기록된 선행자들의 언동(선례)을 반복해서 소리 내어 읽고 그 모든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어 필요할 때 바로 생각해내도록 하는 것, 즉 ‘기억력‘을 가장 중시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보태지는 것이 ‘문장력‘이다. 관료제의 계단을 올라가 황제 가까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특별히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임과 동시에 두드러지게 인간적이고 고매한 시인이나 문장가이기도 하다는 것을 엄격한 시험(과거)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 - P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