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은 19개의 하위집단으로 분류된다. 그중 두 하위집단의 개체 수는 늘었고, 네 하위집단은 줄어들었고, 다섯 하위집단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나머지 여덟 하위집단은 전혀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다. 전반적인 추세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북극의 얼음 면적이 줄어들어 북극곰의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늘 존재한다. 가령 사냥이 그렇다. 1963년부터 2016년까지 사냥당한 북극곰은 약 5만 3500마리다. 오늘날 남아 있는 북극곰은 2만 6000여 마리로 추산되는데 그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중략)
이처럼 북극곰에 관한 정보는 오류투성이다. 이는 기후 변화와 관련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과학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려 준다. - P501

우리는 그 대답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 보고서의 과학적 기반 자체는 대체로 건전하다. 하지만 <정책 결정자를 위한 요약>과 언론 보도자료, 보고서 저자들의 성명과 언론 인터뷰 등이문제다. 그것들은 이념적 동기를 가지고 과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중요한 맥락을 함부로 생략한다. - P507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를 비롯한 여러 과학 조직들은 언론용 보도자료를 만들면서 중요한 사실들을 빼놓거나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대중의 인식을 호도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 피해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인류는 계속 변화한 환경에 적응해 나갈 것이며, 따라서 그 피해는 더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 역시 말하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화재의 발생빈도와 피해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기후 변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숲 가까운 곳에 사는 것, 그리고 나무를 연료로 쓰는 것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식량 생산량은 기후 변화가 아니라 비료, 농기계, 관개 시설에 좌우된다는 사실 역시 그들은 침묵으로 감추고 있을 뿐이다. - P509

오늘날의 환경주의는 일종의 세속 종교다. 기성 종교색이 옅은 고학력층을 위한 신흥 종교인 셈이다. 신도들은 주로 선진국과 일부 개발도상국에 거주하는 상위 중산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환경주의는 신도들에게 개인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새로운 인생의 목적을 제공한다. 환경주의는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영웅과 악당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준다. 또한 환경주의는 과학의 이름으로 설파되는데, 따라서 지적인 권위까지 확보하고 있다. - P520

나는 세속적인 사람들이 왜 종말론적 환경주의에 끌리는지 알게 되었다. 종말론적 환경주의가 유대교 - 기독교 또는 다른 종교에서 제공하는 것과 같은 심리적이고 영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었다.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사람들에게 삶의 목적을 제공해 준다. 세계를 기후 변화로부터 구하기 위해, 또는 다른 환경 재앙을 막아내기 위해 뭔가 희생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어떤 영웅 서사 속의 주인공이 될 수있다. 잠시 뒤에 살펴보겠지만 어떤 학자들은 이러한 삶의 서사는 우리가 삶의 의미를 찾는 데 필요하다고 믿는다.
게다가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과학과 이성적 담론에 친숙한 이들에게도 안도감을 준다. 기성 종교와 달리 미신과 환상에 기대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 분야의 주요 학자 중 한 사람은 이렇게 언급한다. "제도화된 기독교 계열 종교에 회의적이지만 삶에서 더 넓은 의미의 종교적 의미를 원하는 이들에게 환경주의가 세속화된 종교로서 매혹적으로 다가오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P522

환경 종교의 신도들은 상대방을 악마로 몰아붙이는 성향을 보이며, 많은 경우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그들은 모국과 외국의 발전과 번영을 가로막기까지 한다. 기성 종교에 몸담고 싶지는 않지만 종교적 가치를 열.
망하는 이들이 원하는 더 깊은 심리적 · 실존적 · 영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신 그저 불안과 우울만을 퍼뜨리고 있다. - P523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할 일은 많다. 문제는 그 방향이다. 현재의 긍정적인 흐름을 더욱 키워 나가야 한다. 저에너지 농경 사회로 돌아가자는 퇴행적 움직임으로 지금까지 이룩한 발전을 되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기후 변화와 삼림 파괴, 멸종 등을 둘러싼 분노와 공포조장을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환경 운동이 키우고 있는 슬픔과 고독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환경 운동의 많은 부분은 잘못되었다. 해소할 길 없는 불안을 퍼뜨리고,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이념을 유포하며, 실재하는 증거를 호도하거나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 P538

부유한 나라들은 지금 당장 가난한 개발도상국들에 채운 개발과 에너지 생산의 제약이란 족쇄를 풀어야 한다. 자신들은 고밀도 에너지를 쓰면서 빈곤국들은 저밀도 에너지를 쓰도록 강요하는 것, 자신들이 가난을 떨쳐 내고 풍요를 이룬 길에 개발도상국이 들어서지 못하게 막는 것은 위선적일 뿐 아니라 비윤리적이다. 개발의 길에 늦게 들어서는 나라일수록 산업화를 이루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 P542

에너지 밀도는 환경에 대한 피해를 좌우하는 핵심요소다. 그래서 나무 대신 석탄을 연료로 쓰는 것은 환경에 도움이 되는 반면 천연가스나 원자력 대신 석탄을 쓰는 것은 환경에 해롭다. 천연가스는 석탄을 대체할 때는 좋은 연료지만 우라늄의 자리를 뺏는다면 나쁜 연료가 된다. 인류 문명이 요구하는 에너지를 공급하면서 동시에 인류가 환경에 미치는 부담을 줄여 나갈 수 있는 에너지원은 오직 원자력뿐이다. 생선을 포함한 식량 생산에서 에너지 밀도를 높이면 인간이 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행위인 농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 P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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