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전후 일본에서 ‘경제성장‘은 ‘풍요로워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이코노믹 애니멀(경제 동물)‘이라는 욕을 듣고, 과로사로 세계를 경악시키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그 무엇이었다.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 패전이라는 거대한 좌절에서 민족이 재기했다는 전후 일본의 신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 P53

초강대국이 초강대국다운 이유는 쇠퇴 국면에서도 그비용 청구서를 타국에게 돌릴 수 있다는 점에 있다. - P55

전후의 일본인들에게 경제성장은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었기에 영원히 지속시켜야만 했다. 따라서 성장의 정지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곤란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했으며, 그 때문에 오히려 불가능한 신화에 대한 집착이 생겨났다.
경제 침체 이유 중 하나인 급격한 인구 감소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대책을 취하지 못한 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인한 재난에서 다시 일어선다는 부흥의 상징을 도쿄에서 열릴 올림픽 게임이나 오사카에서 유치하려는 만국박람회에서 구하는 사태가 그 뒤집힌 의식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 P56

대미 종속과 아시아에서의 일본의 고립은 다른 사안이 아니다. 그것은 냉전 시대부터 동전의 양면처럼 기능해온 것이고, 영속 패전 레짐의 근간과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아시아에서 ‘미국의 첫째가는 부하‘의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침략과 식민 지배라는 어두운 역사와 대면하는 일을 최소한의 땜질만으로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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