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막 끝났을 때 미군 해병대는 본토에 주재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본토의 반기지 감정이 고조되자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미군을 오키나와로 이동시켰을 뿐이다. 오키나와에 폭력을 집적시키고 격리한 이유는 군사 전략이나 억지력 때문이 아니다. 이는 오키나와가 일본이지만 일본이 아니라서가 아닐까?
오키나와는 결코 폐쇄된 땅이 아니다. 본토의 관광객이 쉴 새 없이 이곳을 찾아온다. 그러나 관광객은 격리된 폭력을 보지 않는다. 무관심 때문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그들은 오키나와가 폭력의 섬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 P173
본토는 오키나와는 문화 수준이 낮고 고루하며 습속과 생활양식이 여타 부현과 다르다고 봤다. 오키나와 사람은 "충성, 용맹하여 나라를 사랑하고 공을 위하여 따라 죽는"(『제국헌법」 반포 칙어) 충성심이 부족한 반인분의 일본인으로 간주되었다. 오키나와를 향한 차별의 시선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라도 전력으로 삼을 것" (우시지마 미쓰루 제32군 사령관)을 명령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총동원된 주민을 적에게 쉽게 항복할지 모를 위험 분자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 P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