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일본은 어떤 차별을 만들어왔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건강(신체)과 질병(특히 지적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의 사회사를 분석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도 우리의 차별 의식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센병과 지적장애는 현대까지 이어진 사회적 차별 가운데 가장 극단적이며 심각한 유형을 잉태했다. 질병이 의학과 병리학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는 순간, 도덕주의적 징벌성이 부여된다. 질병은 타락, 퇴폐, 무질서, 나약함 등과 동일시되며, 그 자체로 은유가 되어 평범한 이들의 일상에 침투한다(수전 손택). - P157
근세 후기에서 근대를 거치며 일본은 유행병을 환경 오염의 결과인 동시에 "도덕적 퇴폐와 악덕" (히로타 마사키)의 발현으로 여겼다. 한센병은 악덕이 살고 있는 육체이자 인격의 폐허로 간주되고 부정과 불결, 빈곤과 연결되면서 은유가 되었으며 ‘추함‘ 그 자체를 가리키는 형용사가 되었다. - P158
일본은 나환자를 도리를 모르고 미개한 우민, 토인, 더 나아가 광인으로 몰아붙였다. 빈곤, 불결, 부덕, 그리고 질병으로 가득 찬 야만을 근절하고 일등국민이 되어야 한다는 바람은 "국가에 유용한지 아닌지로 인간을 선별하는 시선"을 최신 과학과 공중위생의 척도로 삼아 널리 퍼뜨렸다. - P159
우생 사상에 경도된 나치 독일은 안락사 정책(T4 작전)을 펼쳐 지적장애인과 유전질환자, 동성애자와 노숙자 등 그들이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이라고 판단한 이들을 살해했다. 나치의 우생 사상에 영향을 받은 일본의 「국민우생법」(1940)은 국민의 체력 관리를 주창한 「국민체력법」(1940)과 짝을 지어 열등한 생명을 배제하고, 우수한 생명을 육성하려 했다. 우생 사상은 전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우생보호법」으로 이름을 바꾸고, 유전질환자와 장애인 등에 대한 임의 혹은 강제낙태를 합법화했다.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방지하는 동시에, 건강한 아이를 낳은 모성은 보호했다. - P163
양식良識이라는 이름의 권위가 잉태한 광기가 사회를 좀먹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뒤, 인터넷상에는 범인의 생각에 동조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보며 어찌 두렵지 않을 수있으랴. 이 미친 현상이야말로 ‘차별이라는 병‘의 정체가 아닐까?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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