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는 현대의 미디어를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법을 완벽하게 파악한 일본의 첫 정치인이었다. 미디어를 잘 활용해 국가수반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미국의 레이건이나 영국의 토니 블레어처럼, 고이즈미도 보수적인 반동적이기까지도 한 어젠다를 친근하고, 개혁가적이며, TV화면에 잘 받는 이미지로 포장해서 성공할 수 있었다. - P477
그러나 고이즈미의 신자유주의에 관한 발언과 시대의 흐름에 합류하는 듯한 모양새는, 진짜로 개혁(신자유주의 개혁이건 다른 형태의 개혁이건)을 추진하기 위한 제스처라기보다는, 일본 정치를 다나카가 패권을 쥐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시도였다. 즉, 고이즈미는 잘 훈련된 전문가 엘리트 관료들이 온전히 다스리는 나라로의 회귀를 지향했던 것이다. - P478
일본의 우체국은 알고 보면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깔려 있는 우체국들은, 친절한 서비스와 약간 더 높은 이자율을 제공함으로써, 일본의 대형 민간 은행들보다도 더 많은 예금을 유치한다. 이 예금이 정부의 재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비밀자금‘이 된다. - P479
미국에게 그렇게 비위를 맞추던 고이즈미는 동전의 양면처럼 이웃 국가들에게는 줄곧 도발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러한 도발 또한 상징적인 행위이긴 마찬가지였다. 다른 무엇보다 고이즈미는, 중국과 남북한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다니기 시작했다. - P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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