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의 모든 문화 현상을 아우르는 것은 무엇인가. 야마모토 요지와 가와쿠보 레이의 패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시로 마사무네의 만화, 젤다 게임 시리즈, 「모노노케히메」와 같은 애니메이션, 「링」과 같은 공포영화, 포켓몬, 게임보이, 서양의 젊은이들을 한 세대가 넘도록 사로잡아온 수많은 애니메이션과 망가, 이런 모든 것 사이에 도대체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어떻게 이 모든 것이 다 일본 문화일 수 있는가. 귀여운 것에 대해 질릴 정도로 집착하는 듯한 문화가 어떻게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성적 도착을 과도하게 묘사하는 작품들을 만들어내기도 하는가. 그리고 이런 모든 현상이 어떻게 무로마치 시대의 위대한 수묵화와, 교토의 가쓰라 리큐(정원으로 유명한 천황가의 별장), 오즈 야스지로와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들과 동일한 문화적 뿌리에서 탄생할 수 있는가. - P368
전통적인 일본 문화의 옹호자들은, 외국인들이 일상생활로부터 분리된 공간인 박물관이나 공식적으로 인정된 문화 교류의 장을 통해서만 일본 문화를 체험하기를 원하는 듯하다. 이들은 서양의 어린아이들이 닌자나 포켓몬에 푹 빠져 피규어를 사들이거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강도 높은 포르노 그림 중 최고로 인정받는 작품들은 죄다 일본 아티스트들의 것이라는 현상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른다. 일본의 재계와 관료사회는 현대 일본 문화에 대한 세계의 치솟는 관심을 어떻게 상업화해야 할지 여전히 잘 모른다. 이 말은 곧 현대 일본 문화가 이들의 손에 의해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증거이기도 하다. - P370
샐러리맨들은 회사와 일을 위해 자기희생을 불사할 정도의 열정을 보여야 했을 뿐 아니라, 이것이 핵심인데, 거기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그 열정을 스스로 믿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일본 단어가 마코토다. 마코토는 보통 ‘진정한sincere‘이라고 번역되지만, 서양에서 이 단어를 쓸 때처럼 정말로 믿고 있지는 않으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과 같은 어감은 들어 있지 않다. 그 대신 일본어의 마코토에는 개인의 내적인 감정을 사회의 외부적 기대와 일치시키기 위해 강제로 끼워 맞춘다는 느낌이 있다. 샐러리맨은 스스로가 자기 목숨을 바치도 좋을 대의(회사)를 위해 싸우는 군인이라고 믿어야만 했다. 하지만 동시에, 결국 자신은 얼굴 없는 거대한 산업 기계 안에서 혹사당하는, 교체 가능한 톱니바퀴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자각도 함께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런 자각과 함께 사는 삶을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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