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세기를 돌아보거나 혹은 석간신문만 잠깐 봐도 알 수 있듯이, 증오와 히스테리, 추하고 비열한 민족주의 또는 근대라는 이름을 빌려 등장한 온갖 괴물이 세계대전 이전 일본의 전유물은 아니다. 괴물들은 근대화 과정을 겪었던 모든 사회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다 나타냈다. 하지만 그것이 일본에서 유난히 정치적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까지 이른 것은, 일본에서는 정치적 현실과 그 현실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던 ‘허구‘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런 간극은 물론 중학교 도덕 교과서를 빼고는 어디든 존재한다. 그러나 일본이 유독 독특했던 것은 나라의 지배 구조에 대해 하나도 아닌 두 가지 다른 허구가 병존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었다. 과거로부터 이어받은 허구는 천황제이고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히구는 입헌정치와 법치주의다. 이 중 후자는 부분적으로 자유민권운동이나 이타가키와 같은 사람의 대의정치 요구에 대한 응답이기도 했지만, 더 큰 동력은 일본에 대한서양의 기대로부터 나왔다. 일본이 근대 국가로 인정받으려면 마땅히 의회와 법원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근대 국가의 국민이라면 고기를 먹고 남녀 혼탕을 삼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본이 의회와 정당과 법원을 가져야 한다고 서양에서 생각한다면 일본은 의회와 정당과 법원을 가져야 했다. - P149

소위 원로라 불리며 20세기까지 살아남은 메이지 지도자들은 적극적인 정책활동에서 물러나면서 추밀원 같은 자문기관으로 소속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되 결과에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역할을 맡으면서, 거대한 정치적 무책임의 무대가 마련되었다. 이런 무책임의 정치는 승리할 전망이 없는 아시아에서의 지상전에 뛰어든다든가, 일본보다 열 배는 더 큰 산업 기반을 가진 열강을 향해 침공을 감행한 데서 그 절정을 보여준다. 그 결과 일본은 메이지 지도자들이 처음부터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던 바로 그 상황, 즉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상실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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