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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조영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외국유학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주인공 겐조는 누가봐도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생각한 것 만큼,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만큼 현실(특히 경제적인 상황)은 과거보다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답답하기만 하다. 이런 겐조에게 하나같이 경제적인 도움을 기대하는 주변사람들은 뻔뻔하게 보이고, 자신의 처지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그들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겐조의 모습은 딱하게 여져진다. 하지만 혈연(누이와 형)으로 혹은 결혼(장인, 아내, 그리고 자식들)으로, 그리고 어릴적 자신을 키워준 양부모의 인연으로 만들어진 관계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겐조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관계' 이것은 겐조의 두려움의 시작이고,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존재론적 물음이다. 특히 노골적으로 겐조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강요하는 양아버지 사마다의 존재는 겐조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잘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다. 겐조의 눈에 비친 이 노인은 그야말로 과거의 유령이었다. 그러면서 현재의 인간이기도 했다. 또한 어두운 미래의 그림자임에도 틀립없었다. 이 그림자는 언제까지 나에게 붙어있을 생각일까?(125)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는 사마다의 대리인과의 만남 후에 겐조의 괴로움을 극에 달한다. 그리고 물음은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그에 대한 겐조의 답은 연약하고 안쓰럽다. '너는 결국 무엇을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겐조는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한 한 대답을 회피하려고 했다. 그러자 그 목소리는 더욱 겐조를 추궁했다. 몇 번이고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 했다. 겐조는 끝내 울부짖었다.(261) "모르겠어." 목소리가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 '모르는게 아니지. 알아도 그곳에 도달할 수 없는 거겠지. 도중에 멈춰있는 거겠지.''내 탓이 아니야. 내 탓이 아니라고.'(262)
살면서 느끼는 큰 두려움 중에 하나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어제의 고통이 오늘의 고통이고 그리고 여전히 내일도 계속된다면 어쩌면 죽음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겐조는 주변사람과의 관계가 계속될 것을 짐작하고 있고, 그것을 두려워한다. 겐조의 아내가 묻는 물음에 그는 씁쓸하게 답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정말 끝이 나는 건데요?""이 세상에 진짜로 끝나는 일이란 거의 없다고. 일단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다양한 형태로 계속 변하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278)
<한눈팔기>만큼 작가 자신의 삶 전체를 그대로 찍어내듯 쓰여진 소설은 처음 보는거 같다. 하지만 겐조를 통해서 작가가 고민하는 문제들이 극히 작가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닌 보편적으로 우리 역시도 고민하는 문제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공감할 수 있었다. 겐조가 해결하지 못하는 '어떻게 하면 이 <관계>라는 숙제를 잘 풀어나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우리 삶의 궁극적인 물음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