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 3 2 1 (2) (양장)
폴 오스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1월
평점 :
초반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어? 내 기억이 잘 못 되었나?’ 갸우뚱하던 부분들이 있었다. 크게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이 소설이 시간순서대로 그냥 쭉 연결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 쉬운데, 그렇게 생각하고 초반을 좀 지나고 나면 자꾸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서 다시 처음 페이지로 돌아가게 된다. 음...나만 그랬나?
아무튼 나 같은 독자가 있을까봐 미리 말해 두자면 이 책은 아치 퍼거슨이라는 인물의 서로 다른 4가지의 삶을 하위 챕터를 나누어서 이야기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니까 1.1에 나온 아치 퍼거슨은 2.1, 3.1, 4.1, 5.1 이렇게 연결 되어 있고 1.2에 나온 아치 퍼거슨은 2.2, 3.2, 4.2, 5.2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1,2,3,4 의 각각 다른 아치 퍼거슨의 이야기를 하나의 책으로 만나볼 수 있는 소설. 처음부터 이렇게 알고 읽으면 헷갈릴 리가 없었을 텐데... 또 나만 몰랐네...
4개의 다른 퍼거슨의 삶에서 몇 가지 공통사항이 있는데 퍼거슨의 친할아버지가 처음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올 때의 에피소드가 그 중 하나다. 미국에 왔으니 발음이 어려운 유대인 이름을 사용하지 말고 록펠러라는 이름을 사용하라는 다른 유대인들의 말을 듣고 그 이름을 쓰려고 이민국에 갔는데 막상 직원 앞에서 록펠러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이디시어로 ‘이크 호브 파게센(잊어버렸습니다)’ 라고 말해서 직원이 그게 이름인 줄 알고 ‘이커보드 퍼거슨’으로 서류에 올려 버렸다는 거다.
가족의 역사로 농담처럼 내려오는 이 이야기를 듣고 아치 퍼거슨은 할아버지가 이디시어의 원래의 이름으로 살았다면, 혹은 록펠러라는 이름으로 살았다면, 아니면 퍼거슨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면 그 인생이 각각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시작으로 바로 이 소설이 쓰여 졌다고 소설 속 아치 퍼거슨은 말한다. 1,2,3,4의 퍼거슨 중에 몇 번 퍼거슨이 이 소설을 썼는지는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알게 되니 말하지 않겠다!
4명의 퍼거슨은 모두 동일한 외모에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좋아하고 잘 하는 것들도 비슷하다. 일단 책과 영화를 좋아하고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스포츠를 잘 한다. 특히 야구를 사랑하지만 농구도 잘 한다. 이런 퍼거슨에게 각각 다른 상황들이 주어진다.
아버지 형제들 때문에 집이 가난해진 상황, 아버지 사업체에 불이 났지만 보험금을 타게 된 상황, 화재로 아버지가 죽은 상황, 아버지 사업이 그저 잘 되어서 부자가 된 상황.
부모가 사이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상황, 어머니가 재혼한 상황, 부모가 이혼해서 갈등이 있는 상황.
또 에이미라는 여자 아이가 퍼거슨의 첫 여자 친구가 되는 상황, 퍼거슨의 사촌이 되는 상황, 누나가 되는 상황 등등...
같은 시간대의 같은 퍼거슨이지만 처해진 상황이 각각일 때 퍼거슨의 인생은 다르게 흘러간다.
4명의 퍼거슨 중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퍼거슨은 3번 퍼거슨이었다. 7살에 아버지가 화재로 죽은 후에 어머니와 매일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뉴욕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슬픔을 잊으려고 노력하던 어머니와 어린 퍼거슨의 일화가 참 가슴이 아팠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과연 신이 있는 걸까 골똘히 침잠하던 어린 퍼거슨의 일화도.
사춘기를 보내며 성정체성을 알아가면서 놀라운 일탈행위들을 보여줄 때는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만큼 내가 3번 퍼거슨에게 마음이 내내 쏠려있었다는 증거다. 어린 날의 그 우울했던 기억을 기어이 책으로 써낸 20살 청년. 그리고 미스터 베어와의 연애까지. 나는 이 퍼거슨의 삶을 계속 지켜보고 싶었다.
물론 나머지 3명의 퍼거슨들의 삶도 무척 재미있었다.
주로 미국의 1950년대와 60년대가 배경이라 1947년생인 퍼거슨들의 10대와 20대 초반의 삶을 다룬다. 퍼거슨들 개인의 삶 속에 당시의 정치와 사회 문제가 맞물리며 베트남 전쟁, 인종 갈등, 학생 운동 등이 공통으로 따라온다. 그 당시의 영화와 문학 등도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다. 퍼거슨들이 또 책을 좋아하다 보니 언급된 책들도 흥미로웠다. 게다가 모두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쓰는 인물들이라 계속해서 쓰고 고치고 하는 작업들을 읽는 것도 재미있었다. 작가가 책을 쓰는 과정을 들여다본다는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소설가가 어떻게 인물을 생각해내고 그 배경을 창작해 내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거대한 창작 노트 같은 느낌도 든다. 소설가가 '그래 각각 어떤 이야기로 나아가는지 어디 한번 보자' 하면서 아치 퍼거슨이라는 인물을 이 상황에다가 놓아 보고 저 상황에다가도 놓아 보고는 창작 노트를 빠르게 적어 내려가는 그림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하고 열정적으로 사랑도 하는 인생의 젊은 시기를 다루는, 그러니까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정체하지 않고 언제나 무언가를 하고 있는 청년기의 삶, 비록 학교를 들어가지 않아도 읽고 쓰기를 계속하는 노력하는 시간들, 혼자서 외롭지 않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짝을 찾아 헤매는 시간들... 이런 청춘의 시간들을 따라가는 독서는 내가 이 책을 읽는 현재, 이 뜨거운 여름과 너무나 잘 어울리기도 했다.
이야기를 읽는 소설적인 재미도 있었지만 1950,60년대의 미국의 현대사를 접하게 된 점도 좋았다. 소설은 개인의 삶 속에 있는 역사를 다루다 보니 디테일한 부분들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역사책을 따로 읽는 것보다 더 가깝게 와 닿기도 했다.
그리고 뉴욕 토박이인 폴 오스터가 풀어주는 뉴욕의 당시 이야기들. 예전 모습과 지리를 빠삭하게 알고 묘사하는 그 뉴욕의 모습들, 내가 그 당시 뉴욕을 전혀 알지 못 해도 그려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제 또 다른 새로운 소설에서 폴 오스터 특유의 글맛으로 뉴욕을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도 든다.
이 책을 다 읽는데 한 2주 걸렸다. 두꺼운 벽돌 2장. 쉬다가 읽거나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이 사건이 일어난 인물이 이 퍼거슨이었는지 저 퍼거슨이었는지 헷갈리기 쉽기 때문에 집중을 요하는 책 읽기였다. 덕분에 폰도 덜 보고 잡생각도 덜 하고 책 읽을 땐 책에만 집중해서 읽었다. 그렇게 집중했다가 끝이 나니 허전한 기분이 든다. 퍼거슨의 이야기를 더 읽고 싶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