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은 부인 프랜을 늘 어린아이 같아서 돌봐줘야 할 존재로 여긴다. 매력적인 프랜이 유럽 남자들과 은근히 바람을 피우고 돌아다녀도 그런 프랜을 보고 '쯧쯧 프랜은 아직 너무 어린애 같고 철없어서 저러는 거지. 딸 같이 돌봐줘야지 내가 뭘 어쩌겠어'라고 샘은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샘의 생각은 손상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자기최면 비슷한 것일 뿐, 가만 들여다보면 샘은 부인을 돌봐줄 여력이 있는 성숙한 어른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오히려 샘은 프랜의 돌봄을 갈구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프랜이 드디어 유럽 귀족을 만나 떠나버렸을 때 샘은 프랜의 징징거림이 그립고 샘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며 트집 잡는 프랜의 비난의 목소리가 어디든 따라 오는걸 느낀다. 부인의 관심이 고픈거다. 혼자된 시간이 외롭고 외로워서 샘은 망가져 가면서도 유럽에 남아 프랜의 연애가 혹시나 잘못 되어 자신을 다시 찾을 일말의 가능성에 매달린다.
속물인 프랜만 미성숙한가? 아니 늘 누군가의(특히 프랜의) 관심을 받길 바라고 자신을 위로해 주길 바라는 샘도 마찬가지로 미성숙하다. 샘과 프랜 중년의 부부는 아직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성숙한 어른이 아니다. 중년어린이들이다.
이 부부가 서로를 미워하며 유럽을 여행하는 것을 읽다보면 속이 답답해져 온다. 끊임없이 싸우고 비슷한 문제가 반복 되는데 거기에 샘이 프랜에게 취하는 태도 ‘내가 봐준다. 넌 아직 철없는 어린아이 같으니까’ 하는 이 태도가 아주 가증스러워서 짜증이 난다. 프랜을 떠날 용기는 없는데 계속 같이 붙어 있으려니 자존심은 상하고 그럴 때 취하는 이런 샘의 태도. 이러니 프랜도 얼마나 샘이 답답했을까 싶다. 그렇다고 프랜의 속물성이 밉살스럽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부부가 쌍으로 비호감.
그래도 이 책을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은 내가 예상하는 방향으로 샘이 계속 행동하지 않는다는 의외성 때문이다. 샘이 이정도면 정신차리겠지 하면 또 다르게 행동하고, 아니야 이제는 정말로 정신을 차릴거야 싶으면 또 잘 가다가 방향을 틀어버린다. 샘보 언제 정신차릴래? 응?
싱클레어 루이스의 “배빗”은 부부가 쌍으로 죽이 잘 맞아 낄낄거리며(비웃음) 웃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 소설은 둘이 너무 안 맞는데 또 둘이 자꾸 붙어 있으니까 아주 징글징글하다. 읽는내내 결혼지옥 이 생각만 났다. 아 스트레스!
(망고야 그거 베개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