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걱정 마세요. 일정부분 이야기를 말하긴 하지만 스포일러 없으니까요.
이거 보시고 극장 가셔도 괜찮아요. *

감독: 류승완
주연: 먹방의 신, 지아나 전, 넘버 3, 북경 살쾡이, 장의사, 태주 (식인종. 한복집 뱀파이어 말고.), 신애리, 배씨 성을 가진 남자 모델, 조 검사, 외국 배우들
특별출연: 명계남, 윤종빈, 이경미
음악: 조영욱
촬영: 최영환
15세 관람가 / Color / 1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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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베를린>의 우수한 장면 중 하나는 다름아닌 도입부다. 도입부 시퀀스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작사, 투자자 등이 나오는 그 도입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통 대부분의 한국영화들이 조금 진득하고 느릿하게 어느 곳에서의 지원을 받았는지, 투자자와 제작사가 어디인지 보여주는 편인데 이 작품은 그것보다 좀 더 짧게 빨리빨리 지나간다. 그래서 그 투자자의 이름들을 채 다 읽지도 못한다. 근데 생각해보면 투자자들은 감독의 작품에 지원만 해주면 될 일이지 굳이 관객들까지 알 필요성은 없다. 류승완 감독은 '그래. 어쨌든 내 작품에 돈 대준 이들이니까 의무감에 띄어 놓은 거야.' 라고 말하듯 후딱 지나가 버린다. 생각해보면 관객까지 그들의 이름을 오래 봐야할 이유는 없다. 작품은 빨리 달리고 싶어서 안달났다는 듯이 이런 삽입 타이틀까지도 빨리 넘겨버린다.
사실 본편을 보기 직전까지는 많이 심란했다. 지난 밤 6시에 잠들어서 새벽 2시 10분에 일어나서 동 틀 때까지 깨어 있었다. 동 텄다고 자면 아까울 것 같아서 나중에 보기로 한 이 작품을 조조로 보고 오자고 마음먹고 시내를 나갔는데, 문득 CJ가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네마 디지털 서울 영화제 지원 중단한 것 때문인지 근래에는 유독 이 회사가 뭘 응원한다고 하면 되게 미워보이는 것이 그 이유다. 그리고 본편 보기 직전에 등장한 국방부 광고 (신기하게도 이 광고 본 지 꽤 된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직도 사용되고 있더라.) 와 자칭 '친서민적' 은행광고는 여러모로 사람을 어질어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작품이 기업홍보가 아닌 이상, 관심있는 감독의 작품을 보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 나 같이 어질어질해 있는 사람도 단박에 몰입시키겠다는 듯, <베를린>의 본편은 도입부에서 아예 거친 필름질감 속에서 어떤 사건의 진행을 빠르게 보여준 뒤, 다시 세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류승완 감독의 작품 중에서 인터넷 단편까지 포함하여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세상은 그렇지가 않았나보다. <부당거래>를 만들 당시 류승완 감독은 <다찌마와 리> 이후 영화제작과 관련된 사람들이 다 자길 피해다니더라고 얘기한 바 있다. 꼭 그래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원래 차기작으로 거론됐던 <야차>는 엎어졌으며 감독은 오히려 모토롤라와 연관된 <타임리스>를 찍은 다음 <부당거래>로 넘어갔다. 그리고 <베를린>으로 넘어왔는데, 다 보고 나니 이런 지점들에 관해서 얇든 깊든 뭔가 생각을 하게 되는 면이 있다. <베를린>은 재밌는 작품이지만, 사실 그런 점에서 아쉬운 부분도 많다. 비교하면 안 되는 거지만 정말 일체의 불만도 없이 한 감독이 당당하게 자신이 도약했음을 선포했고, 또 그걸 보는 재미가 충만했던 <부당거래>나 너무 일찍 나왔던 <주먹이 운다> 같은 작품을 생각하면 말이다.
이 작품에서 하정우가 연기하는 주인공 표종성은 등장부터 매번 위기에 처하고 평생을 도망자로 살아야 하는 인생이다. 그 상황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작품이 어느 정도 흘러간 시점에서 드러나지만, 조작이 됐든 예상치 못했든 언제나 이 남자는 불안에 떤다. 도입부 액션 시퀀스는 그것을 관객에게 상징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연출을 보여준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작품이 초반에 관객을 기선제압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온갖 시각적인 연출들을 총동원 한다는 점이다. 상당히 기발했던 부분은 자막 그래픽을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작품은 한국어, 영어, 독일어가 뒤섞여있기 때문에 분명 자막이 필요한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은 자막을 화면 중앙 하단, 혹은 오른쪽 상단에 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이것을 영화적인 요소 중 하나로 자리잡게 만든다.

아직 딱히 이 작품과 관해서 류승완 감독이 이야기 면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지만, 예전에 <시사인>에서 주진우 기자 (참고로 <부당거래> 때도 도움을 주기도 했던 그는 이 작품을 위해 탈북자와 류승완 감독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연결시켜 주기도 했다.) 와 함께 작품 이야기를 하다 말미에 존 르 카레의 소설인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와 톰 롭 스미스의 소설인 <차일드 44>를 읽으며 자식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작품은 두 소설에서 영향을 받았다. 스파이 소설은 현실과 비현실의 정도가 있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보면 국제정세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장르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복잡한 설정과 디테일들이 요구된다. 문제는 어느 소설이나 다 그렇겠지만, 영화판으로 옮겨질 때 제한된 시간 내에 모든 걸 담아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나 북한과 관련된 문제는 실제 현실에서도 여전히 조심스럽게 다뤄지고 있는 중이다.
류승완 감독은 기본 설정 자체를 많이 꼬아놓고 있는 이 작품을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관련 인터뷰에서도 언급되는 것을 봤지만, 그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을 보고 나서 복잡한 내러티브로 재밌는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것에 관해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베를린>은 여태까지의 류승완 감독의 작품 중에서 가장 복잡하게 상황들을 제시해놓고 풀어나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류승완 작품 중에서' 다. 그는 어느 지점에서 멈춘다. 마치 기본적으로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놔야 한다는 듯 곳곳에서 배려하려고 하는 연출을 삽입한다. 작품의 한 축이 스파이 액션물이라면 다른 한 축은 로맨스라는 것도 그렇고 위의 자막도 그렇다. 자막은 관객들이 국정원 위장차량을 더 빨리 파악할 수 있도록 굳이 진짜 그 차량이 있는 지점에 삽입된다. 단순히 위치를 조금 조정한 것 뿐이지만, 대체적으로 작품 속에서 자막이란 게 화면의 중앙과 가장자리에만 배치되던 걸 생각하면 식상하지 않은 연출이라 재미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표종성이 접선장소를 암호처럼 적어놓은 쪽지를 클로즈 업 하면서 자막 그래픽이 변화하기도 하며, 심지어 인물들의 외국어 대화 장면에서조차도 관객의 시선을 돌려놓지 않겠다는 듯 쉴새없이 자막의 위치를 변경시킨다. 이는 탁월한 선택이다. 다소 산만하게 보이더라도 관객의 집중도를 뺏기지는 않을테니까. 왜냐면 하정우, 전지현이 연기한 표종성, 련정희 부부의 도주시도가 이어지는 중반부에 이르기 전까지의 이야기 흐름은 분명 조금이라도 놓치면 이후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다소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배려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다소 어지럽다고 느낀 지점이 있었다. 작품은 복잡한 이야기가 주가 되는 초, 중반부의 화면구성도 만만찮게 복잡한 스타일로 만들어놨다. 대표적으로 표종성이 아랍 조직과의 거래장소로 들어갈 때 모사드 조직의 잠입, 그리고 도청을 시도하는 남한 국정원과 북한 정보부의 모습을 교차시키며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그 때 작품이 교차편집보다 더 많이 애용하는 스타일은 바로 화면분할이다. 문제는 그 분할되는 장면들이 한 쇼트당 유지되는 시간이 굉장히 짧다는 것이다. 하나의 화면에서 그것을 여러개로 갈라 보여주면 거기서 관객들이 볼 수 있는 영상정보는 굉장히 많다. 여기서 연상되는 것은 이런 화면 분할을 잘 활용하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나 최동훈 감독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과 류승완 감독이 다른 점이 있다면,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어지간해서는 화면 분할을 두 개 이상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화면분할이 등장하면 관객에게 두 개의 분할된 상황이 어떤 것인지 최소한 인식시킬 정도의 시간은 주거나, 혹은 꽤 긴 시간동안 화면 분할 시퀀스를 이끌어 가기도 한다.
충무로에 화면 분할의 유행을 몰고 온 최동훈 감독의 경우에는, 화면 분할을 이야기의 흐름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도구로 쓰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화면분할을 할 때 배우들에게 더 집중을 하는 경향이 있다. <범죄의 재구성>의 초반부에서 인물들이 모여 은행강도 모의를 하는 시퀀스에서 화면분할이 이용되지만 과정만큼이나 이 영상 기법이 힘을 쏟는 건 계획을 듣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다. 마치 한 계획을 듣고 각각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이들의 얼굴을 보라는 듯이.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이야기 진행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최동훈 감독은 순전히 자신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멋스러움을 뽐내기 위해서 화면분할을 이용한다. 어떤 연유에서든 이 기법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나름의 확실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 최동훈 감독의 2005년작, <범죄의 재구성> 중에서 *
그러나 <베를린>의 화면 분할 시퀀스는 너무 많은 정보가 포화상태 마냥 꽉꽉 들어차 있다고 느껴진다. 실제로는 오늘 아침에 한 번 보고 쓰는 것이니 실제로는 별 거 아닌 동작들을 내가 착각한 것일수도 있다. 대부분의 장면들이 기계를 조작하고, 무언가를 듣는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밀한 디테일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일 수 있지만 중요한 장면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가령 표종성이 거래 도중에 화장실로 가는 척하고 상대쪽의 계획을 알기 위해 도청을 하는 장면이 있다. 그는 유리탁자에 도청도구를 놓고 가고, 카메라는 그것을 밑에서 위로 비춤으로 인해 표종성이 나름의 도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중요한 장면인데 문제는 이것이 화면분할 시퀀스에서 왼쪽 하단 가장자리에 보여지고 얼마 안 가 쇼트가 바뀌면서 사라진다는 점이다. 요즘 관객들이 눈이 서너개가 달렸는지 알 수 없다만 적어도 나는 한 쇼트에 여러가지 진행되는 상황들이 너무 많았던 탓에 하마터면 이것을 놓칠 뻔했다. 그나마 그런 부분들도 예상했는지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소품들이 반복이용되는 지점들을 많이 만들어 놓아서 (녹음기, 도청장치, 과거회상) 그럭저럭 볼만했다.
도입부를 넘어가면 우린 작품에서 액션의 비중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어떤 논란과 마주하게 된다. 현재 빠른 흥행호조에 반대되게 작품이 시달리고 있는 논란인데, 그 중 하나가 더그 라이먼,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본 3부작>을 표절했다는 것이다. 보고 나서 느낀 점은 딱히 <본 3부작>이 연상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액션 구성을 따진다면 3부작의 스턴트 감독이었던 '댄 브래들리가 만든 액션 시퀀스가 연상된다' 라고 표현하는 점이 옳을 것이다. 내 기준에서 볼 때 댄 브래들리의 액션 시퀀스가 너무 유사하다는 생각이 잠시 든 것은 악한과 표정성이 함께 유리천장 위로 떨어지는 부분에서다. 그리고 그 시퀀스는 댄 브래들리가 참여한 작품 중에서 <본 3부작>이 아니라 <007 퀀텀 오브 솔러스> 에서 등장한 것이었다. 동시에 그게 작품 전체에서 그나마 참신하다고 여길 수 있는 액션 시퀀스였으며, 현재 액션 장르에서 트렌드처럼 되어가고 있는 댄 브래들리 본인조차도 자신이 개발한 시퀀스들을 클리셰처럼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실 류승완 감독은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기 보다는 기존에 있는 것을 자기 식으로 잘 체화해서 다뤄내는 감독이었다. <부당거래> 같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액션 시퀀스를 줄이고 인물들과의 대화를 박진감 넘치는 편집과 카메라 이동으로 구성함으로서 본인의 이전 작품 수준의 박력을 구현해내는 새로운 경지를 이룩했지만, 그는 그렇게 작품세계를 형성해 온 감독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들이 내가 류승완 감독을 좋아하는 하나의 이유였다. 그러니까 <부당거래>를 제외한 다른 작품들의 경우에 말이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아주 적극적으로 표현한 감독이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주인공들과 악역이 거의 20분 넘게 마지막 결투를 펼치는 장면도 그렇고, <주먹이 운다>에서도 두 주인공이 권투 경기를 펼치는 장면을 라운드 끝까지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예전 중화권 작품들이 이런 경향을 많이 보여줬었다.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그 방식은 류승완 감독이 애용해 왔던 것이었고, 좋든 나쁘든 간에 그의 작품을 연상할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세계였다. 나는 그런 욕망을 포기하지 않아서 그 감독의 작품이 좋았다. 끝까지 포기 못하겠다면 내가 맞춰줄 수도 있는거지, 뭐. 하지만 문제는 끝까지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이다. 만약 그게 앞으로의 자신의 작품세계를 형성해 가는데 있어 걸림돌로 작용한다면 그 때는 바꾸는 것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어떻게 보면 작품의 액션이 외형적으로 유사할 수 있다. 그러나 류승완 감독이 적어도 이 시퀀스에서 지향하고 있는 액션은 다르다. 007의 경우에는 떨어진 두 사람이 줄에 묶여있는 상황이라 어떤 공격을 가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러므로 추락 후에 벌어지는 액션의 최종목적은 서로 손과 팔을 휘저어가며 권총을 잡아 상대를 먼저 저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자신이 이걸 어떻게 한 번 더 식상하지 않게 재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같은 도구나 상황이더라도 자신은 이렇게 이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보여주는 <베를린>의 액션 지향점은 보수를 하지 않고 여태까지 버텨온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독일의 건물들이 총에 맞아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마구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다. 인물들은 도시와 건물의 날카로운 부분들에 쉴새없이 충돌하고 그로 인해 상처를 입는다.
이 작품의 추락 시퀀스의 마무리도 상당히 격렬한데, 007과 달리 죽을 고비를 넘긴 하정우가 자신을 받아낸 와이어가 뜯겨져나가 벽 여기저기에 부딪히면서 기어이 땅에 떨어진 다음에야 끝이 난다. 작품의 액션은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계속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 짓 계속하자니 도저히 몸도 아프고 위험해서 제명에 못해 먹겠다는 그런 것. 이 작품은 그런 고통을 부각시키는 디테일이 있다. 벽 충돌에 이어 큰 돌에 허리가 찍히는 것들 말이다. 작품은 그런 액션의 고통을 통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창출해내는 비범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은 충분히 창의적이고 이 작품의 최대성과가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류승완 감독에게 작가보다는 일부러 억제하여 장인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게 만드는 작품이다. 나름대로 숙련된 장인 말이다. 전작의 흥행과 비평성공에 힘입어 다시 주목을 받은 그가 많은 예산을 들인 작품들을 재밌게 만들 자신이 있고, 또 효과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안정감을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 작품 같다는거다. <베를린>은 현재 류승완이라는 영화감독이 자신의 가치를 세속적으로 증명해 보이려 CJ에게 제출한 포트폴리오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렇게 해서 여지껏 자신의 개별작품에서 모았던 관객동원보다 더 많이 끌어오게 된다면 그것 역시 류승완이라는 감독의 '진화' 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충무로 내에서 많은 예산을 들였다고 해도 헐리우드에 비하면 여전히 가격대 성능비의 표현을 논할 수 밖에 없지만, 이 작품은 그것을 고려할 때 헐리우드 작품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외형적인 부분들, 말하자면 '때깔'을 크게 위화감없이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점들 때문에 위에서 언급했듯이 '작품이 다소 아쉬워 졌다' 고 느끼는 쪽이다. 위에서 본 시리즈를 얘기하다 보니 몇몇 시퀀스가 비슷하다고 볼 수는 있겠구나 싶은데, 사실 내겐 오히려 그 유사 시퀀스를 놓고 두 작품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한다고 치면 이 작품이 '표절했다' 보다는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주 간신히 턱걸이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발로 뛰는 추격전 시퀀스 중 이경영이 연기한 리학수를 남한과 북한 측에서 뒤쫓는 부분이 있다. 그 때 카메라는 리학수를 중심으로 가까이, 혹은 멀리 있는 사람들이 지시를 받거나 행동으로 옮기는 여러가지 모습들을 쉴새없이 트래킹과 줌을 번갈아 활용하며 보여준다. 본 시리즈가 대단했던 점은 핸드헬드 같은 어지럽고 요란한 움직임을 가진 촬영기법을 선보이면서도 카메라의 피사체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카메라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한 번도 이탈하지 않았다. 혹시 그게 더 빠른 차량 간의 추격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베를린>은 핸드헬드를 쓰지 않으면서도 때때로 카메라의 주된 피사체를 놓치는 경향이 있다. 빠르게 트래킹하거나 패닝하는 순간에는 더 그렇다. 심지어 차량 추격전도 없는데! 어차피 신경 쓰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고 아마도 그런 헐리우드 식의 분위기가 난다는 것만으로도 환호할 수 있겠지만, 작품을 생각하면 이경영을 추적하는 시퀀스는 별로 만족스럽지 못해서 오히려 감독이 가진 액션철학의 면모를 덜 부각시키게 만드는 독처럼 되어 버렸다는 느낌이 있어 안타깝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스파이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신이나 마르크스 어록이나 달달 외우는 도덕군자처럼 보이시나? 스파이는 나처럼 지저분하고 추잡하고 별볼일 없고, 주정뱅이나 변태, 공처가 같은 추잡한 놈들 뿐이야. 아니면 비루한 일상 속에서 카우보이 짓거리나 하는 공무원들이라 할 수 있겠지."
- 존 르 카레 원작, 마틴 리트 감독의 65년작,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이 마냥 아쉽지만은 않다고 느끼는 지점은 전지현이 연기한 련정희가 계략에 의해 얽히게 되면서 표종성, 련정희 부부가 탈주를 시도하는 부분이 나오면서부터다. 그리고 한석규가 연기한 국정원 요원인 정진수가 이들의 처지에 연민을 표하면서부터다. 나는 꼭 샘 페킨파 감독의 <겟어웨이>에 등장하는 스티브 맥퀸, 알리 맥그로우 커플을 보는 것 같았지만 이런 탈주의 이야기는 류승완 감독이 본 책을 생각해 볼 때 주인공이 연인과 함께 철의 장막 바깥으로 탈출하려고 뛰어가는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류승완 감독에게 남녀 간의 미묘한 애정을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사랑 얘기 다루는 걸 못봤다는 거다. 하지만 만일 장인이 되고자 한다면 감독에게 사랑이라는 소재는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 된다.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는 소재가 사랑이지만, 그만큼 자칫 잘못하면 뻔하게 다룰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카메라가 쉴새없이 움직이는 부분과는 반대로 이들 부부의 대화 장면에서 만큼은 가능하면 움직임을 자제한다. 마치 폭풍처럼 몰아치다가 어느 순간 고요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미 전작에서 대화 장면만으로도 작품에 파도를 일으키는 능력을 보여준 감독은 말이든 몸이든 대화가 가장 잘 어울리는 로맨스라는 장르를 탐구한다. 정확히는 국가가 만들어준 분위기에 너무 심취해서 옆에 있는 자기 아내의 소중함을 모른 한 남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잘 만들 수 있는 자신이 있다면 굳이 이국적인 풍경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베를린>은 사실 그래서 조금 의아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알겠는데, 작품이 베를린 현지촬영까지 갔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 도시를 조망하면서 부각시키는 면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보며 '류승완 버전의 <아이리스> / <아테나>' 라고 평가하는 반응을 봤는데, 두 작품은 이야기를 하려 들다가도 어느샌가 뮤직 비디오나 인물화보 촬영에 몰두하는 꼴이 되어버린 바 있다. 그에 비하면 이 작품은 이야기를 진행할 때 인물과 배경이 있다면 무언가를 포기해서라도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 대표적인 시퀀스. 이경영이 연기하는 리학수와 류승범이 연기하는 동명수가 오펜바움 다리 밑에서 접선하는 장면. 여기서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발코니 비스무리한 장소로 가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지만, 베를린의 전경은 다리 기둥이 사이에 가려져 틀 속에 갇힌 것처럼 일부만 보이고, 대부분이 특징 없는 건물에 가려진다. 오히려 이 시퀀스는 굳이 베를린으로 가지 않고 컴퓨터 그래픽과 세트 설계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면 작품의 카메라는 익스트림 클로즈 업 까지는 아니더라도 두 배우의 모습과 대화를 포착해 내는데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어쩌면 류승완 감독이 <베를린> 때문에 베를린을 간 것은 그냥 그 곳의 공기를 포착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등장인물 모두에게 베를린은 안식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냥 타 지역.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하여간 뭔가 이 작품이 도시를 잡아내는 방식을 볼 때마다 가수 김현식이 5집 앨범 커버를 위해서 사진을 찍을 때 뒷면에 쓸 것을 위해 사는 곳에서 굉장히 먼 바닷가까지 갔었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그런데 막상 앨범 커버를 보면 백사장 모래와 김현식의 발만 클로즈 업 되어서 찍혀있기 때문에 어느 바닷가인지도 모른다. 누구 회고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 사람이 김현식의 촬영현장을 따라갔다가 굳이 저기까지 갈 필요가 있나 싶어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분명 당사자는 가야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
가령 배우 캐스팅에도 그런 부분이 있을텐데, 작품은 김서형이나 곽도원 같은 배우들을 그리 분량이 많지 않은 조연으로 출연시킨다. 아마 김서형은 <짝패> 때 출연한 인연으로 <베를린>에 합류했다고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실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이 두 배우들을 작품에 좀 더 활용해야 했다는 아쉬움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베를린>은 결국 장소만 베를린일 뿐,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야기의 모티브가 나오는 작품이다. 참고로 김서형은 하정우 쪽과, 곽도원은 한석규 쪽과 연관이 있는데 이 주인공들이 서로의 진영에 질릴 정도로 징글징글한 임팩트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점에서 이 두 배우들은 모두 제 몫을 잘 하고 있다.
이경영과 하정우를 의심하는 김서형은 민소희 / 구은재의 정체를 밝히려 만날 뒤를 밟았던 <아내의 유혹> 시절의 명탐정 경력을 재활용하여 이들에게 위기를 닥치게 한다. (물론 이 부분이 중반부이고 여기서 반전에 가까운 이야기 전환이 일어난다.) 그리고 곽도원은 등장할 때마다 한석규에게 계급이 깡패라는 가혹한 현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그런 사람들의 등장은 표용성, 련정희, 정진수라는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고향'이라는 표현에 기묘한 환상을 품게 만든다. 이 세 사람은 자신들의 고향에 관해 완벽히 다 알 수 없는 어떤 혐오감을 품고 있다. 표용성의 경우에는 그런 혐오감을 가장 늦게 깨닫게 되는데, 특이하게도 온갖 복잡한 설정들을 맞춰가던 작품이 특정 지점에서는 추상적인 사랑의 테마가 들어갈 자리를 비워놨다. 어떤 복잡한 원인으로 이러한 결과가 초래됐다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한 죄, 그 죄로 인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적들의 소굴로 걸어 들어가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작품은 그런 사람이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겟어웨이> 같은 작품도 강도였던 부부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고 자유를 향해 달려가는데, 그걸 생각하면 <베를린>은 참으로 슬픈 로맨스다. 그리고 그 로맨스로 특히 여성 관객의 눈물샘을 잡아내는데 있어 효과가 확실하다. 이 세 인물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느껴지는 고요함과 세차게 휘몰아치는 액션의 대비는 이 작품이 여전히 흥미로운 지점을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렇게 하고 나서 작품은 다시 후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또 뛰어나지도 않은 결말을 보여준다. 물론 해당 인물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만족감과 기대감을 주는 연출이다. 그러나 결말에 도달하기 이전에 등장했던 대사가 그 결말보다 몇 배는 더 높고 크다는 느낌을 줬다. "고향으로.. 고향으로 가자..", "우리 아직 못한 말이 많이 남아 있는데..", "사람은 배신해." 같은 대사들 말이다.
하지만 작품은 거기서 멈춘다. 이 작품의 목적은 안전하게 착륙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류승완 감독의 신작이지만, 동시에 'CJ의 손길이 미친 블록버스터' 다. 우리는 요 몇 년간 CJ와 블록버스터라는 단어가 조합을 이루며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왔었는지를 알거나 들은 바 있다. 그걸 생각하면 이 작품은 내가 봤던 'CJ의 손길이 미친 블록버스터' 중에서 가장 정상적이다. 하지만 작품은 철저하게 관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 눈에는 류승완 감독이 뭔가를 더 하고 싶어하는 꿈틀대는 욕구를 애써 누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철저히 그 수준에서 만족할 수 있는 감독들이 있다.
그러나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세계를 특정지을만한 에센스가 있다. 로맨스 부분을 연출하는 능력도 마냥 고만고만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겐 이 부분이 액션을 압도할 정도로 크게 다가왔었다. 좀 더 숨통을 틔어주면 더 날아갈 수 있을텐데 <베를린>은 그 모든 것을 조금은 누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그게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더 모아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개봉 3일 만에 1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순항 중이다. 류승완 감독의 욕망이 작가적인 것에 있는지, 아니면 장인적인 것에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았으면 한다. 작가든, 장인이든 그는 앞에 '더 나은'이란 표현을 붙일 수 있는 감독으로 보인다. 나는 <부당거래>와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이 작품을 만든 그가 다음에 저런 작품들을 만들어 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가능하면 전자보다는 후자로. 위험하겠지만... <베를린>은 안전하고 재밌으나 내게는 어느 시점에서 다소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예상보다 나쁜 시퀀스도 있다.
그러나 예상 외의 지점에서 놀라움도 주기 때문에 'CJ의 손길이 미친 이전 블록버스터들' 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p.s.1 - 이 끄적임을 지금 한 새벽 5시 대에 마무리를 했는데, 보기는 어제 아침에 조조로 봤고, 보고 와서 갑자기 바로 쓸 수 있을 법한 끄적거림의 덩어리들이 뇌를 타고 올라오길래 조금 자고 밤 7시에 일어나서 끄적였습니다. 근데 보다 보니 작품의 표절에 관한 이야기가 있더군요. 하나는 본 시리즈고, 그건 제가 본 작품이라 위에 포함을 했습니다만 다른 한 작품은 바로 <차일드 44> 였습니다. 너무 비슷하다는 거죠. 일단 이 작품은 읽어보지 못한 관계로 뺐습니다.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도 원작소설은 읽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마틴 리트 감독님의 영화 버전을 봤기 때문에...) 대신 DVD 프라임에 스테판 님이 작성한 소설과의 유사 장면 설명 게시물이 있길래 읽어봤지요. 읽어보고 느낀 것은 전 동의할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게 논란이 될 정도로 비슷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이미 두 책을 읽었다는 언급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영향은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요.
그러나 저도 궁금한 게 한 가지 생기긴 했습니다. 작품 속에서 표종성이 책을 손에 들고 있고, 그 책이 클로즈 업 되는 쇼트가 하나 있습니다. 거기에 적힌 건 저자의 이름입니다. 존 르 카레. 정확히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저자의 이름은 확실하다. 작품에 대한 류승완 감독님의 일종의 경의겠죠. 근데 <차일드 44>를 지은 톰 롭 스미스 님의 이름은 없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만약 <베를린>에서 톰 롭 스미스 님의 이름이 적힌 책을 보여주는 쇼트가 하나 나왔으면 지금만큼의 논란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것도 경의로 해석될 수 있을텐데. 왜 존 르 카레 님의 이름은 보여줌녀서 톰 롭 스미스 님의 이름은 보여주지 않는 것일까.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텐데. 왜지? 나왔는데 내가 놓쳤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독 CJ 쪽 작품들과 관련해서 예전부터 표절에 진배없는 차용이 연달아 나온 탓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일수도 있겠지요. 저는 표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이 점에서 류승완 감독님의 대답이 궁금해지기는 합니다. 아마 감독님 본인도 <차일드 44>에 관해서는 한 번 언급을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어떤 말일지라도 오히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명확하게 뭔가를 말하는게 분명 침묵보다 훨씬 도움이 될테니까요. 화제작이라 인터뷰도 많이 했을테니 한 번 찾아봐야 겠습니다.
p.s.2 - 갈대밭 장면은, 사실 순전히 갈대가 나와서 그런 것도 있는데 <겟어웨이>의 커플이 장철 감독님의 <철수무정>과 마이클 리치 감독님의 <프라임 컷>의 갈대밭에 떨어진 것 같다고 미약하게나마 연상됐었습니다.
p.s.3 - 전지현 님은 신기하게도 표준 한국어보다 외국어가 더 잘 어울리는 배우 같아요. (후시 녹음 탓이기도 하지만 저는 <도둑들>에서의 연기도 다소 어색하게 보였거든요.) <블러드> 같은 경우에도 작품 자체는 솔직히 많이 그렇습니다만 전지현 님의 영어 연기는 기억에 남거든요. 굉장히 자연스러워요.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개인적으로 북한쪽 사투리를 가장 어울리게 구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경영, 하정우, 류승범 님 같은 배우들이 있는데 말이죠!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나서 조금 쇳소리가 나는 듯한 톤인 이경영 님의 연기를 보면서 북한 사투리를 못 알아 들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몇몇 표현이나 발음이 쇳소리와 섞여서 새는 것 같더군요. 그런 부분들은 못 알아 들었습니다. 어쨌든 결론은 전지현 님은 <베를린>에서의 연기가 <엽기적인 그녀> 이후로 최고인 거 같네요.
p.s.4 - 이 작품은 등장배우들이 영어발음을 할 때 굳이 원어민처럼 발음하려고 들지 않아서 그게 참 좋았습니다. 저는 외국어를 발음할 때 그 국가의 문화권에 따라서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굳이 어울리지도 않고, 되기도 힘든 원어민식 발음에 집착하면 그게 그렇게 어색하게 보일 수가 없어요. 근데 이 작품은 그게 없어 좋더군요. 그리고 가장 감탄했던 것은 한석규 님의 외국어 연기였습니다. 세탁소에서 동료랑 얘기할 때 USB 하나 꺼내들고 구슬리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p.s.5 - 먹방의 신이 뭘 먹는 장면이 거의 없더군요. 그나마 있는 것이 아침밥 먹는 장면인데, 그래도 놀라운 것이 먹방의 신이 깨작깨작 먹음에도 불구하고 밥알 씹히는 소리가 들려요. 아니.. 밥에서 씹히는 소리가 날 수 있나..? 어떻게 저런 밥알 씹는 소리가 날 수 있지? 아무리 맛없게 먹는다고 할지라도 먹방의 신이 어디 가지는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