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하~!)

 

 

 

 

 


~ TRACKS

(Side A)

1. 무인도

2. 아침

3. 너와 내가

4. 못난이

5. 꿈나라

6. 무인도 (Instrumental)

(Side B)

7. 하늘을 바라보소

8. 그리고

9. 아까시아 길

10. 헤어져 살면

11. 님은 먼곳에 (Instrumental) - 신중현

12. Summertime (Instrumental) - George Gershwin

 

LP 개수 : 1

러닝 타임 : 31:26 Mins

레이블 : 킹 레코드, 유니버셜 레코드 (1974) / 서라벌 레코드 (1980)

 

 

 

 

 

 

울트라 미라큘러스 하이퍼리얼리즘 현아 섹시 코만도

사이키델릭 소울 다이너마이트 여인

.....

 

 

 

 


가수 조용필이 <SBS 스페셜 : 대한민국 가수, 조용필> 에 등장해 인터뷰를 할 때, 나이 60을 훌쩍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오빠라고 불리는 기분이 어떻느냐는 식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조용필의 대답이 재미있어서 지금도 기억을 하는데, 그는 '오빠' 라는 단어를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오빠라는 말은, 조용필을 대신하는 그런 말이죠. 강력한 힘이랄까요.. 그러니까, (팬들이) 믿는 구석이 있는 거죠."

 

 


실제로도 조용필은 빼어난 아티스트지만, 유독 부모 세대가 그를 언급할 때 흥분까지 하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국 그런 의미인 듯하다. 우리 시대에도 너희들처럼 아이돌이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과거를 이야기하다 보면 사람이 잠시나마 젊어져 해당 시기로 돌아가는 법이다. '오빠' 라는 말은 해당 가수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사람을 바라보는 팬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어떤 찬란한 한 때와 함께 해 온 사람이 지금도 왕성히 활동할 때, 우린 그로부터 스스로의 젊음을 투영한다.

 

 


오빠 했으니 이제 '누님' 한 번 가 줘야지? 언제 한 번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김추자 누님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을 봤다. 김추자의 복귀 소식이 TV 좆선에서 나오는 바람에 신빙성의 문제를 은연 중에 갖고 있던 차에 그 사람은 댓글로 '요새 훨씬 젊은 애들이 춤 잘 추고 노래 잘 하고 엉덩이도 잘 흔드는데 다 늙어서 나오면 어쩌라고' 라는 투로 써 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본 어느 누군가가 '김추자 선생님이 이미 몇십년 전에 엉덩이 흔들고 춤 추는 걸로 쇼부 보신 분입니다' 라고 답을 했다. 쇼부는 외국어지만, 가끔 이런 식으로 자신의 말에 임팩트를 추기 위해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활용하는 건 찬성이다. 쇼부. 끝은 없는 거야..

 

 

그렇다. '태초에' 라고 하면 오버 리액션이겠지만 거의 반 세기 이전의 한국 가요사에도 돌부처도 돌아 앉게 만든다는 육감적 매력을 뽐낸 가수가 있었다. 그녀가 바로 김추자이다. 사실 지금처럼 포화상태가 아니라서 그렇지, 어느 시대에든 가창력 만큼이나 춤도 인상적으로 추는 여가수들이 분명 있었다. 김완선, 인순이, 나미, 인순이가 멤버 중 한 명이었던 희자매, 이은하, 들고양이들 등등.. 그런데 디스코의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건 진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때까지도 활달히 명맥을 유지했던 기생들도 기본적으로 가무에 능했는데, 어째 해방 이후 일정 기간동안의 시대는 정말 상상이 가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이봉조 작곡가와 함께한 앨범인 <무인도 / 하늘을 바라보소>의 1번 트랙, '무인도'를 듣는다. 아! 김추자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공백이라 할 수 있는 그 시대에 우뚝 서 있는 사람이다. 당사자 말에 따르면 어디서 딱히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김추자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춘천 향토제'에 나가 '수심가'를 불러 배뱅이굿으로 유명한 이은관 명창의 호평을 받았으며 3위에 입상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탈춤도 잘 췄으며 기계 체조 선수로도 활동, 문화방송 합창단에서도 활동하기도 했다. 정확히 가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능력들은 어지간히 다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김추자는 1969년에 신중현의 스튜디오에 오디션을 보러 와서 발탁된다. 김추자와 신중현의 작업물들은 유명하다. 하지만 이 앨범은 이봉조와 함께한 것이기 때문에 뭐, 여기서 언급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싶다.

 

 

이봉조는 많은 사람들에게 KBS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알려져 있지만, 현미의 남편이기도 했고 그녀에게 그 유명한 '떠날 때는 말 없이', '밤안개' 등을, 정훈희에게는 '안개'를 작곡해 준 명 작곡가이다. 사생활이 다소 난잡한 면이 있었지만 그걸 잊어버리게 될 정도로 능력 있는 예술가임에는 분명하다.





* 이 중 '안개'는 이명세 감독의 2006년작인 <M>에서 본편에 핵심적인 사운드트랙 삽입곡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아마 그 작품을 본 관객들이라면 '아, 이 노래!' 할 텐데, 작품 속에서는 엔딩 타이틀에 보아가 부른 리메이크 버전이 나오기도 한다. 위의 영상에서는 보아의 버전이 먼저 나오고, 원곡 가수인 정훈희가 1967년에 부른 버전이 뒤에 나온다. (정훈희가 부른 1967년 원곡은 당시 공개됐던 김수용 감독의 <안개> 의 사운드트랙으로 이용된 바 있다. 윤정희가 정훈희의 목보컬을 립싱크하여 작품 속에서 부르거든.) * 

 

 

이봉조가 작곡한 음악들을 듣고 있으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단순히 트로트 장르의 곡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진정 어덜트 컨템포러리 장르의 음악들을 만들어서다. 그 중에서도 '안개'는 참 드문 형식이었다. 당장 프랑스 센 강을 배경으로 곡을 삽입해도 위화감이 없을만큼, 샹송의 정서가 느껴지는 멋진 곡이기 때문이다. 현미의 '밤안개'는 또 어떤가? 처음 부른 버전을 들어보면 그녀의 풍부한 성량에 맞춘 듯 빅 밴드 풍의 스윙 음악을 듣는 것 같다.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봉조는 어떻게 보면 한국의 1세대 재즈 / 블루스 아티스트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런 것들이 김추자와 만나면 어떤 작용을 일으키게 될까?

 

 

아니. 난 사실 김추자가 신중현과 작업을 했을 때에도 흔히 우리가 상상하는 육감적인 안무의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었을까 싶다. 끽해야 '거짓말이야', '늦기 전에' 라든가, 펄 시스터즈에게 준 곡을 그녀가 다시 부른 '커피 한 잔' 정도인 것 같다. 소울과 발라드 장르의 문법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록을 음악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신중현에게서 어떤 춤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쾌감 같은 것을 찾기는 힘들어 보여서였다. 그나마 영상으로 본 것 중에서 김추자가 신명나게 몸을 흔드는 모습을 보여준 건 전부 다른 작곡가가 만들어준 곡에서이기도 했고.

 

 

분명 당시 김추자의 무대를 찍은 영상이 존재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카이브 만들기에 취약한 한국이기 때문에 다 없어졌겠지만. 그녀가 신중현의 곡을 부르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은 것 중 현재의 우리가 볼 수 있는 곡은 '석양' 이나 '저무는 바닷가' 정도다. (당시 한국에서 TV 프로그램 녹화를 한 번 하고 나면, 그것을 담은 필름이나 테이프를 재활용하거나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아카이브를 형성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런 것들의 값이 비쌌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는 음악계에서도 그랬는데, 하나의 마스터 테이프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보관할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가수의 녹음을 위해 덮어 씌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버려지는 경우도 많았고. 아니면 검열에 걸려 소각되거나.)

 

 

대신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게 있었는데, 김추자는 곡 템포의 빠르기와 정서에 맞춰 자신의 육감적인 모습을 뽐낼 줄 안다는 것이었다. 비음이 섞인 독특한 보컬, 뇌쇄적인 시선 처리와 감상자를 애닳게 하는 손동작 등.. 느린 곡에서도 할 건 다 하는 사람이었다. 김추자의 스펙트럼은 극단을 능숙하게 오가도록 구축되어 있었다. 아. 물론 신중현의 곡은 좋다. 김추자가 좋은 가수가 될 수 있었던 건 기본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좋은 곡들을 불렀던 이유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 강대철 감독의 1971년작, <내일의 팔도강산>에서 김추자의 등장분이 있다. 박정희 정권의 개발정책을 홍보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이 프로파간다 연작은 한 편마다 초호화 배우 캐스팅에 다른 유명예술인들의 카메오 출연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 카메오인 김추자는 김희갑이 지은 '빗 속을 거닐며' (작품의 주연인 김희갑과는 동명이인.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작곡한 사람이기도 하다.) 를 신명나게 부른다.

 

화면 중앙에서 무려 윤정희와 신성일이 춤을 추는데, 정작 그들의 춤사위는 김추자의 기운에 가려져 회사 부장님과 사원의 느낌만 줄 뿐이다. * 

 

 

대신 하지만 그럴수록 궁금증이 생긴다. 이 여인이 빠른 템포에 신명나는 브라스 섹션의 지원을 받으면 어떤 시너지를 보여줄까? 이건 내가 빅 밴드 풍의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여하튼 아주 개인적인 취향으로 인해 생긴 궁금증이었다. 여기에 해답을 주는 곡이 이봉조와 만나서 작업한 이 앨범의 1번 트랙 '무인도', 2번 트랙 '아침' 이다. 확실히 김추자가 목에서 고음을 쭈욱 뻗을 때, 록 기타의 선율보다는 브라스가 어울려 보인다. 그릭 이런 창가를 부를 때 들을 수 있는 쭉 뻗는 김추자의 시원한 보컬은 '아침'에서 빛을 발한다. '무인도'가 하일라이트를 보여주기 위해 예열해야 했다면 이 곡은 그런 거 없다. 그냥 쭉 가는 거다. 햐아.. 정말 시원한데다 펑키하기까지 하다. 경박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무인도'는 대신 '아침' 에는 없는 거대한 스케일의 박력이 있다. 디스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심지어는 펑키한 기운도 느껴진다.

 

 

위에서 김추자의 비음 등 보컬에 관해서 잠시 말을 했지만, 당대의 평론가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보고 '미끈하게 빠지는 스타일이며, 비음이 섞여 경우에 따라서 매우 선정적으로 들린다' 고 언급한 바 있다. '무인도' , 김추자나 정훈희처럼 실력과 더불어 어떤 가수의 이미지를 규정짓는 강력한 어떤 정서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이 곡은 결국 트로트가 되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나마 주현미, 이미자 등 전통 강호들이 소화하기엔 어째 좀 동떨어지는, 기괴하기만한 곡이 되었을 것 같다는 얘기다. 그건 사실 '무인도'가 트로트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박력 넘치는 진행을 보여준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장르를 떠올리기 이전에 정말 이봉조가 김추자의 장악력을 믿고 거대한 규모의 곡을 지어줬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물론 신중현은 김추자에게 두성과 비음 등 전통 창법이 금기시하는 테크닉을 적극 구사하길 주문했고, 그 결과 그녀는 가장 반(反) 트로트적인 가수였다고 평가한 바 있다. 트로트를 꼭 '한국적인 음악' 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그 전에 국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악은 웬만하면 두성을 쓰지 않는다. 신중현은 단순히 국악을 관습적으로 답습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미인'을 한국 전통 음악의 5음계를 이용해 만들었으므로, 한국적 음악 작법을 가미한 자신만의 음악성, 즉 '소울-사이키델릭' 의 소울을 김추자에게 심어줬기 때문이다.

 

 


A면의 1, 2번 트랙은 사실 '이봉조 앨범에서의 김추자'가 보여줄 수 있는 최정점이기에 이 앨범에 있어서는 핵심이자 곧 단점이 된다. 그래서 사실 <무인도 / 하늘을 바라보소>가 명반이라 불린다면, 그것은 그 앨범 자체의 완성도가 뛰어나다기 보다는, 어떤 가수와 더불어 시대를 대표하는 '명곡' 이 수록된 것이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에서 '무인도'와 '아침' 에서 느낀 전율을 다른 곡들에서 느끼지 못했던 건 결국 그 두 곡이 신중현에게 음악적인 무언가를 받았던 '당시의 김추자' 의 강점을 어떻게 보니 잘 맞고, 또 잘 드러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심하게 말하면 '어떻게 하다 보니 잘 맞은' 거랄까?

 

 

 

위에서 언급한대로, 이후에는 이상하게도 여전히 김추자가 노래를 부르지만 앞의 두 곡만한 개성이 묻어나오지 않는다. 밋밋하다. 나름대로 '무인도'와 '아침'에 가깝게 들었던 곡들은 A면의 5번 트랙인 '못난이'와, 내가 CD 트랙처럼 표기하여 8번 트랙이라 했지만, LP 식으로 따진다면 B면의 2번 트랙에 해당되는 '그리고' 정도다. 왜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이봉조의 관현악 편성은 여전히 빅 밴드 특유의 소란스러움이 있다. 쉴새없이 쾅쾅거리는, 동시에 현란한 키보드 연주는 압권이다. 그러나 곡 자체가 '무인도'와 '아침' 만큼의 업 템포가 아니라 발라드에 가깝다. 이런 식의 느릿느릿한 리듬이라면 김추자는 여전히 신중현의 곡에 여전히 맞추어져 있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끊임없이 반복 연주되는 긴 분량의 곡에 맞춰 몽환적인 목소리와 바이브레이션을 해야 했던 것. 그게 '김추자 다운 것' 이라고 규정할 수 있었지만, 개인이 노력을 해도 다른 작곡가와 작업할 때는 그에 맞춰 바꿀 수도 있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이 당시의 김추자는 그것을 100% 성공적으로 해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에서 들려오는 허밍 부분이 사이키델릭한 감흥을 다시 가져다 줬기에 들을만 했던 것일까.. 가끔 생각해보는 문제다.

 

 


물론 내 취향에 맞지 않은 곡들이 있긴 하다. 예컨대 A면의 3번 트랙인 '너와 내가' 라든가,  (나는 9번 트랙이라고 표기했지만) B면의 3번 트랙인 '아까시아 길' 은 곡이 너무 고루하게 들려 솔직히 시간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생각 뿐이다. 그러나 제일 처음 들리는 투 톱만은 못하더라도 이 앨범의 곡들은 대체적으로 다 들을만하다. 단지 김추자와 이봉조의 만남이 이 앨범에서 어째 엇박자를 일으킨 것 같다. 그래도, 옷 두 벌은 건졌으니 된 거겠지.

 

 


헌데 독특하게도 김추자의 이름을 뺐을 때 남는 게 '이봉조 작곡집' 이라 그런지, 각 면의 마지막 즈음에 배치된 그의 연주곡이 예상치 못한 귀의 즐거움을 주는 순간이 있다. 이봉조는 당시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한국에서 언제나 색소폰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으로 거론되곤 했다. 하지만 자신의 곡인 '무인도', 신중현의 곡인 '님은 먼곳에', 조지 거쉬인이 쓴 오페라, <포기와 베스>의 수록곡인 'Summertime' 을 트랙 리스트에 올려놓은 센스 때문인지 테크니션의 노련함에 관한 기대만큼, 아티스트로서의 작품을 접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예상 외로 '무인도'의 경음악 연주 버전은 기존의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압권은 '님은 먼 곳에'와 'Summertime' 의 커버다.

 

 


사실 이 곡은 김추자가 부른 버전 빼면 조관우의 리메이크만 생각나는 정도다. 부른 사람이 몇몇 더 되는 걸로 안다. 원래 '님은 먼 곳에'는 패티 김을 위한 곡이었다. 그러나 당시 패티 김은 노래를 거절했고, 이걸 김추자가 부른 것이었다. 김추자가 부른 버전이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고 난 뒤, 패티 김이 결국 1984년에 이 곡을 직접 부르게 된다. 자기도 노래 놓친 게 결국 아까웠던 거지. 하지만 대부분은 1995년에 조관우가 부른 리메이크 버전을 기억하고 있다. 그가 정말 잘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봉조는 여기서 김추자 이후, 패티 김과 조관우, 혹은 장사익.. 그 사이에서 주목할만한 결과물을 이뤄낸다. 나는 '님은 먼 곳에'를 이런 식으로 리메이크 한 걸 처음 들어봤다. 이 곡은 누가 부르든, 어떤 성별을 가진 사람이 부르든 원곡이 가진 쓸쓸함과 비극의 정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봉조는 '님은 먼 곳에' 를 위해 류복성이 칠 법한 봉고를 배치 시키고, 피아노를 우아함이 아니라 철저한 리듬 악기로서의 정체성을 이용한다.

 


결과적으로, 신명나는 재즈의 분위기도 가득하지만 영화음악 분위기도 좀 난다. 가령 예를 들자면, 최경연 음악평론가는 이봉조의 '님은 먼 곳에' 커버를 두고 '007 영화의 사운드트랙 같다' 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007 시리즈에서 이런 리듬을 듣기는 힘들다. 그보다는 제임스 코번이 주연한 007 시리즈의 아류작인 <전격 플린트 고고 작전>, <전격 플린트 특공 작전>을 연상케 하는 측면이 있다. 그 작품의 음악을 제리 골드스미스가 작곡했는데, 딱 이런 음악적 정취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혹은 낭만기를 조금 뺀 미셸 르그랑의 음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제리 골드스미스의 <전격 플린트 특공작전> 사운드트랙 중에서 *

 



원곡을 듣지 않고 먼저 접할 경우, 오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이봉조는 이렇게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이것은 앨범의 최종 트랙에 해당하는 B면의 6번 트랙, 'Summertime' 에도 해당된다. 어찌 보면 '님은 먼 곳에'가 이 곡과 비슷한 과가 아닐까 싶다. 원 오페라인 <포기와 베스>의 등장인물인 클라라가 무더운 여름에 한가로운 삶을 꿈꾸며 단독으로 부르는 곡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가 그런 삶을 누릴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불어 결과적으로 '현재 없는 것' 을 그리워 한다는 점에서 '님은 먼 곳에' 와의 유사성이 있다. 이봉조는 독특하게 그 곡에 활기를 더 했고, 'Summertime' 에는 묘한 관능을 부여한다. 해당 곡들이 원래 어땠었는지를 생각한다면 배신감, 몰이해 등으로 격하할 수도 있겠지만 이봉조는 그저 장르 문법에 충실했을 뿐이다. 'Summertime' 에서 이봉조의 색소폰 연주는 그가 악기를 불고 있는 마우스 피스 사이에 있을 타액까지 연상될 정도로 끈적끈적하다. 더불어 매혹적이기도 하다. 거기엔 마치 애초에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민족적 문화를 향하여 어떻게든 정서적으로 다가가려는 사람의 노력이 있다.

 

 


그에게 끈적한 색소폰의 선율은 흑인음악과, 그것이 나올 수 있었던 민족 자체에 대한 음악가로서의 헌사나 다름없다. 아무리 이해하려 한들 결국 표피적인 선에서 그칠 것을 알기에, 그는 절륜한 기교로 자신의 성취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그 점이 기존과 다른 음악적 이미지를 새로이 이끌어 냈더라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오만하지 않은 음악인 셈이다.

 

 


작곡가는 가수와 작업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인장을 분명하게 남기고 싶어한다. 결과는 좀 기묘한 형태가 되고 말았다. 가수에게 평생동안 언급될 명곡을 두 개나 선사해 줬지만 정작 다른 곡들이 그만큼의 힘이 없으니 말이다. 헌데 작곡가가 나서서 직접 연주한 두 개의 커버곡이 앨범의 두 타이틀곡에 버금가는 음악적 감흥을 청자에게 남긴다. 이럴 때 '작곡가' 라는 사람의 위치는 결국 어디에 머물러 있어야 하나 같은 의문이 생긴다. 의도적인 건 아니겠지만 아홉곡을 부른 김추자의 입장에서 그녀가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는 반면, '자신이 직접 참여하는 무대' 에서의 이봉조는 세 곡 중 두 곡에서 실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조그맣게 '이봉조 작곡집' 이라 되어 있긴 하지만 '김추자'의 이름이 크게 박힌 데에서 결국 어느 쪽에 좀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해야 했는지는 청자들도 대개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으리라 본다.

 

 

이런 점에서 <무인도 / 하늘을 바라보소>를 두고 '명반'이라 하기가 좀 그렇다. 명반은 개별의 곡이 다르지만 비슷하게 유기성을 가지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모든 트랙들을 마냥 들을만 할 때 해당 호칭을 붙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무인도 / 하늘을 바라보소>는 '명반'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명곡이 수록된 앨범' 이라고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김추자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브라스 섹션과 어울리는 명곡이 몇 개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강렬한 커버 디자인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분명 이 앨범은 평가 받을만 하다. 나는 김추자란 이름을 부르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시각적 이미지가 저것이니까 말이다. 이 앨범은 합이 좀 어긋났지만 그래도 그녀의 이름이 손상될 정도는 아니다.

 

 

김추자는 젠 체 하며 자빠졌던 한국의 문화계에서 그들의 위선을 벗기고 야성을 일깨운 선구자였다. 그 야성이 사람을 억압하고 천년만년 정치해먹는 경우의 천박함과는 다르다. 김추자는 야성의 예술을 보여준 가수다. 마녀다. 말레피센트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무조건적인 박애주의자 성녀만을 원했던 당시의 한국에서 마녀가 살기란 여간 퍽퍽한 환경이 아닐 수 없다. 김추자 자신의 말로는 절대 은퇴가 아니라 공백기가 길어졌을 뿐이라 하지만, 광풍 수준으로 휘몰아치며 시대를 풍미했던 이 말레피센트는 놀라울 정도로 소리 소문 없이 일반적인 사람의 삶 속으로 침참해 들어갔다. 이봉조 역시 1987년에 타계한다. 곡은 여전히 사랑 받는다. 곡은 영원히 살아 있으니, 이제 나는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을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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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노래는 몸에서 나와요. 머리에서 생각해서 나오는 게 아니고, 느낌 그대로 나오는 거죠. 사이키델릭이나 소울 창법도 신중현 선생님께 배웠다기 보다는 생래적인 것으로 봐야겠죠."

 

- 2007년 6월, <월간 신동아>와의 전화 인터뷰 중에 자신의 노래 스타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김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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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 김추자 님은 1981년, 동아대 정치학과 교수인 박경수 님과 결혼한 뒤에 1986년에 잠시 콘서트를 한 것 빼고는 철저하게 언론과의 접촉을 거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부터 슬슬 복귀설이 나돌기 시작했죠. 거의 매 해 빠지지 않고 나왔던 것 같아요.

 

 


흔치 않게 전화로 인터뷰를 했던 <신동아> 2007년 6월호를 스크랩해서 가지고 있는데, 사실 이 리뷰를 처음 끄적이기 시작한 올 해 1월 1일에도 복귀 소리가 나왔고, 그거 보면서 그냥 그러려니 했거든요. 그런데 4월 5일이 되어 다 쓰고 나니 정말 복귀하는가 봅니다. 이번 달이 그 달이죠.

 

 


<신동아>의 인터뷰에서 김추자 님은 복귀를 위해서라도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 때부터 7년이 지났는데, 이제 김추자 님의 연세도 예순 셋이 됐습니다. 일흔 셋 되어도 목소리 한결같은 이미자 님도 있고, 동년배의 조용필 님도 여전하니 기대는 됩니다만 김추자라는 사람이 복귀설만 나돌하게 하고 그걸로 거의 10년 넘게 끌어온 걸 생각하면, 사실 신뢰를 상당히 잃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제게 김추자란 이름은 그 분이 부른 노래 제목과 유사하게 '거짓말장이' 일 뿐이죠. 기대보다는, 정말 어떻게 나오려고 그러나 한 번 매섭게 지켜봐야 겠습니다. 소문만 나돌게 한 벌이에요, 벌. 신보가 발매되면 그것에 관해서도 할 말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p.s.2 - 방송사 어딘가에 분명 아카이브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만, 현재 제가 볼 수 있는 '김추자 님이 '무인도'를 부르는 모습'은 앨범 발매 당시가 아니라 1986년에 잠시 콘서트를 하러 방송 출연을 했을 때 입니다. 희한하겓 앨범 발매 당시에 '무인도'를 부르는 모습은 정훈희 님의 모습만이 있죠.

 

 


여기에 사연이 있다고 해요. 이봉조 님이 1975년에 '칠레 국제 가요제' 에 초청을 받습니다. 이른바 국가대표로 초청 받은 거죠. 국가가 칠레이니까 '무인도'를 에스파냐 어로 편곡해서 부르기로 했지요. 요즘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당시는 더 흔치 않았던 '인터내셔널 버전' 인 것입니다. 이러려면 원곡 부른 가수를 데려가야 했는데, 이 때 현미 님이 이봉조 + 김추자 조합의 해외여행을 극구 반대를 했다고 하는군요. 예. '밤안개' 부른 그 현미입니다. 이봉조 님의 아내 분이었죠.

 

 


김추자라는 가수가 섹시 컨셉을 당시에 드물게 고수하며 인기를 끄는 가수였고, 그에 걸맞게 남자관계가 문란하다, 건방지다 등등의 많은 루머가 있었어요. 그 중 정말 많은 것들이 루머로 밝혀지긴 했지만...여튼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결국 칠레 가요제에 이봉조 님과 같이 간 사람은 엉뚱하게도 정훈희 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에 한 번 남을까 말까한 칠레 가요제의 '무인도'에서 우리는 김추자 대신 정훈희를 봤죠. 그리고 김추자의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TV에서 '무인도'를 열창하는 사람 역시 정훈희 님이었습니다. 충분히 부를 수 있겠지만, 조금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봉조와 현미 부부 역시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음악적 동지로서는 평생을 갔지만 사랑은 아니었죠. 그리고 현미 님이 걱정했던 건 '김추자와 함께 가서' 라기 보다는 '그녀와 같이 간 사람이 이봉조라서' 였던 것 같습니다. 그와 결혼하고 나서 숨겨진 자식이 두 명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면 가수를 보내지 않는게 더 명답일 것 같습니다만.

 

 


p.s.3 - 올 2월에 이봉조 님의 유품들이 도난 당했다고 합니다. 현미 님이 금고에다 남편의 유품들을 넣어두고 관리해 왔는데 절도범이 그걸 다 때려 부수고 가져 갔다는군요. 도난당한 물품 중에는 1974년에 쓴 '무인도'의 악보도 있다는군요. 이 놈의 나라는 도대체가 문화유산을 가만 놔두질 않네요.

 

 


p.s.4 - 이 앨범은 LP만 있을 뿐, CD로 복각되거나 발매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LP 소장하시는 분의 집에 갔다가 이걸 192kbps 로 mp3로만 리핑을 해 와 듣는 식으로 소장하고 있는데, ...당시에는 용량만을 생각하다 보니 원체 무지해서 비트레이트를 그 모양으로.. 뭐, 지금 생각해보니 헌 책방 돌면서 이 앨범의 LP를 구해야 겠다는 생각 뿐이죠.

 






* 아침 *

작사 : 이종택 + 작곡 : 이봉조


창문을 열어라 가슴을 펴라

하늘을 보아라 먼산을 보아라

찬란한 하루가 시작이 된다.

눈부신 행운의 아침이다.

세상은 즐겁게 인생은 신나게


찬란한 하루가 시작이 된다.

눈부신 행운의 아침이다.

세상은 즐겁게 인생은 신나게

인생은 신나게 





* 무인도 *

작사 : 이종택 + 작곡 : 이봉조


파도여 슬퍼말아라

파도여 춤을 추어라

끝없는 몸부림에

파도여 파도여 서러워마라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라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비춰다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





* 1986년에 방송에서 콘서트를 하기 위해 잠시 출연했을 때의 모습입니다. 

= MBC 방송국의 <화요일에 만나요> 출연분이죠.

첫 딸을 출산하고 나서 출연했다고 하는데, 

최규성 음악평론가는 '비만해진 그녀의 모습에 팬들이 실망했다' 고 감정을 드러냈지만, 

뭐.. 노래는 이 때도 잘 했던 거 같아요. 


사실 이 때의 무대는 개인적으로 '청개구리 사랑' 이 아주 좋았습니다. 

여전히 춤 되고 노래 된다는 걸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애 낳은 아주머니가 스텝 제대로 밟아주시더라구요. 그래서 '무인도' 말고 이거 넣었습니다. *




* 1975년 '칠레 국제 가요제' 에 출전한 정훈희 님의 '무인도' 커버. 

이봉조 님이 지휘하다 말고 중반에 갑자기 색소폰 연주도 하며, 

정윤희 님이 돌고래 초음파를 발사하는 명 무대입니다.


참고로 이 때 '무인도'가 국제 가요제 결승에 진출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곡은 3위 본상, 정훈희 님은 최고가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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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S

1. 몰라주고 말았어

2. 가버린 사람아

3. 태양의 빛

4. 내 곁에 있듯이

5. 춘천의 하늘

6. 고독한 마음

7. 하늘을 바라보소

8. 그리고

9. 그대는 나를

 

CD 개수 : 1

러닝 타임  : 36:59 Mins

레이블 : ESP 엔터테인먼트, 포니 캐년 코리아


.....


 

말레피센트의 귀환



1.


최근에 안젤리나 졸리 여사가 출연한 <말레피센트>라는 작품이 있다. (비록 본편의 완성도가 좌절스럽다는 평가가 많지만, 마녀 말레피센트를 맡은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풍문이다. 풍문이라 하는 것은, 내가 아직 작품을 못 봤기 때문이다.) 말레피센트는 월트 디즈니 사의 1959년작인 클라이드 제로니미 감독의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악역으로 등장했던 마녀다. 


사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그녀가 그렇게 사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잠자는 당사자인 오로라 공주의 부모가 말레피센트도 파티에 초대해 줬으면 아~무 일이 없었을 것 아닌가. 현실세계였으면 사실 악역들도 세금 내고 사는 엄연한 시민인데. 암만 생각해봐도 말레피센트가 오로라 공주에게 저주를 건 이유는 출생 파티 때 초대를 해주지 않아서 그렇다. 이렇게 생각하면, 말레피센트도 사람이다. 상처받은 그녀는 오로라 공주에게 열여덟살 생일이 되기 전, 물레 바늘에 찔려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에 빠지리라고 선언하고 사라진다.





* 사람 혼 쏙 빼놓는 김추자의 '저무는 바닷가' 뮤직 비디오.

참고로 이 곡, 박찬경 감독의 다큐멘터리 <만신>에도 잠깐 나왔었다. 알아채신 분 계시려나.. *



김추자, 이봉조의 <무인도 / 하늘을 바라보소> 앨범 리뷰 (-> 보러가기) 를 끄적일 때, 그녀를 '말레피센트' 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과 차이점이 있다면, 팬의 입장에서는 김추자는 스스로에게 저주를 걸었다고 보인다는 점일게다. 물론 이건 철저히 팬으로서의 생각이다. 


김추자는 1981년에 박경수 동아대 교수와 결혼식을 올린 뒤, 1986년에 잠시 TV에 출연하여 무대를 가진 뒤에는 33년간 철저히 가정주부의 삶을 살았다. 소주병에 얼굴을 난자당하고, 안무가 북한에게 보내는 수신호라는 모함에 시달리는 파란만장한 연예계 인생을 살았어도 오뚝이처럼, 1978년에 복귀 공연을 가졌던 그녀였다. 그래서 사실 복귀 3년 만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았다. 허나 김추자는 유명인으로서 활동했을 때도 말수가 많지 않았고, 자신의 분장실을 따로 쓰기를 주문했던 만큼 폐쇄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판단을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김추자가 벌이는 행동, 그녀에 관한 소문들은 모두 갑자기 주문을 거는 마법 같다. 갑작스러운 은퇴선언도 당시 대중들에게는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그녀는 결혼을 함으로써, 당사자로서는 재밌게 살았다지만 (가수로서는) 죽음과도 깊은 잠에 빠졌다. 


솔직히 몇 개월 전에 <무인도 / 하늘을 바라보소> 리뷰를 끄적였을 때 내 마음은 일종의 분노에 가까웠다. 이유는 간단하다. 진심이야 어찌됐든 김추자는 끊임없이 번복을 해댔기 때문이다. 돌아오겠다는 소리는 사실 2000년부터 들려왔었고, 나는 그녀의 복귀 시도 소식을 2007년에 처음 들었다. 


사실 말만 그렇게 하는 거라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원래 십몇년 걸려 작품 발표하는 예술가도 많다. 그러다 보니 팬들의 입장에서는 예술가가 긴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도 언젠간 새로운 작품을 낼 거라는 기대를 가지며 살 수 있다. 예술가가 얼마나 이기적이든,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는 팬들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헌데 김추자는 단순히 침묵을 넘어서서 뭔가 준비를 하다가 꼭 그 결정을 뒤집었다. 2000년에 복귀하기 위해 몸매를 가다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도, <시월애>, <푸른 소금>을 만든 이현승 감독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자신의 인생을 뮤지컬 화 시키려 했을 때도 결국 뒤집혀서 끝끝내 좌초되지 않았던가.

 

물론 나 스스로도 최근에 어떤 일을 겪으면서, 예술과 관련된 분야는 여러모로 계약이 참 불공정한 구석이 있구나 싶어 김추자가 당한 일에 대해 공감을 할 수는 있었다. 이 슈퍼스타에게마저도 불공정한 약속과 계약을 오는구나..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을 겪어가면서 일을 하는 거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끊임없는 번복을 저지르는 행동은 용서가 되지 않았지만.


김추자는 그 옛날 자신을 가리키는 소문대로 '구름 같은 김추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나 역시 차라리 그녀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항상 돌아온다 돌아온다 말하다 지난게 10년이 넘어가고, 나도 그 소문을 들은지가 7년이 됐으니 말이다. (게다가 올 해 같은 경우에는 김추자의 복귀 소식을 관심 갖고 전한 방송사 중에 'TV 조선'이 끼어있어서.. '쩝. 이 방송사를 믿느니..' 하는 마음도 있었고. TV 조선 믿느니 차라리 <환단고기>를 믿겠다.) 


올 해도 복귀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앨범 커버마저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던 시간.. 툭!! 김추자는 정말 갑작스럽게 돌아왔다. 삐딱함은 가시지 않았다. 재작년부터 노장 예술가들이 단체로 회춘이라도 했는 듯 새롭게 복귀하길래 거기에 묻어가려고 돌아온 것이라 생각했다. 내게 김추자는 13년만에 <Chinese Democracy> 앨범을 낸 건스 앤 로지스의 한국판이나 다름없었다. 그 때까지는.




2.


2000년에 김추자가 내려했던 앨범의 구상과 좌절된 이유는 2007년에 6월에 월간지인 <신동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최영철 기자 (인터뷰어) : 2000년 각 신문에 다시 음반을 내고 복귀한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결국 안 나왔으니 오보가 되고 말았네요. 


김추자 : 만회해야죠, 뭐. 그 때 음반을 내려고 작곡가도 자주 만나고 재즈 발레도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몰라요. 개인 레슨을 받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출퇴근을 했죠. 헬스장에 가서 매일같이 몸매를 가다듬고 그랬는데...


최영철 기자 : 그런데 어쩌다 음반 작업이 중단됐습니까.


김추자 : 음반을 내고 공연도 하기로 기획자와 계약을 했는데, 그 사람은 음반보다는 공연에만 관심이 있었던 거죠. 그게 돈이 되니까. 좀 지켜보니 음반은 내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게 눈에 보이는 거에요. 그 때 저는 음반 취입에 비중을 더 두고 있었거든요. 지금처럼 음반시장이 어렵진 않았으니까.


약속한 녹음 날짜는 다가오는데 데모 테이프도 가져오지 않고 시간만 끌기에 계약이 자연스럽게 깨졌는데, 글쎄 그 기획자가 나 모르게 거액의 손해 배상 소송을 낸 거에요. 음반을 내기 위해 각종 비용이 들었다며 그걸 나보고 물래요. 계약서에도 분명 쌍방간에 이해 관계가 맞지 않으면 자동으로 파기한다고 돼 있었는데, 결국 제가 이겼지만, 소송이 2년을 넘게 끌면서 소금에 절어 시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속앓이를 좀 했죠.. (중략)


최영철 기자 : 어떤 음반을 낼 계획이었나요.


김추자 : 새로운 곡은 몇 곡만 하고 내 히트곡을 다시 부를 계획이었어요. '빗 속의 여인', '미련' (<신동아> 본문에서는 '비련'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비련'은 조용필 곡이잖아.), '마른 잎' 같은 노래들 말예요. 옛날엔 신중현 선생님 밴드에 맞춰서 노래를 불렀는데, 다른 밴드에 맞춰서 새롭게 하면 또 다른 느낌의 노래가 나올테니까.


(중략)


최영철 기자 : 은퇴하신 적은 없으니, 음반 다시 내셔야죠.


김추자 : 당연하죠. 그런데 요즘 음반시장이 너무 죽었어요. 사실 지난해 10월 (이 인터뷰가 실린 해에서 생각해보면 지난 해는 2006년) 부터 음반을 내려고 '김추자 & 컴퍼니' 라는 기획사를 설립하고 작곡가를 만나러 다녔어요. 사업자 등록도 제 이름으로 했어요. 지난 10년 넘게 많은 음악을 들어온 덕에 직접 음반 제작을 하려고 했던 거죠. 내게 맞는 작곡가를 찾으려고 이런저런 사람을 만났는데, 음반시장 상황이 너무 안 좋더라고요. 저는 그 사람의 작품을 들으면 대충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수 있어요.


그런데 대다수의 작곡가가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의욕 상실이라고나 할까. 작곡을 해서 음반이 팔려야 먹고 사는데 그게 안 되니까.


음반을 내려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저를 참 많이들 보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 면에서 팬들에게 빚이 많아요. 1982년에 신중현 선생님에게 받은 곡이 열 곡 정도 있습니다. 신 선생님이 젊을 때죠. 그 데모테이프와 악보가 아직 있어요.



이 인터뷰에서 김추자는 1982년에 신중현에게 받은 열 개의 데모 테이프와 악보가 있다는 언급을 한다. 받기만 했지, 본격적으로 앨범에 쓰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1982년이면 그녀의 은퇴 후의 일이다. 독특했다. 비록 은퇴는 했지만 언젠가 돌아올 마음이 있으니까 이후에 곡을 받은 건가?

 

이 때 언제 나올지 모를 김추자의 신보에 대해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신곡과 예전 곡을 다시 부르는 방식을 취하겠구나.. CD 시대인데 러닝 타임이 좀 길었으면 좋겠네. 후자는 틀렸지만, 전자는 맞았다. <It's Not Too Late>. 김추자의 이 앨범에 비견될 수 있는 앨범은 뭐가 있을까. 아마도 조니 미첼이 57세가 되어 20대 시절 자신이 부른 곡들을 다시 부른 2000년작, <Both Sides Now> 앨범 정도만이 맞설 수 있을 것이다. 

 

 


 * 조니 미첼 *


사람에 따라서 일찍 데뷔해 폭죽 터지듯 화려하게 빛을 내다 사그러지는 경우도 있는 반면, 대기만성형이라고 나이 들어 꽃피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생물학적 전성기'는 결국 마흔 이전에 끝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이런 이유로 무엇보다 힘이 넘치고 창작욕이 왕성해지는 젊은 시절의 걸작들을 다시 부르는 시도는 자칫 가수 당사자에게 위험한 시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조니 미첼은 과거의 영롱함과 달라져 버린 자신의 허스키한 현재의 목소리를 원숙함으로 무기 삼아 느린 톤으로 여유롭게 돌파하는 방법을 택했다. 


모든 곡들이 다 새롭게 들리고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Both Sides Now' 를 다시 부른 것은 정말 대단한 선택이었다. 아무리 살아봐도 인생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그 곡을 60이 다 되어가는 여인의 음성으로 들을 때는, 젊은 시절의 영롱함은 상대가 될 수 없는 깊이가 나오기 때문이다. 가수가 나이 들어 자신의 곡을 리메이크하는 행위를 두고 헛짓거리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잘만 해주면 말이다.




* 조니 미첼의 1969년 앨범 <Clouds>에 수록된 'Both Sides Now'.

6~70년대 한국에서는 포크 음악 연주자와 가수들의 단골 레퍼토리 곡이었다. 양희은도 자신의 첫 독집 앨범인 <양희은 고운 노래 모음 1집> 에서 이 곡을 번안하여 불렀다. *




* 조니 미첼의 2000년 앨범 <Both Sides Now>에 수록된 'Both Sides Now'.

한국에는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러브 액츄얼리>의 사운드트랙으로 수록되면서 

다시 많이 알려졌다. *





* <It's Not Too Late> 기자회견에서의 김추자 *



김추자의 <It's Not Too Late>를 조니 미첼의 <Both Sides Now>에 비교하자니, 사실 이 앨범이 완전한 리메이크 앨범은 아니라서 공정할까 싶기도 하다. 이 앨범에서 리메이크곡은 다섯곡이기 때문이다. 네 곡은 신곡이다. 물론 이 신곡들도 대부분 과거에 받아 놓은 것이긴 하지만서도. 그래도 무작정 비견해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먼저 궁금해지는 것은 신곡이다. 첫 인상은 아무래도 세월의 흐름이 있다보니 김추자의 목소리가 굵어졌다는 것이다. 그녀도 한결같이 목소리가 유지되는 이미자나 조용필 같은 체질은 아닌가보다. 그러나 굵어진 보컬은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무엇보다도 만족스러운 점은 김추자의 공연을 직접 본 사람들의 말을 나도 느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흔히 김추자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열정, 광기 등 육감적인 감흥이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냉정히 말하자면,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없었다. 현 세대가 6~70년대 김추자의 실제 공연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료들은 지극히 한정되어져 있다. 자료 보존에 관해 무지해던 당시의 인식 때문이다. 


그나마 팬들이 열악한 화질로 녹화한, 80년대에 공백기를 깨고 잠시 노래를 부르러 나왔을 때의 모습정도만 볼 수 있다. 그 정도만으로도 김추자의 다이너마이트적인 매력을 느끼는 데는 부족함이 없지만 아무래도 아쉬운 것이다. 김추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가수로서 청각적인 면 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면에서도 같이 볼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사람이다. 

 

허나 당시의 앨범으로 들으면 김추자에게 사르르 녹는 교태가 있지만, 아무래도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잘 없었다. 그건 비단 김추자와 연주를 담당한 연주자들만의 문제라 볼 수는 없고, 어찌할 수 없는 시대적 한계에서 온 것일게다. 딥 퍼플의 'Highway Star' 도 발표 당시에는 가장 '빠른 곡' 이었다 하지 않는가.


클래식이 클래식이 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시대적 한계를 뚫고 시퍼렇게 날을 발하는 에너지에서 비롯된다. 김추자는 청각적인 면 만큼이나 시각적인 면에서의 평가도 강하게 요구되는 사람이었고, 후세의 사람들은 그녀의 진면목을 알 수 없었다. 마치 무용가인 이사도라 덩컨이, 후대의 사람들에게는 영상자료가 하나도 없어 춤을 어떻게 췄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분야의 신화로 추앙받듯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신중현이 만든 신곡인 1번 트랙 '몰라주고 말았어'는 김추자에 대한 영상자료적 괴리를 거의 대부분 메꿔주는 마력을 자랑한다. 어느 정도냐면, 음악만 들어도 춤을 추는 김추자의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질 정도다. 설사 그녀의 전성기를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물론 그 이전에 먼저 음악가로서의 신중현이 얼마나 앞서 있었는가를 체감하게 되어 감탄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2번 트랙인 '가버린 사람아'는 김추자의 1969년 데뷔 앨범인 <늦기 전에 /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에 수록됐던 곡이다. 또, 6번 트랙인 '고독한 마음'은 김추자가 당대의 인기 록 밴드였던 '검은 나비'와 콜라보를 한 앨범인 <김추자와 검은 나비> 의 수록곡이다. 그리고 '고독한 마음'은 후대에 들어와 사이키델릭 여제로 추앙받는 김정미가 불러 유명한 곡이기도 하다.

 

 


 

* 신중현의 '마른 잎'을 각자 자신의 앨범에 수록한 김추자와 장현. 

80년대에 이렇게 TV에 같이 나와 듀엣으로 노래 부른다. *

 

 

개인적으로 신중현에게 느낀 재미와 불만은, 똑같은 곡을 다른 가수들에게 여러번 부르게 했다는 점이다. 솔직히 한 가수가 신보를 낼 때마다 똑같은 곡을 여러번 부르게 한 건 좀 심했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신중현은 가요를 클래식처럼 바라본 것 같다. 동일한 클래식곡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개성을 만나 다르게 해석되듯, 일명 '신중현 사단'이라 불렸던 김추자, 김정미, 장현, 이정화, 박인수 등등의 쟁쟁한 보컬리스트들이 부른 버전들은 각기 새로운 해석이 됐다.

 

<It's Not Too Late> 에는 몇십년이 지나도 낡지 않은 신중현의 곡을 소화하기 위해 송홍섭, 한상원, 정원영 등 한국의 최고 연주자들이 동원됐다. 그 결과, 오히려 사반세기가 넘은 신중현 음악의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구축하는 솜씨는 그의 아들들과 맞먹거나 오히려 뛰어넘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이것은 신중현과, 혹은 앨범의 곡들을 작곡한 이봉조, 김희갑 같은 사람들과 비슷한 시기를 거쳐왔다면 거쳐왔다고 할 수 있기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송홍섭은 '사랑과 평화'의 베이시스트이며 한상원은 자신의 이름으로 만든 밴드를 이끌고 있지 않은가. 이들의 손길에 의해 탄생한 '몰라주고 말았어' 의 둔탁한 키보드 사운드, 원곡보다 메탈에 가까운 방식으로 탈바꿈한  '가버린 사람아'는 가히 감동적이다. 청자로 하여금 듣다가 전율을 일으키게 만들 정도다.

 

앨범에서 신중현과 이봉조의 손길이 닿지 않은 (참고로 '하늘을 바라보소'와 '그리고'는 전에 리뷰한 바 있었던 음악가 이봉조의 작곡집인 <무인도 / 하늘을 바라보소> 의 수록곡이다.) 두 곡 중 하나인 5번 트랙 '춘천의 하늘' 역시 또다른 놀라움을 맛보게 된다. 여기에는 피아니스트인 정원영의 솜씨가 주효했다. 그녀의 연주로 인해 나는 김추자가 재즈 풍의 음악을 부르는 모습을 처음 듣게 되었다. 

 

사실 이 말은 확실치 않다. 김추자가 발표한 앨범의 개수는 대충 잡아도 50개가 넘는다. 게다가 그 중에서도 복각이 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혹시 모른다. 그녀가 재즈 앨범도 냈을런지는. 그래서인지 <It's Not Too Late>도 정확히 김추자의 몇 번째 정규 앨범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딱히 구분은 했는지조차도 모르겠고.

 

 


 

* 김추자가 발표한 '수많은 앨범들 중 하나'. <어디로 가야하나>. 

앨범 커버 오른쪽 위에 남자의 성기처럼 보이는 그림이 있어 

천박하게로는 '김추자 자지 앨범' 이라고도 불린다.

김추자 앨범이 대개 비싸지만, 

이 앨범도 몇 년 전에 가장 비싸게 거래되던 앨범 중 하나였다고 한다. 

아마 지금도 그렇지 않을까.. * 

 

 

3.

 

사실 '노래를 부르기만 하는' 가수들을 싱어송라이터보다 낮게 바라보는 시선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 이런 시선으로 폄하하거나 한 적은 없으니, 차별한다기 보다는 그냥 얘는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런가보다 하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는데, 여튼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데 김추자를 논할 때는 이 관점이 다소 이상해진다. 세션 연주자들은 모르겠지만, 김추자의 경우에는 보컬 녹음을 과거의 아날로그 원 테이크 방식으로 진행했다. 


사실 당사자에게는 더 익숙한 방식일 수 있겠지만, 요즘 관점으로 볼 때 이 방식은 굉장히 불편하다. 한 곡 전체를 끊어서 녹음하여 좋은 부분만 골라내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다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딱히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작가적 의도로 했다기 보다는 당시 기술의 한계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다. 


김추자의 경우에는 예외다. 그녀는 자신의 음악적 세계를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느낌 그대로 나온다고 정의한 바 있다. 사이키델릭 음악을 체화하는 방식이나 소울 장르도 신중현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생래적으로 익혔다고 말을 할 정도니까! 자칫 투박할 수 있지만 이런 나름의 방식으로 김추자는 독보적인 아티스트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딱히 노래를 직접 만든 것도 아닌데 말이다.

 

<It's Not Too Late>의 발표기자회견에서 김추자는 자신의 노래 연습 과정을 '응접실에서 라디오 틀어놓고 춤추기' 로 설명했다. 솔직히 그 말 듣고 좀 웃었다. 요새 음악계가 기획사 차려놓고 하루의 대부분을 연습생들의 훈련에 집중하는데 그러고도 모자랄 판에.. 아무리 잔뼈 굵은 가수라도 그렇지, 강산이 세 번 넘게 바뀐 공백을 메우는 방법이 '고작' 라디오 틀어놓고 춤추는 건가 싶었으니 말이다.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김추자는 에둘러 자신이 끊임없이 음악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그런 식으로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앨범을 들으며 음악은 뭐니뭐니해도 창작을 최고로 우선 쳐 줘야 하지 않냐는 오래된 생각이 잠시동안 바뀌었다.

 

3번 트랙인 '태양의 빛'은  김추자가 신중현의 그림자를 아예 지워버린 경우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콘서트 개최와 정규 앨범 발매가 미뤄졌을 때 김추자는 문득, 이 곡 자체가 추모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태양의 빛'은 새롭게 편곡 과정을 거친다. 과거의 버전이 어땠는지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지만 여기서 김추자는 '절규'로 노래 부르는 '봄비'의 박인수마냥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1, 2번 트랙에서는 록커였고 3번 트랙에서는 짐승처럼 운다. 그러다 4번 트랙에서는 몽환적인 발라더가 되기도 한다. 무절제하고 통제가 되지 않는 느낌이라 33년 공백의 한을 한 번에 다 풀겠다는 패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춘천의 하늘' 부터 마지막 9번 트랙인 '그대는 나를' 에서는 김추자는 시침 뚝 떼고 자신을 절제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김추자는 주체 못하는 에너지를 안에 넣어두고, 능숙하게 보컬리스트로서의 자신을 억제한다. (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부족함이 있다면 그건 아마 라이브 무대에서 시각적으로 보여주겠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김추자에게 있어서 '얌전' 할 수 있는 음악들의 선곡은 오히려 내게 참 반가운 경우였다. 나는 최근에 <무인도 / 하늘을 바라보소> 앨범을 리뷰하면서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의 관점으로 바라봤는데, 그건 바로 신중현과 달리 이봉조 작곡가와 그녀의 합이 꼭 잘 맞지는 않다고 생각이 들어서였다. 리뷰를 남길 당시, 그 앨범에 있는 '무인도'와 '아침'은 굉장히 강렬한데, 다른 곡들이 두 곡을 못 따라간다는 식으로 써내려 갔었다. 


그런데 <It's Not Too Late>에서 김추자가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당시의 곡들 중 두 곡을 다시 부른다. 그게 7, 8번 트랙인 '하늘을 바라보소'와 '그리고' 다. '그리고'는 당시 들을 때도 독특한 허밍 때문에 그나마 괜찮게 들었는데, 원곡의 빈곤함을 탓하기 이전에 해당 곡이 밋밋하게 들렸다면 가수의 책임도 분명 있다. 두 곡은 김추자가 소화할 수 있는 곡의 스펙트럼의 한계를 증명하는 경우였다. 해당 곡을 만든 이봉조의 화려한 관악 사운드에 발 맞춰 가기에 당시의 그녀가 가진 목소리는 끈적하고 요사스러운 매력은 있되, 무게가 별로 없었다. 관악기에 달라붙을 접착력은 떨어졌달까.


사실 두 곡은 김추자의 커리어에서 딱히 유명한 곡이라 볼 수 없었다. 물론 그녀에게는 모든 곡이 다 소중하겠지. 하지만 처음 트랙 리스트에서 두 곡의 이름을 봤을 때 나는 임진모 음악평론가가 말한 의문과 감탄 섞인 '그만큼 공백기를 가졌으니 우리가 모두 아는 '님은 먼 곳에', '거짓말이야'의 김추자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이런 실험을 했다' 를 이해했다. 

 

김추자의 음악적 세계관은 그대로다. 그러나 그녀의 성대에 두터운 세월의 막이 쳐지면서 어딘가 밋밋했던 이봉조의 두 곡은 마침내 행복하게 가수와 다시 만났다(고 생각한다). 앨범의 후반부는 이렇듯, 곡 자체의 완성도보다도 청자의 관심을 오로지 김추자의 보컬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김추자는 노래를 짓지 않았지만, 온전히 그 노래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체화해 낸다. 김추자는 정말 조니 미첼도 울고 갈 아티스트 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순간이다. 아. 참고로 '그리고'는 이번 버전의 연주도 참 좋다. 오니시 유카리의 앨범인 <직격! 한류부인권> 도 생각나고 블루지하기도 하면서 펑키한 느낌도 난달까? 

 


 


 

"나는 늦었다, 나가려면 일찍 나갔어야 했다고 그랬더니 제 딸이 "엄마. 지금도 늦지 않았어." 하더니 둘이 같이 거울을 보면서 "엄마, 나랑 같이 늙어가잖아. 엄마 늙지 않았고 주름도 없어. 엄마. 노래해." 라고 하더군요."

 

 

자. 이제 끝내야 하나.. 이 앨범에 가지는 유일한 불만이 있다면 언제나 간만에 복귀한 가수들이 LP 시절 감성을 못 버려서 CD 러닝 타임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분량으로 앨범을 발매한다는 것 정도? 이렇게 생각하면 누구든 어쩔 수 없이 세월이라는게 내려앉게 마련이다. 김추자에게 <It's Not Too Late> 는 '첫 CD 앨범' 이다. 그런데 정작 앨범 전체 길이를 보면 CD 를 바이닐 레코드로 생각한 듯하다. 조용필도 그랬지만 항상 이 놈의 길이가 아쉽다. 그리고 커버 디자인 같다. 내게는 오히려 CD 라벨 디자인이 더 좋아보인다. 김추자 앨범들이 대체적으로 인물 사진 치고는 앨범 커버들이 독창적이고 재밌는게 많은데, 이번 앨범의 커버 디자인은 어째 좀 밋밋해 보인다.


끄적이고 보니 리뷰가 호평일색이다. 이건 정말 내가 감동 받아서 그렇다. 이 정도로 전율한 것도 간만이다. 바로 위에 언급한 이 사소한 불만을 제외하면 <It's Not Too Late>는 올 해를 넘어 앞으로도 회자될 앨범이라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그녀의 귀환이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녀에게 사과해야 한다. 혼자서 이렇게 미루고 또 미룰거면 차라리 돌아오지 말라고 생각했으니까. 김추자는 그런 싸늘한 시선을 비웃듯 시간의 간격을 완벽하게 좁히는 작품을 들고 왔다. 더불어 김추자는 여전히 도도하고 자신의 이름에 대한 자존심이 있어 보인다. 이런 자신감이 음악을 소비하는 주요 층의 취향을 완벽하게 흡수해서는 아니다. (나미 같은 경우에는 신곡 'Voyeur' 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모습이 여전히 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세월이 흘러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또 변해도, 김추자는 자신의 모습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앨범을 보니 그녀는 공백기를 너무나 잘 견뎌냈다.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열망, 앨범을 내고 싶다는 열망이 김추자를 지금까지 버틸 수 있게 했나보다. 

 

이 앨범은 실로 감동적이다. 마지막으로, 복귀하시기 전까지 팬으로서 잠시 나쁜 마음을 가져서 정말......


미안하다~! (고승덕 톤으로)

 

 

.....

 

 

​"예로부터 신비주의는 연예인의 미덕이죠. 그러느라고 다들 썩지 썩어. 

농담이고요, 그런 심리도 있죠. 하지만 제가 제 관리를 못해서 그러는 건 절대 아니에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제 관리를 하고 있거든요. 정말 제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지나온 세월을 생각해보면 저도 참 독한 사람이에요. 인터뷰도 영원히 안 하겠다는게 아니라 어떤 작품, 뭔가 건수를 갖고 나서겠다는 겁니다.

 

- 2007년 6월, <월간 신동아>와의 전화 인터뷰 중에서 "인터뷰를 거절하고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게 언젠가 다시 무대에 설 때를 위해 자신을 신비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요" 라는 최영철 기자의 질문에 대한 김추자의 답.

 

 .....


 

p.s.1 - 제가 산 것은 초판입니다. 초판 물량에 한해서 김추자 님이 저렇게 사인을 하셨죠.


p.s.2 - 김추자 님 콘서트가 이번 달 28일부터 29일까지 코엑스 D 홀에서 열립니다. 아흐.. 보고 싶네요.


p.s.3 - 본문에서 은퇴에 관해 '스스로에게 저주를 걸었다'는 표현을 썼는데, 정말 궁금하더군요. 이 분이 왜 그렇게 미련 없이 은퇴하셨는지. 기자회견 글을 읽다가 그 대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연예계 생활할 때 간첩이다 뭐다 그런 이야기 너무 많이 들어서 연예계 생활이 하기 싫더라고요. 1969년에 춘천 좁은 데 살다가 넓은 데 와서 히트라고 쳤는데, 간첩이다 CIA가 왔다갔다 그러는데 그때는 정말 노래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결혼생활이 제게는 참 행복한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다시 마음먹은 건 이젠 그런 것도 다 소화할 수 있으니까 더 늦기 전에, 목소리 더 망가지기 전에 들려주고 싶은 생각인 거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


p.s.4 - 이번 앨범 발표에 발맞춰 김추자 님의 앨범 두 개가 LP로 복각되어 발매되더군요. 그보다 의문인게 '이 앨범은 LP 발매 안 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막상 CD 사고 보니 언젠가 음반사 측에서 한 번은 LP로 우려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김추자 님이 보컬 레코딩은 아날로그로 하셨다고 하니까, LP 발매도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디지털 레코딩 한 것은 CD로 들어야지, LP로 들으면 별 의미가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 있어서요. 레코딩을 아날로그로 다시 하지 않는 한 말이죠. 가수의 동의가 있어야 겠지만 음반 작업하면서 누락된 곡들을 보너스 트랙 삼아 두 장짜리 LP로 나오거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몰라주고 말았어 *


작사 + 작곡 : 신중현


사라져 버릴까봐 떠나가 버릴까봐

그림자 같이 너를 내 곁에 두었어


꿈이 사라질까봐 모습 사라질까봐

싫다고 말을 해도 놓지를 않았어


넌 진정 나를 몰라주고 말았어

넌 진정 나를 몰라주고 말았어

말았어 말았어 말았어


모두 너를 좋아하고 너의 말을 할 때면

질투한 마음 나는 버리지 못했어


맴도는 너의 모습을 버리려 애를 써도

그림자같이 너는 떠나지 않았어


넌 진정 나를 몰라주고 말았어

넌 진정 나를 몰라주고 말았어

말았어 말았어 말았어

 

사라져 버릴까봐 떠나가 버릴까봐

그림자 같이 너를 내 곁에 두었어


꿈이 사라질까봐 모습 사라질까봐

싫다고 말을 해도 놓지를 않았어


넌 진정 나를 몰라주고 말았어

넌 진정 나를 몰라주고 말았어

말았어 말았어 말았어


몰라주고 말았어 너는 

너는 몰라주고 말았어

몰라주고 말았어 

 

말았어 말았어 말았어





* 그리고 *


작사 + 작곡 : 이봉조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리고 돌아서 갔네


생각하면 무엇하리 떠나 버렸네

사랑하고 사랑했네 너는 떠나갔어도

그날따라 바람이 불고 있었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리고 돌아서 갔네


생각하면 무엇하리 떠나 버렸네

사랑하고 사랑했네 너는 떠나갔어도

그날따라 가랑비 오고 있었네


그리고 눈을 감았네

그리고 혼자 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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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S

(On Side A)

1. 누구없소? 

2. 호호호

3. 비애

4. 달

5. 여인 #3

(On Side B)

6. 코뿔소

7. 갈증

8. 루씰

9. 바라본다

 

LP 개수 : 1

러닝 타임 : 40:16 Mins

레이블 : 동아기획, 서라벌 레코드 (LP) / 신나라 레코드 (CD)

 



 

그러니까.. 이 앨범의 제목은,

곧 이 서재의 근원

 

..... 



"신촌에 이상하게 노래 부르는 애가 있다던데, 그게 너구나?"

 


한영애는 몇몇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와 인연을 맺은 계기에 관해서 언급을 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많이 놀랐던 사실이 있는데, 바로 그녀는 의외로 노래에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한영애가 노래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친구가 주선해준 덕분이었다. 신촌의 음악감상실인 프린스 살롱에서 오디션을 보게 된 것이다. 



한영애는 친구의 말을 듣고 시큰둥했다. 난 노래에 딱히 관심도 없는데 내가 왜 해야하니? 어지간하면 해, 얘. 이건 정말 흔치 않은 기회야! 친구의 답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노래를 부르다 위의 말을 해 준 사람을 만난다. 포크, 블루스 음악 장르의 거장 중 한 사람인 이정선 말이다.

 


6~70년대 한국에서는 음악감상실이 가수 데뷔와 앨범 발표로 가는 확실한 통로 중 하나였고, 오디션을 받은지 단 30분만에, 한영애는 주급까지 꼬박꼬박 받아 챙기면서 프린스 살롱에서 노래하는 가수가 됐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잠재력을 알아봐준 이정선과 그룹 '해바라기' 로 활동하여  그의 도움 (이라 쓰고 '지시' 라 읽는다.) 으로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세 장의 앨범을 낸다.

 


정작 당사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온 앨범으로, 태평양에 갖다 버리거나 마스터 테이프에 불을 질러 없애 버리고 싶었던' 이라고 말했던 비공식 앨범들에 대해서 나는 아는게 없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음반이 나왔다는 사실은 둘째 치고, 원체 구하기도 힘들거니와 찾다 보니 팔겠다는 사람을 보긴 봤는데... 그 사람이 댓가로 내놓으라는 배춧잎의 개수가 좀 많았다. 발견했을 당시에는 그래도 좀 어렸으니 나이로 어필해서 네고시에이션에 들어가 보려 했으나... 정작 그 분이 막상 거래에 들어가자 '태어나는 것과 달리 가는 데는 순서 없다'는 태도로 급 변경하시어 결국 떠나 보내야만 했다.

 


 



* 내가 봤던 한영애의 비공식 앨범 중 하나. <작은 동산>. 1977년인가 1978년 발매 음반이란다. 뭐, 정확한 발매년도도 잘 모르겄다. *

 

 


신기하게도 그 뒤로는 한영애의 비공식 앨범들이 더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 놈의 중고값이 초장부터 질리게 만들었던 이유가 컸겠지만, 아마 결정적인 건 내가 묘한 목소리를 가진 그녀의 팬이었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싫어하는 앨범이라고 하니까.. '가수 당사자가 싫어한다니까, 뭐.' 하는 식으로 알아서 합리화가 되더라. 나는 순종적인 구석도 꽤 많은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까 아직도 듣지 못하고 있네. 

 


한영애의 정규 2집 앨범인 <바라본다>는 그 유명한 '누구없소'와 '코뿔소'가 수록되어 있고 1988년에 발표됐다. 이미 70년대부터 해바라기로 활동했으며 85년에는 그 유명한 '신촌블루스'의 객원 보컬리스트로 활동했지만, 그녀는 1986년에 발매한 자신의 앨범인 <여울목>을 '공식적인 1집' 으로 친단다. 물론 자신의 이름이 전면에 나서는 앨범을 내기까지 이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에는 1977년부터 7~8년간 꽤 오랫동안 연극배우로 활동한 이유도 있다. 

 


이런 일화들을 듣고 있으면 한영애란 아티스트는 자기 세계에 대한 명확한 고집이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내가 이 아티스트를 처음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들은 일화가 바로 위에 언급된 '친구의 주선으로 오디션에 응시' 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후에 좀 더 찾아보니 한영애는 예전부터 음악과 많은 연관이 있었으며 관련 활동도 해 온 터였다. 학창시절에는 합창 경연 대회를 할 때 마다 지휘자로 뽑혔고 국군장병 위문공연 때도 대표로 노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독학으로 기타도 익혔단다.

 


더불어 그녀는 이정선의 참여로 만든 세 장의 앨범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의 것이지, 내 것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실제로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해당 앨범을 만든 이유에는, 그녀의 표현대로 따르자면 이정선의 '지시'가 있었다. 헌데 한영애는 포크 장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연극이 취향에 맞게 되었고 이 곳으로 뛰어들어 오랜 시간 음악을 외면한다. 8년 뒤에 이정선의 권유와 설득으로 다시 음악하는 삶을 꿈꾸게 되고 나서야 한영애는 이런 꿈을 품는다. 난 음악을 앞만 보이게 부르지 않을거야.. 뒤와 옆까지 보이고 또 느낄 수 있는 음악을 할거야.. 

 


한영애는 자기고집 뿐만 아니라 수줍음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연극을 하며 '음악의 양감' 을 꿈꾸기 전까지,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과 음악을 함부로 연관시키듯 말하지 않았다. 본인이 본인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뇌한 뒤에야 비로소 움직인 셈이다. 

 




* 연극 오래 했던 역량을 발휘한 경우. 한영애의 공연 영상을 찾다보면, 그녀가 무대에서 의상이나 헤어 스타일을 상당히 변화무쌍하게 하고 나오는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시도가 사실 최초는 아니다. 가요 프로그램 보다 보면 '소방차' 마저도 승마복 입고 노래 부르다 간주 부분에서 갑자기 고을 원님 복장으로 갑자기 사극 분위기 내는 경우가 있으니까.

 

하지만 소방차의 그런 변신은 감상자로 하여금 꽤나 뜬금없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한영애의 경우에는 뜬금없다기 보다는 그런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의 변신이 '우리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맥락을 초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문에 그녀의 이런 무대 연출은 상당히 전위적이다.


(캡쳐 사진은 1996년 8월 3일에 방영된 KBS의 <빅쇼>의 한영애 편 중에서.) *

 

 

앞만 본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나 사물의 여러가지 면에서 딱 하나만을 바라본다는 얘기다. 사실 포크, 혹은 블루스 장르의 음악으로 당시에 잘 알려졌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영애의 음악은 어느 하나 명확하게 그 장르를 정통으로 알고 또 하고 있다는 생각을 받긴 힘들었다. 아마 그녀가 '정통'으로 어떤 음악 장르를 파고 들었다면 그것은 객원 보컬로 참가했던 <신촌블루스 1집> 일 것이다. 공식 정규 1집인 <여울목>은 실질적으로 보자면 '정서' 만을 담고 있을 뿐, 블루스 고유의 12음계 형식을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걸 포크라고 여기기에도 힘들고.. 

 


이런 점에서 한영애에게 장점이 될만한 상황이 있다면, 그것은 어느 장르이건 정통적으로 성취한 부분이 없기 때문에 반대로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음악 장르를 섭취한 상태라는 점이다. 단점은..어느 장르이건 '정통적으로 성취한 부분이 없다'는 점이었다. 충분히 음악의 앞, 뒤, 옆을 볼 수 있지만 그녀에겐 양감의 형태를 정할 수 있는 도자기가 없었다.

 


정규 2집인 <바라본다>는 그 음악적 도자기를 남의 손이 아니라 한영애 자신의 손을 통해 처음으로 빚어낸 경우다. 그녀의 파트너인 김수철의 '사랑과 평화'의 송홍섭의 가이드가 기본적으로 큰 역할을 했지만, 그녀 역시 앨범 수록곡의 작사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한영애와 두 사람은 서울 스튜디오에서 1988년 7월 7일부터 8월 10일까지 한 달 가량 집중력있게 녹음하여 이 명반을 완성해냈다.

 


앨범을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들으면 가장 처음 접하는 트랙은 윤명운이 작사와 작곡을 겸한 '누구없소?' 다. 블루스의 정서가 가득 담겨져 있지만 본인 말에 따르면 '트로트처럼 부르고도 싶었던'  이 곡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한영애가 록 장르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목소리가 치명적으로 고혹적이라서 였다.

 


트로트처럼 부르고 싶다고 말을 했다는 것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실제로 그 장르는 그리 끈적하게 불러서 좋을 게 없다. 흔히 트로트의 여제인 주현미나 이미자 같은 아티스트들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을 생각해보면 대개 목소리가 꾀꼬리처럼 간드러진 편이다. 그래서 좀 무례할 수 있지만, '누구없소?' 를 부를 때의 한영애는 어딘지 모르게 사연 많은 거리의 여인같다는 기분도 든다. 트로트 특유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이뤄질 수 없는 삶의 아픔을 마치 체로 걸러낸 듯하여 순수하게 감성적인 눈물샘을 자극한다면, '누구없소?' 는 그냥 그 자체로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피로감이다. 

 


사실 눈물이 나올 틈도 없다. 곡 속의 주인공은 외로움과 고단함에 저항해보려 몸부림치기 이전에 거기에 굴복하여 그냥 무조건 이 날 하루가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찌보면 어두운 곡이지만 사실 듣고 있으면 히트칠만 하다는 생각이 다분하게 드는 곡인 셈이다. 특히 언제나 귀 기울여 듣게 되는 부분은 맛깔나는 기타 리프인데 일본에서 태어나 조용필과의 인연으로 그의 백밴드인 '위대한 탄생'에 들어가 경력을 시작했던 박청귀의 리드 + 리듬 기타는 무심하게 물러나 있다가 간주 부분에서 스르륵 들어와 짧지만 강렬한 리프를 남기고 사라진다. 이런 형식은 지금도 다른 가수의 타이틀곡들에서 일반적으로 들을 수 없는 편이기도 하고. 여기서 방점은 무심하게 물러나 있다가 들어오고 다시 나간다는 점이다.

 


주된 리듬을 형성하며 심지어 앞으로 내세우는 기타 파트는, 의외로 베이스다. 흔히 우리는 베이스를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준다고 생각하지만, 이 곡에서 기억에 남는 서너마디의 리프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이 악기다. 참고로 이 베이스 솜씨는 앨범의 제작을 맡았던 송홍섭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소리와 더불어 밑에 소개하겠지만, 쟁쟁한 보컬리스트들의 목소리를 모두 하나의 매체로 담아낸 사람은 조하문 1집, 시나위 1집 등을 작업한 최병철 엔지니어다. 역시... 

 


이런 부분들 때문에 <바라본다>는 80년대 한국 음악 앨범이 이뤄낸 최대 성과물 중 하나로 꼽힌다. 3년 전에 나왔던 한국 록의 명반 중 명반이라 불리는 <들국화 1집>과 이 앨범을 비교해봐도 그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인데, 사실 잘 모른다 해도 '누구없소?' 만 들으면 바로 수긍을 하게 된다. 이후 90년대에 들어 아티스트들이 앞다투어 음향 엔지니어링과 마스터링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한국 음악계의 음향 수준이 다소 상향 평준화 되기에 이 앨범의 기술력은 다소 흔한 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영애의 앨범에서 이 정도의 라인업을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기억에 남는다.

 


8번 트랙인 '루씰'은 '누구없소?' 와는 달리 온전한 한영애의 보컬을 들을 수 있는 곡이다. 유명한 일화 하나가 있다. 신촌블루스의 멤버인 엄인호는 이 곡을 작곡한 뒤 한영애에게 넌지시 말했다고 한다. "사실 나, B.B. 킹 생각하면서 이 노래 쓴 거야." 라고. 곡을 들어본 적은 없어도 B.B.킹이란 이름이 블루스 음악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라는 사실은 마치 기본 상식처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엄인호에게 그 말을 들은 한영애는 잠시 생각하다 거의 10여분 만에 스르륵 작사를 완료한다. 

 




* B.B.킹. 본명은 라일리 F. 킹 (Riley F. King) *

 

 


'루씰'은 정확히 얘기하자면 B.B.킹이 자신이 연주할 때 쓰는 깁슨 기타에 붙인 이름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람 이름이기도 하고. B.B.킹이 연주를 하고 있던 한 바에서 어떤 남자 둘이 한 웨이트리스를 가지려 싸우고 있었단다. 그 때 그들의 행패로 인해 바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이들과 불을 피해 밖으로 나오던 B.B.킹은 그만 깜빡하고 자신의 깁슨 기타를 놔두고 온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다시 불 속으로 뛰어들어가 결국 기타를 구해서 나온다. 그리고 싸우던 두 남자는 결국 불에 휩싸여 죽는다. 사건이 다 정리된 이후에 B.B.킹은 이후 그들이 차지하려던 웨이트리스의 이름이 루씰이란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기타에 그 이름을 붙인다. 

 


노래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한영애의 끈적한 보컬은 마치 60년대 말에 한국에 '음악계의 다이나마이트' 라는 별명을 가진 김추자가 처음 등장했을 때 받았던 느낌, 혹은 세간의 유명한 평가 중 하나인 재니스 조플린이나 멜라니 사프카의 보컬 같다는 인상도 준다. 말 그대로 '첫인상' 말이다. 한영애가 가진 끈적함과 건조함은 그 세 아티스트들을 넘나든다. 고혹적이지만 거기엔 삶의 무게가 담겨 있고, 혹은 재니스 조플린처럼 절규하기엔 보컬의 기교가 먼저 떠오른다.

 


두 곡을 처음 들으면서 왜 한영애가 '미녀' 대신 소리의 '마녀' 라는 별명을 갖게 됐는지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앨범을 제대로 들은 것은 머리가 조금 굵어지고 난 일이다. 참 이상하지.. 이상은이나 신중현의 음악을 처음 들은 건 일곱살 때라고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데, 한영애의 이 <바라본다>를 처음 들은 건 정확한 나이대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머리가 약간이나마 굵어지고 나서는 맞는데 마치 최면에 걸렸다거나 꿈을 꾼 듯 진행 과정은 기억하나 시작과 끝은 몽롱하다고 해야할까..

 


그러나 확실히 최근 들어 이런 식으로 느낀 부분은 있다. 한영애라는 아티스트가 가진 독창적 보컬의 근원은 무엇인가를 '갈구'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점. 그녀는 포크 장르에 어울리지 않았고, 또 완벽히 블루스 장르를 소화한다고 볼 수도 없었다.

 


그녀는 재니스 조플린처럼 술과 약물로 자신의 몸을 망쳐 (당사자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살지 않았고, 요절하지도 못했으며 절규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멜라니 사프카 만큼의 잔잔한 서정을 담아내지도 못했다. 이런 점에서 이 앨범에 유일하게 불만이 있는 곡이라면 2번 트랙인 '호호호' 다. 들을 때마다 좋다고는 느끼는 곡인데, 앨범 전체로 따지면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여튼 예전엔 한영애의 힘이 로컬 음악 신에서 그 두 가수의 감흥을 '처음부터' 전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적어도 <바라본다> 에서는 그녀가 두 가수의 위상을 따라잡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누나. 이 곡 히트 시켜줘.

누나가 이 곡 히트 못 시키면 내가 나중에 다시 부를거야."

 


멜라니 사프카 이야기를 했는데, 앨범을 들으며 그녀의 느낌을 상상했던 건 3번 트랙인 '비애'와 5번 트랙인 '여인 #3' 에서였다. 이 중 3번 트랙인 '비애'는 유재하가 준 곡으로도 유명하다. 자신의 1집 앨범인 <사랑하기 때문에>를 준비하는 와중에도 한영애의 2집 앨범을 위해 직접 곡을 쓴 그는 그녀에게 전해주면서 위의 말을 했다. (유재하는 한영애의 절친한 동생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앨범을 만든다. 그 누구보다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싶어해서 그리 되려고 노력했던 유재하는 처음으로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라이브 무대를 선보인 뒤, 결국 <바라본다>가 발표되는 광경을 보지 못하고 뭐가 그리 급했는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참 희한하다. 예술은 때로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잖아? 헌데 이미 하늘 위로 날아가 버린 사람을 다시 땅 위에 되돌려 놓지 못한다. 세상이 바뀌는 것에 비하면 한 사람은 너무나 사소하고 작은 것일지 모르는데 말이다. '비애' 는 참으로 유재하스러운 발라드 곡이지만, 그 속에는 상상도 못할 비통함이 있다. 곡은 구했지만, 그 곡을 쓴 사람을 구하지 못한 누군가의 자책감이 목소리가 되어 스피커를 찢고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루씰'의 가사를 인용하자면 '나도 너 처럼 소리를 갖고 싶어'. 전설적인 블루스 기타리스트의 소유물이 되면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을까? 

 


하지만 그건 결국 불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혹은 '누구없소?' 처럼 이 고단한 하루를 어떻게든 떠나보내고 꼭 아침을 맞았으면 하며 그 시간대를 갈구하는 것처럼. 자신의 현 상황에서 이루거나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픈 열망은 점액처럼 녹아내려 불안에 떨고 있는 영혼을 잠식한다. 아하. 파스빈더 감독님이 제목을 원체 잘 지으시니까 내가 또 어떻게든 훔쳐서 묻어가는구먼. 이루지 못한 지독한 갈망은 감상자로 하여금 귀를 뗄 수 없게 만들며 숨을 죽인 채 듣게 만든다. <바라본다>의 음악적 매혹과 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성취를 향한 갈망으로부터다.

 


그리고 이 압도감을 일순간에 해방시키는 지점은 바로 한영애가 부르는 록 장르의 곡들에서다. 4번 트랙인 '달', 6번 트랙인 '코뿔소', 마지막 9번 트랙인 '바라본다' 가 그것이다. '달'도 좋긴 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파괴력과 강렬함을 지닌 채 앨범의 핵심적인 이미지를 감상자에게 주입 시키는 곡은 바로 이 두 곡이다. 한영애는 이 앨범을 통해 자신의 인지도를 한껏 끌어올렸으며, 냉정히 보자면 제작 당시에는 그녀보다 음악계에서 더 큰 상업적 성취를 거두고 있던 아티스트들이 세션으로 총출동하여 도운 부분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인물들을 비롯하여 김현식, 전인권, 박주연, 김효국, 김희연, 그리고 당시 참여해놓고도 앨범 참여 리스트에는 빠져 있었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까지.. 굳이 한영애가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불구, 혹은 같은 소속사에서 활동하는 가수들도 많았지만 어쨌든 이들은 모두 자청하여 한걸음에 달려와 그녀의 앨범 제작을 도왔다.

 


여기서 한영애가 내릴 수 있는 선택은 자신의 그 독특한 보컬과 폭발적인 성량으로 그저 코뿔소처럼 앞으로 꾸준히 돌진하는 것 뿐이다. 사실 아무리 80년대가 음악의 전성기였다 할지라도 '코뿔소' 처럼 어떤 정치적 의식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은 채 순수하게 팍팍하고 고단한 현실의 삶을 은유적으로 말하는 곡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는 경우는 잘 없었다. 

 


그 때문인지 각기 다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라 해도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 험한 세상 / 오늘도 달려야 해 / 우리는 코뿔소 / 자신의 모든 문제 스스로 헤쳐서 / 밀고 가야 해' 라 부르는 이 곡은 결국 '닥쳐 닥쳐 닥쳐 닥치고 가만있어 / 우리는 달려야해 거짓에 싸워야해 / 말 달리자' 라 부르는 80년대 버전의 '말 달리자' 나 다름없다. 크라잉넛 노래 말이다. 한영애가 이 앨범에서 불렀던 곡들은 록이지만 알게 모르게 펑크의 정서도 스며든 느낌을 준다.

 



 

* '바라본다' 의 코러스 녹음에 세션 자격으로 참여한 아티스트들.

맨 좌측부터 정윤정, 전인권, 박주연, 김련, 윤명운, 홍찬숙, 조정은, 김현식.

이들의 사진은 <바라본다> LP 속지에 수록되어 있다. 

신나라 레코드에서 발매된 CD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

 

 

그리고 압권은 김수철이 작곡하고 한영애가 작사한 '바라본다' 다. 5분 10초의 길이를 가진 이 곡은 작정하고 앨범의 핵심이 되겠다는 듯 만들어졌다. 위에서 언급한 세션 보컬리스트들은 다들 기본적으로 가요계에서 잔뼈 굵은 사람들이다 보니 코러스 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목소리를 들으려 혈안이 돼 있었다던데, 자신의 목소리를 한계까지 끌어올리듯 샤우팅으로 일관하는 상태로 3~4번을 반복 녹음한 탓에 이들은 모두 작업이 끝난 후에 탈진해 버렸다고 한다. 김수철의 경우에는 자신이 부르는 노래보다 더 한 프로그레시브적인 록 멜로디를 한영애에게 줬고, 박청귀의 기타는 약이라도 빤 듯 쉴새없이 절정의 단계로 날아오른다.

 


생각해보면 이 곡은 일부러 최대한도로 힘을 준 것이 청자들에게 오히려 더 쉽게 다가오는 계기가 됐을런지도 모른다. 한영애가 쓴 가사가 막상 볼 때 다소 난해하기 때문이다. 곡 제목 자체도 '바라본다' 이면 흔히 '무엇을' 보는지 궁금해하기 마련인데 그것이 없다. 그리고 가사의 상당수는 '숨가쁜 계절의 문턱으로 이미 지나버린 / 저 들판 한가운데 산처럼 우뚝 섰던 마음의 연민들', 혹은 '춤추는 욕망 모두 내 속에서 잠재우고 / 빈 가슴 빈 손으로 저 문을 나설지니' 같은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느낌을 준다. 어떤 청자에게는 이 노래가 해당 아티스트의 심상을 생각하게 만드는 재미를 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끝내 대부분의 마음을 사로 잡는 것에는 결국 생각하는 것도, 아는 것도 모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접점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접점은 분명 '사랑하리라' 일 것이다. 뒤이어 나오는 '그 뜨겁던 눈물의 의미를', '그 외롭던 생명의 향기를' 일 것이다. 생각이 필요없이 이 가사들은 모두 직관적으로 훅 다가와 청자의 귀를 뚫고 들어가고, 몸을 구석구석 훑은 뒤에 심장을 강타한다.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의 정확한 나이 때는 이상하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받았던 충격은 정확히 기억한다. 너무나 충격적인 곡이었고, 앨범을 순서대로 듣다 보면 이 곡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대단하다. 혹은 체념일 수도 있겠다. '아. 결국 사랑인가' 싶어서.. 사실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의 어감이 전해주는 감흥이 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곡을 들으면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내 생각보다 훨씬 다층적이고 거대한 범위를 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게 있었다.

 


흔히 스스로 주제, 혹은 자신의 위치를 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 분수와 주제라는 것은 대개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를 반영한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삶의 가혹함에 좌절하고 굴복한 것을 깨달음으로 착각한다는 얘기다. 계급의식인지 모를 그 무엇이 깨달음이라 자청하고 끼어들 때  우린 스스로 굉장한 비참함을 느낀다. 이를 보며 한영애는 우리가 어떤 형태이든 상관없고, 때로는 거대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과감히 바라보고 또 사랑해도 상관 없다고 소리친다. 

 


말하자면 무엇을 바라보든 혹은 무엇을 사랑하든, 그 앞에서 우린 '주제'를 알고 초라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바라본다'는 말 그대로 바라봄만을 이야기하는 곡이지만 신기하게도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고 사랑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며 사랑하면, 우린 점점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만큼 커진다고 노래한다. 커지려면 갈구해야 한다. 사랑은 갈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곡은 멋있다. 심지어 이 곡은 마무리 부분에 있어서 한영애의 보컬이 원래의 멜로디를 소화하지 못하고 흐트러 진다는 것을 그대로 담아놨다. 하지만 노래 부르기에 실패했다거나, 어지간히 노래 못한다며 비웃지 못하게 된다. 그 흐트러진 보컬을 담은 마무리에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치의 목소리를 쏟아부으며 뜨겁던 눈물, 혹은 생명의 향기를.. 우리가 때로는 경멸하며 살아가는 생명의 향기 (나도 그렇지만, 가끔 주위 사람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게 보일 때가 있거든요.) 를 사랑하라며 예찬하는 가수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 하는 일이 너무나 하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지간히 유토피아 같은 생활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야 모른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쳐도, 아마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으로 바꿀 수 있는게 무엇인가.. 한영애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알 수 없다. 유재하를 제외하고, 그녀는 앨범에 참여한 사람 중 김현식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들국화는 한 번 해체됐으며 전인권은 마약에 허우적댔다.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우리 앞에 닥쳐오는 위기나 느껴지는 삶의 회의가 우리의 능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삶이 오직 위기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님을 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오직 긴 시간을 두고 우리의 삶을 바라봐야만 얻을 수 있다. 바라보는 것은 갈구하는 것이다. 먼저 떠나간 무언가를 상상할 때 그게 사람이든, 되고 싶었던 꿈이든 상관없다. 떠나간 것을 다시 잡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에 우리는 살아야 한다. 삶과 죽음이란 모르기에 언젠가 떠나간 것들과 다시 마주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다시 마주했을 때 나 이렇게 살았다고 이야기 하기 위해, 우리는 꾸준히 바라보며 갈구해야 한다. 떠나간 너를 그리워하며, 이루지 못한 나의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목이 타 왔기에 그것을 채우기 위하여 이렇게 바라봤다고 말해야 한다. 그렇게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고 한영애의 노래는 이야기한다.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 곡과 이 앨범을 듣고 그리 느꼈던 것이 있어, 최대한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한영애는 여전히 살아있고 노래를 부르고 앨범을 낸다. ...6집 이후로 11년째 앨범이 나오고 있지 않지만서도. 그래도 <바라본다>가 명반이라는 사실을 퇴색시키지는 못한다. 더불어 '바라본다'는 명곡이다. 동시에 나를 살게 하는 참으로 사소하고도 큰 존재 중 하나다.

 

 

.....

 

'이 앨범을 위해서 곡을 마련해 주신 여러분들, 소리를 만들어주신 송홍섭 씨,

처음부터 끝까지 에너지를 주신 김수철 씨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재하에게 이 노래를 바칩니다.'

 

- 2집 앨범 <바라본다> 커버 뒷면에 적힌 한영애의 말


.....



* 바라본다 *

작사: 한영애 + 작곡: 김수철



 

바라본다

화려한 하루를 남기고 이미 불타버린

저 하늘 구탱이에 녹처럼 매달렸던 마음의 구속들

 

바라본다

숨가쁜 계절의 문턱으로 이미 지나버린

저 들판 한가운데 산처럼 우뚝 섰던 마음의 연민들

 

바라본다

춤추는 욕망 모두 내 속에서 잠재우고

빈 가슴 빈 손으로 저 문을 나설지니

아.. 그렇게 자유가 된다면


사랑하리라

사랑하리라

 

춤추는 욕망 모두 내 속에서 잠재우고

빈 가슴 빈 손으로 저 문을 나설지니

아 그렇게 자유가 된다면


사랑하리라

사랑하리라

사랑하리라 그 뜨겁던 눈물의 의미를

사랑하리라 그 외롭던 생명의 향기를

사랑하리라 그 뜨겁던 눈물의 의미를

사랑하리라 그 외롭던 생명의 향기를

사랑하리라 눈물의 의미를

사랑하리라 생명의 향기를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하리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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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S


1. Intro - Prologue

2. Lonely

3. 사랑 그땐 (Featuring by 하림)

4. Amazing

5. Baby

6. Oh My God

7. 벅차  

8. 예뻐 

9. Who Am I 

10. 음악에 취해 

11. 길 

12. Seoul 

 

CD 개수 : 1

러닝 타임 : 41:31 Mins

레이블 : 포니 캐년 코리아, WM 엔터테인먼트  

 

 

..... 



조금은 어둡게. 그러나 어색하지 않게

 


아이돌 음반을 들을 때 언제나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앨범 자체의 구성이 무척 불균질 하다는 점이다. 강렬하기만한 댄스와 팝, 의무적으로 만들어 삽입하는 느낌의 발라드 몇 곡. 마지막 트랙은 자신들이 콘서트를 할 때 앙코르 곡으로 쓸 요량으로 만든다고 규정한다면 너무 편견을 가지는 것일까. '기획사가 만든 상품' 이라는 이미지가 앨범에도 이미지의 '틀'을 만들어 버리고, 결과적으로 가수들을 음악보다 의상에서 참신함을 쏟아붓게끔 만드는 엉뚱한 상황을 연출하게 만든다. 그리고 설사 잘 만들어진 곡이 있다고 한들 싱글에서 앨범의 일부가 될 때 유독 튀거나 힘을 잃는 식으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부분은 아이돌이 아닌 가수들에게서도 충분히 드러날 수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이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해도 사실 너무 조심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트렌드 따라 갈대처럼 흔들린다고 한들, 적어도 앨범 하나는 일관성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아무리 다른 분위기의 곡이라고 한들, '한 앨범에 있다'는 통일성은 줘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B1A4의 정규 2집 앨범이 돋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비교적 일관된 앨범의 톤이다. 그들의 지난 EP 앨범인 <이게 무슨 일이야> 에서 드러난 장점이기도 하고, 그보다 먼저 발매됐던 EP인 <In The Wind>와 정규 1집인 <Ignition>이 가지지 못했던 점이기도 하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점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봤을 때 개별 곡으로는 후자의 앨범들이 좀 더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뭐 할래요', 'Super Sonic' 같은 곡들이 여러모로 듣기 좋았다.) 하지만 개성이 조금 뒤지더라도 한 장의 CD를 끝까지 자연스럽게 듣게 만드는 것은 전자 쪽이었다. 그리고 난 그런 걸 더 좋아한다. 

 


알고 보면 <이게 무슨 일이야> 때부터 B1A4는 전체적으로 어둠이 드리워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이게 무슨 일이야> 앨범 리뷰)  물론 그 조짐은 <In The Wind> 부터 보이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게 무슨 일이야>의 다섯곡은 모두 어둡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이 다채로웠을 뿐이다. 슬프거나 우울한 이야기인데 그걸 마냥 발라드 대신 댄스 음악으로 풀어낸다거나 하는 부분들 말이다.



정규 2집인 <Who Am I>는 소재와 방법 모두가 전보다 더 가라앉아 있다. 심지어 한 곡을 제외하고는 앨범에서 밝은 곡 마저도 일반적인 아이돌 음악처럼 빠른 템포를 갖고 있지 않으며, 언제부터인가 다들 유행처럼 계~속 쓰고 있는 덥스텝, 혹은 수액 찾는 걸걸한 외침마저도 들을 수 없다. 굳이 대세를 따라야 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좋다. 

 


사실 <Who Am I> 에서 제일 좋지 않은 부분은 내가 보기에 다름 아닌 현재 그들이 타이틀곡으로 밀고 있는 곡들이다. 9번 트랙인 'Who Am I' 라든가, 11번 트랙, '길' 같은 곡이 그렇다. 전자는 B1A4 멤버인 정진영, 차선우와 작사, 작곡가인 좋은놈 (활동하는 이름이 이렇다.) 이 만든 곡이며, 후자는 <이게 무슨 일이야>의 3번 트랙인 'Yesterday' 를 만든 이기, 용배의 곡이다. 사실 좋지 않게 보는 부분들은 어떻게 보자면 별 것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창의적인 (...요새는 '창조'라는 표현을 어떤 분이 독점하듯 쓰고 계시는데,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표현을 사용하자니 어째 모욕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못 쓰겠다.)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서 다른 무언가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편인데, 두 곡은 자꾸 다른 가수와 비교를 하게 된다는 점에서다.  

 


'Who Am I' 는 막상 들으면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앨범 전체를 봤을 때 다소 겉돈다는 인상을 준다. 위에서 언급했던 '콘서트 때 앙코르 곡으로 쓰려고 만든 곡' 같다는 느낌을 준달까? '길'은 예전의 GOD가 불렀던 '촛불 하나' 같은 곡을 연상케 한다. 끝없이 애잔한 향수와 긍정적인 가사, 멜로디는 듣기 좋지만 이런 곡은 아이돌이 가진 외적인 이미지를 철저하게 요구하고 또 이용하는 곡이기도 하다. 아이돌은 곧 10대들의 우상이자 성인이 된 사람들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한 없이 투명에 가까운 맑은 이미지를 보는 느낌을 주니 이 어찌 유익하지 않겠냐만은, 이미 아이돌 포화상태라고 불리는 현실에서 '길' 같은 곡을 소화할 수 있는 아이돌 그룹은 차고 넘치는 것 같다. '길' 에게 이런 잣대를 들이댄다면 'Who Am I' 를 두고 아이돌이 콘서트를 고려한 곡도 못 만드냐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B1A4는 자신들의 보컬이나 보여지는 이미지 만큼, 하나의 곡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악기들의 멜로디를 청자에게 많이 각인시키는 드문 아이돌 그룹이다. 그리고 이번 앨범에서 주가 되는 것은 'Who Am I'의 록킹한 기타 리프가 아니라 소울과 디스코 시대를 거치는 듯한 리듬 기타의 리프다. 그렇게 볼 때 'Who Am I'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뭐, 모든 곡들이 다 좋길 바라는 것도 욕심이고 나 말고 다른 팬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 더불어 '길' 을 부르면서 B1A4는 SM 엔터테인먼트의 엑소를 연상케 하는 교복 의상을 입고 노래를 부른다. 엑소가 교복 패션을 고수하는 것은 코카콜라가 산타 클로스와 북극곰을 자기네 회사 마스코트로 삼은 것처럼 영악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이건 뭐 딱히 저작권자가 있다고도 볼 수 없고, 먼저 입고 나와서 인상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면 그만이거든. 근데 얘들은 '으르렁' 뮤직 비디오로 이미 뭔가 터뜨려 버렸어.  

 

사실 'Lonely' 부를 때 입고 나온 그 회색 의상이 적절해 보이는데 왜 굳이 '길' 을 부르면서 교복에 가까운 의상을 입고 나오는지 좀 의문이다. 이미 그거 입고 하는 보이 밴드가 있는 마당에.. 일종의 레퍼런스를 참조함으로서 이미지를 심어주는 방식일 수 있는데, 사실 신동우가 본격적으로 안경을 쓰지 않고 활동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B1A4는 자신들의 특색을 충분히 드러냈다고 봐서 말이다. * 

 

 

아쉬움을 우선적으로 이야기 했는데, 위에서 언급한 그런 요인들을 제외한다면 이번 앨범은 정규 1집보다 충분히 좋다. 그리고 EP 앨범에서 보여줬던 일관된 정서와 응축력을 12곡이 있는 정규 앨범으로 잘 가지고 왔다. 앨범의 다른 곡들에서 일단 특기해 둘만한 부분은 멤버들의 솔로로 채운 트랙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고, 점점 음악에 직접 손을 대는 멤버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지점에 신경쓰는 앨범을 좋아한다. 아이돌도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자기 입을 옷은 스스로 만들거나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근데 이걸 하려면 멤버 별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아야 결심이 선다. 이제 때가 된 셈이다.  

 


참고로 이전 앨범들에서 작사나 작곡 쪽에 주로 눈에 띄는 멤버는 차선우와 (당연히) 언제나 스스로 곡을 만드는 정진영이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신동우도 작사와 작곡에 뛰어들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좋다. 10번 트랙인 '음악에 취해' 는 신동우의 솔로곡인데, 더불어 마이클 잭슨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고도 한다. 작사로 따지면 8번 트랙인 '예뻐'를 포함해야 하겠지만 멜로디를 만드는 작곡으로 따졌을 때 신동우가 만든 곡은 공동작곡한 10번 트랙과 12번 트랙인 'Seoul' 이다. 



비교적 복잡한 음악적 구성을 띄고 있는 정진영과 다르게 철저하게 박자감 넘치는 곡을 만드는데 모든 걸 쏟아 부었다는 인상을 주는데, 그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 <Who Am I> 라는 앨범에 어떤 시대적 감흥마저 안겨주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며 펑키한 디스코, 혹은 소울 음악에 대한 나름대로의 일가견이 분명 있다. 그가 보여줄 다른 작업물도 기대된다. 7번 트랙인 '벅차'의 경우에는 일종의 팬 서비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참신하진 않지만 딱히 모난 것 없이 안전하다.  

 


사실 들으면서 놀라게 되는 건 B1A4의 막내인 공찬식이 제대로 자신의 보컬 실력을 들려줄 수 있는 기회가 잘 없었다는 것이다. ...이건 개인적으로도 들으면서 문득으로라도 의문을 갖지 못했던 부분이라 많이 놀랐다. 그러고 보면 얘들도 이제 데뷔한지 3년이 다 돼 가는데. 그 때문인지 '벅차' 에서 메인 보컬인 이정환과 같이 노래를 부른다. 



정환 역시 1집인 <Ignition>에서 솔로로 불렀던 '짝사랑'을 제외하면 솔로 무대는 콘서트를 제외하고 주로 KBS의 <불후의 명곡>에서 한풀이 하고 있었다. '벅차'는 듣기 좋게 현악을 이용한 발라드 곡으로 무엇보다 두 멤버의 역량을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청자로 하여금 본격적으로 공찬식의 보컬 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내가 들을 때는 별 문제 없어 보인다. 보컬의 개성이 아직 두드러지지는 못하다는 느낌이 든 것이 아쉬운 점이랄까.  

 


아쉬운 곡이 두어개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Who Am I>는 모범적인 아이돌 앨범이다. 개인적으로 취향에 맞는 아이돌 앨범이 보이 밴드에게서만 유독 많이 나오는 듯하여 걸 그룹은 어떡하나 싶을 정도인데, B1A4의 이 앨범이 지난 번 EP 앨범인 <이게 무슨 일이야>와 더불어 중히 여겨져야 하는 이유는 외부의 기획자들이 아닌 아이돌 멤버가 스스로 자신들의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에서다. 



육체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퍼포머에 머무르지 않고, 이 종이돌은 점점 '음악적으로' 장인의 행보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패션이나 무대 구성에 신경 쓰는 것도 좋지만, 정작 음악적 퀄리티를 등한시 한다면 포화 상태라고 불리는 아이돌 판도에서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남는 건 형형색색의 의상과 헤어스타일도, 외모도 아닌 결국 곡 자체다. 양희은의 말 마따나 노래에겐 각각의 운명이 있다. B1A4의 노래들은 현재까지는 비교적 다른 아이돌들의 곡보다는 오래 갈 것 같다.


아. 마지막으로 한 곡만 더 이야기 해야겠다. 현재까지 '길'과 더불어 방송용으로 활동할 때 부르는 타이틀곡인 'Lonely' 가 그것이다. 이걸 언급 못 했네. 여튼, 들으면서 좀 많이 놀랐다. 곡 자체는 사실 내가 현재도 잘 적응하지 못하는 R&B 스타일의 곡이다. 그리고 1번 트랙이자 경음악인 'Intro - Prologue' 는 3번 트랙에서 피처링한 하림의 하모니카 덕을 톡톡히 보려 하는구나 싶었다. 상황을 주도하는 것이 전체적인 멜로디가 아니라 하림의 연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그 거부감을 억누르고 끝까지 듣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정진영이 쓴 한숨과도 같은 절묘한 가사에서였다. '함께 밥을 먹으려 해도 네가 없구나 / 같이 영활 보려고 해도 네가 없구나 / 우린 아무것도 없구나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란 부분.  

 


함께 밥 먹고 영화 본다는 것은 남녀상열지사의 기본이 된 것도 모자라 아주 관성으로 거듭났다. 그래서 이젠 정말 지겹지 않나 할 수준인지라 곡 가사에서까지 들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앞의 두 대목이 '우린 아무것도 없구나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로 완결될 때 거기엔 우리가 실제의 세상에서 알고 있지만 외면해 왔던 텅 빈 구덩이 같은 게 있었음을, 혹은 반으로 나눠져 버린 큰 다리 (bridge) 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 걸 굳이 드러내는 것은 어쩌면 아이돌에겐 금기가 아닐까. 잘못 드러내도 어설픈 치기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위의 가사를 쓰는 것만으로도 B1A4는 자신들의 보이는 대로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챈 듯 보인다. 이게 우연의 결과로 튀어나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헌데 일단은 솜털 보송보송한 귀여운 주먹으로 살짝 건드린 것이 날카로운 얼음파편이 되어 심장에 박힌 것마냥 꽤 찌릿하다. 이런 가사쓰기를 아이돌의 음악에서 들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말이지. 

 

 

p.s.1 - 음.. 이 앨범 리뷰를 요약하자면.. 앞으로 '길' 부를 때는 교복 말고 다른 옷을 입고 나왔으면 좋겠다..정도? 뭐, 버..버버리 코트 같은 거? 하아. 근데 또 말 해 놓고 보니 교복을 대체할 것에 대해 생각해보니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 게 현실이기도 하네요. 

 

p.s.2 - 앞으로는 앨범 리뷰 본문에 저렇게 소제목을 붙이기로 했습니다.사실 본문에 저렇게 소제목 붙이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좀 꺼림칙해서 하지 않고 있었어요. 뭐랄까요.. 제가 싫어하는 20자평 같은 것을 생각나게 만들어서요. 근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저 제목은 제목일 뿐, 평은 아니고, 뭐라도 갖다 붙여야 사람들이 들어오겠거니 싶어서 저리 해두기로 했습니다. 만화와 영화 리뷰에도 이제 저런 소제목을 붙일 듯 합니다. 뭔가 스스로 피곤해 지는 길에 알아서 들어간다는 느낌이네요.



Lonely 


작곡: 정진영 + 작사: 정진영, 차선우 + 편곡: 정진영, Perfume 


네가 사준 넥타이에 화이트셔츠 

조금 작은 한 동안 안 입던 팬츠

혼자 입고서 난 랄랄라 

혼자 좋아서 난 랄랄라 

 

다시 꺼낸 많이 낡은 스티커 사진 

예전 너와 내가 행복해 웃는 사진 

혼자 보고서 난 랄랄라

혼자 좋아서 난 랄랄라


아직 난 왜 여전히 왜 여기서 왜 이러는지

 

 

내가 다시 전화할게 자기야 no 

내가 잘할게 더 나 때문에 울지 않도록 

나 너무 그리워 

네 눈, 네 코, 네 입술 

 

함께 밥을 먹으려 해도 네가 없구나 

같이 영활 보려고 해도 네가 없구나

우린 아무것도 없구나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every day every say 

너와 함께 거리를 걷는다 걷는다 

다시 함께 걷는다면 

우리 함께 걷는다면(좋겠다) 

 

네가 내게 항상 들려줬던 노래 

이젠 내가 네게 들려주는 노래

혼자 듣고서 난 랄랄라 

혼자 좋아서 난 랄랄라 

 

네가 없는 거리를 걸어보고 네가 없는 차를 타고 

달아나고 달아나도 결국 네게 눈이 먼 바보

날 찾는 사람은 없는 듯 해 

활짝 빛이 나던 네 맘의 창들도 이미 닫힌 듯 해(hey) 

 

함께 밥을 먹으려 해도 네가 없구나 

같이 영활 보려고 해도 네가 없구나

우린 아무것도 없구나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every day every say 

너와 함께 거리를 걷는다 걷는다 

다시 함께 걷는다면

우리 함께 걷는다면 

 

아직 난 왜 여전히 왜 

여기서 왜 이러는지  

 

연기처럼 흩날리는 기억 you're right girl 

나는 많이 아파 sick my heart 

 

우리에게 절대 없을 거 라던 이별 

몰래 날 찾아왔다가 이렇게 너무 쉽게 

사랑은 소리 없이 나를 떠나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네가 없구나 

아무리 불러 봐도 이제 네가 없구나 

우린 아무것도 없구나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every day every say 

너와 함께 거리를 걷는다 걷는다 

다시 함께 걷는다면 

우리 함께 걷는다면 

 

baby I just wanna spend some time with you

baby I just wanna spend some time with you

baby I just wanna spend some time with you

baby I just wanna spend some tim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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