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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많아요.
 뭐가?
스포일러가.

근데 이 작품에다 스포일러란 표현을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

 


감독: 오멸
주연: 양정원, 이경준, 성민철, 홍상표, 문석범, 박순동, 강희, 김동호, 김순덕, 조은, 어성욱, 백종환
음악: 전송이, 서지선
촬영: 양정훈
12세 관람가 / Black & White / 108분

 

....


제주도의 군부대도 4월 3일이 되면 4.3 박물관에 견학을 간다. 다른 군부대도 모두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내가 소속되어 있었던 군부대는 그랬다는 얘기다. 내가 본 비 오는 날 제주도의 날씨는 대부분이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거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공문이 날아오고, 대략적인 인원들을 꼽아서 가던 그 날도 안개가 자욱했다. 정확한 이름은 4.3 평화기념관.. 버스에서 내리면 그럭저럭 거리감이 느껴지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생각해보니 그 때 한 번 가보고는 못 가봤기 때문에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왜냐면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으니까. 참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태어난 포항도 가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끼는 경우가 있다. 고등학생 때, 통학버스비를 내지 않고 일부러 한 학기 정도는 학교에 걸어서 간 적이 있었는데, 내 발걸음의 속도로 그 곳까지는 대략 40분 가까이 걸렸다. 그 때는 맞은 편 건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껴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난 안개를 좋아한다. 스스로 알 수 없이 내 한 몸 다 가려지는, 그것에 묻혀진다고 생각할 때의 인상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도의 안개는 달랐다. 마침 내가 제주도에 발령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점이기에 더 그렇지만, 그 곳은 낯선 공간이었다. 곳곳에서 까마귀 소리가 들리고 산 에 위치한 안개 속에 싸인 평화기념관을 향해 걸어가는 경험은 특별하다. 목적지는 저기 있는데, 거기까지 도달하는 길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나는 길을 잃은 채 그저 똑바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게 희한하다. 육지도 아닌 섬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이. 육지도 끝이 있지만, 동시에 끝없이 이어져 있기도 하다. 길을 잃으면 이 두 발로 새로운 길을 만들면 된다.
 
 


 
하지만 섬은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벗어날 수 없다. 섬에서 길을 잃는다는 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그게 더 막막하다. 너무나 벗어나고 싶은데, '새로운 길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면 원래 도망쳐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섬의 한계이자 동시에 정의다. 4.3을 아는 것, 혹은 오멸 감독의 <지슬>을 보는 것은 결국 당사자들에게는 숙명으로, 상관 없는 후대의 사람들에게는 의도치 않은 원죄처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내게 그 박물관과 작품은 원죄처럼 보였다. 박물관은 고요했고 <지슬>의 도입부 역시 파도가 치는 시퀀스를 제외하면 고요하다. 무채색의 컨셉으로 내부가 디자인 되어졌던 박물관, 그리고 흑백으로 찍힌 작품... 컬러의 세상은 우리에게 몰입하라 강요하지만 흑백같은 단색조들은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우리가 알아서 몰입하게 만든다. 각각의 색깔을 가지고 있고, 개성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던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검은색, 흰색, 회색으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색깔이 비슷하다고 한 덩어리로 보여 별 것 아닌 듯 치부하다 중요한 것들을 놓치기 전에 관객은 필사적으로 몰입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슬>의 처음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자연적인 것들' 이다. 일종의 '전운' 같은 느낌이랄까? 회색빛 구름이 드리워진 공중 쇼트를 보여준 뒤에 작품은 제주도의 어느 한 민가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제사용 그릇들을 보여준다. 그 전에는 이미 '빨갱이 토벌대'로 온 군인들이 민가에다 불을 질러 그 주변을 폐허로 만든 뒤다. 군인들을 이끄는 수장인 김 상사가 어질러진 제사 그릇들을 발로 차며 문을 열자 그와 함께 온 군인인 고 중사가 칼을 다듬고 있다. 김 상사가 제사음식으로 쓰려는 것을 가져온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배를 꺼내더니, 그의 칼을 얻어 깎고는 서로 나눠 먹고 웃음 짓는다. 과일 한 쪽도 나눠먹는 선진병영 환경에서의 군인들의 우정이라며 국방부가 홍보 영상으로 쓸 법도 하지만 사실 이 쇼트는 굉장히 끔찍하다. 왜냐면 뒤에 웬 머리 긴 여자가 사다코 마냥 몸이 반쯤 가구 안에 걸쳐진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처음 이 쇼트를 마주했을 때, 그리 끔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감독이 구상했을 이 쇼트의 연출이 영화적으로 감정을 증폭시킨다기 보다 연극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어서였던 것 같다. 그래서 반응이 조금 늦게 왔다. 아. 저게 여자의 시신이구나.. 지금 저 군인이 사람을 죽인 것이구나.. 생각해보면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지슬>에서 앞으로 벌어질 '4.3 학살'의 첫 순간을 본 셈이다. 이런 역사적 사건은 사실 리얼하게 그 시대를 묘사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그러나 작품은 첫 순간을 다큐멘터리적이지 않고, 의외로 양식적인 연출로 묘사한다. 막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배경처럼 자리 잡아 있는 여인의 시신, 그녀의 시신이 담겨진 가구, 그녀의 푹 숙여진 머리를 가운데 놓고 양 옆에 선 두 군인이 사람을 죽인 칼로 배를 깎아 나눠먹으며 웃는 모습까지.. 구도를 비롯한 전체적인 조형에 신경을 쓴 것이 상당히 미학적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작품은 도입부를 통해 <지슬>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를 관객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 4.3 은 4월 3일 새벽에 제주 남로당 무장대들이 제주대 내의 12개 지서와 우익단체들을 공격했다고 정의되어져 있고, 또 그것이 맞지만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처음 불안감이 조성됐던 것은 1947년에 일어난 3.1절 발포 사건 때문이었다. 제민일보 취재반이 지은 <4.3은 말한다> 1권에 따르면 당시 3.1 절 기념집회 도중 기마경관이 아이를 쳤다고 한다. 일부러라기 보다는 아마도 타고 있던 말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서 생겼던 일 같은데, 아이가 치었으니 성난 군중들이 그 기마경관에게 돌을 던졌다.

 

그런데 여기서 경찰 측이 경찰서를 습격한다고 오인하고 제주도민들에게 발포를 하게 된다. 당시 집회에 시위대는 없었고 200여명 가량의 관람객들만 있었는데, 그 중 6명이 발포에 사망하고 만다. 경찰과 미군정은 민심수습을 하려 들지 않고 경찰서 습격을 근거로 내세우며 집회 관련자들을 검거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남로당 제주위원회 측은 악화된 민심의 흐름을 반 경찰 / 군정 활동에 이용하여 3월 10일부터 제주도청을 필두로 민관총파업을 유도해서 돌입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내가 가졌던 궁금증 하나는, 제주도에 공산주의 세력이 있는데 왜 그것을 애초부터 무너뜨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4.3은 말한다> 에서 제민일보 취재반과 인터뷰를 가졌던 남로당 연구 전문가 김남식의 말에 따르면, 당시에는 남로당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구금되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왜냐면 당시에 남로당은 군정청에 합법정당으로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6.25가 일어나기 전이고, 일본으로부터 해방됐지만, 친일파들이 처벌받지 않고 그대로 공직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니 뭔가 불가능했던 것도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남로당 제주도당은 4.3을 일으켰다. 군경의 초토화작전에 의해 엄청나게 큰 인명피해가 날 것이라는 점을 상상하지 못했겠지만, 고립된 지역인 제주도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킨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역사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가 지은 <이승만과 제1공화국: 해방에서 4월혁명까지> 에 따르면 이 남로당의 봉기는 중앙당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남로당 제주도당 측은 봉기를 일으키기 전에 중앙당에 보고조차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4.3을 일으키겠다고 결정해 버렸다. *
 
이것은 4.3 이라는 것이 현재까지도 마땅하게 어떤 활동이었는지 통합적으로 규정되지 못했다는 현실에서 비롯되는 것일게다. 누군가는 '사태' / '사건' 이라 이름 붙였고, 누군가는 '항쟁', 또 누군가는 '폭동'이라 말하며 아예 '혁명' 이라고 이야기 되어지는 것도 들은 적이 있다. 이 많은 호칭들에 문제가 있다면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우리네 말이듯이 어떤 명칭을 붙여주느냐에 따라 해당되는 사례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버린다는 것이다. 감독과 제작자는 GV나 인터뷰에서 작품을 흑백으로 촬영한 것은 제주의 풍경이 이 이야기를 풀어놓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흑백의 색깔은 모든 것을 중화시키는 마력이 있다. 오멸 감독은 작품의 색채를 통해 정치사회적 이해관계에 따라 바뀌는 명칭들을 전부 한 덩어리로 묶어버린다. 
 
그래서 <지슬>에서는 '사태, 사건, 항쟁, 폭동, 혁명' 이라는 표현이 모두 무의미해진다. 작품은 그 모든 명칭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공통적인 속성을 본다. 위의 다섯개 단어가 정의를 규정받는 대가로 요구하는 것. 바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 우리는 그것을 '학살'이라 부른다. 군인들이 배를 나눠먹으며 서로의 전우애인지 뭔지 모를 웃음과 마음을 공유하는 쇼트가 끔찍하게 보였던 건 그 뒤에 죽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흑백의 세상에서도 그것만큼은 똑똑히 보인다. 그리고 작품은 그 죽음을 응시하라고 말한다.

 

사실 안타깝게도 4.3은 이제 점점 논의되기 어려운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시간의 문제인 셈인데, 가깝게 보자면 용산 참사, 멀게 봐도 5.18의 경우에는 적어도 아직 관련자들이 살아있어 궁극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가지고 싸울 힘이 존재한다. 그러나 1948년에 발생한, 이 일의 도화선이라고 일컬어지는 3.1 절 발포 사건이 일어난 1947년까지 따지면 4.3은 무려 65년 이상의 시간적 차이가 존재한다. 유독 아카이브가 빈곤하기로 유명한 한국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일은 점점 논의될 수 있는 힘을 잃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로당, 이승만 정권, 미국, 대동청년단, 서북청년단 각각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관련자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나 버렸다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자 악재가 겹쳐져 있기 때문이다. <지슬>은 다큐멘터리 터치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다. 덧붙여 그 일의 원인을 남과 북, 한 쪽에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작품은 4월이 아니라 11월부터 시작한다. '해안선 5km 바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폭도로 여기겠다'는 공포가 퍼져나간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말이다.

 

 

* 4.3에 관한 시선들 중 하나로, (자칭) 군사 전문가인 지만원은 4.3을 '폭도의 반란'이라고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저서 제목인 <지워지지 않는 오욕의 붉은 역사: 제주 4.3 반란 사건>만 봐도 그의 견해를 대충 알 수 있는데, 이 책의 한 부분에서 북괴의 폭도들의 소행이라는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이란 저서의 일부가 인용되고 있다. 지만원 박사는 이 책에서 4.3 발발의 첫 순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고 썼다.

 

'투쟁에 나선 남조선 인민들은 ‘김일성 장군 만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만세!’를 소리 높이 외치며 원수들의 피비린 탄압을 불굴의 투지로 싸워냈다. 2월 7일 이후 26일까지, 수많은 경찰지서가 녹아나고 악질경찰관, 악질관리, 반동분자 수십명이 처단되었다. 26자루의 총과 481발의 탄약을 빼앗고, 61대의 기관차, 27개의 통신기구, 수많은 다리와 도로를 파괴하고, 83개소의 전신전화선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또다른 비슷한 시선으로는 언론인 조덕송 기자가 <신천지> 1948년 7월호에 쓴 현지보고서,
 '유혈의 제주도' 에서도 등장한다.
 
'...직접 난동의 희생이 되고 있는 제주도민은 뭐라고 사건의 원인을 말하고 있는가. 금번 사건의 도화선은 순전히 도민의 감정악화에 있다. 무엇 때문에 제주도에 서북계열 사설청년단체가 필요하였던가. 경찰 당국은 치안의 공적도 알리기 전에 먼저 도민의 감정을 도발시키는 점이 불소하였다. 왜 고문치사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직접 원인의 한 가지로 당국자는 공산계열의 선동모략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근인의 한 가지로 긍정할 수 있다. 그러나 30만 전 도민이 총칼 앞에 제 가슴을 내밀었다는 데에서 문제는 커진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

 

군인들이 첫 등장했을 때의 섬뜩한 분위기를 제외하면, 제주사람들이 첫 등장하는 시퀀스는 유머러스하다. 오멸 감독의 전작 두 편인 <어이그, 저 귓것>과 <뽕똘>이 유머가 아주 풍부했기 때문에 그 실력이 어디 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신 애초에 작정하고 유머 코드를 넣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보고 나면 더이상 웃기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이들은 폭도로 간주된다는 흉흉한 소문이 두려워 산으로 숨어든 참에, 군인들이 올까 구덩이에 숨어드는 것이다. 그런데 마을 주민들은 참 이상하게도 비좁은 구덩이 속으로 끊임없이 모여든다. 자리가 없으니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가라고 애원하는데도 말이다.
 
이 시퀀스는 어떻게 보면 꽤 상징적인 측면이 있다. 해안선 5km 바깥에 있다 폭도로 몰리기 싫은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 서로 모이는 것인데, 군인들과는 달리 이 마을 사람들은 육지를 오가는 것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공동체로서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모여 숨어드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들 중에는 충분히 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도 존재한다. 마을 사람 중 한 명이고 '삼촌'이라 불리는 자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에 협조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에서 명확히 설명해주지 않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의 아버지가 해코지를 당했다. 그래서 그는 간간히 마을 사람들로부터 신경질적인 대응을 받는다. 그는 멋쩍게 책임을 회피하려 하지만, 일단은 마을 사람들은 그를 여전히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한다. 이후에 군인들의 동굴 침입을 막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말린 고추를 태워 연기를 피우는 부분에 이르게 되면 마을 사람들이 이 삼촌을 용서하고 같이 화해한다. (근데 이 삼촌이 '동호 삼촌'인지 헷갈린다.)
 
마을 사람들은 4.3 이 어떤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왜 죽는지에 관해 의문을 가지고 항변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죽이러 온 토벌 군인들을 걱정하며, 서로 뭉치는 것이 도리어 고립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모른다. 이들이 무식해서가 아니다. 이들은 그저 일상을 살고 있는 것 뿐이다. 사회가 설명을 해 주지 않으니 위기의식을 느낄 새도 없고, 또 계속 그 의식에 사로잡힐 수만은 없으니 그냥 어딘가에 폭도들이 있는가보다 하면서 그렇게 산다. 그래서 자신을 죽이려는 토벌대들을 걱정하고, 친일했던 사람을 포용하려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도 피난올 때 집에 놔 두고 온 돼지에게 먹이 줄 걱정을 한다. 마지막으로 기어코 가지 않겠다는 어머니를 어떻게든 끌고 가야 하는데, 얼만큼 심각한지 모르니까 일단은 어머니의 의사를 존중하여 놔두고 간다. 이런 판단은 당연하다. 그들은 사람이니까.
 

 
 
작품 속에서 이런 방식은 일부의 군인들에게도 해당된다. 사이 좋게 배 깎아먹는 이후, 다른 군인들의 모습이 처음 등장하는 시퀀스는 추운 겨울날에 나체로 가혹행위를 받고 있는 병사인 박 일병의 모습에서다. 그러나 그의 나체가 등장하기 이전에 관객이 먼저 보게 되는 것은 너무 추워서 꽉 쥔 주먹을 클로즈 업 한 쇼트다. 사병인 그 군인이 가혹행위를 받고 있는 이유는 '빨갱이 / 폭도들을 한 놈도 사냥하지 못해서' 다. 사람의 시체를 옆에 두고 눈밭에서 똥을 싸고 있던 김 상사가 가혹행위를 시킨 백 상병을 부르고, 밑의 애들에게 좀 잘 해주라는 말을 남긴채 사라져간다. 이 사병이 다음 순간에서 받는 대우는 몸에다 찬물이 끼얹어 지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 있으면 이 사병이 쥔 주먹은 여러 외부적 여건에서 발생된 고통이 증오로 승화된 것만 같다. 하지만 그는 작품 속에서 자신의 친구이지만 계급 상으로는 후임인 김 이병과 더불어 마을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사정은 잘 모르지만 그들이 무고하다는 것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꽉 쥔 그의 주먹은 그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뎌내는 것과 같다.

 

의외로 증오의 순간은 예상 못한 지점에서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작품 속에서 상당히 섬뜩했던 부분 중 하나인데, 장지문이 클로즈 업 된 쇼트가 그것이다. 김 상사가 자신의 동생을 찾는 것이 장지문에 가려져 소리만 들려오는데 관객이 듣기에도 제대로 된 정신상태에서 소리치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옆에서 누군가 지속적으로 칼을 갈고 있는 중이다. 작품은 가장 인도주의적이고 조용해 보이는 사람들이 가장 지독하게 광기에 휩싸여 있음을 보여준다. 마침내 장지문이 열리고 마을 사람들이 키우는 돼지가 가마솥에 넣어질 때, 우리는 그들이 왜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지에 관해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김 상사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마약에 중독되어 있고, 옆에서 조용히 칼을 갈던 고 중사는 함경도 사투리를 쓰며 폭도들을 죄다 잡아 죽이라고 지시한다. 관객은 후에 이 군인이 사람을 무차별로 학살하면서 자신의 가족이 빨갱이에게 희생당했다는 과거를 읊조리는 것을 듣게 되어 살인귀가 된 연유를 알게 된다.

 

<지슬>의 이런 디테일은 실제 이런 관련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 들려왔던 증언들을 참고하여 넣은 것이다. 가령 우린 5.18 관련 TV 다큐멘터리에서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진압 작전을 수행하기 전에 약물이 함유된 막걸리 등을 마시고 광주 시가지로 갔다고 증언한 것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이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비단 5.18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베트남전을 비롯한 전쟁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약물이 없으면 버텨내기 힘들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더불어 빨갱이에 대한 무시무시한 증오를 드러낸 사람이 있지만, 정작 오해로 인해 빨갱이가 아닌 사람들을 참혹하게 죽인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 디테일은 '관습'이라 할 정도로 실생활이나 관련된 여러 작품들에서 봐 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질리지 않고 여전히 생생히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는 약물과 누구나 오해로 인해 품을 수 있는 증오라는 익숙한 요소들이 우리의 인성을 단숨에 마비시켜 버린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군인들도 어찌보면 일상을 살고 있다. 그들 역시 사건의 진상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명령에 살고 죽어야 하는 군인인지라 굳이 거기에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빨갱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무고한 사람이라면 그는 공적을 세운 것이 아니라 살인범이 되어버린다.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두 사병만 빼 놓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들이 습격한 마을 사람들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에 관해 단 한 번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사람이고 국방의 의무라고 여기며 자신의 일니까. 작품은 '사람이라서 그리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뒤엉키게 만들어놓고 비극을 향해 달려간다. 서로의 입장이 이해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 작품은 정말 사무치게 슬프다. 마치 우리가 왜 싸우고 죽어야 하느냐고 묻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오해의 증오는 그 절규를 바로 일축시켜 버린다.
 
이 시퀀스의 마무리는 섬뜩하다. 사병들은 민가에서 가져온 돼지를 가마솥에 넣고 끓이며, 고 중사의 명에 따라 '폭도들'을 죽이러 나서려 한다. 그리고 옆에선 김 상사가 약에 취한 채 기왕 폭도 잡으러 가는 김에 계집애도 하나 건지라고 말하며 땅바닥을 기고 있다. 죽은 돼지가 담겨진 가마솥의 동그란 형상은 곧 동굴의 구멍으로 바뀌며, 피난 온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이 잠시 그 구멍을 응시하다 다시 숨어 들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피난 온 마을 사람들은 도리어 스스로를 막다른 곳으로 몰고 있다. 그들은 가마솥 안의 돼지다.


 

 
* <지슬>은 작품 속 인물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지슬>이 분노의 시선으로 부릅뜨고 '침묵하고 있다' 고, 그래서 진실을 밝히라고 외치는 곳은 작품 속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미국과 그에 관련된 사람들'이다.

 

미 군정은 3.1 발포사건을 알아보기 위해 자신들의 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한다. <4.3은 말한다> 에서 언급하는 그들의 자료에 따르면 미군 조사단은 제주 총파업의 원인을 3.1 절의 경찰발포로 인해 도민들의 감정이 고조됐고, 남로당이 이 점을 이용해 대중을 선동하여 증폭시켰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 그들은 후속조치를 '경찰의 행위' 보다는 '남로당의 선동'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그들이 떠나자 조병옥 경무부장과 응원경찰대가 제주도에 상륙했으며, 경무부 수뇌진이 제주도민의 90%가 좌익색채라는 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게 된다.

 

이후, 파업이 잠잠해지자 미군정 당국은 제주 수뇌부를 전면 교체하게 된다. 3.1 발포 사건 이후로 제주도 경찰관의 숫자를 줄이고, 사정 모르는 육지 사람들 / 서북청년단 일원들로 채워나간 것이다. 참고로 이 때 전면적으로 유입됐던 서북청년단은 40년대 후반에 결성된 반공단체로, 사무실은 동아일보 사옥에 있었으며 활동자금은 한반도 서북부 출신 실업가들과 미군정청 고위관리들, 그리고 이승만 정권 계열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 의존하고 있었다. 흔히 4.3을 일으킨 원흉 중 하나로 꼭 거론되곤 한다. 그리고 이 서북청년단으로부터 일부가 빠져나가 대동청년단이라는 또다른 우익 단체를 만들게 된다. 둘 다 이승만 정권의 노선에 맞춰 활동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4.3 해결에 참여했다가 후에 해임되는 수난을 겪은 9 연대장 김익렬 중령의 유고인 <4.3의 진실> 에서 그의 견해와 더불어 끔찍한 일화 하나를 볼 수 있다. 3.1 발포사건 이후, 제주도 내에서 약 2,500명의 청년들이 구금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당시 김용철, 양은하, 박행구라는 이름의 청년들이 구금 상태에서 고문을 당하다 죽는 일이 발생한다. 제주 경찰 측에서는 3월 15일에 시체를 몰래 강에 내던지려다 그 광경이 청년들의 가족들에게 발각되고, 그 사건이 제주민심에 큰 충격을 줘 도민들이 경찰들을 믿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미군정이 뒤에 있는 경찰들의 과잉진압에 대해서는, 비록 이승만 정권 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대봉 당시 경무부 공보실장까지 이렇게 얘기하게 만들 정도였다. '...물론 폭동 원인에 경찰도 과실이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느 면에서 경관의 고문에 의한 치사 사건이 있었고, 또 경찰이 청년단체에게 경관행세까지 방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미군정 하에 있었기 때문에 '남로당의 폭동' 이라며 공산주의 세력 쪽에 원인이 있다고 봤지만, 동시에 당시 관공리 쪽의 문제도 심각했다고 지적한 이인 경찰총장도 있다. 그는 1948년 6월 17일 <서울신문> 에서 이렇게 자신의 견해를 드러낸다. '제주도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되 것은 시정방침에 신축성이 없는 것과 관공리가 부패하였다는 것 등을 볼 수 있겠다. 특히 그들은 제주도에 가는 게 무슨 정배나 가는 양으로 생각함으로써 인재될 만한 사람들은 제주도로 안 가고 보니, 명예나 돈이나 바라는 친구들이 어찌 옳은 시정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부패상은 작년인 1947년에 내가 제주에 방문했을 때 이미 역력히 말하고 있었다...'  *

 

 

* 1. 김익렬 9연대장의 유고인 <4.3의 진실> 에서 그가 쓴 4.3 초기의 피난민 입산사태에 관한 주장과 견해.

 

'토벌이 시작되고 1주일이 못 되어 폭도의 세력은 강해지고, 경찰은 읍내를 수비하는 데도 급했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육지에서 토벌명령을 받고 내려온 김정호 사령관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수립된 작전계획이 '초토작전' 이다. 이 작전이야말로 제주도를 대폭동 사건으로 확대시킨 근본원인이 된다. ...최초의 작전은 극비밀리에 조천면과 애월면 일대의 산간마을에서 행해졌다. 그 초토작전은 철저하게 이뤄져 비밀의 누설을 방지하였으므로 당사자들 이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제주도 미군정 장관이나 9연대 정보부에서도 전혀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점차 인접마을에 이런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산간마을 주민들은 치안부재 상태에서 생명보전 때문에라도 할 수 없이 폭도들에게 조금이라도 협력 안 한 마을이 전무할 정도였다. 따라서 초토작전의 대상이 되지 않은 마을은 거의 없었다. 산간마을 주민들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폭도에 가담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제주읍이나 일주도로변의 치안이 확보된 해변마으로 피난하든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대부분은 폭도에 가담하였다. 해안마을로 하산한 주민들에 대하여 또 경찰들이 귀찮게 굴었기 때문이다. ....미군정은 처음엔 강력히 초토작전을 반대하였으나 다음부터는 어찌된 셈인지 묵인하는 태도로 나오더니 나중에는 오히려 장려하는 태도로 변하였다.'

 

미군정이 초토작전을 묵인하게 되자 경찰은 공공연하게 한 마을, 한 마을을 초토화시켜 나갔다. 이렇게 되자 일이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돌변하였다. 대부분의 산간마을민들이 산으로 도주하여 폭도들에게 가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폭도의 수는 기하급수로 증하가여 갑자기 수백, 수천이 되어 그 수를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고 말았다.'

 

2. 당시 경찰의 진압작전을 직접 보고 그것을 경향신문 신춘 현상수기에 써서 당선되어 1964년 1월 5일자에 게재됐던 임두홍의 글, <내가 겪은 사건실기 - 4.3 폭동> 중 일부..
 

'..과연 그들 경찰이 하는 일은 무엇이었던가? 그들의 총구는 닭과 개를 향하여 불을 뿜었고 아무 집에나 마구 들어가서 밥을 시켜먹었으며, 마을의 개들은 그들을 보면 꼬리를 감추고 도망갔다.

 

그들은 젊은 여인들을 붙들어다가 욕을 보였다. 그들은 젊은 사람들만 보면 폭도라거나 혹은 빨갱이라고 하여 행패를 부리고 잡아갔다... 젊은이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순경들은 마을사람들을 전부 학교 운동장에 모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몽둥이로 사람들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맞는 사람들은 '내가 맞을 죄를 졌으면 가르쳐 달라' 고 악을 썼지만 때리는 순경들의 입에서는 욕설과 몽둥이만이 내려졌을 뿐이었다.'
 

3. 4.3 당시 통위부 정보국장을 맡았던 백선엽 장군이 쓴 <실록 지리산> 118 페이지 일부..

 

'..한편으로 11연대 (9연대가 11연대로 재편성 되었음) 는 공비들의 정보망을 차단하고 좌익세력에 위협을 주기 위해 좌익 혐의자들을 마을별로 색출, 공개 처형 하는 일을 매일같이 반복했다. 이 같은 처형 과정에는 집안끼리의 갈등, 개인적 원한 등이 얽혀들어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당시 토벌정책으로는 그런 옥석을 가려내지 못했다.' *
 
 
"..그나저나, 아까 그 여자 쏴 버리지 그랬냐..?"
 
"그러게...
아냐. 그래도,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참고로 <지슬>은 네 개의 챕터로 나눠져 있다. 그리고 두번째 챕터와 세번째 챕터는 장르적인 재미에서도 가장 긴박감 넘치고, 동시에 지독히 슬프며 작품 속 인물들의 오해와 갈등에 불을 붙인다. 그래서 솔직히 보는 내내 괴로웠다. 왜냐면 웬만한 호러 장르의 작품들보다도 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죽음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일원 중 한 명인 경준 ('뽕똘'이라 불려야 옳겠지만, 그는 이 작품에서만큼은 유일하게 '뽕똘'이라 불리지 않는다.) 의 안내에 따라 좁다란 굴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지만 몇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잘 따라오다 학교에 놔둔 책을 가지러 가기 위해 사람들을 이탈한 순덕이란 처녀. 그녀는 굴에 들어가 있는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인 동호 삼촌 부부의 딸이다. 그리고 아들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몸이 불편하니 자신은 못 간다며 마을에 남은 한 할머니. 그녀는 동굴에 숨어 있는 무동이란 남자의 어머니이다. 김 상병은 광대하게 펼쳐진 제주도의 오름에서 순덕을 발견하지만 차마 총으로 쏘지 못한다. 
 
문득 보면서 느꼈던 너무나 끔찍한 생각은 '차라리 저기서 박 이병이 순덕을 총으로 쐈다면 나았을까?' 하는 것이다. 순덕은 도망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다른 군인들에게 붙잡히고, 고 중사와 김 상사에게 성적으로 농락당한다. 총에 맞아 죽는 것이나 성적 노리개가 되는 것이나 끔찍하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러나 기어이 전자의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박 일병이 김 이병에게 배고플 때 먹으라고 얻은 감.. 아. 맞다. 이 작품 제목에 대한 의미를 안 적었네. '지슬'은 제주어로 '감자'를 의미한다. 그 '지슬'을 순덕에게 갖다 주려다 그녀가 입수한 총에 맞아 죽기 때문인 것 같다.

 

난 섬 사람들과 육지 사람들 사이의 상처가 지독하게 곪아 버렸음을 극명히 드러내는 이 시퀀스가 참 싫다. 흑백 영상의 명암 처리는 아름답고, 총소리가 들리자마자 민가의 장지문이 순서대로 닫혀가며 그것을 카메라가 빠르게 트래킹 하여 포착해내는 순간은 너무나 '영화적' 이라는 느낌을 준다. 알고 보면 사선에 내몰린 한 처녀가 사력을 다해 살아보고자 마지막 저항을 하는 처절한 순간이다. 그러나 작품은 군인들의 시선으로 이동해서는, 마치 오사마 빈 라덴 때려잡으러 가듯 작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근래에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제로 다크 서티>를 봐서..) 순덕의 죽음 직전 순간을 연출하고 있다. 여기에도 영화적인 리듬이란 표현을 쓴다면 그게 해당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여하튼 그 리듬이 너무 매끈해 보이는 것이다. 폭력의 순간을 보여주자고 관객에게까지 폭력을 쓸 수는 없다. 이것은 작품을 만든 오멸 감독도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나는 이 작품을 정식 개봉 전에 시사회 겸 기획전 형식으로 대구 동성아트홀에서 상영됐을 때 처음 관람했다. 그 다음주에 한 번 더 봤었는데, 처음 이 작품이 상영됐을 때 고혁진 프로듀서의 GV가 있었다. 오멸 감독은 아니었지만 그 역시 작품의 공동감독인양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고, 또 그에 걸맞게 작품 제작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이야기 속에서 내게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의외로 오멸 감독이 찍은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작품은 대부분의 시퀀스가 그 날의 느낌을 따라 즉흥적으로 찍혔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테이크를 재촬영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그런 방식으로 예전부터 찍어 왔던 홍상수 감독도 이 정도의 '화면 때깔'이 나오지 않는데, 감독의 능력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제주도의 풍광이 그만큼 멋들어져서인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실제로 제주도의 풍광은 어딜가나 멋지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퀀스 역시 즉흥적인 느낌에서 찍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시각적인 폭력을 제공하지 않는 대신, 지극히 장르 영화적 재미의 향기를 풍기는 것은 용납될 수 있는 일일까? 오멸 감독의 작품은 잘 나가다가 꼭 한 번씩 나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었다. <어이그, 저 귓것> 은 초반 30분, <뽕똘>은 마지막의 '자파리',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순덕의 죽음과 더불어 벌어지는 한 밤 중의 총격전이었다. 물론 이런 생각을 감독이 듣는다면 그의 입장에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면 날 보고 어떡하라고, 이 자식아!?' 라고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일테니 뭐라 할 순 없지만...개인적으로는 그래서 '개별적인 쇼트'로 따질 때는 이 작품이 싫었다. 오히려 <어이그, 저 귓것>이나 <뽕똘>이 좋았던 것이다.
 
두 작품은 사실 기본적으로 워낙에 한정된 예산으로 만들어진 탓에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영화적인 화면빨' 과는 거리가 많이 멀었는데, 어떻게 보면 그것이 솔직함이었다. 지금의 여건에서 우리는 이렇게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보다보면 갑자기 예상 못한 공격을 하듯이 불현듯 너무나 아름다운 쇼트들을 보여주곤 했다. 그건 그 여건에서 최대한의 능력을 짜 내어 구현한 아름다움이었다. 반면 여전히 빡빡하더라도 앞의 두 작품보다는 여유로운 여건에서 시작한 이 작품은 모든 순간이 지나치게 매끄러워 갑자기 보석같은 순간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이 없다. 오히려 이 아픈 순간을 묘사하는 것에 있어 저런 연출이 타당한지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아마 개인적인 체감의 차이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지슬> 의 매력은 개별적인 쇼트보다 하나의 시퀀스에 있다. 잘 된 쇼트, 잘 되지 못한 쇼트들을 모두 합쳐 하나의 시퀀스가 되는 것이기에, 매끄럽게 만들어지지 않으면 시퀀스는 매력적일 수가 없다. 작품 속에서는 이런 시퀀스가 여러 개 합쳐져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발휘하는 지점이 있다.. (Pt.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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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1 에서 이어집니다.)

 


순덕이 죽을 때 그 상황을 지켜 본 두 피난민이 있다. 바로 잠시 동굴에서 나와 그녀를 찾으러 온 만철과 상표라는 청년들이다. 순덕에게 남몰래 애정을 품고 있었던 만철은 그녀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고 큰 충격을 받는데, 상표는 보지 못한다. 죽음의 순간이 지나간 이후, 만철이 이 슬픈 감정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오름을 마구 달리는 순간이 있는데 평소 자기 자신을 '말다리' 라고 자부하던 상표는 이게 달리기 시합하자고 하는 건 줄 알고 배시시 웃으며 그를 따라간다. 참혹한 상황에서도 일상에서 장난 치듯이 노는 사람이 있는 건 여전한데, 총격전 시퀀스 다음에 등장하는 이 시퀀스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제주도의 오름이 순덕의 나체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 시퀀스에서는 나무를 보여준 뒤 카메라가 아래로 계속 내려가 동굴 속에 숨어 지슬을 나눠먹으며 잡담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확히는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것이며 오름에서 뛰고 있던 만철과 상표도 앉아 있다.

 

참고로 <지슬>은 대부분의 시퀀스를 실제로 굴 안에서 찍었다. (근데 그 굴이 1992년에 유골, 생필품까지 포함하여 완벽한 보존상태로 발견되어 4.3 관련 현장으로서는 최초로 그 형태가 완벽히 유지된 '다랑쉬굴' 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굴인지 얘기가 나왔던 것 같은데..) 그러나 고혁진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카메라가 아래로 내려가 굴 속에 앉은 사람들을 보여주는 이 시퀀스를 찍을 때, 여러가지 문제로 실현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때 감독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 제주대학교에 있는 강당 겸 극장에서 찍어보자는 것이었다. 흑백영상과 조명, 카메라 트릭과 편집으로 적절히 동굴의 분위기가 났는데 이 시퀀스 자체는 참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여태껏 작품에서는 피난민들이 동굴에 진입할 때 이렇게 지상에서 지하로 하강하는 듯한 분위기로 찍은 적이 없었고, 인물들을 제외한 주위의 모든 것들을 암흑으로 처리해 공간감을 없앤 적도 없었다. 물론 얘기를 듣고 보니 촬영장에서 고안된 즉흥적인 상황이었지만, 그 촬영방식이 본의 아니게 등장인물들을 모두 죽음을 향해 하강시키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동굴은 곧 그들에게 마련된 무덤이다. 이 와중에 어머니가 걱정된 무동은 아내에게 내일 마을에 내려가 어머니를 다시 모셔 오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앞의 두 시퀀스를 총괄하는,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라고 규정한 무시무시한 시퀀스가 하나 등장한다. 바로 무동의 어머니가 고 중사를 비롯한 토벌대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그녀는 고 중사의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도, 그에게 어머니가 있는지를 묻고 (살인귀 같은 고 중사가 자신의 참혹한 과거를 이야기해서 스스로가 '인간' 임을 증명하는 부분이 이 지점이기도 하다.) 집에 불이 날 때 문득 방에 있는 지슬을 본다. 그녀는 혹시 아들이 와서 이걸 가져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소쿠리와 어지럽게 널려 있는 지슬을 향해 기어간다. 다음 쇼트에서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타 버린 집과 어머니의 시신을 본 무동의 모습이다. 순덕의 죽음과 더불어 이 작품에서 가장 잔혹하게 표현된 시퀀스일 것이다.

 

이 시퀀스 자체적으로 관객의 모든 진을 빼 놓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이걸 본 순간을 잊을 수 없는 것은 내 옆에 앉아 있는 한 여성 관객의 반응 때문이다. 거의 앞자리에서 이 작품을 봤는데 담요 같은 것을 가져와서 무릎에 깔아놓고 보던 여성 관객과 나는 각자 반대 방향의 거의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보고 있는 동안에 극장 좌석이 덜덜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뭐 이런가 싶어서 옆을 봤는데 끝자리에 앉아 있던 여성 관객이 고개를 숙이고 담요에 얼굴을 파묻은 채 몸을 웅크리고 덜덜 떨고 있었다. 그 관객이 거의 온 몸을 사용하다시피 하여 흐느끼고 있었다는 걸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앉은 좌석줄에는 그 관객까지 포함하여 둘만 앉아 있었는데, 끝자리까지 울음의 기운, 그리고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이 시퀀스가 주는 슬픔은 대단하다.

 

문제는 이 시퀀스가 단순히 슬픔만을 전해주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무동은 어머니의 타버린 시신 밑에 있는 지슬들을 발견한다. 작품은 무동이 자신의 슬픈 감정을 다른 피난민들에게 알리는 방식을 피한다. 피난민들은 무동이 마을 어디에서 지슬을 얻어 왔다고 생각하고, 맛있게 먹으며 작품은 기운 없이 어머니는 잘 계시더라, 결국 오시지 않았다는 표현을 '응' 이라는 딱 하나의 대사로 표현한 뒤, 한참동안 표정을 가린 채 구석에 앉아 있는 무동의 모습을 부각시켜 보여준다.

 

4.3의 참혹함을 잘 알 수 있는 유명한 이야기로 이런 것이 있다. 1948 ~ 1949년의 제주도는 그 해에 감자 농사가 참 잘 되었고 맛도 좋았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감자 하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 제주도에서 키우는 대부분의 농작물들이 그랬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끝은 그 농작물들이 맛이 좋은 이유다. 땅 속에 묻혀 썩어간 사람들의 시신이 양분이 되었다는 것. 오름의 형상이 여인의 나체로 변하는, 그리고 거대하게 솟아있는 나무를 보여주다 카메라가 땅 속으로 들어가듯 하강하는 것, 그리고 피난민들이 유달리 맛있는 것 같다고 먹는 무동의 지슬들까지. 개별적인 쇼트로 볼 때는 아름답기만한 <지슬>은 시퀀스 별로 합쳐졌을 때 비로소 '끔찍해진다'. 작품은 오름을 비롯하여 흑백으로도 제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자연물들이 그렇게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에는 '양분'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 양분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것에서 풍요로워졌다는, 끔찍하고 비참한 현실에서부터 생성된 것이다. 작품은 여기서 지슬이라는 것이 가지는 메타포, 그리고 이미지의 비극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그 비극이 영겁처럼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듯 또다른 죽음들이 연이어 기다리고 있다.

 

 


* 작품 속에서 토벌대가 벌이는 행각들은 당시에 일어났던 '오라리 방화사건'을 연상케 한다. 오라리 사건은 1948년 4월 30일 낮 12시에 일단의 청년 30명 가량이 오라리 연미 마을에 들어와 12채의 민가를 불태우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서북청년단과 대동청년단은 마을에서 좌익 활동을 한 자를 색출한다고 불을 질렀다. <4.3은 말한다> 2권에서 이와 관련한 당시 15세였고 마을주민이었던 박기찬의 증언이 있다.

 

"대동청년단원들이 몰려온다는 마을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어머니와 형, 나 셋이서 겁이 나 안방문을 걸어 잠그고 숨을 죽이고 있었는데, 조금 있으니 우리 집 마당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틈으로 보았더니 손에 몽둥이를 든 수십명의 청년들이 마당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놀랄 틈도 없이 문짝이 와지끈 부서지면서 그 청년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앞장섰던 사람이 마을에서 대청활동을 하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너희들도 죽이고 싶지만 어리니까 봐준다' 고 씩씩거렸습니다. 장독이고 문짝이고 남김없이 때려 부쉈습니다. 그러곤 초가처마에 불을 놓기 시작하더군요."

 

5월 1일에도 마을에 들어와 폭도를 찾아내겠다며 불을 지르던 이 청년단원들은 그 때 민오름에서 그들을 쫓아 내려오던 무장대를 발견하고 도주한다. 이 때 무장대에 의해 도민 한 사람이 희생당한다. 김규찬이라는 순경의 어머니였다고 하는데, 마을민가가 불타는 모습을 보고 아들을 찾아 그릇, 병아리 등을 담은 구덕을 지고 내려가다 무장대와 마주쳤다고 한다.

 

"..나도 들은 얘기입니다만, 산 사람들이 청년들을 추격하다 돌아오는 길에 한 여인을 만났답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 여인은 그만 '규찬이 순경 어멍 (어머니) 이여' 라고 대답했는데, 그게 화근이 되었다더군요. 총을 든 산 사람들 모습을 보고 경찰이나 우익청년단원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대답을 했던 것 같습니다. 산 사람들이 방화에 대한 분풀이로 일을 저질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 제주도민들이 그런 일을 당하는 동안, 미군 측에서는 오라리가 방화되는 광경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려고 공중에서 항공촬영을 하고 있었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에서도 이 작품의 사진과 영상 일부를 볼 수 있는데, 바로 <제주도의 메이데이 (May Day On Cheju-do) 라는 작품이다. 미국 국립 문서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이 작품은 제민일보 측의 주장에 의하면 실제 영상만을 가지고 촬영한 것이 아니라 중간에 자체적으로 연출하여 조작했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을 완벽하게 제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여기에 관해서 아직까지는 의혹으로 느껴진다. 여하튼 이 작품은 항공기에 일반 카메라와 더불어 3D 입체 상영을 위해 개발된 카메라까지 포함하여 두 대로 동시촬영 했다고 한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3D 상영 영화가 아니었을까. 영상으로 4.3의 진행상황과 사건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료이기도 하다. *

 

오멸 감독이 언론에 한 말 중 인상깊은 지점이 있다. "이방인이 관광하는 기분으로 착륙하게 될 제주도의 공항 밑바닥에서는 아직까지 4.3 사건 희생자의 시신이 발굴되어 나오고 있고,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는 정방폭포에서는 수도 없는 사람들이 총탄에 쓰러져 갔다." 는 부분이 그것이다. 그 말을 봤을 때 잠시 저 발언을 하는 그의 기분이 어떨지를 상상해 봤었다. 자신이 겪은 일도 아닌데 당시의 비참함을 완벽히 공유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시에 그 비참함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운 것이 작품을 이런 방향으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동력이 됐는지도 모른다. 영화로 만들면 도저히 눈 뜨고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법한 소재를 '영화화' 시키는 것, 그리고 직접 경험한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보다는 다소 차분하고 객관에 가까운 시선을 유지한 채로 어디에 원인이 있는지를 지적하는 태도까지. (이 작품은 굉장히 정치적이다. 어디에 원인이 있는지를 명확하게 결론내리고, 그 곳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 지적이 너무나 명확해서, 원인을 한국이라는 토양 안에서 날뛰었던 '좌'와 '우'를 초월할 수 있지 않았던 것인가 싶다. 그리고 이 글의 초반부에서도 언급한 바이지만 유머까지 겸비하고 있다. 대신 초반부의 유머 코드들이 무조건 관객을 웃게 만들자는 목표 하에 구상된 것이었다면, 마지막에 연기를 피우는 시퀀스는 단순히 웃게 만들자는 목표 이상의 것이 보인다.

 

사실 이 부분이, 보면서 많이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련의 이야기를 거쳐서 작품이 다다르는 곳은 다름아닌 토벌대가 피난민들의 동굴을 발견하는 지점이다. 윗부분에서 언급한 다랑쉬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풀어볼까 하는데, 1992년에 처음 발굴되고 제민일보가 취재하여 세상에 알려진 이 굴 안에서 11명의 사람이 죽었고, 그 유골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동굴 안에서 아사한 것이 아니라 토벌대에 의해 학살된 것이었는데 여기서 주목할만한 지점은 토벌대가 그들을 죽인 방식이다. 처음엔 수류탄을 던졌는데도 효과가 없음을 안 토벌대는 검불로 불을 피운 뒤, 그 연기를 동굴 내부로 풍기게 만든 다음에 입구 부분을 돌로 막아버렸다. 당시 무장대들이 주로 굴에서 생활하며 토벌대와 싸웠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는 '빨갱이들' 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리라. 하지만 그들은 빨갱이가 아니었고, 살해당할까 두려워 산으로 도망쳤던 제주도 구좌읍 종달리, 하도리의 주민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모두 1948년 12월 18일에 토벌대의 작전에 의해 모두 질식사하고 만다.

 

이 다랑쉬굴의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채 모' (구좌읍 종달리에 사는, 92년 당시 67세의 노인이었다. 제민일보 측의 기사에서 이름이 저리 표기된 것인데 아마 본인이 실명 공개를 꺼렸던 것 같다.) 라는 남자였는데, 다랑쉬굴에 있다 혼자 다른 굴로 피신하던 중 좌익 무장대에 의해 포로로 잡히게 된 참이었다. 주민들이 모두 사망했다는 소식은 산 속의 무장대에게도 들렸고, 이틀 뒤에 채 모와 그들은 함께 굴로 시신 수습을 하러 들어갔다. 이틀 뒤 굴의 상황에 관해 채 모는 이렇게 증언했다.

 

"굴 안은 그 때까지도 연기로 가득했는데 시신은 고통을 참지 못해 돌 틈이나 바닥에 머리를 찧은 채 죽어있었고 코와 귀로 피가 나 있었다.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을 보니 가련한 생각에 여기저기 흩어진 시신들을 나란히 눕혀놓고 나왔다."

 

<지슬>에도 똑같은 상황이 등장한다. 그러나 작품은 연기를 토벌대가 아닌 피난민들의 무기로 반전시킨다. 동굴로 피난 올 때 식량으로 삼을 겸 해서 지슬과 말린 고추를 들고 온 피난민들은 토벌대를 쫓아내기 위해 고추를 태워 연기를 동굴 바깥으로 올려 보내는 것이다. 이 연기를 피우는 피난민들도 죽을 맛이지만, 총을 쏘며 진입하려는 토벌대에게도 연기는 상당히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다. 앞도 보이지 않지만 눈, 코, 입이 너무 매우니 도저히 못 들어가겠다는 것이지. 나는 이 시퀀스를 생각할 때마다 이상하게 웃기다. 자연스레 화생방이 연상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운 고추로 성공적인 임기응변을 해낸다는 설정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일지 모른다.

 

물론 이 시퀀스의 기본은 삶을 향한 피난민들의 의지다. 무동은 어쩌면 어머니의 시신을 본 그 지점에서 자살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지슬을 가지고 돌아와 피난민들과 함께 나눠먹는다. 그리고 피난민들은 지금 어떻게든 살겠다고 매운 고추 연기를 피워 토벌하러 온 군인들에게 풍기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군인들 역시 포기할 법도 한데 끝까지 동굴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아등바등이다. 군인들 역시 동굴 안의 피난민들을 폭도라고 생각하고 있고, 또 그렇게 생각해야만 죽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그들이 산다. 서로 이유는 정반대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는 똑같다. 작품은 그래서 이상한 희극적 감흥을 느끼게 하면서 바라보게 만들다 관객을 한숨짓게 만든다. 서로가 살고자 하는 의지는 같은데, 왜 귀결되는 지점은 다를까. 왜 서로 다툴 필요가 없는데도 이렇게 만들어야 할까.

 

문득 4.3 평화박물관에 갔을 때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그 곳에는 90년대에 제작된 4.3 관련 TV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내부 상영관이 있었고, 거기서 그 작품을 봤었다. 그런데 보던 도중에 내가 굉장히 경악했던 지점이 있었다. 바로 다큐멘터리가 서북청년단에 몸을 담았던 노인을 인터뷰한 것이다. '주제에' 인권보호랍시고 모자이크, 음성변조 처리까지 된 그 남자는 의자에 팔을 괴고 학살의 기억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상영관을 나와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때, 나는 박물관 관계자에게 다가가 넌지시 질문해 봤다. 아까 그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했던 서북청년단 출신의 노인이 법적인 심판을 받았느냐고. 박물관 관계자는 표정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은 채 대답했다. 아니요. 제가 듣기로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나는 다시 반문했다. 저 사람 아직 살아 있으면 처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관계자 분이 다시 대답했다. 약간은 분노인지 냉소인지 모를 느낌이 담겨져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그렇겠죠? 하지만 지금도 살아있는지는 의문이고, 4.3에 관해서 책임을 묻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어떤 태도로 말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했던 짓을 저렇게 이야기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나름대로 의미 있는 거에요. 끝까지 하지 않았다고 발뺌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저 노인은 그냥 만든 사람들이 저 사람에게 기대했던 만큼의 역할은 한 거에요.

 

 

* 오라리 마을에 불을 질렀던 우익단체 대동청년단 단원 중 한 명은 나중에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따라 제민일보가 조사하여 제주도 시내에서 만나게 된다. <4.3은 말한다> 2권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박 아무개' 라는 이름의 사내인데, 인터뷰에 응해놓고도 자신은 오라리 마을에 불을 지르지 않았다고 부인하다가 이후에 한 번 더 이뤄진 두번째 인터뷰에서 한 기자가 목격자들이 대질증언을 할 용의가 있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그렇게 했다고 합시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5월 1일에 방화 사건에 참여했던 박 아무개는 오라리를 직접 조사하고, 우익청년단의 방화혐의가 분명하다고 판단내린 김익렬 연대장의 지시로 검거되어 제주 모슬포 연대본부 영창에 감금된다. 그런데 그는 미군정에 있는 딘 (Dean) 소장의 명령으로 제주로 온 박진경 중령이라는 사람에 의해 감금된지 22일만에 풀려나게 된다. 풀려나자 바로 오라리 주민들의 반발에 부닥친 제주 수뇌부 측은 다시 박 아무개를 연행하는데, 이번에는 제주 경찰서 유치장에 집어넣고 38일 동안 감금시킨다. 박 아무개는 제민일보 취재진에게 '거기서 특별대우를 받으며 지냈다' 고 증언했고, 이후 1948년 9월 15일에 직접 경찰학교 제 9 기생으로 입교한 뒤에 경찰복을 입고 '4.3 진압' 에 뛰어 들었다고 한다. *

 

작품은 어쩌면 마지막 순간만큼은 피난민들이 '같은 사람'에게 총살 당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피난민들은 경준의 기지로 살아남고,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작품은 카메라로 집요하게 피난민들의 마지막을 쫓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고추 연기를 피우는 시퀀스에서 쓸데없이 오지랖을 발휘하는 건 아니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해는 한다만 개인적으로는 박 일병과 김 이병을 제외하고는 군인들에게 큰 정이 가지는 않는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지슬>은 어떤 지점에서 <설문대 할망과 오백장군> 설화의 일부를 차용하여 섬뜩한 마무리를 짓는다. '영화' 이고, 선과 악의 입장을 가를 필요성도 어느 정도 존재하기 때문에 그건 사실 이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리는 강렬한 심판인 셈이다.

 

이 끄적임의 중반부 쯤에서 챕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지슬>은 네 개의 챕터로 나눠진 작품이고 그것에 모두 신위, 신묘, 음복, 소지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다. 참고로 이것은 제사의 절차를 표현한 것인데, 거기에 딱히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아마 <설문대 할망과 오백장군> 설화에서 등장한 묘사가 일부가 활용된 것처럼, 제주의 문화적 요소를 반영하고자 하는 의도일 수 있다. 동시에 이렇게도 보인다. 4.3 은 시간적인 개념으로 보자면 분명 지나간 '과거의 역사' 이기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는 방법 역시 과거의 요소를 통해 시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자신의 어머니가 가마솥에 빠진 줄도 모르고 그녀의 고기가 든 국을 맛있게 먹는 오백명의 아들들, 그리고 제사를 지낼 때 거치는 절차를 표현한 단어들...

 

 

 

과거는 흔히 아름다운 추억, 혹은 전통으로 미화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어둡고 참혹한 표현을 할 때 활용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작품은 그렇게 4월 3일이라는 날이 쉽게 폭동, 항쟁 등이란 표현을 붙일 수 없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폭동, 혹은 항쟁이라는 표현을 통해 영광을 얻고 가슴 뛰며, 세속적인 이득을 얻는 사람들은 지극히 한정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굳이 연관성이 많지 않더라도 4월 3일이라는 날과, 제사 절차에 관련된 이런 '과거의 단어' 가 교과서에서 보고 단순히 외우면 끝나는 차원에서 다뤄지지 않아야 핟고, 그리고 그 단어들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작품은 이야기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의 단어는 인터넷 상에서, 혹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서는 끔찍하고 지독한 어둠을 품고 있다. 가마솥 안의 존재는 그 어둠을 가벼운 것으로 얕봤다가 결국 벌을 받는 것이리라. <지슬>은 그 시퀀스를 통해 우리가 마주보는 역사를 절대 가벼운 여흥거리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한다.

 

 

작품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모든 자리에 제방이 놓여져 있고, 그것이 타오르는 마지막 시퀀스가 놀라운 것은 그 때문이다. <지슬>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피난민과 군인 모두 가리지 않고 모든 시신 앞에 제방이 놓여져 있고 그것이 불탄다. (GV에서 고혁진 프로듀서가 했던 말에 따르면, 저 지방에 적혀진 글들은 모두 해당 인물들에 맞춰서 일일이 다르게 쓴 것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난 한자 까막눈이라 뭔 말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방에 보통 어떤 말이 쓰여져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대충 예상은 된다.) 놀라운 건 제주의 입장을 대변할 법한 이 작품이 '모두'가 안식에 들 수 있기를 기원할 때, 그런 감정상태에 이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증오와 원한을 오랜 시간동안 생각하여 납득하고 이해했을까 하는 점이다. 현실세계에서 그런 용서는 보통 상대방보다 내가 얼마나 더 큰 그릇을 가진 인간인지를 과시하기 위해서 쓰이는 것이다. 정말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반추하고 사색하며 증오할 법한 이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단계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지슬>은 그걸 해낸다. 가해자라고 생각되는 이들까지도. 이제는 그들 모두가 죽었기 때문에. 이 작품이 현실의 나보다 마음 씀씀이가 훨씬 넓다. 하지만 작품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작품은 관객에게 각오를 다지라고 부탁한다. 이것은 '영화' 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현실에선 이렇게 '1시간 48분만에' 65년 전의 기억을 말끔히 해결할 수 없다고, 위로할 수도 없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그러니 당신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사유하라고. 과거의 일에 묶여있는 영혼들은 지방과 함께 멀리멀리 안식을 취하러 떠날 것이니, 그들이 떠남으로 인해 남겨진 고통의 기억을 나눠받고 현재에서 생각하라고 말한다.

 

영화는 기록매체다. 40년대에 일어난 4.3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 2012년에야 만들어 졌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들이 필름에 담겨짐으로 인해 <지슬>은 '과거'가 되었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최소한의 의의는, 앞으로 이 작품을 생각할 때 적어도 절대로 가볍게 생각하지는 못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아마 직접적인 장소를 거론하자면 정방폭포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게 영화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최대의 의의이기도 하다. 결국 무언가를 바꿔야 하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그런 사람에게 무언가를 일깨워준다.

 

2011년의 나는 그렇게 4.3 평화박물관 문을 열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2013년의 나는 대구 동성아트홀 극장문을 열고 길을 나섰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어이그, 저 귓것>이나 <뽕똘> 같은 유머러스한 느낌의 작품을 만드는 오멸 감독이 조금 더 좋지만, <지슬>이 굉장한 걸작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지금보다 더 많이 이야기 되어져야 한다. 완성도의 출중함이야 두 말 할 것 없고, 1948년 4월 3일부터 시작됐던 어느 날들을 이야기하고, 그것에 관해 최소한 지방이라도 태우는 것을 극영화적 영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만큼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체감시키기 위해서라도...이 작품은 많이 이야기 되어져야만 한다.


 

 

 * <4.3은 말한다> 2권에서 발췌한 부분. 미 군정장관 딘 (Dean) 소장이 제주에서 군정 당국 수뇌회의를 주재하고 떠나간 다음 날, 평화정책을 계획하고 추진해 왔던 김익렬 연대장이 해임된다. 그리고 박 아무개를 풀어줬었던 박진경 중령이 연대장 자리를 맡게 된다. 박진경 중령은 영어에 능통하여 딘 소장의 총애를 받던 사람이었으며,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 소위로 제주도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고 한다. 취임한 지 한 달 뒤, 박진경 중령은 토벌작전의 공로를 인정받아서 대령으로 고속 승진했고 나중에 강공 토벌정책에 반기를 든 부하의 손에 의해 암살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익렬 전 9연대장은 자신의 유고인 <4.3의 진실>에서 박진경 중령이 연대장 취임식날에 했던 연설을 정확히 기억하여 적어놓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라도 독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이것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 다시 말해서 초토작전을 감행하겠다는 의지의 발표였다.'

 

다시 <4.3은 말한다>로 돌아가서, 미 군정이 박진경 중령을 연대장으로 취임시킨 것은 4.3을 무력 진압으로 해결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 였다고 한다. 이 때 딘 소장의 관심사이자 받은 명령은 4.3을 어떤 방식으로든 최단기로 진정시켜서 5.10 선거를 무사히 치르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은 군정의 강압정책에 반발해서 선거를 단체로 보이콧 했다. 조병옥 경무부장은 이것을 보고 설득을 하기는 커녕 경찰전문학교 정예부대를 제주도에 들어오게 해 무력 진압 하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했으며, 또 상당수의 제주도민들이 산으로 피신했다.

 

마침내 5월 10일이 되어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첫 선거가 열렸고, 두산백과에 따르면 무소속이 85명(42.5%), 대한독립촉성국민회 55명(27.5%), 한국민주당 29명(14.5%), 대동청년단 12명(6%), 조선민족청년단 6명(3%),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 2명, 대한노동총연맹 1명, 교육협회 1명, 단민회(檀民會) 1명, 대성회(大成會) 1명, 전도회 1명, 민족통일본부 1명, 조선공화당 1명, 부산 15구락부 1명이 당선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헌국회 의장에는 이승만, 부의장에는 신익희가 당선된다. 마지막으로 7월 10일,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1948년에 시작된 4.3은 1954년에 끝이 난다.

 

 

1992년 3월 말에 발굴되어 4월 15일에 굴에서 꺼내졌던 다랑쉬 굴의 희생자들은 그 날 새벽 6시에 유족들이 도착하자마자 이미 수습되어져 있었다. 읍장과 구좌읍 이장단, 유족들 80명이 참관한 가운데 장례식을 치룬 뒤, 유골들은 모두 오전 7시에 화장장으로 이동해 화장된 뒤 바다에 수장됐다. 행정당국 측에서는 "매장을 권유함에도 불구하고 유족들이 한사코 화장을 주장했다." 라고 공식 발표를 했지만, 실제로 유족들은 44년만에 기적적으로 찾은 유골인데 뼛가루의 11분의 1이라도 가져가겠다고 격렬하게 이야기 했다. 그러다 마침내 화장에 동의하게 된 유족들은 그 이유에 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껏 억눌러 참아왔는데, 매장할 경우에 누가 똥 싸고 오줌 싸고 돌멩이를 던질 것 같아서요.
 그래서 화장에 동의했습니다." *


p.s.1 -  고혁진 프로듀서님과의 GV에서 몇 가지 질문을 했었는데, 그 중 궁금한 것이 과연 이 작품이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됐을 때 현지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답변입니다.

 

"선댄스에서의 반응은 좋은 편이었습니다. 선댄스는 작품을 고를 때 테크닉에 대한 기준도 많이 두는 편이었는데, <지슬>은 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5~60대 관객이 많았고, 그 분들이 눈물을 흘리시면서 이런 영화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도 해 주셨어요. 그리고 작품을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마지막 자막에 미 군정이 핵심 배후에 있다고 써 놨었죠. 그런데 그것에 관해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선댄스에서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 분들이 '그 시대의 우리나라라면 분명 그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더라구요."

 

p.s.2 - 아마 어떤 분들은 보셨겠지만, <어이그, 저 귓것>, <뽕똘>과 <지슬> 사이에는 <이어도> 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4.3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극장 개봉을 하지 않았죠. 오멸 감독님이 원치 않았다는군요. 현재 극장 개봉 외의 방법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p.s.3 - <지슬> 에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세월 2' 라는 것이죠. 지금은 고인이 된 김경률 감독님의 작품 중에 <끝나지 않은 세월> 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당시 오멸 감독님도 제작에 참여 했었다는데, 의견차이로 도중에 나왔다고 하더군요. 오멸 감독님이 4.3을 다루게 됐을 때, 이 소재를 결국 영화로 옮길 수 있게 된 것에는 김경률 감독님이 준 영향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슬>의 '제작총지휘' 에는 김경률 감독님의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p.s.4 - 이렇게 끄적인 리뷰가 4.3 의 희생자 분들께 미약하게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니.. 이거 적다가 몸살기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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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오멸

주연: 양정원, 오영순, 문석범, 이경준, 김대영, 장정인

음악: 황태승, 양정원

촬영: 김경섭

12세 관람가 / Color / 90분

 

 

....


 

(<뽕똘>을 책에다 적어놓을 때, 그 작품의 연작이라 볼 수 있는 오멸 감독의 <어이그, 저 귓것>은 블로그에 적어놔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적어놓는다.) 오멸 감독의 <어이그, 저 귓것>의 시작은 슬프다. 기타 잘 치고 노래 잘 부르는 용필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온 몸이 성치 않은 채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노래로 성공하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육지로 상경했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용필은 어머니는 잘 계시냐고 묻는데, 관객은 그 말 때문에 잠시 기대를 한다. 그래도 어머니가 따뜻하게 그를 맞아주겠지. 하지만 용필은 '어머니의 산소'를 얘기한 것이었다. 작품은 곧 어머니의 산소 앞에서 절규하는 용필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찌보면 절규 같고, 어찌보면 고향에 돌아와서 다시 시작해 보겠노라는 의지일 수 있는데 이 작품은 곧 그 생각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할아방'이 등장해 용필을 다그치기 때문이다. 너희 어머니 묘는 여기가 아니라 저기 있지 않냐?

 

....풋! 용필은 순간 멍해진다. 이 순간이 웃긴 이유는 용필 본인이 남의 묘인 줄도 모르고 온갖 감정을 다 담아서 절규하고 있는 중이며, 또 음악과 카메라의 움직임이 마치 이 시퀀스는 정말 감동적이고 슬프다는 것을 최선을 다해 알려주려고 홍보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감정을 담은 시퀀스가 결국 남의 묘라는 이유로 착각으로 끝나고 말 때 작품의 제목이 뜬다. '귓것'. '귀신'의 제주어 표현이지만 동시에 '바보'라는 놀림과 경멸의 표현이기도 하다. 작품을 한 번에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기발한 도입부이자 저예산으로 찍힌 것이 티가 나지만, 동시에 특정 부분에서의 카메라워크가 참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이 작품을 거꾸로 봤다. 오멸 감독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이 군 복무를 하던 시절인 2011년, 휴가가 끝나고 귀대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복무 중인 부대가 있는 제주도로 왔을 때였다. 복귀 시간이 많이 남았을 때 주로 제주도에 도착을 했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는 꼭 영화 한 편을 보고 귀대하곤 했었다. 그 때 <뽕똘>이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에서 한 관을 차지하고 상영 중이길래 관람했었는데, 그 작품이 내가 처음 본 오멸 감독의 작품이었다.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뽕똘>과 이 작품은 모두 2009년에 제작됐는데 개봉을 2년 뒤에 한 것이었다. 거꾸로 보고 느낀 것은, 영화란 것이 개인의 취향과 선호도에 차이가 있다지만 오멸 감독의 작품은 만듦새로 따진다면 첫 작품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다음 작품을 만들어 갈수록 더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어찌 보면 이후에 그가 이뤄낸 성취를 생각하면 첫 작품이 가장 나쁘다는 이야기도 된다.

 

단적으로 <어이그, 저 귓것>의 초반 20여분은 최호 감독의 <고고 70>을 처음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말했던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주인공들만 신난다'..라는 것 말이다.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는 제주도에 용필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뽕똘과 전설적인 춤꾼이 되기를 꿈꾸는 댄서 김, 실명은 '대영' 이 자기 실생활을 내팽겨 쳐버리고 그로부터 음악을 한 수 배워보려고 노력하는 이야기다. <뽕똘>과 더불어 이 작품이 초반부에 관객에게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나라 방언인데도 불구하고 듣고 있으면 꼭 외국어 듣는듯한 100% '제주어' 대사들이다. 실제로 제주도 말은 방언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들어보면 의미를 아는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유네스코에게 하나의 독립된 언어로 인정을 받았다. 그 언어가 제주도민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강점이 된다. 특히 이 제주어의 매력이란 말에 딱히 강세를 붙이기 보다는 끝을 조금 늘리거나 주로 의문문으로 말하고자 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발음의 높이를 구사하는데서 나오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같이가젠~?', '뭐 하멘~?' 같은.) 이 언어의 느낌은 가히 '귀엽다'! 이런 느낌은 <뽕똘>에서 자주 사용됐고, 또 관객의 미소를 짓게 만들기 위한 유머로서 적중률이 꽤나 높았다. 노래를 배우는 이 작품과 달리 <뽕똘>은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인데 육지에서 온 무명배우인 성필이 현장을 무시하자, 뽕똘이 제주어를 쓰면서 성질을 부리는데 전혀 화가 나 보이지 않고 귀엽게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이그, 저 귓것>에서는 제주어가 힘을 발휘하려는 순간이 시작하자마자 바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작하고 30여분이 지나야 한다. 그렇다면 이 초반 30분은 짜임새 있게 만들어 졌는가? 사실 여기서 많은 불만이 있었다. 그것은 캐릭터에 관해 별다른 명확한 영화적 설명이 존재하지 않아서다. 가령 관객이 도입부부터 보게 되는 인물 중 한 명인 할아방, 혹은 '삼촌'이라 불리는 노인은 남의 묘에서 울고 있는 용필을 다그칠 때는 정신 똑바로 박힌 동네 어르신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그는 정신이 나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용필을 다그치고 난 뒤에 바로 등장하는 시퀀스는 다름아닌 이 할아방이 동네 할망이 운영하는 점빵 앞에서 노숙자처럼 드러누워 잠을 자는 것이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별다른 대사도 없이 점빵 외벽에다가 노상방뇨를 한다.

 


여기서 뽕똘이 첫 등장하는데, 그는 할망에게 외상을 하려 들면서 할아방의 행동을 고자질한다. 할망은 화가 나서 모른 척 하고 서 있는 할아방의 등을 찰지게 후려치기 시작한다. 젊었을 적엔 이 오줌이나 싸대는 물건으로 이곳저곳 쑤시고 다녔다면서 말이다. 관객들이 할아방은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게 만드는 장치로서 기능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도입부 이후로 바로 이런 시퀀스가 등장하는 것이 이 인물에 대해 심한 괴리감을 만든다고 느껴졌다. 이후는 더 심하다. 할아방은 개밥그릇에 있는 물을 들어서 먹다가 할망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으며, 또 한 번은 점빵에 들어가 소주를 훔치려다 적발되어 쫓겨난다.

 

 

그리고 이후, 첫 감상 때 나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시퀀스가 하나 툭 튀어나온다. 여전히 주변을 서성이던 할아방은 농사를 짓고 있다 새참 먹고 있는 여인들의 초대를 받는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그녀들은 마치 짠 듯이 할아방에게 소리 한 곡조를 요청하고, 그가 한 소리 부르기 시작하는데 정말 잘 한다. 마침 용필에게 지적받고 양동이 뒤집어쓴 채 노래 연습하던 뽕똘과 대영은 할아방의 노랫소리가 들리자 지금 저쪽에서 놀고 있다면서 그쪽을 향해 달려간다. 마을 사람들이 한데모여 소리에 맞춰 풍악을 울리는 중이며, 멀리서 대영이 '댄서 김'이 되어 괴이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 시퀀스의 핵심은 그들만 신났다는 점이다. 아까 전만 해도 가게 앞에서 오줌 싸다 얻어맞고, 개밥그릇의 물을 먹고, 소주 훔치려던 남자가 노래를 굉장히 잘 부른다. 이 점에 관해서 관객에게 어느 정도 납득을 시켜줘야 했었다. 그런데 작품은 이 순간이 등장하기 이전 30분동안 할아방을 코미디의 대상으로만 삼을 뿐, 음악적인 이야기에 관해서는 어떠한 말도 해 주지 않는다.

 

 

물론 이런 음악적인 부분에서 고수의 면모를 보여준 이 사람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30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리고 그 동안 작품은 이 인물에게 큰 비중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나마 등장해도 화장실 코미디에서나 발생할 법한 상황들을 만들어 내어 어떻게든 웃기는 것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소리가 한 곡조 뽑혀나오자 어안이 벙벙한 것이다. 이전과 지금의 갭이 너무나 커서. 그래서 <어이그, 저 귓것>의 첫번째 음악판은 관객의 입장에선 난장판으로 보인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할아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할 때 거리낌 없이 뛰어가서 신나게 논다. 하지만 관객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쌍방향 소통을 하는 영화는 드물다. 그런 영화는 필름이 영사되는 매체적 한계 이상의 것들을 끌고 들어와서 극복했을 때 뿐이다. (남기남 감독의 <영구와 땡칠이> 라든가.. 짐 셔먼 감독의 <록키 호러 픽쳐 쇼> 라든가..) 일방적으로 작품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상황들이 너무나 이상할 뿐이다.

 

 

 

여기서 느낀 것은, 현재까지의 오멸 감독은 '작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에는 참 미숙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두번째 작품인 <뽕똘> 부터 담고 있는 이야기의 함의를 키워가는 모습을 보였다. 소규모 인원으로 영화를 찍는 이야기는 중반부로 가면서 제주도의 신화적 요소들을 끌고 들어왔으며 세번째 작품인 <이어도> (<- 오멸 감독이 극장 개봉을 할 생각은 없다고 했던..) 와 최근작인 <지슬>은 기본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제주 4.3 이라는 '역사' 였다. <어이그, 저 귓것>도 빛이 나는 순간은 순수하게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에서 창출되는 소동극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세상의 이야기'를 끌고 들어와 작품 속 인물들에게 맞출 때다.

 


그 순간은 다행히도 내가 이 작품을 좋지 않게 봤던 순간에 거의 이어서 등장한다. 시작은 뽕똘의 아내가 아기에게 쓸 기저귀를 사러 할망의 점빵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마침 점빵에 기저귀가 다 떨어져서 도착하는데 몇 일 걸릴 거라고 얘기해준다. 뽕똘의 아내는 그럼 아껴써야 겠다고 말하며 조금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가게를 나선다. 남편은 밭일을 하지 않고 노래를 배우겠다고 나돌아 다니는 중인데 집에는 아기 기저귀조차 없다. 이런 와중에 할망이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은 늙었는데 대형마트 때문에 사람이 잘 오지도 않는 이 점빵을 누구에게 줘야 할 지... 이 작품이 '음악영화' 로서의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순간은 바로 할망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이다. 제주민요 중 하나인 '망건노래', 혹은 '양태 젖는 소리' 가 점빵할망 역을 맡은 오영순의 육성으로 불려진다. 그녀의 육성과 함께 겹쳐지는 것은 뽕똘의 아내가 터덜터덜 집으로 귀가하는 것이다. 예술을 노래하며 한 곡조 뽑고 신나게 사는 사람들이 있지만, 동시에 세상에는 하루를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품은 이런 고민을 제주도의 여성들에게 투영한다. 이것은 인상적인데, 단순히 남성들이 철이 없다기 보다는 '제주도에는 여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끌고 들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이런 이야기의 근거로 자주 전해지는 것은 바닷가나 섬 지방에 살고 있는 여성들의 숙명이다. 남자들은 바다에 고기잡이를 하러 떠나고, 여자들은 남는다. 남자들은 풍랑을 만나면 대부분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바다에서 '이어도를 봤다' 는 이야기도 여기서 유래하는데, 실제로 이어도는 섬이 아니라 평평한 바위라고 한다. 그런데 납작해서 수평적인 시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위에서 봐야만 보이는 것이 이어도인데, 이 바위를 볼 수 있을 정도의 위치까지 가 있다면, 풍랑을 만나 파도를 이용해 배나 사람이 그 위치까지 떠 있다는 얘기가 되므로 살아남기가 힘들다. '망건노래' 에는 '이여 이여 이여도 허라. 이여라는 말에 눈물이 난다.' 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이 할망의 입에서 불려질 때 노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비애의 정서를 가진다. 작품이 납득이 가고, 인상 깊어지는 순간이다.

 

 

 

 

* 망건노래 *

 

 

 

* 인생길 *

 


그리고 뒤이어 용필을 연기한 양정원이 자신의 자작곡인 '인생길' 을 부를 때 (양정원은 실제로도 제주도에서 가수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곡은 이전에 할망이 부른 '망건노래' 의 훌륭한 반대지점이 된다. 제주도의 여자들은 비애가 느껴지는 슬픈 소리를 하고 있을 때, 제주도의 남자들은 '인생은 멀고 먼 하늘 끝'을 부르며 계곡에서 헤엄치며 놀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다. 이 곡은 작품의 개봉이 끝난 후에 찾는 사람이 많아질 정도로 인기곡이 되었지만 듣고 있으면 참 서글프게 관객에게 웃음을 준다는 생각이다. 이 두 곡이 지나간 뒤에 작품은 한동안 캐릭터 코미디에 집중하는데, 초반부와는 다르게 그 상황들이 어색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할아방이 뽕똘에게 할망에게 자기 오줌 눈 것을 일러바쳐서 앙심을 품고 그를 혼내려다 졸지에 레슬링이 되어버리는 시퀀스도 그렇고.

압권은 술을 못 마시게 되어 시원섭섭해진 이 남자들 중에서, 대영이 아이디어를 내어 자기 친척집이 오늘 가문잔치를 하는데 거기 가서 술을 좀 얻어마시자는 아이디어를 낼 때다. 용필이 심드렁하게 거기 가면 축의금도 내야 하지 않냐고 다그치자 뽕똘이 간단하게 방법을 얘기한다. "거 봉투에 5천원 담아서 주면 되죠. 제가 가져 올게요." (<- 참고로 이 작품이나 <뽕똘>이나 밑에 '한국어 자막'이 있다.) 그리고 고수들이 승부를 내려고 이동할 때 나올법한 스코어 음악이 흘러 나오며 한껏 차려 입은 4인방이 위풍당당하게 대영의 친척집을 향해 슬로우 모션으로 걸어갈 때다. 이 시퀀스의 끝은 가자고 한 대영이 어머니에게 들켜서 얻어맞고 끌려가는 것이다. 나는 이 시퀀스를 보고 웃겨서 뒤집어 지고야 말았다. 두번째 감상 때부터는 박장대소까지는 갈 수 없겠지만, 계속 사람의 입가에 미소를 끊이지 않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어이그, 저 귓것>이 어느 지점부터 갑자기 긍정적인 면에서 인상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노래를 통해 예술가의 삶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민요를 맛깔나게 부르는 할아방, 음악가로 성공하려 했던 용필, 댄서가 되고자 하는 대영 / 댄서 김, 음악을 배우려는 뽕똘은 지금 현재의 세상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왜냐면 어느새인가 세상은 예술을 향유하고 즐기지 않고, 한 끼 먹고 굶어죽지 않기 위해 온갖 더러운 짓을 감수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면...나는 서민이기 때문에 어딘가 콕 찝을 곳은 있겠지만, 어쨌든 세상이 그렇게 변해버렸다. 대기업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동네 점빵을 몰아내고 대형 마트를 건설하며 음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기 처자식만 고생시키고, 물건값조차 제대로 지불하지 못한 채 외상만 해대는, 그리고 남의 집 잔치에 축의금으로 5천원만 넣는 귓것들'이 되어버렸다.

 

문득 든 생각은 '예술가에게 예술적 영감 이외에 인성까지 바라는 것은 과한 것일까?' 하는 점이다. 예술의 시대에 태어났으면 존경받았을 할아방은 지금의 세상에선 젊었을 적 오입질 많이 하여 할망에게 지탄 받는 노인일 뿐이다. 아니, 뭐.. 건스 앤 로지스의 액슬 로즈도 생각해보면 '노래 쥑이게 부르는 나쁜 놈'의 이미지니까. 하지만 인성이 어찌됐건 공통되는 것은 이들의 노래만큼은 예술적으로 존경 받는다는 점이다. 언제나 할아방을 쫓아내던 할망은 막상 본인이 나이가 들고, 점빵 또한 폐점의 위기에 놓였다는 것을 알자 갑자기 술상을 들고 할아방의 집을 찾아간다. 그를 위한 술상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때 할아방은 잔칫집에 놀러 가 있다. 예술가들은 이기적인 족속들이다. 결국 나이가 든 할망은 어느샌가 갑자기, 홀연히 가버린다. 이기적인 예술가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죽은 사람이 들어줄 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녀를 위해 한 소리를 읊어주는 것이다. 할아방은 이후, 한 번도 소리를 부르지 않는다. 그나마 예술가가 살만했던 땅인 제주도 이젠 점점 그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오멸 감독은 이렇게 사람 사는 이야기를 무대가 되는 장소의 역사나 신화와 연결시킬 때 굉장히 아름다워지고 깊어진다.

 

 

 *  이 시퀀스는 도입부만큼 아름답게 찍혔을 뿐만 아니라 마치 '백아절현 (伯牙絶絃)' 같은 사자성어를 생각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 때 살았던 거문고의 달인, 백아의 솜씨를 잘 알아줬던 사람은 친구인 종자기 뿐이었다. 그 종자기가 어느 날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 자신의 소리를 잘 알아주는 사람이 죽었다면서. 할아방은 나이가 들었다. 할망들도 사라지고, 언젠가 그도 사라질 것이다. *
 

대개의 예술가들은 각개 행동은 좋아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서로 보듬으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들도 결국은 사람이니 말이다. 용필은 뽕똘에게 왜 할아방이 저러고 사는지 사연을 듣고 나서 그를 위한 헌정곡을 쓴다. 노래를 배우고자 찾아오는 뽕똘을 언제나 매몰차게 쫓아냈던 용필은 그 날따라 희한하게 그를 직접 자신의 무대에 포함시킨다. 이 시퀀스는 꼭 <뽕똘>에서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둘러보는 한가운데서 등장인물들이 영화를 찍는 것을 연상케 만든다. 그만큼 다큐멘터리적으로 찍혔다는 이야기다. 양정원은 실제로 그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카메라의 배치도, 느낌도, 모여있는 사람들도 '영화적'이라 볼 수 없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적 수법이 결합되는 순간, 작품은 뭔가 결의를 다지는 것 같다. <뽕똘>에서도 그 순간만큼은 웃을 수 없었다. 그렇게 희극적으로 보이던 인물들이 다큐멘터리적 기법으로 찍힌 시퀀스에서는 한 없이 진지해 보이기 때문이다. 여태껏 희극의 대상으로 삼아왔지만, 결론적으로 감독이 이들을 애정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다.

 

작품은 모든 상황이 끝난 뒤 다시 예전처럼 술을 마시며 수다를 나누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 중에는 끝내 성공하겠다고 육지로 올라간 사람도 있고 죽음을 맞이한 사람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고 자연의 순리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에게는 주인공들의 존재가 처음엔 우스웠지만 지금은 그들이 존재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들은 이제 귓것같은 짓거리를 하며 살지 않는다. 뽕똘은 자신의 아내가 앓아 눕자 미안함에 알아서 집안일을 하고, 그녀를 다시 챙기며 용필은 멋지게 공연을 한다. 적어도 관객의 눈에는 과거의 그들같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그들은 예술가이며, ..비록 같이 산다면 좀 골 아플지라도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지 않고, 오히려 미움을 받기도 하지만 (참고로 이 말은 미움을 받으려고 작정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태어나 노래 할 수 있다면 / 같은 길을 가겠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말이다.

 

신은 이기적이라 자신이 탐내는 사람들을 꼭 일찍 데려가곤 한다. 그래서 쓸모없는 인간들만 남겨놓는 것 아니냐고 우리 입장에서 항의할 법도 하다. 그러나 어떤 때는 보는 것만으로도 활력을 얻게 해주기 위해서, 아니면 보는 사람에게 교훈을 주게 하고 싶어서 다 데려가지 않을 때도 있다. 바로 이들. 이들이 만들고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그런 기분이 든다. 처음 시작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됐던 <어이그, 저 귓것>은 결국 멋있는 '음악영화'로 승화되었다. 이 작품은 오멸 감독의 현재 발표된 작품들 중에서 가장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뽕똘>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감독이 뒤로도 이런 형식을 다시 시도할 것 같지는 않아 보여서 동시에 유일하고 소중하다.

 

 

 


* 다시 태어나 *

작사, 작곡: 양정원

 


내가 다시 태어나 숨을 쉴 수 있음에

나는 다시 나는 다시

내가 다시 태어나 걸어갈 수 있음에

나는 이제 나는 이제


얼마나 기다렸는지 세상 밝은 빛을

얼마나 기도했는지 가슴 졸이며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노래 할 수 있도록

내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같은 길을 가겠노라고


내가 다시 태어나

노래 할 수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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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ire: 라틴어. 산책하다, 섹스하다
 
감독: 이송희일
주연: 김영재, 한주완, 윤종훈
음악: 조브라웅
촬영: 윤지운
18세 관람가 / Color / 38분
 



 
 
이송희일 감독의 <지난 여름, 갑자기>의 시작은 학교 학생인 상우의 모습을 보여준 다음, 학교 선생인 경훈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두 인물을 보면서 관객이 느끼는 특이점은 조급함과 여유로움이다. 상우는 겉보기엔 무더운 여름날을 견디기 위해 미니 선풍기를 돌리고 음악을 듣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눈 앞에 버스가 보이자, 곧 그것을 응시하더니 어쩔줄 몰라한다. 이제 보니 고민이 되는 것이다. 저 버스를 타고 누군가에게 가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가. 상우는 버스를 타고, 다다를 곳은 가정방문을 준비하며 아침에 말끔히 샤워를 한 뒤 준비하는 경훈에게로다. 그래. 원래 뭘 하든 간에 학생이 선생을 만나러 가는 건 긴장되는 일이지. 사제 간의 교류라는 것이 왜곡된지 오래니까.

 

그런데 수줍고 엄숙해야 할 이 관계는 이제 보니 그 모든 게 빠져있다. 상우는 게이 고등학생이다. 어느 날 게이 바에 갔다가 우연찮게 거기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경훈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그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저장해둔다. 이 순간은 훗날, 이 작품의 이야기를 위해서 쓰여지게 된다. 바로 상우가 경훈에게 핸드폰 사진을 통해 협박하는 것으로 말이다. 상우는 저돌적이지만 두렵다. 그는 수업시간에 경훈이 계속 자기를 쳐다본 것이 좋아하는 감정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자신만의 생각에서만 그러지 않을까 싶어 두려웠는데, 게이 바에 온 경훈을 보고 확신한다. 그래서 그 믿음 하나로 욕도 해보고, 협박도 하며 달려든다. 중학생 시절이 지나간 이후에 남아있는 그 나이 약간의 허세 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고백하는 순간은 두렵다. 이 작품이 갑자기 흥미로워졌던 이유는 협박을 하고 당하는 관계를 역전시킨 것과 더불어 이 순간 때문이었다. 상우가 경훈에게 협박을 할 때는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다가, 하루만 자신과 같이 있어달라고, 그리고 자기가 하자는 대로 하자고 부탁을 할 때 시선을 회피하고 얘기하는 것.
 
이 때 카메라는 잠시 누군가의 눈이 된다. 경훈이 서 있는 방향과는 다른 지점에서 상우의 몸을 훑어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이 경훈의 시선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의 눈이 허용할 수 있는 시야 안에 있는 각도에 존재하기 때문에 어쩌면 그의 시선일 수도 있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상우의 팔뚝은 성인 남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굵고 빳빳한 힘줄이 서 있다. 어깨 역시 그 만큼이나 넓다. 그러나 시선을 더 올려서 마침내 얼굴에 다다르게 되면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성인 남자'가 아니라 원하는 것을 말하는데도 너무나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소년 남자' 다. 그 소년은 갑자기 겁이 났는지 시선을 피한채 말을 하고 있다. 어쩌면 그 시선은 정말 경훈의 시선이었으리라. 그 모습이 보여진 뒤, 경훈은 상우를 쫓아내려는 생각을 잠시 거두고 차에 같이 태워서 상우의 말대로 한강 유람선을 타러 가기 때문이다. 그 유람선은 경훈이 수업시간에 타 보고 싶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가 보길 열망하는 그런 장소는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구경 가 보는 것이 더 옳을텐데, 자기 반 학생과 간다. 나는 잠시 경훈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됐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나쁘지는 않을 거 같은데? 내가 학교선생이 아니라서 이렇게 막말을 할 수 있는건가?

 

'고등학생', 즉 열일곱부터 열아홉 사이의 존재는 스스로가 그 시절이었을 때, 아니면 지금의 시선으로 그들을 응시할 때 일종의 지옥같은 미혹처럼 다가왔었다. 마음은 성숙하지 않지만, 몸은 이미 성숙해져버린 시기였다. 그래서 지금 현재 그 치명적인 아청법으로 규정 지으려 해도 다소 애매한 측면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 말마따나 오래 전 시대였으면 이미 충분히 결혼도 할 수 있는 나이였으니 육체적인 문제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경훈은 계속 상우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거기에는 옛날이 아닌 바로 지금, 성인으로서의 자신이 처한 상황과 (경훈은 작품의 초반부에 지인과 통화하면서 다른 학교에 자신이 갈 자리가 없는지를 물어본다.) 고등학교 선생이 고등학생을 사랑할 수 없다는 인륜, 그리고 자신은 게이가 아니기 때문에 이 게이 고등학생에 대한 감정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나름의 '자기판단'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판단인지 아니면 애써서 하려 드는 자기합리화인지에 관해서는 이미 관객이 볼 땐 다 티가 나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인디플러그에서 다운로드 받아서 봤다. 극장에서는 보지 못했다. 상영되던 기간을 놓쳤기 때문이다. 내가 극장에서 본 작품은 마지막에 소개할 <백야> 뿐이다. GV 진행이 원활하게 되도록 도우러 간 김에 그 작품을 본 것인데, 이송희일 감독과 그의 이 3부작에 출연한 배우들과 함께 한 GV에서 나는 한 가지 흥미로운 언급을 들을 수 있었다. 바로 감독이 <지난 여름, 갑자기> 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대구 동성아트홀에 GV를 하러 온 배우들이 마침 <백야>와 <남쪽으로 간다>의 배우들이어서 그 작품들 위주로 질문이 이뤄진 감이 있지만 진짜 이유는 이 작품에 대한 감독 본인의 불만족 때문이었다. 다른 두 작품을 이미 다 촬영하고 난 시점에서 갑작스런 사정으로 한 편을 더 찍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고, 그런 여건 속에서 감독의 말에 따르자면 '급하게 만들어진 작품' 이 바로 이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품에 대한 질문은 감독의 언급을 제외하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확실히 이 작품은 이송희일 감독이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냈다기 보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다른 작품들로부터 브리콜라주를 하려 들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일단 제목이 조셉 L. 맨키비츠 감독이 1959년에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캐서린 헵번을 주연으로 하여 찍은 작품과 같다. 게다가 그 작품도 동성애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음악이다. <백야>가 과연 그들의 음악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앨범에 동명제목의 음악이 있으며, <남쪽으로 간다>는 확실히 영향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여름, 갑자기>의 경우에는 감독 본인이 준비하다가 엎어져서 현재 준비 중인 장편인 <야간 비행>의 프롤로그 같았다고 언급을 한 적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예고편, 그리고 본편에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음악 (본편은 멤버 중 한 사람이기도 한 조브라웅의 자작곡들로 채워졌다.) 이 쓰였기 때문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작품은 여러 장소를 이동하긴 하지만 차 안에서 인물들이 벌이는 대화나 이야기 전개의 비중도 만만찮음을 생각하면 <남쪽으로 간다>의 변주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결말부를 제외하면 이 작품은 스코어 음악을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키지 않는다. 실제로도 그렇지만 라디오라든가, 아니면 헤드폰을 통해서만 등장하기 때문에 음악이라는 존재를 주변부로 내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식으로 음악이 사용된 작품들을 몇 편 본 기억이 있다. 예를 들자면 프란츠 왁스먼이 사운드트랙을 담당했지만 막상 보면 스코어 음악이 사용됐는지 잘 모를 법도 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54년작인 <이창> 이라든가, 차 안에선 잘 들리는 음악이 인물이 바깥으로 나오면 거의 들리지 않는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1973년작, <붉은 결혼식> (국내 VHS 출시제목: <애정관계>!!) 같은 경우들이 있으니까. 

 

그러나 내게는 이송희일 감독이 가장 불만족스럽다고 한 이 작품이 도리어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참고로 감독은 이 세 작품들을 묶어 'Coire' 라고 이름붙였고, 외국에서 상영할 때는 이 세 작품을 한 방에 몰아서 모두 상영했다고 한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굳이 하나의 흐름을 가진 작품들의 모음으로 봐야 할 테니 무엇이 더 나은가를 논하는 걸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세 작품을 어떤 순서대로 봐야 하는지도 무의미할 것이고. 그래서 '굳이 꼽자면' 이다. 굳이 꼽자면. <후회하지 않아>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이송희일 감독은 '밤을 참 사랑하는 것 같다'는 감흥이었다. 게이가 등장하는 작품들을 만드는 또다른 감독인 김조광수의 작품들이 대체적으로 최대한 낮을 배경으로 해서 발랄하게 진행되던 것과는 정 반대의 시간대 설정이다. 이 감독은 낮에 뭘 하면 되게 어색해 보였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낮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그것도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기건, 나쁜 일이 생기건 상관없이 살벌할 정도로 밝은 한 여름의 낮이다. 이것은 게이 로맨스 장르의 작품을 만드는 것에 있어 흔히 가지고 있는 인식을 깨게 만든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게이 로맨스에 관해 우리가 정서적으로 상상하게 되는 시간대는 밤, 혹은 어둠이 드리워질 때다. 이것은 실제로 이태원이나 낙원동 쪽에서 게이들이 자주 가는 바 라든가, 아니면 이들이 주로 활발히 활동하는 시간대가 주로 밤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생겨난 인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게이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소수자'라고 불리는 인생을 산다는 건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알 수 없는 무력에 의해 강제로 어둠 속으로 내몰리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 현실을 인식하고, 이 작품을 본다면 <지난 여름, 갑자기> 의 '차 안' 은 두 주인공이 이 소수적인 문제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허락된 공간이다. '한국에서'.

 

그러나 낮을 배경으로 했다고 이송희일 감독과 김조광수 감독이 공통되는 것은 아니다. (아. 이름 글자 수가 똑같구나.) 김조광수 감독은 무력이 그어놓은 경계 속으로 자신들도 당당히 두 발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며 싸운다. 반면 이송희일 감독은 이 3부작에 와서 더욱 확실해진 감이 있다. 그는 이 경계를 두 발로 걸어 들어가서 호소하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지우려 든다. 지우려 드는 것은 아예 그 원치 않는 구분을 없애 버리려 한다는 결의에도 해당된다. 그 순간, 이 작품은 단순히 이 주인공들의 관계가 선생과 제자라는 것 외에도 또다른 미묘한 긴장감이 생겨나게 된다.

 

유람선에 올라탄 경훈과 상우는 안에서 벌어지는 공연들을 보며 지낸다. 하지만 서로의 취향에 맞지 않는 듯, 작품은 그들이 공연을 보고 유람선 안을 돌아다니는 시퀀스를 마치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처리해놨다. 말하자면 괜히 탄 것이다. 바다를 보니 그나마 상우가 신이 나지만 경훈은 지루하다. 상우는 그것을 보고는 자신이 듣던 음악을 경훈에게 들려준다. 참고로 이 음악은 작품의 초반부에서 경훈이 상우를 태워가다 라디오를 트는데, 상우가 지루하고 어둡다고 말하며 꺼버렸던 라디오 속의 음악과 같다. 말하자면 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에 관해 마구 말할 수 있는 '차 안에서의 음악'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음악을 듣기 전의 경훈은 한강을 보며 상우에게 "물 더럽다." 고 말한다. 그런데 음악을 듣자, 카메라는 햇빛에 반짝이는 고요한 한강의 물살과 맞은편 전경을 보여준다.

 

원래 작품의 예고편에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2집인 <우정 모텔>의 수록곡 중 하나였던 '장단'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본편에서는 멤버인 조브라웅이 작곡한 '한강'이 흘러나온다. 라디오 속의 음악을 여기서 다시 등장시킨 부분은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자신이 숨겨온 모든 것들을 지킬 수 있는 차 안에서만 들었던 음악을 밖에서 다시 들었을 때에 느끼는 긴장감이 있기 때문이다. 날씨는 세상 모든 곳의 어두움을 드러낼 수 있을 듯한 치명적인 밝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숨기고 있는 것들이 모두 드러날 듯한... 이 때 이송희일 감독의 낮은 어둠의 속성까지 모두 갖춘 진중함을 가지고 관객에게 다가온다. 따뜻한 빛이 한 사람에게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태워 죽여버릴 것 같은 불안감을 주는 것이다. 그 때 상우와 시선이 마주친다. 상우는 경훈을 향해 웃어보인다. '차 안에서의 감정' 이 세상 밖에서 발현되는 순간이다. 이 긴장은 짜릿하다. 왜냐면 작품이 중시하는 것은 동성애적 감정이 지금의 세상에서 허용될 수 있는지를 논하는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플라토닉한 애정이든, 아니면 지금 당장 저 몸을 탐하고 싶은 욕정이든. 그래서 <지난 여름, 갑자기>는 Coire 3부작 중에서 가장 위험해 보인다. 그리고 이 유람선에서의 시퀀스가 지나가고, 다시 차 안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작품에서 상우가 듣기에 가장 가혹하다고 느낄 법한 말들이 튀어나온다.

 

 * "..그러면 왜 예전에, 나한테 여자친구 있냐고 물어봤어요?"

 

"기억 안 나."

 

"그 때 1학기 성적상담할 때 나한테 그랬잖아요? 방학 때 나한테 선물해준 책은? 그것도 기억 안 나요? 선생님도 나한테 관심이 있으니까.."

 

"나! 네 담임이야. 네 선생이야!"

 

"수업시간에.. 나 자꾸 훔쳐 봤잖아.."

 

"..미친 놈! 바지만 입으면 누구나 졸졸 쫓아다니는 너 같은 피래미들, 눈만 감으면 환상이잖아!"

 

"..환상 아니에요."

 

"미안하지만, 넌 네 식성 아니야. 어려! 젖비린내 나! 내가 왜 널 피했다고 생각해? 무서워서? 아니.. 귀찮아서. 거머리처럼 달라 붙을까봐. 너 같이 어린 애들은 도저히 흥분이 안 되거든!"
 

사실 이송희일 감독이 대사를 잘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이 대사들이 등장하는 시퀀스는 이상하게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오히려 꾸밈이 없는 것이 더 정서적으로 와닿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


요약하자면 강한 긍정의 감정에 이르기 전에 강한 부정이 나오는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시퀀스가 끝나는 시점이 시작한지 30분째 되는 순간이다. 이 작품의 상영시간이 38분인데, 남은 8분 안에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할려고 저러나? 작품은 이 순간에 두 등장인물이 헝클어 놓고 꼬아버린 실타래를 한 번에 풀 수 있을 결말을 선보인다.
 
<남쪽으로 간다>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결말부가 강렬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는데 감독은 GV에서 역시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먼저 얘기했었다. 힘들게 빌린 아파트였고, 매직 아워의 순간은 짧고, 무엇보다 소재 때문에 빌려놓은 곳이 취소될까 두렵다는 것. 그리고 장비의 열약함 때문에 감독 본인이 생각했던 '더 나은 비전'이 구현되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나는 감독의 머리 속에 뭐가 구상되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멋진 걸 생각해놓고 있었는가 보다. 그러나 더 나은 비전이라는 표현에서 '더 나은' 이라는 말이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더 깔끔하고, 더 유려하고, 한 마디로 더 멋진' 것이라면 글쎄.. 이 작품에서 그게 어울렸을까? 지나간 일에 '만약' 이란 없지만 말이다.

 

차 밖으로 뛰쳐나간 상우가 먼저 경훈의 집 앞 계단에서 기다리고 서 있다. 경훈의 차에서 뛰쳐나갈 때 깜빡하고 헤드폰을 놓고 간 까닭이다. 과연 고의였는지, 아니었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겠지만. 헤드폰을 건네주고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드러간 경훈은 밖에서 상우가 두드리는 문소리를 차마 거부하지 못한다. 문을 열고, 상우가 들어온다. 잠시 일몰을 바라보던 상우는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경훈을 바라본다. 이 때 카메라는 잠시 누군가의 눈이 된다. 상우의 눈일 것이다. 상우가 서 있는 방향에서 경훈을 훑어본다. 그러나 이 때의 카메라는 허리부터 얼굴을 올려다 보지 않는다. 카메라는 숄더 쇼트로 경훈을 바라본다. 어깨. 그리고 시선을 피하는 얼굴. 끝까지 자신이 선생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투. 상우는 그 어깨에 자신의 턱을 괴고 안긴다. 흔히 사랑의 관계에서 어깨에 기대는 것, 그리고 안기는 것이 누군가에게 있어 근심걱정을 덜고 의지하는 느낌이라면 지금이 바로 그럴 것이다. 상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경훈의 바지에다 손을 넣어 그의 성기를 애무한다. <지난 여름, 갑자기> 에서 가장 자극적인 순간은 학생이 선생의 성기를 애무하는 쇼트에서다. 음.. 유일하게.. 3부작 중에서 섹스가 없는 작품이기도 하고. 나름 자랑이라면 자랑이다. 그리고...
 

 

어쨌든 소년은 잘못이 없다. 소년은 저 선생이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끝까지 밀어부쳤을 뿐이다. 마지막 순간에 보여주는 미소는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지은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작품을 보면 저 소년이 참 나쁜 놈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몸이 이미 이 소년에게 가 있지만 머리 속으로는 끝까지 자신이 이성애자라는 최면을 거는 이 선생이 소년의 얼굴을 주먹으로 칠 때, 그의 뒤로 공산당원의 그림이 그려진 접시가 보인다. 동성애는 공산당만큼 나쁜 것일까? 작품은 소년에게 그런 악인의 여지를 남겨놓는다. 미소는 마침내 자신에게 넘어왔고 굴복시켰다는 개인적 만족감에서 지어진 것이 아닐까? 과하게 이분법적으로 남겨놓자면, 그런 '악인처럼 보이는 생각' 이 이성애자들의 인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독은 딱히 그런 함의에 관해서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는 동성애자들의 입장을 변호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학생과 선생의 '사랑이야기'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이 소년에 관해 복합적인 느낌을 남겨놓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몰이 진행되는 중이다. 적당히 아름다워서 좋다. 경훈이 상우의 멱살을 잡을 때, 상우가 또 맞을까봐 두려워서 눈을 내리깔고 오므린 손을 올리는 부분이 좋다. 진실된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위험한 건 지금부터다. 이 아청아청한 세상에서 남자 사제지간의 사랑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그들은 금지된 사랑을 하고 있다. 그래서 작품의 결말은 어둠이 드리워지는 시점에서 끊긴다. 하지만 금기는 세상의 구성원들이 본인들의 시각에서 만든 것일 뿐, 세상이 만든 것은 아니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그 점에서 <지난 여름, 갑자기>는 이 아청아청한 세상에서 '게이 로맨스' 가 아닌 '그냥 로맨스'가 된다. 퇴화가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그냥 앞의 표현을 지워버렸을 뿐이니까. 어둠이 다가오고, 경계는 사라진다. 위험하지만, 자유롭다. 인상적이다.

 

 

p.s.1 - '아청아청'은 '아청법' 입니다. 교복 취향은 아닙니다만 법 자체는 굉장히 재수없다고 생각하는데, '아청아청'이란 요상한 표현은 어감 자체가 그나마 덜 재수없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p.s.2 - 근데 뭐 딱히 이 작품은 문제가 될 것도 없는 게, 상우를 연기한 한주완 님 나이가 30세거든요. 오히려 서른 살이 뭐 이리 동안이냐고 따져야 할 정도로 교복이 잘 어울립니다.


Pt.2 에서 뵙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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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체적으로 설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보시고 극장 가셔도 괜찮을 거에요.
사실 소설이 있으니까 스포일러니 하기도 그렇긴 하지만. *
 
감독: 임순례
주연: 김윤석, 오연수, 백승환, 한예리, 박사랑, 김태훈, 송삼동, 주진모, 정문성, 이도경, 김성균
음악: 장영규, 달파란
촬영: 조용규
15세 관람가 / Color / 121분
 
(2013, 2, 14)


.....

 

 

고지서에 부과된 납부금을 징글징글하게 안 내고 버티는 찻집이 하나 있다. 정확히는 집과 찻집이 하나로 합쳐져 있는 것이지만. 이미 어떤 대답이 나올지 아는 듯 하지만 어쨌든 납부금 받으러 온 공무원은 찻집 아들인 나라에게 아버지가 어디 가셨는지를 물어본다. 아들은 마치 외운 듯이 척척  "저희 아버지는 멀리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무슨 남쪽 섬이랍니다. 바닷가 언덕바지에 집을 짓고 밭을 일궈 수확의 계절이 될 때 쯤에 가족을 데리러 온다고 하셨습니다." 라고 이야기한다. 작품은 최나라 역을 맡은 아역 배우인 백승환에게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소설에 나오는 문장을 거의 그대로 말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재밌게 볼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라의 표정이다. 마치 앵무새처럼 그대로 외우듯 말하면서 이젠 더 얘기하기도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은 시각적인 면에서 더 자세해질 수 있는 영화 매체의 장점이다. <남쪽으로 튀어>는 잠시 원작과 궤를 같이 하면서 유쾌하게 시작한다. 그리고 그 유쾌함의 근원은 다름아닌 '범상하지 않은 것' 이다. 공무원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최나라의 아버지, 최해갑은 해경에 의해 바다 한가운데 어선 위에서 발견된다.

 

나는 일본문학과 어느 정도 맞지 않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고전이나 근대문학은 아닌데 현대문학에 와서 그런 느낌이 잘 드는 편이다. 애초부터 어떤 문학을 취향이라 정하고 그것만 파고 드는 건 아니긴 하나 여튼 그렇다는 얘기다. 뭐라고 딱히 꼬집어 표현하기가 애매하지만, 소설의 이야기보다는 가끔씩 작가 본인의 문화적 취향과 지식을 자랑하려고 드는 것 같은 게 문학을 읽는다는 생각을 방해하게 만드는 것 같다. 뭐, 가령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품의 이야기보다는 그 작가의 실제 문화생활에서의 스타일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 이야기나 주변인물에 대한 묘사보다는 그들이 뭘 마시거나 뭘 듣고 있는지를 신경 쓰는 듯 하는 것. 그 외에 문체의 표현도 있을 것이다. 근데 사실 이건 언제부터인가 현대에 출간되는 문학을 읽으면서 느꼈던 문제란 생각도 들고.. 하여간 이상하게 영화를 볼 때는 그런 거부감이 덜한데, 지금 가벼운 커버 디자인으로 출판되고 있는 일본문학들은 쉽사리 읽지를 못하겠다. 오히려 난 그 작가들이 소설보다 에세이를 발표한다면, 그걸 그나마 좋아하고 즐겨 읽는 편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보니 내겐 오쿠다 히데오가 쓴 원작소설마저도 역시나 취향과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즐겁게 읽혀지지는 않았다. 아마 이 작품의 영화화 소식을 알게 되지 않았다면 평생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그런 취향의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원작소설에는 분명 여러가지 면에서 독자를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임순례 감독의 영화화된 버전에서 아쉬움처럼 다가온다.
 
 


 
<남쪽으로 튀어>는 이런 이야기다. 최해갑과 안봉희라는 남녀가 있다. 아들 하나에 딸 둘을 둔 이 부부는 과거에 학생 + 민주화 운동의 선봉장에 섰던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중 특유의 행동력을 가지며 '봉 다르크'라는 별명으로 경찰과 검찰들에게 악명높았던 안봉희는 최해갑의 팬이라며 자청할 정도로 자신의 남편을 사랑한다. (이는 6~70년대에 학생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시기에 몸을 담았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오는 원작소설을 한국식으로 각색한 것이다.) 그리고 남편인 최해갑은 운동권에서 물러난 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급진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공안들이 파견되어 감시를 당하고 있다. 그리고 뻔히 다 들키는데도 불구하고 이 공안들은 자신들이 정말 잘 감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런 삶을 사는 가족의 집이니 세상 사는 게 편할리 없다. 그러던 중 해갑의 고향 후배인 만덕이 잠시 머물게 되고, 만덕을 통해 김하수라는 이름의 국회의원의 지원을 받는 건설사가 '들섬'을 재개발 하려 든다는 말을 듣게 된다. 옛부터 계속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섬이고 만덕과 해갑의 고향이기도 한데 어느새 보니 그것이 '국유지'가 되어 있었고 건설사가 아무 제한 없이 개발권을 가지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만덕은 다이너마이트를 몸에 두르고 김하수의 집에 쳐들어 갔다가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집에 차압딱지가 붙은 것을 본 해갑 가족은 만덕의 집이 있는 들섬으로 이사를 간다. 국민연금이라는 삥을 뜯길 필요도 없고,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공안의 감시를 받아야 하는 삶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찾아낸 것이다. (포스터에는 만덕을 연기한 김성균이 배낭을 메고 해갑 가족과 함께 해맑게 웃고 있지만, 그의 등장분량은 사실 적다. 잡혀가니까!) 그리고 들섬에서 생활할 때 김하수의 무리들이 찾아온다.
 
작품을 볼 때 새삼 감탄했던 것은 오쿠다 히데오의 원작소설이 정말 자국의 사회적 사건, 역사, 정서들을 직접적으로 인용하거나 차용하기 때문에 영화화가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걸 한국식으로 무겁지 않게 잘 각색했다. 원작에서는 프리랜서 작가였던 아버지는 영화화된 작품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첫째 딸인 민주의 이야기가 원작에 비하면 대폭 늘어난 편이다. 이 두 사람의 설정 변화, 그리고 이야기의 비중은 임순례 감독의 <남쪽으로 튀어>가 한국사회에 관해 뭔가 더 많이 끌어올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들어 줬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인 민주는 인문 대학을 포기하고 의상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교 담임 선생 한 명이 민주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이게 예나 지금이나 아청아청한 상황이기 때문에 자주 찾아는 가되, 보호자와 교육자의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문제는 일과 사랑 모두에 충실하고 싶은 민주는 한국사회에서 낙오자처럼 취급받고 있다는 점이다. 담임선생이 아끼는 제자가 학교를 그만두니 걱정이 안 되는 교사가 어딨겠냐고 말하자, 민주는 기분 좋은 듯 하지만 동시에 그 오지랖이 지긋지긋 하다는 듯 별 일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민주는 과제에 몰두하기 위해 독립을 선언한다. 아무 문제도 없고, 모든 것이 정상인 성인이다. 그러나 사회가 보기에 민주는 비정상이다. 대학을 거부하고 고등학생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꿈을 이룰 수 있는 문들은 모두 냉랭하게 문을 닫아버린다. 잠깐 등장하지만 민주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지른다.
 
그리고 해갑의 감독활동의 경우, 임순례 감독과 작품은 이마리오 감독이 2002년에 만든 다큐멘터리인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를 해갑의 감독작품이라고 칭한다. 나 같은 경우, 그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당시에 중학교 1학년이었다. 학교에서 뛰쳐나올 방법을 강구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학교와 입시학원에 '당연한 듯 속해있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학교 바깥에서 이런 운동이 벌어지는 줄도 몰랐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손지문을 개인정보화 하여 보관하는 주민등록증을 부러뜨려 버리라는 것인데, 실제로 2008년에 UN에서 한국 인권 상황 정기 검토가 이뤄졌을 때 주민등록증을 본 외국 정부 관계자들이 많이 경악했었다는 명숙 상임활동가의 증언이 있다. 최해갑 감독은 이 작품으로 인해 팬클럽까지 형성됐으며, 팬들은 그를 '최 게바라' 라고 부르며 그의 인간됨과 작품활동을 칭송한다. 그리고 민주의 담임선생도 최해갑 감독의 작품 상영회에 참석했다가 그의 팬이 되어버린다. 작품은 두 인물의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그 상황에 관계된 인물을 연계시키면서 점점 조그마한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이후에 다시 섬에서 만나 나름의 생활방식을 찾아서 살아갈 때, 기묘한 감동마저 든다. 아.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면서.
 


 

사실 세상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별 거 없다. 상영되고 있는 극장 좌석은 반의 반도 차지 않았으며, 진정 민주주의 사회라면 여러 의견들이 용인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최해갑 감독의 세상은 두 공안에 의해 국정원 쪽에 언제나 동태가 보고된다. 국장은 두 공안에게 이야기한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잘 하라고. 한국은 지독한 '자본주의' 다. 돈이 권력과 자유를 준다. 돈으로 학력을 사고,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비리를 통해 돈을 착복하고 사람을 지배할 권리를 획득한다. 감시 당하는 걸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살던 최해갑은 조그맣지만 통쾌한 복수를 한다. 최해갑을 따라붙던 두 공안이 그가 방향을 돌려 다시 오자 딴청 피우다가 의도치 않게 그에게 사인을 받는 시퀀스가 있다.

 

사인 해 주고 기분 좋아진 최해갑은 그들에게 "사인 받았으니 이제 주민등록증 찢어. 내 팬들은 다 찢었어." 라고 그들에게 종용한다. 그리고 공안들은 들키면 안 되니까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긴 하지만 정말 자신들의 주민등록증을 부러뜨려서 한강다리 밑으로 던져버린다. 선배들은 나름 머리 잘 굴리는데 현실의 후배 되는 애들은 어떻게 된 게 시민단체 간부 미행하다 들키기나 하고, 오피스텔 방문 잠그고 부모와 오빠를 불러달라 했을까? 당연히 <남쪽으로 튀어>가 촬영됐던 기간을 생각하면 염두해 뒀던 풍자는 아니겠지만, 작품이 한국사회의 정서를 그만큼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함의를 예언했다고 생각해도 별로 위화감이 없다. 난 <남쪽으로 튀어> 에서 최해갑의 작품 상영회와 주민등록증을 부러뜨려 버리는 것까지의 시퀀스를 작품 전체를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기도 하고, 또 가장 웃기기도 하다.
 
그 외에도 작품은 이야기 자체를 무겁게 만들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도입부의 스코어 음악이 브라스 섹션이 강조되어 빠르고 흥겹게 흘러가지만 그 순간만 지나면 음악이고 카메라워크고 다들 잔잔하게 흘러가는 편이다. 어떤 소재와 함의를 다루든 간에 이것을 잔잔한 유머가 있는 드라마로 봐 주길 원하는 작품의 의도 같은데, 들섬에서의 이야기는 마치 일본에서 TV 드라마, 토크쇼, 영화 등으로 이어졌던 '슬로우 라이프 연작' 을 연상케한다. 모두가 어떻게든 빠르게 작품을 이어가려 할 때, 임순례 감독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보는 것처럼 자신만의 영화적인 속도를 고수한다. 물론 원작이 두 권으로 이뤄진 장편소설 임을 생각하면 대량의 인물정리를 거치고 거의 원작의 뼈대만을 남겨놓는 수준의 각색을 한 셈이니 꽤나 컴팩트한 셈인데, 꼭 급박한 리듬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느긋한 정서를 가지고 진행시키는 것이 임순례 감독에게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있다.

 

이것은 예전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볼 때 너무 과잉된 감성을 보는 것 같아 생겼던 불만 때문에 더 좋게 느껴진다. 물론 관객들의 마음을 더 잡아 끌어보려면 그 리듬을 따랐어야 했는지에 관한 의문이 들지만, 적어도 내게는 좋다는 이야기다. <남쪽으로 튀어>는 최해갑이 김하수에게 권총을 겨누는 순간에도, 강만덕이 김하수의 집에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쫓아 들어가는 와중에도 사실 무심하고 느긋하다. 물론 스코어 음악과 촬영 기법이 나름 긴박한 정서를 보여주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런 영화적 처리가 절체절명의 순간을 담은 시퀀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라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이 작품은 2시간 1분짜리 작품인데 내겐 30분 정도 더 긴 작품처럼 느껴진다. 아. 이건 비판이 아니다. 감독들의 입장에선 사실 2시간 이내로 이야기를 끊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하지만 대부분은 그 정도 되면 너무 많은 이야기를 쳐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 최소한 원래 의도했던 작품의 속도와 리듬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정서가 이 작품에 잘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극장에서 작품을 보는 내내 적어도 그 속도감에 관해서는 참 편안했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단점은 다른 곳에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원작을 먼저 읽는 바람에 생긴 것이다. 1권에서 일본현대사의 역사적인 투쟁들이 조금씩 인용될 때, 나는 원작에서 '역사'란 그저 대사를 좀 더 찰지게 만들기 위해 표면적으로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권을 읽을 때 조금 기이했다. 임순례 감독의 작품에서는 '들섬' (실제로 이 들섬이란 곳이 있는지는 잘 모른다. 아마 가상의 공간이겠지? 실제 촬영지는 대모도였다.) 이지만 원작에서는 주인공 가족이 오키나와로 이사를 간다. 참고로 오키나와는 예전부터 일본에 속해있던 땅이 아니라 '류쿠 왕국' 이라는 독립된 국가였다. 독립 국가였다가 16세기 경부터 슬슬 일본에게 식민지 화가 되었던 곳인데, 아이들이 도쿄와는 너무나 다른 오키나와의 환경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하다 갑자기 작품이 한 페이지 당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인물을 대사를 통해서 오키나와의 역사를 설명한다. 어쩌면 이 소설이 장편이 된 이유는 이런 것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후로는 역사에 관한 구체적 언급은 없지만, 그래도 오키나와에서의 생활상이 꽤나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원작소설은, 그러니까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정확한 태도를 잊지 않고 있다. 어떠한 왜곡이나 미화도 없이, 이 땅이 처음부터 일본의 것이 아니었다면 그 사실을 정확히 짚고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키나와의 역사는 동시에 일본이라는 국가가 저지른 '식민 침략의 역사' 이기도 하다. 어느 누구건 간에 자기가 사는 국가의 침략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원작소설에서 압도당했던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있었던 일을 있었다고 말하는 태도는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정치사회적 관점의 차이를 가진 사람, 혹은 그것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한 사람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다. 후자는 특히 위험하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는 어떤 짓이든 할 족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술을 하는 사람은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 순간에 나는 압도당하고 말았다. 그런 확고한 관점과 태도에 감동받자 곧 이 작품이 과할 정도로 인물들의 대사나 행동이 역동적이려 드는 것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가령 원작 소설 2권 107 페이지에 등장하는 이런 표현들.

 

'...모모코가 눈을 치켜뜨고 지로를 흘겨보며 "오빠가 빨리 엄마한테 말 좀 해!" 라고 비난하듯이 말했다. / 지로는 별 말 없이 모모코의 뺨을 꼬집었다. 모모코도 빈틈을 놓치지 않고 발차기를 먹였다. 집에 돌아올 때는 각자의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페인트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본의 현대문학에서 이런 '발차기를 먹였다' 류의 표현이라든지, 뭔가 격앙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듯이 남발하는 느낌표 사용 같은 걸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원작소설에서 사용하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물론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봤자 그게 고쳐질 것도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런 표현들의 이용에 관해서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격앙은 '선동'이 아니라 할 말을 하지 않고 이득을 보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선언 같은 것이었다. 난 지금도 별 일 없이 잘 살고 있고, 앞으로도 더 잘 살거다. 씨발놈들아! ...같은 그런 격앙된 선언과 흥 말이다. 우리가 이기려면 더 신나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더 오래 살지.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런 확고한 태도를 고수하는 것이 여러모로 힘들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 등장한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 이나 <오래된 정원>,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 조근현 감독의 <26년> 같은 작품들에 관한 평가를 생각해보라. 영화에 관한 논의보다도 더 많이 이뤄졌던 것이 이것이 과연 정치적 선동인가에 관한 논쟁이었다. 사실 논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좀 민망할 정도로 어느 누군가를 아이돌처럼 숭배하는 사생 팬들이 몰려와서 욕 해대는 그런 풍경이었지만 말이다. 개중에는 잘 만들어진 작품도 있고, 영화적으로 볼 때 부족한 면이 많은 작품도 있다. 그러나 그런 작품들이 적어도 용감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논란이 많은 소재 속에서 자신의 생각은 이것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튀어>는 그 부분이 좀 약하다.

 


물론 이 작품에서는 초반부에 최해갑의 가족을 공안들이 보고하는 과정에서 공안국장이 '빨갱이' 라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인해서 나름의 승부수를 띄운다. 국민연금 거부만 해도 충분히 대단하다 싶은데 빨갱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것이, 한국에서 이 단어는 과학마저도 마비 상태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빨갱이란 표현을 쓰는 공안국장을 앞, 뒤 꽉꽉 막힌 인간형으로 설정하고 일종의 유머 장치로서 활용한 것은 이 작품이 그 단어를 활용하는 자들을 언제든지 풍자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 버전은 소설처럼 조그맣지만 한 방에 뭔가를 뒤집어 엎을 수 있는 듯한 힘이 많이 부족하다. 한국식으로 잘 각색하고, 또 유쾌한데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의 자격을 누구에게 줬는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봤다. 영화 버전에서는 아버지인 최해갑이 주인공이지만, 원작소설은 둘째이자 아들인 지로 (영화에서는 나라) 의 시선으로 대부분의 이야기가 전개됐다. 1권은 도쿄에서의 이야기가 주된 것이며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겪는 성적 호기심, 그리고 학교폭력에 맞서는 지로의 이야기 속에 부모의 이야기가 조금씩 겹쳐졌다. 아버지야 하도 유명하니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도 투쟁과 관련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있었던 지로는 폭력과 맞서던 중 사실을 알게 되고 주변의 자료를 모아 어머니의 과거를 조사한다. 원작소설은 한 청소년에게 부모의 과거를 찾아가는 설정을 만듦으로서 일본 현대사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지로가 마주하는 어머니의 과거는 나리타 공항 건설 반대 투쟁, 그리고 어머니가 반대 투쟁을 하면서 사람을 찌른 적이 있었다는 '현실'이자 '역사' 다. 이후, 지로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투쟁에 참가한 적이 있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곧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회피한다. 하지만 2권 끄트머리에 가서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원작소설 속 부모의 과거는 곧 일본 현대 학생운동과 투쟁의 역사 한 토막이다. 정치사회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많은 이 역사를 아이들의 말을 통해 풀어가는 것은 완화된 느낌으로 볼 수 있고, 상당히 영리하기도 하다. 그것이 설교가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으로 해석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부감이 덜하다. 그리고 이 때 오쿠다 히데오는 독자에게 물어본다. 어떤 의의는 제쳐두고, 그 시대의 그들의 대항 방식이 마냥 옳다고만 볼 수 있는지에 관해서 말이다. 그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눈으로 지나간 역사를 평가하기 때문에 원작 소설에서 2권 후반부, 그러니까 전체 책 페이지 중 본편이 310 페이지에서 끝이 나는데, 거기서 245~246 페이지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여러가지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지점을 제공한다. 이 대사는 원작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적을 때 자주 인용할 정도로 인기 있는 대사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허공을 바라보며 할 말을 찾고 있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 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지로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는 아버지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아버지 뱃속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벌레가 있어서 그게 날뛰기 시작하면 비위짱이 틀어져서 내가 나가 아니게 돼. 한마디로 바보야, 바보."
 
아버지가 자신을 비웃듯 입 끝을 치켜올렸다. 그런 식으로 말할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지로는 놀랐다. 누나도 의외라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이야기 상으로 후반부 끄트머리에 등장하는 원작소설과 달리 임순례 감독의 작품에서는 이 대사가 중반부에 돌입할 때, 그러니까 들섬으로 떠나기 직전에 집에 있는 짐을 꾸리면서 나라를 향한 해갑의 대사로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한 발 앞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사가 영화에서는 힘을 잃는다. 일단 개인적으로는 김윤석이라는 배우가 이런 대사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 불만족스러운 면이 있었다. 사실 김윤석이라는 배우의 이름을 거론한 것이, 작품 촬영 도중의 유명한 불화사건 때문은 아니다. 임순례 감독과 제작사, 김윤석은 나름의 합의를 본 듯 더이상은 그 이야기를 거론하지 않고 있고, <씨네 21>의 김도훈 기자가 트위터에 이와 관련한 글을 남겼다고는 하는데 내가 그걸 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가 나올 당시에도 따로 확인을 하지 않았다. 얘기를 들었다든, 증언이 있다든 말은 많지만 적어도 내가 본 것은 '설'이기 때문에 이 점에 관해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내가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함부로 말 할 수 없으니까.
 
나는 소설처럼 이야기의 중심을 김윤석 대신 나라 역을 맡은 백승환에게 줬으면 작품이 더 나아졌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위의 이유 때문은 아니다. 작품은 예의의 차원인지 원작소설의 대사를 몇몇 시퀀스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와 삽입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일본문학 식 대사가 김윤석이라는 배우에게 유독 잘 체화되지 않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일본적인 정서를 최대한 걷어내고, 한국의 정서로 어색하지 않게 바꾼 흔적은 역력하지만 소설을 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대사만 들어도 '일본스럽다' 라는 느낌이 확연하게 드는 것이 있다. 가령, 나라가 불량학생들에게 두들겨 맞고 돌아왔을 때 해갑은 아들에게 막걸리 한 잔 먹어보라고 무심하면서도 능청스레 말을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해갑은 곧바로 "싸울지 도망칠지, 네 뱃심을 딱 정해." 라고 이야기한다. 이 대사는 원작소설에도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은 아마 소설의 영화화를 이야기할 때 당연히 하게 되는 비교와 느끼게 되는 괴리감일 수 있다.
 
 


* 근데 위의 시퀀스가 있었나? 이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밑에 나라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는 건 기억이 나는데... *

 


그러나 내겐 김윤석이란 배우가 유독 이런 식의 대사를 소화하는 것이 상당히 어색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해당 국가에서 자주 사용하는 어투가 문화적으로 약간의 괴리를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김윤석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얘기다. 가령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에서 그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때 옆에 있었던게 도둑이야.' 란 멋이 철철 넘치는 대사를 하지만, 난 그의 입술과 이빨과 혀가 위의 대사보다는 '구라치다 걸리면 피 보는 거 안 배웠냐?' 라든가, '구남아, 니 한국 가 사람 하나 죽이고 오라.' 같은 대사를 할 때 더 자유롭게 놀려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센 느낌의 역할이 더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그렇게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대사의 체화력이 그렇게 유연하지가 않다.
 
그는 오쿠다 히데오와 임순례의 자장 안에 완벽하게 들어와 있다기 보다는, 여전히 오함마질을 하거나 4885 가진 번호판 찾다가 막 옷 갈아입고 간신히 이 세계에 진입한 것만 같다. 전의 대사는 어울리는데 후의 대사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활어처럼 싱싱하게 살아 숨쉬는 그가 굉장히 경직된 느낌의 대사를 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특별출연한 박원상도 비슷하다. 건설회사의 변호사로 나와서 최해갑에게 최종통보장을 주다가 된통 당하고는 돌아가면서 분통을 터뜨린다. '어디서 저런 괴물같은 인간이 튀어나온거야?' 라는 대사를 하는데, 여기서 '괴물같은 인간' 이란 표현이 그 상황과 배우에게 잘 붙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아역배우인 백승환은 훨씬 수월하게 대사를 연기한다. 도입부에 공무원에게 아버지가 어디 가셨는지를 얘기하는 것도 재밌었고 말이다. 어쨌든 이 시퀀스에서 그가 연기한 나라는 해갑의 대사를 듣고 원작소설에도 없는 말을 한다. "그 벌레, 나한테도 있는 것 같아. 아직 애벌레지만." 현실적이고 논쟁적일 수 있는 소재를 다루는 것에 있어 이런 비유적인 대사들은 현실과 극작품의 경계를 가를 수 있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백승환은 그 대사들을 어색하지 않게 잘 소화해낸다. 그건 아마 10대라는 나이가 주는 이미지도 있고 투박하기도 하지만, 충분히 유연하게 그런 대사들을 넘나드는 능력이 보여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그리고 해갑의 이야기까진 아니더라도 작품에서는 나라의 이야기와 민주의 이야기가 비중있게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작품은 이 세 이야기를 넘나들면서 종종 중심점을 잃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이유로 인해 상실되는 부분은 '이 작품이 뭘 말하려고 하는지' 에 관한 것이다. 어른이 주인공이 되면서 해갑과 봉희가 몸 담았던 학생운동을 비롯한 투쟁과 시대역사는 그냥 인물의 성격을 재밌게 설명하기 위한 유희거리가 되어버린다. 어른들은 굳이 그 이야기를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해당되는 시대를 거쳐온 사람들이고, 옳든 그르든 간에 그런 역사적 사실들에 관해 나름의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소설과 다르게 나라는 자신의 어머니인 봉희에 관해 알아가는 순간을 놓치고 만다. 아니면 적어도 그들의 시각으로 부모를 바라보는 것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영화 판본은 그런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전 시대에 관해 다양한 함의를 품을 수 있는 여지를 향해 가교 역할을 하던 어머니 캐릭터를 그냥 '봉다르크' 라는 장르적인 캐릭터로만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이것은 어쩌면 사회적인 분위기가 '선동'의 틀을 만들어 조성 되어버린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 점을 감안하면 이 작품도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의의를 만들어 줄 수도 있겠지만, 임순례 감독의 <남쪽으로 튀어>는 그냥 모순을 포함한 21세기 한국사회의 풍경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은 지점에서 멈춰버리고 말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섬을 개발하러 온 악역들에 맞선 해갑 가족과 섬 주민들과의 왁자지껄한 소동이 벌어지고, 이게 상당히 재미있지만 다 보고 나면 마치 허공에 소리지르는 듯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이것은 자식들이 자신들의 시선으로 부모를 바라보고, 그들의 행동에 관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그리고 그 중에서도 최해갑이 주인공이 되어 해갑의 시선으로 자식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 때문에 생겨난 문제다. 해갑 가족이 이뤄낸 자그마한 승리는 냉정히 생각하자면 또다른 위기를 불러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은 필름 속의 세상에서라도 이것을 통쾌한 승리로 포장하고 싶은 듯, 더이상의 말을 아낀다. 그 때문에 아버지 같은 어른은 되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우라는 해갑의 말이 모호해진다. 물론 작품은 마지막까지 유쾌하고 충분히 해갑의 편에 서 있다. 하지만 관객은 판단하기 애매하다.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쩌라는 말인가. 싸우라는 건가, 아니면 말라는 걸까? 이렇게 되면 남는 것은 모든 관객들이 '내 가족 중에도 최해갑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선에서 끝이 나고 만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 허공의 형상을 바라보며 얘기하는 꼴이다. 임순례 감독의 <남쪽으로 튀어>는 누구의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이야기 자체가 공기처럼 사라져 버리기도 하는 작품이다. 그것이 외국소설의 정서를 한국화로 훌륭하게 변화시킨 각색을 간과하게 만들어 버려 다소 아쉽다.
 
아. 만약 주인공인 김윤석과 대사의 관계로 나처럼 괴리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리고 유쾌하게 기분전환을 하며 현실을 바라보고자 한다면 이 작품은 적절한 선택이다. 전 출연진의 연기는 적절하며 특히 악역인 김하수를 맡은 배우 이도경의 연기는 정말 인상적이다. 이건 정말 연기가 아니라 실제 정치인을 가져다 놓은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엽다. 그리고 들섬 순경 역의 송삼동, 공안을 연기한 주진모, 정문성, 담임 선생 역의 김태훈까지.. 대부분의 출연진들이 이렇게 골고루 귀엽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내겐 아쉬운 작품이다. 이 작품은 조금만 바꿨으면 더 깊은 함의를 던지면서도 유쾌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었다. 허나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어느 지점에 의도적으로 멈춘 것이라 느껴져서 다소 아쉬운 작품이 되어버렸다.


p.s.1 - 무라카미 하루키 님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입니다만, 저는 그 분 작품 중에서는 에세이를 주로 좋아하지, 소설은 좋아하는 게 거의 없네요. 하나 있긴 한데 <언더그라운드>를 유일하게 좋아합니다. 근데 이게 이 분 작품들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니까.. 아. 하나 영화화가 된다면 궁금한 건 있네요. <해변의 카프카>가 영화화 되면 어떻게 나올라나 하면서 궁금한 건 있습니다.

 

p.s.2 -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님의 판본도 같이 이야기해야 되는데, 제가 아직 그 작품을 못 봤네요.

 

p.s.3 - 김태훈 님의 담임 선생 연기는 이전 작품들에서 해왔던 연기를 생각하면 많이 순해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형인 김태우 님이 했을 것 같은 역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형제가 각자 반대의 스타일을 연기하고 있네요. 김태훈 님은 이 작품에서 하고 있고, 김태우 님은 TV 드라마인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악역을 연기하는 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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