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ire: 라틴어. 산책하다, 섹스하다
감독: 이송희일
주연: 김영재, 한주완, 윤종훈
음악: 조브라웅
촬영: 윤지운
18세 관람가 / Color / 38분

이송희일 감독의 <지난 여름, 갑자기>의 시작은 학교 학생인 상우의 모습을 보여준 다음, 학교 선생인 경훈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두 인물을 보면서 관객이 느끼는 특이점은 조급함과 여유로움이다. 상우는 겉보기엔 무더운 여름날을 견디기 위해 미니 선풍기를 돌리고 음악을 듣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눈 앞에 버스가 보이자, 곧 그것을 응시하더니 어쩔줄 몰라한다. 이제 보니 고민이 되는 것이다. 저 버스를 타고 누군가에게 가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가. 상우는 버스를 타고, 다다를 곳은 가정방문을 준비하며 아침에 말끔히 샤워를 한 뒤 준비하는 경훈에게로다. 그래. 원래 뭘 하든 간에 학생이 선생을 만나러 가는 건 긴장되는 일이지. 사제 간의 교류라는 것이 왜곡된지 오래니까.

그런데 수줍고 엄숙해야 할 이 관계는 이제 보니 그 모든 게 빠져있다. 상우는 게이 고등학생이다. 어느 날 게이 바에 갔다가 우연찮게 거기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경훈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그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저장해둔다. 이 순간은 훗날, 이 작품의 이야기를 위해서 쓰여지게 된다. 바로 상우가 경훈에게 핸드폰 사진을 통해 협박하는 것으로 말이다. 상우는 저돌적이지만 두렵다. 그는 수업시간에 경훈이 계속 자기를 쳐다본 것이 좋아하는 감정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자신만의 생각에서만 그러지 않을까 싶어 두려웠는데, 게이 바에 온 경훈을 보고 확신한다. 그래서 그 믿음 하나로 욕도 해보고, 협박도 하며 달려든다. 중학생 시절이 지나간 이후에 남아있는 그 나이 약간의 허세 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고백하는 순간은 두렵다. 이 작품이 갑자기 흥미로워졌던 이유는 협박을 하고 당하는 관계를 역전시킨 것과 더불어 이 순간 때문이었다. 상우가 경훈에게 협박을 할 때는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다가, 하루만 자신과 같이 있어달라고, 그리고 자기가 하자는 대로 하자고 부탁을 할 때 시선을 회피하고 얘기하는 것.
이 때 카메라는 잠시 누군가의 눈이 된다. 경훈이 서 있는 방향과는 다른 지점에서 상우의 몸을 훑어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이 경훈의 시선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의 눈이 허용할 수 있는 시야 안에 있는 각도에 존재하기 때문에 어쩌면 그의 시선일 수도 있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상우의 팔뚝은 성인 남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굵고 빳빳한 힘줄이 서 있다. 어깨 역시 그 만큼이나 넓다. 그러나 시선을 더 올려서 마침내 얼굴에 다다르게 되면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성인 남자'가 아니라 원하는 것을 말하는데도 너무나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소년 남자' 다. 그 소년은 갑자기 겁이 났는지 시선을 피한채 말을 하고 있다. 어쩌면 그 시선은 정말 경훈의 시선이었으리라. 그 모습이 보여진 뒤, 경훈은 상우를 쫓아내려는 생각을 잠시 거두고 차에 같이 태워서 상우의 말대로 한강 유람선을 타러 가기 때문이다. 그 유람선은 경훈이 수업시간에 타 보고 싶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가 보길 열망하는 그런 장소는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구경 가 보는 것이 더 옳을텐데, 자기 반 학생과 간다. 나는 잠시 경훈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됐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나쁘지는 않을 거 같은데? 내가 학교선생이 아니라서 이렇게 막말을 할 수 있는건가?

'고등학생', 즉 열일곱부터 열아홉 사이의 존재는 스스로가 그 시절이었을 때, 아니면 지금의 시선으로 그들을 응시할 때 일종의 지옥같은 미혹처럼 다가왔었다. 마음은 성숙하지 않지만, 몸은 이미 성숙해져버린 시기였다. 그래서 지금 현재 그 치명적인 아청법으로 규정 지으려 해도 다소 애매한 측면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 말마따나 오래 전 시대였으면 이미 충분히 결혼도 할 수 있는 나이였으니 육체적인 문제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경훈은 계속 상우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거기에는 옛날이 아닌 바로 지금, 성인으로서의 자신이 처한 상황과 (경훈은 작품의 초반부에 지인과 통화하면서 다른 학교에 자신이 갈 자리가 없는지를 물어본다.) 고등학교 선생이 고등학생을 사랑할 수 없다는 인륜, 그리고 자신은 게이가 아니기 때문에 이 게이 고등학생에 대한 감정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나름의 '자기판단'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판단인지 아니면 애써서 하려 드는 자기합리화인지에 관해서는 이미 관객이 볼 땐 다 티가 나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인디플러그에서 다운로드 받아서 봤다. 극장에서는 보지 못했다. 상영되던 기간을 놓쳤기 때문이다. 내가 극장에서 본 작품은 마지막에 소개할 <백야> 뿐이다. GV 진행이 원활하게 되도록 도우러 간 김에 그 작품을 본 것인데, 이송희일 감독과 그의 이 3부작에 출연한 배우들과 함께 한 GV에서 나는 한 가지 흥미로운 언급을 들을 수 있었다. 바로 감독이 <지난 여름, 갑자기> 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대구 동성아트홀에 GV를 하러 온 배우들이 마침 <백야>와 <남쪽으로 간다>의 배우들이어서 그 작품들 위주로 질문이 이뤄진 감이 있지만 진짜 이유는 이 작품에 대한 감독 본인의 불만족 때문이었다. 다른 두 작품을 이미 다 촬영하고 난 시점에서 갑작스런 사정으로 한 편을 더 찍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고, 그런 여건 속에서 감독의 말에 따르자면 '급하게 만들어진 작품' 이 바로 이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품에 대한 질문은 감독의 언급을 제외하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확실히 이 작품은 이송희일 감독이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냈다기 보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다른 작품들로부터 브리콜라주를 하려 들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일단 제목이 조셉 L. 맨키비츠 감독이 1959년에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캐서린 헵번을 주연으로 하여 찍은 작품과 같다. 게다가 그 작품도 동성애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음악이다. <백야>가 과연 그들의 음악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앨범에 동명제목의 음악이 있으며, <남쪽으로 간다>는 확실히 영향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여름, 갑자기>의 경우에는 감독 본인이 준비하다가 엎어져서 현재 준비 중인 장편인 <야간 비행>의 프롤로그 같았다고 언급을 한 적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예고편, 그리고 본편에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음악 (본편은 멤버 중 한 사람이기도 한 조브라웅의 자작곡들로 채워졌다.) 이 쓰였기 때문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작품은 여러 장소를 이동하긴 하지만 차 안에서 인물들이 벌이는 대화나 이야기 전개의 비중도 만만찮음을 생각하면 <남쪽으로 간다>의 변주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결말부를 제외하면 이 작품은 스코어 음악을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키지 않는다. 실제로도 그렇지만 라디오라든가, 아니면 헤드폰을 통해서만 등장하기 때문에 음악이라는 존재를 주변부로 내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식으로 음악이 사용된 작품들을 몇 편 본 기억이 있다. 예를 들자면 프란츠 왁스먼이 사운드트랙을 담당했지만 막상 보면 스코어 음악이 사용됐는지 잘 모를 법도 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54년작인 <이창> 이라든가, 차 안에선 잘 들리는 음악이 인물이 바깥으로 나오면 거의 들리지 않는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1973년작, <붉은 결혼식> (국내 VHS 출시제목: <애정관계>!!) 같은 경우들이 있으니까.
그러나 내게는 이송희일 감독이 가장 불만족스럽다고 한 이 작품이 도리어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참고로 감독은 이 세 작품들을 묶어 'Coire' 라고 이름붙였고, 외국에서 상영할 때는 이 세 작품을 한 방에 몰아서 모두 상영했다고 한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굳이 하나의 흐름을 가진 작품들의 모음으로 봐야 할 테니 무엇이 더 나은가를 논하는 걸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세 작품을 어떤 순서대로 봐야 하는지도 무의미할 것이고. 그래서 '굳이 꼽자면' 이다. 굳이 꼽자면. <후회하지 않아>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이송희일 감독은 '밤을 참 사랑하는 것 같다'는 감흥이었다. 게이가 등장하는 작품들을 만드는 또다른 감독인 김조광수의 작품들이 대체적으로 최대한 낮을 배경으로 해서 발랄하게 진행되던 것과는 정 반대의 시간대 설정이다. 이 감독은 낮에 뭘 하면 되게 어색해 보였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낮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그것도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기건, 나쁜 일이 생기건 상관없이 살벌할 정도로 밝은 한 여름의 낮이다. 이것은 게이 로맨스 장르의 작품을 만드는 것에 있어 흔히 가지고 있는 인식을 깨게 만든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게이 로맨스에 관해 우리가 정서적으로 상상하게 되는 시간대는 밤, 혹은 어둠이 드리워질 때다. 이것은 실제로 이태원이나 낙원동 쪽에서 게이들이 자주 가는 바 라든가, 아니면 이들이 주로 활발히 활동하는 시간대가 주로 밤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생겨난 인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게이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소수자'라고 불리는 인생을 산다는 건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알 수 없는 무력에 의해 강제로 어둠 속으로 내몰리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 현실을 인식하고, 이 작품을 본다면 <지난 여름, 갑자기> 의 '차 안' 은 두 주인공이 이 소수적인 문제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허락된 공간이다. '한국에서'.
그러나 낮을 배경으로 했다고 이송희일 감독과 김조광수 감독이 공통되는 것은 아니다. (아. 이름 글자 수가 똑같구나.) 김조광수 감독은 무력이 그어놓은 경계 속으로 자신들도 당당히 두 발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며 싸운다. 반면 이송희일 감독은 이 3부작에 와서 더욱 확실해진 감이 있다. 그는 이 경계를 두 발로 걸어 들어가서 호소하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지우려 든다. 지우려 드는 것은 아예 그 원치 않는 구분을 없애 버리려 한다는 결의에도 해당된다. 그 순간, 이 작품은 단순히 이 주인공들의 관계가 선생과 제자라는 것 외에도 또다른 미묘한 긴장감이 생겨나게 된다.
유람선에 올라탄 경훈과 상우는 안에서 벌어지는 공연들을 보며 지낸다. 하지만 서로의 취향에 맞지 않는 듯, 작품은 그들이 공연을 보고 유람선 안을 돌아다니는 시퀀스를 마치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처리해놨다. 말하자면 괜히 탄 것이다. 바다를 보니 그나마 상우가 신이 나지만 경훈은 지루하다. 상우는 그것을 보고는 자신이 듣던 음악을 경훈에게 들려준다. 참고로 이 음악은 작품의 초반부에서 경훈이 상우를 태워가다 라디오를 트는데, 상우가 지루하고 어둡다고 말하며 꺼버렸던 라디오 속의 음악과 같다. 말하자면 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에 관해 마구 말할 수 있는 '차 안에서의 음악'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음악을 듣기 전의 경훈은 한강을 보며 상우에게 "물 더럽다." 고 말한다. 그런데 음악을 듣자, 카메라는 햇빛에 반짝이는 고요한 한강의 물살과 맞은편 전경을 보여준다.
원래 작품의 예고편에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2집인 <우정 모텔>의 수록곡 중 하나였던 '장단'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본편에서는 멤버인 조브라웅이 작곡한 '한강'이 흘러나온다. 라디오 속의 음악을 여기서 다시 등장시킨 부분은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자신이 숨겨온 모든 것들을 지킬 수 있는 차 안에서만 들었던 음악을 밖에서 다시 들었을 때에 느끼는 긴장감이 있기 때문이다. 날씨는 세상 모든 곳의 어두움을 드러낼 수 있을 듯한 치명적인 밝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숨기고 있는 것들이 모두 드러날 듯한... 이 때 이송희일 감독의 낮은 어둠의 속성까지 모두 갖춘 진중함을 가지고 관객에게 다가온다. 따뜻한 빛이 한 사람에게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태워 죽여버릴 것 같은 불안감을 주는 것이다. 그 때 상우와 시선이 마주친다. 상우는 경훈을 향해 웃어보인다. '차 안에서의 감정' 이 세상 밖에서 발현되는 순간이다. 이 긴장은 짜릿하다. 왜냐면 작품이 중시하는 것은 동성애적 감정이 지금의 세상에서 허용될 수 있는지를 논하는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플라토닉한 애정이든, 아니면 지금 당장 저 몸을 탐하고 싶은 욕정이든. 그래서 <지난 여름, 갑자기>는 Coire 3부작 중에서 가장 위험해 보인다. 그리고 이 유람선에서의 시퀀스가 지나가고, 다시 차 안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작품에서 상우가 듣기에 가장 가혹하다고 느낄 법한 말들이 튀어나온다.

* "..그러면 왜 예전에, 나한테 여자친구 있냐고 물어봤어요?"
"기억 안 나."
"그 때 1학기 성적상담할 때 나한테 그랬잖아요? 방학 때 나한테 선물해준 책은? 그것도 기억 안 나요? 선생님도 나한테 관심이 있으니까.."
"나! 네 담임이야. 네 선생이야!"
"수업시간에.. 나 자꾸 훔쳐 봤잖아.."
"..미친 놈! 바지만 입으면 누구나 졸졸 쫓아다니는 너 같은 피래미들, 눈만 감으면 환상이잖아!"
"..환상 아니에요."
"미안하지만, 넌 네 식성 아니야. 어려! 젖비린내 나! 내가 왜 널 피했다고 생각해? 무서워서? 아니.. 귀찮아서. 거머리처럼 달라 붙을까봐. 너 같이 어린 애들은 도저히 흥분이 안 되거든!"
사실 이송희일 감독이 대사를 잘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이 대사들이 등장하는 시퀀스는 이상하게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오히려 꾸밈이 없는 것이 더 정서적으로 와닿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
요약하자면 강한 긍정의 감정에 이르기 전에 강한 부정이 나오는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시퀀스가 끝나는 시점이 시작한지 30분째 되는 순간이다. 이 작품의 상영시간이 38분인데, 남은 8분 안에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할려고 저러나? 작품은 이 순간에 두 등장인물이 헝클어 놓고 꼬아버린 실타래를 한 번에 풀 수 있을 결말을 선보인다.
<남쪽으로 간다>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결말부가 강렬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는데 감독은 GV에서 역시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먼저 얘기했었다. 힘들게 빌린 아파트였고, 매직 아워의 순간은 짧고, 무엇보다 소재 때문에 빌려놓은 곳이 취소될까 두렵다는 것. 그리고 장비의 열약함 때문에 감독 본인이 생각했던 '더 나은 비전'이 구현되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나는 감독의 머리 속에 뭐가 구상되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멋진 걸 생각해놓고 있었는가 보다. 그러나 더 나은 비전이라는 표현에서 '더 나은' 이라는 말이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더 깔끔하고, 더 유려하고, 한 마디로 더 멋진' 것이라면 글쎄.. 이 작품에서 그게 어울렸을까? 지나간 일에 '만약' 이란 없지만 말이다.
차 밖으로 뛰쳐나간 상우가 먼저 경훈의 집 앞 계단에서 기다리고 서 있다. 경훈의 차에서 뛰쳐나갈 때 깜빡하고 헤드폰을 놓고 간 까닭이다. 과연 고의였는지, 아니었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겠지만. 헤드폰을 건네주고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드러간 경훈은 밖에서 상우가 두드리는 문소리를 차마 거부하지 못한다. 문을 열고, 상우가 들어온다. 잠시 일몰을 바라보던 상우는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경훈을 바라본다. 이 때 카메라는 잠시 누군가의 눈이 된다. 상우의 눈일 것이다. 상우가 서 있는 방향에서 경훈을 훑어본다. 그러나 이 때의 카메라는 허리부터 얼굴을 올려다 보지 않는다. 카메라는 숄더 쇼트로 경훈을 바라본다. 어깨. 그리고 시선을 피하는 얼굴. 끝까지 자신이 선생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투. 상우는 그 어깨에 자신의 턱을 괴고 안긴다. 흔히 사랑의 관계에서 어깨에 기대는 것, 그리고 안기는 것이 누군가에게 있어 근심걱정을 덜고 의지하는 느낌이라면 지금이 바로 그럴 것이다. 상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경훈의 바지에다 손을 넣어 그의 성기를 애무한다. <지난 여름, 갑자기> 에서 가장 자극적인 순간은 학생이 선생의 성기를 애무하는 쇼트에서다. 음.. 유일하게.. 3부작 중에서 섹스가 없는 작품이기도 하고. 나름 자랑이라면 자랑이다. 그리고...

어쨌든 소년은 잘못이 없다. 소년은 저 선생이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끝까지 밀어부쳤을 뿐이다. 마지막 순간에 보여주는 미소는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지은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작품을 보면 저 소년이 참 나쁜 놈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몸이 이미 이 소년에게 가 있지만 머리 속으로는 끝까지 자신이 이성애자라는 최면을 거는 이 선생이 소년의 얼굴을 주먹으로 칠 때, 그의 뒤로 공산당원의 그림이 그려진 접시가 보인다. 동성애는 공산당만큼 나쁜 것일까? 작품은 소년에게 그런 악인의 여지를 남겨놓는다. 미소는 마침내 자신에게 넘어왔고 굴복시켰다는 개인적 만족감에서 지어진 것이 아닐까? 과하게 이분법적으로 남겨놓자면, 그런 '악인처럼 보이는 생각' 이 이성애자들의 인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독은 딱히 그런 함의에 관해서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는 동성애자들의 입장을 변호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학생과 선생의 '사랑이야기'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이 소년에 관해 복합적인 느낌을 남겨놓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몰이 진행되는 중이다. 적당히 아름다워서 좋다. 경훈이 상우의 멱살을 잡을 때, 상우가 또 맞을까봐 두려워서 눈을 내리깔고 오므린 손을 올리는 부분이 좋다. 진실된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위험한 건 지금부터다. 이 아청아청한 세상에서 남자 사제지간의 사랑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그들은 금지된 사랑을 하고 있다. 그래서 작품의 결말은 어둠이 드리워지는 시점에서 끊긴다. 하지만 금기는 세상의 구성원들이 본인들의 시각에서 만든 것일 뿐, 세상이 만든 것은 아니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그 점에서 <지난 여름, 갑자기>는 이 아청아청한 세상에서 '게이 로맨스' 가 아닌 '그냥 로맨스'가 된다. 퇴화가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그냥 앞의 표현을 지워버렸을 뿐이니까. 어둠이 다가오고, 경계는 사라진다. 위험하지만, 자유롭다. 인상적이다.

p.s.1 - '아청아청'은 '아청법' 입니다. 교복 취향은 아닙니다만 법 자체는 굉장히 재수없다고 생각하는데, '아청아청'이란 요상한 표현은 어감 자체가 그나마 덜 재수없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p.s.2 - 근데 뭐 딱히 이 작품은 문제가 될 것도 없는 게, 상우를 연기한 한주완 님 나이가 30세거든요. 오히려 서른 살이 뭐 이리 동안이냐고 따져야 할 정도로 교복이 잘 어울립니다.
Pt.2 에서 뵙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