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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음, 예상환 외 옮김 / 현대경제연구원BOOKS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즈음 아침에 조간 신문을 읽고 나면 기가 막히거나 우울해지거나 분노하게 되는 나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한번 읽어볼 만 한 책이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에서 벌어진 일을 분석하는 크루그먼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이해가 된다.
설마 우리도 30년을 참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이지만 '미래를 말하다'는 경제학자로서보다는 저널리스트로서의 면모가 훨씬 두드러진 책이다.
그리고 유의할 점 하나! 크루그먼은 주류 케인즈주의자이다. 보수주의 운동은 미국사회를 뉴딜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어했지만 크루그먼은 케인지안의 시대였던 뉴딜시대로 되돌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크루그먼이 이상적인 시대로 그리고 있는 뉴딜시대 역시 가난한 노동자와 유색인종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기였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뉴딜시대를 너무 미화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 것 같다.
기존의 국민의료보험제도가 불충분하며 미국인들이(한국인들도) 그렇게 무서워하는 사회주의적 성격이 더 가미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다가, 의료보험민영화 논의에 갇혀서 지금 제도도 뛰어난 제도라고 옹호해야 하는 입장에 서야할지 어떨지 몰라하는 나같은 사람 말이다.
문제의 지점을 국가개입이냐 시장이냐, 증세냐 감세냐, 재정지출 확대냐 축소냐 이런 식으로 놓고 사회변화에 관한 논의를 따라가는 것은 때로 위험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무엇에 의해 압력을 받은' '어떤' 국가개입이냐이다. 아래로부터의 압력 없이 위기에 처한 자본의 이해만을 따라 경제에 깊숙히 개입하고 있는 현재의 국가개입이 보여주듯이..이라크 전쟁의 실패를 감세정책과 관려시키는 크루그먼식 문제진단이 보여주듯이..
"이라크 사태에서 교훈을 얻은 국민들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보수주의 운동가들을 고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상적이라 할 수 있겠다. 진보주의자를 고용하라, 그럴 수 없으면 적어도 아이젠하워 같은 공화당원을 뽑아라. 이라크전에서 미국의 실패는 아마도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약간이라도 미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기회조차 보수주의 운동에 내재한 문제점 때문에 사라져버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부시 행정부의 과도한 낙관주의와 최소한의 지상군만으로 돈을 들이지 않고 전쟁을 치르려 했던 시도는 감세정책으로부터 기인했다. 전쟁에는 위험하고 많은 돈이 든다는 솔직한 고백이 있었더라면 모두들 나서서 전쟁을 감수했을 것이다.......국민들이, 보수주의 운동가들은 사실 미국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서 깨닫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그래서 역자들이 'liberalism'을 '자유주의'가 아니라 '진보주의'라 번역한 데 대해 절반만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크루그먼이 좋다. 그의 해박함도 좋고, 글쓰기를 통한 적극적인 실천도 좋고, 무엇보다 그 낙천주의가 좋다.
보수주의 운동의 정치적 성공은 "문화와 성에 대한 불안감에 호소하고, 공산정권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하며, 무엇보다 민권운동과 그 결과에 대한 백인들의 반발심을 암암리에 이용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벌어진 문제의 중심에는 인종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선거에서 승리하고 미국 정계의 중심부로 자리로 옮긴 보수주의 운동은 "노조운동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며 노동자들의 단체교섭 능력을 크게 약화시켰고 경영진의 연봉에 제한을 가하던 정치적 사회적 제약을 없앴으며, 부자들의 세금을 대폭 줄였고, 그 밖에 여러 방법으로 불평등의 확대를 초래했다."
'보수주의 운동'(뉴라이트운동의 왕고참 선배뻘 되는)이라고 불리는 골수우파세력은 "흔히 '정치'하면 떠올리는 범주를 훨씬 넘어선, 사람과 조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네트워크였다...정치인 말고도 언론 그룹, 싱크탱크, 출판사, 그리고 그 이상을 포함했다. 사람들은 이 네트워크 안에서 평생 동안 일하며 경력을 만들 수 있었고,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보수주의에 대한 충성은 보상받으리라는 믿음으로 심리적 안정을 느꼈다."
"보수주의 운동을 이끄는 힘은 돈이다. 소득불평등 증가와 누진세 철폐, 그리고 복지제도의 철회, 즉 뉴딜정책 이전으로 돌아감으로써 이득을 보는 어마어마한 부호들과 몇몇 대기업이 재정적으로 이들을 지원한다. 불평등을 억제하는 경제정책이 실시되기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려는 것이 바로 보수주의 운동이 추구하는 핵심이다."
"부시의 당선으로 마침내 보수주의 운동은 모든 권력을 손에 쥐었으나 정부를 이끌 능력은 없음을 보여주었다. 보수주의 운동은 정치적 충성을 최우선으로 꼽아 연줄과 부패로 얼룩진 부시 행정부를 탄생시켰으며, 이라크 재건 실패에서부터 카트리나 피해복구 늦장대처 등 중요한 모든 현안을 다루는 데 무능함을 드러냈다. 거듭되는 부시 행정부의 실패는, 정부가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이들에 의해 운영되는 상황에서 그러한 태생적인 약점을 속임수, 국민의 관심 돌리기, 그리고 지지자들을 위한 지출 증가 등으로 보충해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부시와 그의 행정부에 대한 반감은 거세졌고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대승을 거두게 된다."
"보수주의 운동이 사용하던 정치적 수단을 쓸모없게 만드는 중요한 변수가 있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미국 유권자 가운데 백인이 점점 더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이보다 더 고상한 변수로서는 미국인들의 태도가 진보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이 대통령을 내거나 국회를 장악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새로 여당이 된 민주당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를 서술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