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부분 하나 튀는 장면 없이 깔끔하고 모범적으로 만든 공포영화다. 최근 들어 괜찮은 공포영화가 너무 부족했기에 이 정도면 제대로 된 공포영화에 대한 갈증을 달랠 수 있었다. (요즘 영화들은 걸핏하면 튀어나오는 깜짝쇼, 아니면 각기 춤을 춰대는 사다코의 따라쟁이들이 대부분이라서 말이다.) 어떤 관객들에게는 '데드 싸일런스'의 안전한 구성이 오히려 지루하고 밋밋하게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용하고 어두운 곳에서 볼륨을 한껏 높여놓고 몰입해서 본다면 그 긴장감이 꽤나 손에 땀을 쥐게 할 것이다. ‘데드 싸일런스’는 지나친 CG로 도배하지도 않았고, 쓸데없는 피칠갑으로 물감을 낭비하지도 않았다. 마지막의 반전 또한 많은 관객들이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고 우기는데, 솔직히 그 정도 반전이라면 꽤 그럴싸한 것 아닌가? 영화에는 보너스도 있다. '쏘우' 시리즈의 제임스 왕 감독 작품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광고라도 하듯 '쏘우'의 중요 출연진이 깜짝 등장한다.(이 작품에서 거의 투톱으로 등장하는 형사역의 도니 왈버그는 아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거침없는 장기는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다. 저 멀리 ‘더 록’에서 시작되어 ‘나쁜 녀석들’ 시리즈, ‘아일랜드’에 이르기까지 관객의 혼을 빼놓는 화려한 추격 장면은 ‘트랜스포머’에서도 여전하다. 거대 괴수도 외계생명체도 아닌 ‘거대로봇’을 등장시킬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 마이클 베이 감독의 상상력은 존경받을 만 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어린 시절 만화 시리즈를 통해서 한번쯤 봤을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거대로봇물이 매끈하게 영화화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정의를 지키자느니 전사의 희생 운운하는 부분은 나도 모르게 피식 헛웃음이 나올 만큼 유치하다. 하지만 거대로봇 영화라는 점을 생각할 때 더 그럴듯한 스토리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아마겟돈’에서부터 노골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던 감독의 과도한 카메라 워크와 오버스러운 음악은 여전히 거슬린다. 그냥 로봇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마치 클라이맥스처럼 웅장한 음악이 울려 펴진다.(뭐, 너무 지나쳐서 우스꽝스러운 커피광고를 보는 것 같았던 ‘아일랜드’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완벽하게 실현하지 못했던 거대로봇 실사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트랜스포머’는 시대를 대표하는 SF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유치한 교훈이나 낯간지러운 대사들이야 어쨌든 간에 압도적인 액션과 간간이 터지는 유머는 당대 최고의 블록버스터다.
스러져가는 로마 제국의 마지막 군단을 다룬 리얼리즘 역사소설의 진수
기독교가 제국을 좀먹고, 왕권 다툼으로 나라 안이 혼란스러운 시기, 그리고 계속되는 이민족의 침입으로 로마가 멸망해가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의 책무에 충실하고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막시무스 같은 인물들입니다.
1977년 영국에서 출간된 <눈 속의 독수리>는 영화 <글래디에이터>뿐만 아니라 로마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와 소설에 영감을 준 작품입니다. 로마제국을 다룬 소설 중 고증과 설정이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이 책은 5세기 초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저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사라져 간 로마의 마지막 군단과 그 군단을 이끈 장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막시무스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로마의 영원한 번영을 꿈꾸며 묵묵히 군인의 의무를 수행해 나갑니다. 브리타니아(영국) 북쪽 지방의 사령관이던 그는 변방 중의 변방이자 최전방인 갈리아 전선의 방위를 맡게 됩니다.
그는 계속되는 병영생활에 지쳐 괴로워하기도 하고, 자신을 갈리아의 황제로 추대하려는 부하들을 꾸짖기도 합니다. 제국의 방위선을 구축하기 위해 탐욕스럽고 무능한 관리들과는 언성을 높이고, 국가보다 스스로를 우선시하는 기독교인들의 협조를 얻기 위해 타협하기도 합니다. 피비린내 나는 눈보라 속에서 부하들을 독려하며 전투를 벌이다가도, 가끔은 폐허 위에 앉아 과거를 회상하기도 합니다.
당시 로마와 로마군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은 생생한 묘사가 이 놀라운 걸작의 특징입니다. 손가락을 자르는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하던 부유층 청년들, 군인과 행정가 사이의 복잡한 이해관계, 로마군단의 명령 체계와 전략 전술, 수많은 이민족과의 끊임없는 갈등……. 이 책은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당시 로마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만약 이 작품이 영화나 TV 시리즈로 만들어졌다면 <로마>(ROME)나 <글래디에이터>를 능가하는 대작이 되었을 것입니다. 눈보라고 매섭게 몰아치는 북유럽의 혹독한 전장, 넓은 회의장에서 벌어지는 나태한 관료들과의 설전, 쓸쓸한 풍경 속에 홀로 앉아 과거를 회상하는 주인공의 우수, 물밀듯이 밀려오는 게르만 전사들, 피로와 추위에 지쳤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로마의 병사들, 치열한 전투가 끝난 뒤의 적막과 시체들만 가득한 전장의 쓸쓸함……. 특히 마지막 수십 페이지가 넘는 전투 장면은 그 어떤 할리우드 영화도 재현해낼 수 없을 만큼 치열하고 비장합니다.
"나는 내 의무를 다할 뿐이네." "누구에 대한 의무? 자기 닭밖에 모르는 황제를 위해서? 아니면 뇌물이나 받아 처먹으면서 자신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그 반달놈을 위해서인가? 자네를 돕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는 갈리아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세력 강화를 위해 자네 몫을 도둑질해가는 콘스탄티누스를 위해서? 매달 급료를 받는 한에서만 자네를 따를 게 분명한 자네 병사들을 위해서? 그거도 아니라면 자네 아내에 대한 추억 때문에?" (250쪽)
"친애하는 친구여, 미트라 신의 이름으로. 이제 가게나." "자네 역시, 나의 장군님. 미트라 신의 이름으로." 기병대 총사령관인 퀸투스 베로니우스와 우리 기병들은 어지러운 인파 속으로 파묻혀갔다. 반짝이는 투구가 하나씩 사라지더니 어느 순간 기병대의 깃발이 마치 날쌘 독수리가 하강하듯 갑자기 떨어져내렸다. 이어 반달족이 해자를 넘어와 도끼로 방책을 부수기 시작했다. 파비아누스와 아퀼라가 내 좌우에 있었고, 아르토리우스와 스쿠딜리오는 조금 멀리 있었다. 그 순간 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훌륭한 전우들과 함께 죽는다!" (392쪽)
"이것이 우리 모두의 마지막이로군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손짓을 섞어가며 말했다. "저는 제 가족을 위해 참으로 많은 것을 원했었습니다. 이런 것이 아니라오." "자네는 정말로 용감한 사람이네. 아르토리우스. 나는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던 병사들이 막상 전쟁터에서는 일찌감치 도망치는 모습을 익히 보았다네." (5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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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시집은 참으로 난감한 책이 되었다. 인터넷 상의 각종 카페나 블로그에서 쉽게 다운받을 수 있으며, 디지털 기기에 저장해서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점점 더 감흥을 느끼기 어려운 대상이 되었으며, 지나치게 가벼운 소재로 전락하거나 쉽게 읽히고 쉽게 잊히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은 점점 시집과 멀어지는 세대들에게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다. 이 시집은 단순히 신문에 연재되었던 기사를 모은 책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이 추천한 100여 편의 시는 한편 한편이 빼어난 명작이요, 독자의 감수성을 자극시키는 수작들이다. 그들이 시를 읽는 시각 또한 군더더기가 아닌 훌륭한 안내서의 역할을 한다. 중간 중간에 들어있는 삽화들 또한 독자들의 가슴을 시리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명시와 해설, 그림의 3박자가 훌륭히 조화를 이룬 이 책은 그 자체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에서 할머니와 약초차를 만들며 살아가던 시즈쿠이시는 무분별한 개발로 산이 황폐화되자 할머니와 떨어져 살아가게 된다. 도시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시즈쿠이시는 가에데라는 맹인 점쟁이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사람들을 감싸 안는 법을 배워간다. 할머니의 차가 사람들의 몸을 치유했다면, 가에데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전까지의 작품에서도 늘 그랬듯이 섬세한 묘사와 포근한 문장으로 읽는 이의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얼마나 각박하고 쓸쓸한가.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는 아직 어딘가에 따뜻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차분한 글은 우리가 자주 잊게 되는 그런 온기를 떠올리게 한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이라도 그런 따스함을 되새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