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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의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서문에서 밝히길 '독자들이 계속 책장을 넘기도록 늦게까지 잡아두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는데, 확실히 그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
독자들은 진주 귀고리 소녀, 그리트의 일상적인 일과를 통해서 중세의 호젓하고 한적한 느낌, 바쁘고 활기차면서도 여유로운 분위기를 마음껏 음미할 수 있다.
아버지의 사고 때문에 어려워진 집안 형편, 하녀도 들어가게 된 그리트가 첫날에 겪는 어수선함과 심란함, 조심스럽게 작업실의 먼지를 털고 걸레질을 하는 모습, 여동생이 전염병으로 죽은 이후 점점 낯설어지는 고향집과 가족들...
그리트가 보고, 듣고, 그녀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독자를 소설 속으로 빨아들인다.
그리고 작가는 그리트의 눈을 통해서 베르메르의 그림들을 감상한다.
전문가의 학구적인 표현이나 그럴듯한 비유를 꺼내지 않고도, 평범한 어휘를 통해서 숨이 멎을 것 같은 아름다움을 거뜬히 묘사해낸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이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인데, 옛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아련한 기억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부분에서 그리트가 보여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현실적인 행동은 작가가 '이제 아름다운 동화는 끝났으니, 그만 깨어나시라'고 말하는 듯 하다.
끝으로, 깊은 감동과 함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도 '이 소설은 작가의 터무니없는(?) 상상일 뿐이고,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그저 화가의 딸일 수도 있다'는 경박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