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바지는 왜 안 찢어질까? - 김세윤 기자의 영화 궁금증 클리닉
김세윤 지음 / Media2.0(미디어 2.0)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기가 막히게 재미있다. 뒤표지 추천사의 말대로 ‘아담과 이브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게 만든 뱀의 꼬드김처럼 유혹적’이다.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금방 싼 X이라도 팔아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저자의 글 솜씨는 독자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위트와 유머, 재치 있는 비유와 농담들은 버라이어티한 언어의 향연이라고 할만하다.

시골 보안관과 대도시 경찰을 양촌리 이장과 대치동 방범대장에 비유하거나 한국영화 화면의 촌스러움을 화면발, 조명발, 화장발의 3족을 멸한 경우라고 표현해서 읽는 사람이 배꼽을 쥐게 한다.
불륜커플과 닭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하다가 영화 ‘집으로’의 한 장면을 끼워 넣는 저속한 유머도 압권이다.

그렇다고 끝까지 현란한 말솜씨와 그럴듯한 농담만으로 채우는 것은 아니다.
질문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궁금증은 끝까지 추적한다.
영화 속의 전화번호 국번 555의 유래에 관한 길고 긴 사연이나 할리우드 예고편의 목소리 주인공의 정체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국내외 영화계의 뒷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안 감독이 헐크의 바지를 찢으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이루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이라던지, 영화 ‘고질라’에 동원참치 캔이 등장한 이유가 일본어와 한국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할리우드 스텝의 무식함에서 비롯된 행운이라는 내용 등이 기억에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은 노령화 문제 같은 일본의 사회 문제를 진지하게 건드리면서도 독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상식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사기 판매의 함정에 빠져들게 되는지, 아무 것도 없는 불쌍한 노인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인지... 작가는 그런 것들은 꽤 심각하게 고민해 보는 듯하다.

어쨌든 역자의 말대로 이 책을 읽는 동안 줄곧 지었던 선입관이 한순간에 깨지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엉뚱한 거짓말과 암묵적인 통념과 상식적인 시각으로 트릭을 쌓아 올리다가 무너뜨리는 것이 과연 공정한 일인가 싶다.
끝부분에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와 반전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극적이지만, 너무 갑작스럽고 억지스러워서 오히려 맥이 탁 풀려 버린다.
반전의 기쁨보다는 독자의 상식을 농락하는 설정에 허탈함을 느낀 독자는 나뿐일까?
할아버지라고 했던 사람이 남편이 되고, 고등학생이라고 했던 사람은 대머리 노인이다.

도움말에서 '손주가 생기면 자기 남편을 할아버지라고 부른다'는데, 이런 부가설명 또한 심히 억지스럽다.
고등학생(!)이 좋아한다는 여자가 자신의 가족 중 한 사람을 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어떻게 그 할아버지가 진짜 할아버지고 그 여자가 손주를 둔 할머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과연 이것은 반전인가? 기만인가?

모든 소설들이 이런 식이면 반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간단한가.
노인으로 보였지만 사실 그는 조루증에 걸린 꼬마였을 뿐이다, 대학생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는 7살에 대학에 입학한 천재소년이다, 그에게는 손자가 있었지만 사실은 그가 할아버지였기 때문이 아니라 젊은 시절에 입양한 자식이 있었기 때문이다는 식으로 끝없이 갈등과 비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굳이 추리소설의 범주에 넣어서 판단하지 않더라도, 쓸데없는 대사와 장황한 부연설명으로 과장된 충격을 이끌어 내는 억지 설정이다.(그리고 그 부연설명을 이해하기 위해 또 다른 (진짜) 부연설명을 이해해야 한다든 것도 좀 당황스럽다.)

어쨌든 이 소설은 절대, 절대로 영화화되지는 못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라이, 대디, 플라이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이 포켓몬과 해리 포터의 마법에 매료되는 것처럼 어른들에게도 그들만의 판타지를 즐길 권리가 있다.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규격화된 도시 속의 반복되는 삶 속에서 잃어버린 야성의 힘과 강인함을 동경하는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다.

일본의 전형적인 중년의 샐러리맨 스즈키 하지메는 딸이 폭행당한 이후로 (나름대로) 평온했던 자신의 일상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낀다.
딸이 입원한 병원에서 가해자인 남학생과 선생들과 무기력하게 대면한 그는 초라하고 비루한 자신의 모습에 한없이 절망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박순신이라는 재일한국인 학생과 그의 불량청소년 일당을 만나서 복수를 준비한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미친 듯이 훈련해서 싸우고 이긴다.’
하지만 경쾌하고 가벼운 작가의 문장들과 비현실적이라서 오히려 매력적인 주인공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작품이다.
특히 스즈키가 첫날 훈련에서 달리기를 하며 환각을 보고, 후회를 하면서 혼자 횡설수설하는 부분에서는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었다.

이 작품이 과연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일본에서는 이미 영화로 제작되었다지만.)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다소 우스꽝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 원작의 이야기가 만화 같으니까 애니메이션이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밥집 노파와 금복, 금복의 딸 춘희로 이어지는 ‘고래’의 이야기는 놀라운 흡인력으로 독자의 혼을 빼놓는다.
명확한 기승전결도 없는 것이 마치 누더기를 기워놓은 것처럼 수많은 에피소드와 무슨무슨 법칙들로 짜깁기 해 놓은 줄거리는 참으로 기발하고 흥미진진하다.
‘욕망의 서사시’, ‘대하드라마’ 운운하는 심사위원들의 찬사가 조금도 거북하지 않을 정도다.

지금가지 그 어느 소설에서도 볼 수 없었던 낯설음과 기이함, 당혹스러움과 강렬함... ‘고래’는 확실히 재미있다. 4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작가의 입담이 걸쭉하다. 가히 ‘언어의 마술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고래’를 과연 전통적인 의미의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펼쳐놓는 것 같다가도 곧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고, 처음에는 구성과 소재가 혼란스럽고 거북하다가도 곧 정신을 못 차리고 빠져들게 된다.

어쨌건 간에 천명관 작가는 독자와 평론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작품을 지배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 외롭구나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
김형태 지음 / 예담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분노하고, 좌절하고, 우울한 20대를 위한 상담사례 모음집이다.
무규칙이종예술가라 자처하는 김형태 씨는 확실히 젊은이들의 아픈 곳을 비수처럼 찌르는 말솜씨를 갖고 있다.

뻔한 충고를 일삼는 그저 그런 카운슬러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촌철살인의 충고들은 때로 너무 날카로워서 가슴이 아플 정도다.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며 꿈을 갈구하는 젊은이에게는 ‘이미 (꿈이 필요하다는) 답을 알고 있지 않느냐’라고 충고하고, 학벌도 돈도 없는 당신에게 희망밖에 더 있냐고 말하기도 한다.

세상을 보는 저자 특유의 냉소적인 시각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1년에도 몇 번씩 변경되는 입시 정책은 국민들을 허둥지둥하게 만들기 위한 우민화 정책이라고 빈정거리기도 하고, 세상에서 제일 쉬운 세계가 ‘학교’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20대를 N세대, P세대라면서 주인공인 양 떠받드는 매스컴의 행태도 컴퓨터와 핸드폰을 더 팔아먹기 위한 수작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행동하라고 충고한다.
직장의 시스템이 틀려먹었다면 그것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 보라고, 돈과 명예로 성공의 조건을 오염시키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기쁨을 찾으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감상적인 조언들이 정말 유용할는지는 좀 의문이다.
차라리 ‘좋아하는 일보다 돈 되는 일을 하라’, ‘6개월만 미쳐봐라’는 식으로 충고했던 세이노(Sayno)씨의 칼럼들이 더 그럴듯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