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불빛
 

바람이 부는 저녁, 거리를 걷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않았다. 거기다 너무 좋은 음악이 흐르는 미니 바에서 맛있는 칵테일까지 마셨다. 그곳에 앉아서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면서 나는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크게 나쁠 것도, 좋을 것도 없다. 그저 이렇게 저녁에는 맛있는 술을 마시고,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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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4-26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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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때로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이다지도 외곬으로 그녀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녀 외에는 아무것도, 아무도 모르고, 또 그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134p) 

심수봉은 노랬다. '사랑밖엔 난 몰라.' 난 어제 노래방에서 그 노래를 열창했다. (사랑밖엔 난 몰라를 노래할 땐 울컥했던건지 목소리가 갈라졌다;) 사랑밖에 모르는 모든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한 우물만 파게 되는 건지, 전 우주에는 자신과 사랑하는 상대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존재가 눈에 들어온다면 그건 그 사랑을 방해하는 방해자일 뿐이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벚꽃같이 낭만적인 배경화면이 깔리며 아름다운 에피소드들만이 줄을 잇는다면 좋겠지만 사실 사랑은 복잡한 감정을 수반한다. 사랑에는 여러가지 감정이 섞여 드는데 이건 거의 정신병적인 문제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격렬하다. 증오와 미움, 질투, 기쁨, 환희, 집착, 통곡 등 열거하기도 어려울만큼 다양한 감정들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변한다. 왜? 모두 그 또는 그녀 때문이다. 그 또는 그녀가 나를 보고 웃었다. 그때 전 우주는 나의 편이다. 모두 나에게 환호를 보낸다. 그녀가 내 눈을 피했다. 그럴 땐 전 우주가 나를 외면한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 된다. 

베르테르는 하필이면 알베르트가 있는 (임자가 있는) 로테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자신의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녀를 떠나보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그녀 곁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녀를 보는 것은 행복이기도 했지만 고통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랑이란,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켜서 한다면 절대 하지 않을 일들을 우리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그것도 열심히 한다.  

젊은이로서 베르테르같은 사랑을 한번 경험해 보지 못한다는 것은 젊음에 대한 직무 유기라는 생각까지 든다. 사실 사랑이야말로 청춘이라 불리우는 시기에 원 없이 충분히 경험해야할, 경험해 봄 직한 일 아니겠는가! (쿨럭; 난....직무 유기자다...) 

토요일 오후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면서 감상평을 쓰고 있자니 정말 이 눈물 나는 상황은 뭥미? 라는 생각만 떠오른다.  

나의 베르테르는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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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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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말이야."

"......응."

"크리스마스가 되면 선물 받고 그랬잖아."

".......응."

"그런데 난 참 이상했어."

동생이 등을 돌리며 졸음에 겨운 목소리로 묻는다.

"뭐가?"

사내는 추억에 잠긴 목소리로 말한다.

"그게, 티브이나 영화에서 보면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게 예쁘게 포장돼 있었잖아. 그것도 꼭 장된식 전나무 밑에 놓여 있고. 거기 나오는 선물들은 전부 커다랗고 근사한 박스 안에 들어 있었잖아. 정말 산타가 준 선물같이."

동생이 점점 흐려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응.'

"근데 우리 머리 위에 있던 선물은 왜 항상 까만 봉다리 속에 들어 있나. 나는 그게 참 이상했었어."

"........"

"넌 안 그랬니?"

"......."

사내가 고개 돌려 동생을 바라본다. 소리 없이 잠든 모양이 꼭 죽은 것 같다. 사내는 말없이 누눠있다. 손가락으로 동생을 툭 건드리며 한마디 한다.

"야, 화장 지우고 자."

 
<성탄특선>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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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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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를 당하는 것도 다수결이다. 어느 순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엔 치수가 원인의 전부라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둘러싼 마흔한명이,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다수의, 다수에 으한, 다수를 위한 냉풍이 다시 폭포처럼, 송풍구에서 쏟아져내렸다. 손을 뻗어 송풍구의 밸브를 잠그려 애써보았다. 퓌퓌, 고장 난 밸브의 덮개 한쪽이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다시 밸브를 열었다. 확실히 춥긴 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9쪽

치수의 패거리들은 전부 마리와 잤다. 내가 알기론, 그렇다. 들어올래? 란 말을 들었을 때 우선 그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1910년에 태어나신(아마도) 걸레라는 이유로, 내가 마리를 피한 것은 아니다. 그게 어때서, 오히려 정말이지 그게 어때서냐는 생각이다. 신이 굽어봐도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얼마든지 마가져도, 인간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나와 마찬가지로 - 마리는 마리를 둘러싼 마흔한명의 인간, 그런 인간들의 다수결이다. 그 결과다. 인류를 대표해 치수의 패들이 전부 마리와 잔다. 노인들이, 아저씨들이 돈을 주고 마리와 자는 것이다. 다수인 척하는 것이다. 섹스를 해본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다수인 척 섹스를 하기 싫어서도 아니었다. 이유는 한가지, 나는 누군가와 의미있는 관계를 맺기가 싫다.
-33쪽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따 같은거 당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다수인 척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일정하게, 늘 적당한 순위를 유지하고, 또 인간인만큼 고민(개인적인)에 빠지거나 그것을 털어놓을 친구가 있고, 졸업을 하고, 눈에 띄지 않게 거리를 활보하거나 전철을 갈아타고, 노력하고, 근면하며 무엇보다 여론을 따를 줄 알고, 듣고, 조성하고, 편한 사람으로 통하고, 적당한 직장이라도 얻게 되면 감사하고, 감사할 줄 알고, 이를테면 신앙을 가지거나, 우연히 홈쇼핑에서 정말 좋은 제품을 발견하기도 하고, 구매를 하고, 소비를 하고, 적당한 시점에 면허를 따고, 어느날 들이닥친 귀중한 직장동료들에게 오분, 오분 만에 갈비찜을 대접할 줄 알고, 자네도 참, 해서 한번쯤은 모두를 만족시킬 줄 아는 그런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34쪽

이상한 끝이구나. 그럼 그 순간 세계를 <깜박>해버린 거야? 그럴 수도.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드는 거야. 그 순간 그가 세계를 <깜박>한 게 아니라 세계가 그를 <깜박>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 모아이, 그러고 보니 나도 분명 그런 적이 있었던 듯해. 나 여태 그걸<깜박>하고 있었어. 잘들어 못, 여기 온 후로 나는 줄곧 그런 생각을 해왔어. 왜 우리일까? 답 같은 건 찾을 수도 없겠지만, 내 결론은 그거야.
뭐?



너와 나는 세계가 <깜박>한 인간들이야.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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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짧아 2009-04-10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생각해도 댓글에 욕설을 남겼던 사람을 왕따를 당하던 사람이었나보다. 그래서 내 감상을 보고 니가 뭘 알아?!라는 심정이었을까? 그 사람에게 변명아닌 변명을 해보자면...나도 한때 왕따였다는...;
 
식빵 굽는 시간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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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그때, 나는 내 삶 속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내 삶을 변형시켜 보고 싶은 아주 강렬한 욕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한 발은 들고 서 있는 엉거주품한 상태였다. 그때 스물여섯 살. 나는 아직 그런 나이였다. 무얼 해도 막연한 나이. 서른도 아니고 스물둘도 아닌. 중간은 아름답지 않다. 언제나 주변을 서성거릴 수밖에 없으니까. 여자 나이 스물다섯이 지나면 적어도 가능한 꿈과 이젠 버릴 수 밖에 없는 꿈들에 대한 경계는 있어야 했다. 그 경계에 있어서도 나는 모호한 상태였다.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에 나는 잠시 멍해진다. 높지 않은 파티션 너머로 멀리 있는 창문을 바라본다. 블라인드는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바람때문에 블라인드는 그네처럼 흔들린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도 째깍째깍 시간은 흘러간다. 모두들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고, 사무실은 극도로 조용하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폭주','도발' 이라는 단어들이 마구잡이로 떠오른다. 그러니까 나는 가장 평온한 시간에 누군가 달려와 내 머리채를 휘어잡는 상상이나 누군가 책상을 꽝하고 치며 세상에서 가장 심한 욕설을 내뱉는 상상을 한다. 그건 묘한 쾌감이 있다.  

식빵 굽는 시간을 읽었을 때 내 삶은 그야말로 모호했다. 가능한 꿈과 이젠 버릴 수 밖에 없는 꿈들에 대한 경계를 가져야 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떼를 쓰고 있었다. 버리지도 자신있게 가지지도 못하고 방황했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해보지도,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했다. 결국 내 스스로도 "너 요즘 참 밉상이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몇년 전의 일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중얼거린 것이. 

그런데 나는 요즘 내 입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냐?" 라든가, "진짜 모르겠다." 라든가 하는 말 때문에 이 책이 다시 생각났다. 모호한 시간은 언제나 사람을 침울하게 만든다. 그것은 극단적인 시간보다 나쁘다고 생각한다. 

결국 식빵 굽는 시간과 관계없는 이야기만 늘어 놓은 것 같지만 어쨌든 무료한 일상의 반복에 굴복하고 있다면 나와 닮은 사람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삶을 따라가보는 것 만으로도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너무 구태의연한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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