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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 굽는 시간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8월
평점 :
어쨌거나 그때, 나는 내 삶 속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내 삶을 변형시켜 보고 싶은 아주 강렬한 욕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한 발은 들고 서 있는 엉거주품한 상태였다. 그때 스물여섯 살. 나는 아직 그런 나이였다. 무얼 해도 막연한 나이. 서른도 아니고 스물둘도 아닌. 중간은 아름답지 않다. 언제나 주변을 서성거릴 수밖에 없으니까. 여자 나이 스물다섯이 지나면 적어도 가능한 꿈과 이젠 버릴 수 밖에 없는 꿈들에 대한 경계는 있어야 했다. 그 경계에 있어서도 나는 모호한 상태였다.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에 나는 잠시 멍해진다. 높지 않은 파티션 너머로 멀리 있는 창문을 바라본다. 블라인드는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바람때문에 블라인드는 그네처럼 흔들린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도 째깍째깍 시간은 흘러간다. 모두들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고, 사무실은 극도로 조용하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폭주','도발' 이라는 단어들이 마구잡이로 떠오른다. 그러니까 나는 가장 평온한 시간에 누군가 달려와 내 머리채를 휘어잡는 상상이나 누군가 책상을 꽝하고 치며 세상에서 가장 심한 욕설을 내뱉는 상상을 한다. 그건 묘한 쾌감이 있다.
식빵 굽는 시간을 읽었을 때 내 삶은 그야말로 모호했다. 가능한 꿈과 이젠 버릴 수 밖에 없는 꿈들에 대한 경계를 가져야 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떼를 쓰고 있었다. 버리지도 자신있게 가지지도 못하고 방황했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해보지도,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했다. 결국 내 스스로도 "너 요즘 참 밉상이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몇년 전의 일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중얼거린 것이.
그런데 나는 요즘 내 입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냐?" 라든가, "진짜 모르겠다." 라든가 하는 말 때문에 이 책이 다시 생각났다. 모호한 시간은 언제나 사람을 침울하게 만든다. 그것은 극단적인 시간보다 나쁘다고 생각한다.
결국 식빵 굽는 시간과 관계없는 이야기만 늘어 놓은 것 같지만 어쨌든 무료한 일상의 반복에 굴복하고 있다면 나와 닮은 사람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삶을 따라가보는 것 만으로도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너무 구태의연한 이야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