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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 ㅣ 아라키 노부요시, 사진을 말하다 1
아라키 노부요시 지음, 백창흠 옮김 / 포토넷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일본 수필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 포토넷, 아라키 노부요시, 백창흠,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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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사진의 발달사와 자본주의 변천사가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 변천사가 어떻게 되었던 현대 사회에서 사진과 자본주의를 벗어나서는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지만 아직 그 정체가 명확하게 무엇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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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이 쓴 [사진의 작은 역사]를 보면, 1826년 프랑스의 니에프스 세계최초의 사진촬영에 성공했다고 한다. 자본주의 변천사에서도 그 시기는 중요하다. 1825년 영국에서는, 자본주의의 동력이라 할 수 있는 증기기관차가 처음 달리기 시작했고, 공장법이 제정되고, 최초의 자본주의적 공황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러한 우연처럼 보이는 역사적 사실보다 초기 사진에 찍힌 대상이 대부분 부르주아였다는 점에서 사진과 자본주의를 연결하기도 한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7월 혁명과 2월 혁명을 거치면서 귀족들의 자리를 부르주아들이 차지한다. 부르주아들은 귀족들의 모든 관습을 부정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화가들이 그렸던 초상화 대신, 초상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최신 기술에 당시 원판이 은을 재료로 했던 만큼 비싼 대가를 주고 사진을 찍었던 부르주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사진도 없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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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나 자본주의의 역사가 어쨌든, 우리는 그것들이 만든 세계에 살고 있고 그것들을 벗어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상상한 것의 대부분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오직 돈을 벌기 벌해 만든 상업 광고, 상업 드라마, 상업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닌가. 물론 필멸의 인간 아킬레우스를 상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우리 구전 설화를 떠올리는 사람도 간혹 있겠지만, 이것들도 모두 상업적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나만의 고유한 그 무엇을 상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벤야민은 아우라 상실의 시대라고 어렵게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고 그냥 거대한 사회의 의미 없는 조그만 부속되어, 내 존재는 희미해지고, 타인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 어쩌면 사진에서 시작된 단절을, 아라키는 반대로 “사진은 관계의 문제입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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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으러 왔습니다’가 아니라 거리에 녹아들었다는 느낌이어야 합니다. 염탐꾼이 되든가, 찍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일부러 드러내든가,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삼각대를 세우고 4x5인치 대형 카메라로 일부러라도 확실히 찍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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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탐꾼이 되라는 말은 촘촘한 시간과 공간 속에 녹아들어 나만의 순간을 포착하라는 의미일 것이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라고 하는 것은 나만의 순간을 위해 시간과 공간을 장악하고 만들어내라는 말인 것 같다. 보통의 독자들이라면, 모든 것을 장악하기에는 돈이 없기에, 아라키처럼 녹아들어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녹아들기 위해서는 ‘관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결국 좋은 관계를 통해서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서, 내가 먼저 친절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대상에 다가가야 한다. 아라키는 이 관계에 카메라를 포함시킨다. 아라키는 어떤 카메라에 어떤 필름을 가지고 찍느냐에 따라서 대상과 시간과 공간이 다르게 표현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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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에서 2001년에 출판된 것이고, “사진은 촉촉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 반대로 디지털은 촉촉함이 없어요. 뭔가 퍼석퍼석한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바로 지우고 또 바로 찍을 수 있어서 기개가 없어요.”라고 말한 아라키이니,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는 우리에게는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단지 그가 즐겨했던 방법을 상상하며 비슷하게 해보는 수밖에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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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발명되기 전까지의 예술이라는 것은 신이 만든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선택받은 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보통의 인간들이 시간과 공간의 한순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줌렌즈가 아니라 대상에게 다가가 찍으라는 아라키의 말처럼 우리는 대상에게 다가가 나만의 순간에 스위치만 누르면 된다. 아라키가 즐겨 쓴다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우리 손에 항상 들려있는 스마트폰 카메라가 뭐가 다른가. 좋은 카메라가 아니라, 아라키가 찍어본 만큼은 찍어보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그 다음 카메라를 선택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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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아라키가 즐긴 한국기생관광에 편찮지만, 그것이 사실이고 현실이니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폴라로이드 임신부 누드사진도 작품이니 이해를 하지만, 도대체 분홍에 표지에 구멍 뚫어놓고 엿보게 만드는 이 특이한 패티쉬는 누구의 아이디언지 정말 궁금하다. 차라리 일본 원서 표지처럼 점잖게 만들었다면, 글이 깊이가 더했지 않았을까. 칠순이 넘은 아라키가 이 표지 아이디어를 좋아할까. 2012.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