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라! 세상의 벽을 향해 던진 연설 32 거꾸로 읽는 책 35
유동환 엮음 / 푸른나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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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 [세상의 벽을 향해 던지 연설 32] 유동환, 푸른나무, 2012

 

32편의 연설문을 엮어 놓은 책이다. 편자는 “우리는 어쩌면 너무 멀리 비켜서서 피를 흘리며 저항했던 역사를 동화처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아직도 진행 중인 사건으로 선악의 판단을 떠나 극적인 대립을 독자들에게 보여 주려는 의도”로 편집했다고 서문에 적어놓았다. 한 번 읽어보고 편자의 깊은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너무 일방적이거나 가끔은 일방적인 흐름에 벗어나는 연설문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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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구성은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와 지젝의 [문제는 민주주의야]로 시작해서, 아들 부시의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하며]와 바로 뒤 오사마 빈 라덴의 [거짓말을 명분으로 삼지 마라]에서 정점을 찍고, 한동안 너무나 유명했던 스티브 잡스의 [내 인생의 세 가지 이야기]로 끝난다. 마지막 연설문 [내 인생의 세 가지 이야기] 바로 앞 페이지에 이런 글귀가 있다.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세운 창업자 중 한 명인 스티브 워즈니악. 엔지니어인 그는 애플 제품을 만든 실질적 두뇌였다. 그는 끝까지 부와 명예에 집착했던 스티브 잡스와는 정반대로 (하략)”이런 편자의 일방적인 의견을 미리 읽고 잡스의 연설문을 읽으니, 나 혼자만의 느낌일 수도 있지만, 연설문이 잡스가 “끝까지 부와 명예에 집착”했던 것에 관한 구차한 변명을 읽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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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의 말처럼, 현실을 直視하는 것은 중요하다. 아들 부시와 오사마 빈라덴의 연설문을 순차적으로 편집한 것은 극적효과도 주고, 대립하는 주장을 읽어봄으로써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 문제는 편자의 개입이다. 책 전체를 흐르는 특히 책 앞부분에서 두드러지는 ‘반자본주의’성향은, 좀 더 오독을 하면 ‘반미’성향은 극적효과를 넘어서, 편자의 주관적인 의견의 개입으로 연설문 자체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란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반자본주의’를 논할 수 있을까. 이러한 거대 담론에 대한 논의를 접어두더라도, 마지막 연설문 앞에 삽입해놓은 문구처럼, 명백하게 연설문을 오독하게 만드는 편자의 개입은 아쉬움을 넘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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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즈니악은 초기 애플 제품, 정확하게 말한다면, 초기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든 실질적 두뇌였던 것은 나처럼 초기의 매킨토시를 사용한 세대가 아니더라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을 많은 독자, 젊은이들은 매킨토시보다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애플이나 잡스의 최고의 작품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그 제품과 워즈니악을 어떻게 관련시킬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워즈니악의 우수한 능력을 알아본 잡스의 능력과 판단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잡스 연설문 바로 앞에 넣어둔 워즈니악의 사진과 그 문구가, 편자의 말처럼 “선악의 판단”을 떠난 구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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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가 제기하는 자본주의나 환경파괴 문제에 전적으로 공감을 한다. 문제는 논리가 치밀하지 않으면, 역습을 당한다는 것이다. 맞서 싸울 상대가 99%의 다수를 압박하는, 권력과 자본을 모두 가진 1%라면 더 치밀하고 촘촘하게 이론을 세워 정당성을 확보해야 힘없는 99%의 연대가 일어나 전통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치밀하고 촘촘한 이론이 없다면 진실성으로 다가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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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연설문 앞에 이태석 신부님의 편지가 있다. 톤즈에 도착한 후 신부님이 지인에게 처음 보낸 편지다. 편지는 이렇게 끝난다. “혹시 주위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뜻을 가진 사람들을 알고 있으면 연결해 주길 바란다. 없는데 절대 억지로 찾지 말고.”사제로서 의사로서 그가 그곳에 이런 부탁을 하면서까지 그곳에 머물렀던 이유가 원인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을 읽을 독자라면 이 편지부터 먼저 읽고 고민하고, 처음으로 돌아가 순차적으로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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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도하지 1%’가 아니라, 99%인 우리가 눈을 똑바로 뜨고 주위를 둘러보아야 한다. 말라가는 나무에 물 한번 준다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이 무엇을 얼마나 바꿀 수 있겠는가. 누구나 그 정도는 생각한다. 이태석 신부님처럼 자신을 희생한 후 조심스럽게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한 몸 희생하기 싫어서 더러운 정치판에 선뜻 뛰어들지도 못하면서, 도대체 뭘 생각하고 뭘 바꾼단 말인가. 바뀐다고 믿는 사람이 더 이상한 것 아닌가.

201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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