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가족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춘미 옮김 / 사과나무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 소설 [물의 가족] 마루야마 겐지, 김춘미 역, 사과나무, 2012

-

이 소설에는 ‘사나이’가 등장한다. ‘사나이’이라고 말하면 ‘마초’를 떠올리고, “여자나 게이한테 인기가 있으면 끝장입니다. 그런 치들 덕분에 먹고 산고 생각하면 나는 죽고 싶어집니다.” ([소설가의 각오] 중에서)라고 말하는 마루야마 겐지는 ‘마초’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마루야마 겐지는 ‘마초’가 아니고 ‘사나이’다.

`-

“나는 아주 늙어 버렸다. 이게 이제 며칠 있으면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하려는 사나이일까?” 서두에 나오는 이 글이,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이제 겨우 서른 번째 생일을 앞둔 사나이가 왜 늙어버렸을까? 를 염두해 두고 소설을 읽으면 된다. 사나이’는 무엇일까? 책을 읽는다고 해서 수학문제의 정답처럼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독자들에게 ‘사나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할 뿐이다.

`-

흘러간 유행가에서나 나옴 직한 ‘사나이’이란 말을 대신해서 요즘은 ‘마초’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마초는 ‘남존여비, 남자다움의 과시 등’ 부정적인 의미를 含意하고 있는 스페인어 Machismo에서 나왔다고 한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8시부터 12까지만 소설을 쓰고, 오후에는 산악 달리기나 산악 오토바이를 즐긴다는, ‘여자와 게이’를 혐오하는 마루야마 겐지는 ‘마초’처럼 보인다.

`-

겐지는 일명 ‘문단’이라고 하는 곳과 교류도 하지 않고, 매스컴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소설가다. 그는 오직 소설만 쓰면서도 ‘책이 얼마나 팔릴까?’걱정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친절하지도 않다. 아무리 빨리 써도 1년에 한 권 정도 밖에 소설을 쓰지 못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니 재판 삼판으로 늘어나는 인세 수익도 없이, 처음 소설을 출판하고 받는 돈으로 생활을 꾸려가면서, 최대한 절약해 살면서 다음 소설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당당히 돈을 벌기 위해서 소설을 쓴다고 말한다. 여기까지 보면 그는 터프하고 거만하고 자존심 강한 ‘마초’에 가깝다.

-

겐지는 소설을 쓸 때 상정하는 독자를 “목적을 갖고 전력투구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나,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여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남자들이다.”라고 [소설가의 각오]에서 말했다. 소설가와 독자 사이에는 ‘소설’만 있을 뿐이고, 소설가는 오직 ‘소설’로 말해야 한다는 신념을 스스로 실천하기 위해, 자기가 쓰고 싶은 소설을 쓰기 위해, 겐지는 산골에서 구도자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가 말한 것은 여성이나 게이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일치다. 그가 말하는 ‘사나이’의 의미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

이 소설 속의 아버지가, 어쩌면 토요일 저녁 무심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내 아버지가 ‘사나이’다. “아버지는 아무 것도 아끼지 않는다. 아버지 노릇을 하는 데 있어서는 그저 그런, 말이라는 것에 거의 의지하지 않는 이 사나이는, 헛되이 흘러가는 시간도, 그다지 의미도 없이 마모되어 가는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다.”한평생 작은 고깃배를 타고 강으로 바다로 나아가 가족들을 위해 물고기를 잡는 어부처럼, 어떤 위대한 신념도 명예도 돈도 없지만, 묵묵히 가정을 지키는 그런 사람이 ‘사나이’고 이 소설은 그런 ‘사나이’를 위해서 그런 ‘사나이’가 썼다.

자신의 발표한 소설보다 자신의 쓴 시보다 더 많은 글자로 트윗질 하는 者를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최소한 소설가는 소설로, 시인은 시로, 학자는 논문으로 가려진 현실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가에게 공무원에게 변호사에게 기업가에게 숨겨진 진실을 글로 문자로 알려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

마루야마 겐지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책을 눈에 띄는 대로 다 사모으면서도, 왜 이렇게 매끄럽게 읽히지 감탄하면서도, 감각적인 글솜씨에 놀라면서도, 책을 읽을 때마다 부끄럽고 또 부럽다.

2012.07.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