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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메랄다 산에서 인디고 섬까지 ㅣ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2
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공나리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랑스 동화 [에스메랄다 산에서 인디고 섬까지] 글``그림 프랑수아 플라스, 솔, 2004
이 책은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시리즈 중 2번째다. 이 시리즈는 세계사에서 있었던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짧은 이야기와 환상적인 삽화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한다. 1권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저자가 의도하는 교훈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아이들이 혼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섯 이야기는 에스파냐 정복자들에 멸망한 잉카제국을 떠올리게 하는 다섯 도시 제국의 아틸랄마튈라크 원정대 이야기, 에스키모인들의 삶에서 착안한 얼음나라 낭가지크 이야기, 이스터 섬의 거석을 생각나게 하는 거인섬을 탐험한 존 맥셀커크 이야기, 다른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옹갈릴의 산적들에게 납치당한 타워아나 공주 이야기, 인도와 일본이 뒤섞인 인디고 섬을 찾아 떠나는 코르넬리우스 이야기가 있다. 1권과 마찬가지로 촘촘하게 창조된 환상이라기보다는 사실 한 토막과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이야기들이다. 이것을 좋다 나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구전되어오던 신화나 설화에 바탕을 둔 것이고,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어떤 소설 또한 완벽하게 창조되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완벽하게 자신의 창조물이라고 말하겠지만, 엄밀히 따진다면 작가가 들었거나 읽었거나 목격한 것이 무의식 속에 있다가 작가의 상상력과 결합해서 글로 표출되는 것이다. 어떤 책에서 이런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어떤 학생이 중국의 옛이야기 중에 우리나라의 [심청전] 너무나 유사한 이야기가 있어 그것을 주제로 논문을 썼고, 논문심사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어떤 책에서는 조선 시대 어느 선비가 쓴 이야기 중에 카프카의 [변신]과 너무나 흡사한 이야기 있기에 [변신]의 원조는 조선시대 그 선비에게 있다고 말한다. 일반인들이나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문학을 전공하거나 넓은 의미에서 문학과 관련된 공부를 한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심청전]이나 [변신]을 원전으로 두고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찾아내어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른가를 연구한다면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 또는 소설의 원류가 이것이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원류로 따진다면, 성경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나 고대 서사시에 안 나오는, 획기적인 이야기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 책과 같은 동화를 포함해서, 우리가 소설을 읽고 감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소재나 주제의 참신성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독자에게 익숙한 이야기라도 독자가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작가의 노력이 감동이나 교훈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성공적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웅갈릴들의 나라] 편이다. 이 이야기 끝부분에 저자는 한 페이지를 할애해서 이렇게 적어놓았다.
“알비나우스와 타위아나의 이야기는 장 샤르뎅 (파리에서 이스파한까지의 여행기)과 장 포토키 (코카서스와 중국에서)의 일화에서 영감을 얻어 쓴 것이다.”작가가 영감을 받았다는 두 책은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굳지 번역하면서 빼도 되는 것인데, 그대도 번역하고 출판한 번역자와 출판사 그리고 영감을 받았다고 쓴 작가가 너무나 존경스럽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글을 통해서 말하려 했던 본질적인 문제는 가려진 채, 트위터에는 ‘문화권력’이니 ‘상징자본’이니 어려운 말이 등장하고, 거기다가 말만 많은 논객까지 나서서 편을 갈라 싸우고 있다. 재미도 중요하고 많이 팔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화책에서도 지켜지는 원칙,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원칙을 가지고 싸우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안다면 뭐라고 할까. 2012.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