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장선하 옮김 / 책만드는집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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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 [노인과 바다] 헤밍웨이, 장선하 역, 책만드는집, 2012

 

윌리엄 케인은 [거장처럼 써라]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헤밍웨이 문체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빠른 문장의 속도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마침내 노인은 돛대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돛대를 들어 어깨에 메고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노인은 오두막에 도착하기까지 다섯 번이나 쉬어야 했다.” 이 장면은 사흘 동안 바다에서 사투를 벌인 산티아고가 빈손으로 돌아와 오두막으로 올라가는 장면이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이 부분이 어떤 장면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서평을 읽고 상상해 볼 수도 있고, 예전에 읽었던 기억을 더듬을 수도 있고, 앤소니 퀸이 주연한 영화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무미건조한 문장들에서 느끼는 감정은 저마다 다르다. 비록 번역본을 읽었지만, 헤밍웨이가 만들어 놓은 이 문장들에서 나는 전율했다.

 

같은 책을 동일한 장소와 시간에 읽었어도 사람에 따라 가슴 깊숙이 다가오는 문장은 다르고, 한 사람이 책을 읽어도 세월의 흐르는 만큼 느끼는 깊이도 달라진다. 이런 것이 고전이다. 세월이 지났어도 다시 읽고 싶어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나에게 [노인과 바다]는 그런 책이다. 책을 읽을 때면 나는 주인공 산티아고와 앤소니 퀸을 분리시키지 못한다. 어릴 적 주말의 명화에 본 앤소니 퀸은 나의 산티아고다. 그렇지만 가슴 깊이 다가오는 부분은 세월이 흐른 만큼 깊어지는 것 같다. 주말의 명화를 볼 때는 검푸른 바다가 나를 압도했고, 한창 젊은 시절에는 산티아고의 구차한 삶이 너무 싫었다. “좋은 일은 오래가는 법이 없지, 노인이 생각했다. 모든 게 꿈이었으면, 처음부터 물고기를 잡지도 않고 혼자 침대에 누워 신문을 읽고 있는 거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지 않아. 노인이 말했다.” 지금은 이렇게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한 걸음 나아가는 산티아고가 존경스럽다.

 

나이가 좀 더 들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이런 것이 고전을 읽는 기쁨 중 하나일 것이다. 고전만 읽어야 한다면 우리나라의 젊은 작가들의 설 자리가 없어지고, 출판사들은 불황이라고 말하지만 매일 같이 새로운 책이 쏟아지고,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지쳐버린다. 그렇지만 고전을 읽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고전을 만들기 위해서도 고전을 읽어야 한다. 독자도 작가도 눈높이를 높여 새로운 고전을 만들어 내어야 한다. 우리는 오래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지만, 순수 한글 문학의 역사는 채 100년도 안 된다. 일본인이나 중국인 그리고 유럽인들은 조금만 노력을 기울인다면 자국어로 쓰인 고전들을 읽을 수 있다지만, 우리는 완벽하게 단절되어있지 않은가. 한문으로 된 우리 고전은 외국어를 번역하듯이 번역하지 않으면 읽을 수 없다. 한글전용 세대에게 우리 한문 고전들은 외국 작품이나 다름없다. 노벨 문학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후손들에게 [노인과 바다] 같은 작품이 우리에게도 있다고 말해 주고 싶을 뿐이다. 201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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