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맥도가 아니라 산경도가 더 정확하다는데, 정말일까요?


산맥도와 산경도는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 것이 아니라, 산줄기를 무엇으로 보고 또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는 관점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표시된지도일 뿐이에요. 산맥도가 동일한 지각운동을 통해 형성된 산줄기를 산맥으로 보고 그린 지도라면, 산경도는 분수계를 산맥으로 인식한 지도예요.
현대 지리학에서 산맥은 지각운동 또는 지질구조를 통해 일정한 방향으로 길게 늘어선 산지를 말해요. 즉 산맥도는 산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바탕을 두고 만들었으며, 지질시대에 만들어진 유용한 지하자원을 찾기에 용이해요.
조선시대에는 분수계, 즉 물길을 나누는 능선을 산맥으로 여겼어요. 18세기 실학자 신경준은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산경표를 만들고, 산맥을 대간·정간.정맥으로 구분했어요. 산경표의 산줄기 체계가 독특한 이유는 가장 큰 산줄기는 대간, 그다음 산줄기는 정간, 마지막은 정맥으로 산맥에 서열을 매겼다는 점이에요. 산경표를 지도로 표현한 것이 산경도예요. 산경도는 하천의 유역을 정확하게 표시하고 있어, 전통적인 문화권 구분에 유용해요. - P-1

영동과 영서는 어떻게 하나의 강원도가 
되었나요?


통일신라시대에는 영동과 영서를 각각 명주와 삭주라는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관리했어요. 그러다 995년 고려 성종 때 당나라 태종이 전국을 지리적 조건에 따라 10도로 나눈 것을 참고해서 우리도 전국을 10도로 나누었는데, 이때 명주와 삭주를 합쳐 삭방도로 이름 붙였어요. 삭방도란 이름은 삭주에서 따왔다고 해요.
그러다 고려 현종 때에 이르러 고려의 행정구역은 5도와 양계로 재편되는데요. 5도가 일반 행정구역이었다면, 북계와 동계를 뜻하는 양계는 군사적 목적을 위해 설치된 행정구역이었어요. 그중 태백산맥을 따라 길쭉한 모양을한 동계는 여진족의 침입을 대비해 설치했어요. 삭방도에서 군사적 이유로 동계가 분리되고 남은 지역은 교주도를 비롯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다가, 1389년 고려 공양왕 때 교주도와 동계 일부를 합쳐 교주강릉도交州江陵道로 합쳤어요.
강원도江原道란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1395년 조선 태조 때였어요.
1392년 건국한 조선은 이전의 고려시대 행정구역을 새롭게 개편하는데요. 이때 영서의 교주도와 영동의 강릉도를 하나로 합쳐 강원도라 이름 붙인 것이에요. 조선시대 강원도 일대를 관동지방關東地方이라고도 불렀는데요. 대관령의 동쪽이라는 유래와 철령관의 동쪽이라는 유래가 있어요. - P-1

남북한 행정구역의 근간이 되는 조선 팔도는 하천과 하천 주변의 도시를 중심으로 구획된 행정구역 체계였다. 하천 주변에 도시가 형성되고 발전한 과정을 살피면, 왜 조선이 이런 체계를 세웠는지 이해할 수 있다. 비교적 친숙한 한반도 남부의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먼저 충청도 충주와 청주의 앞 글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두 도시는 7세기 말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낸 신라가 오늘날 광역시에 해당하는 소경을 설치한 지역으로 각각 중원경과 서원경이 설치되었다. 충주는 남한강과 남한강의 지류큰 강으로 흐르거나 큰 강에서 갈려 나온 물줄기인 달천이 만나는 분지에서 발달했다. 남한강 수로를 이용하면 한강 하류까지 곧바로 연결되고, 남으로는 죽령을 통해 영남으로 연결되어 예나 지금이나교통의 요충지로 통한다. 금강의 지류인 무심천 주변에 자리한  - P-1

청주는 비옥한 미호평야를 발판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충청북도 도청 소재지로서 충청북도의 정치·경제·행정·문화 중심지이며, 청주 인근의 오송역은 경부고속철도와 호남고속철도가 갈라지고
중부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사통팔달의 길목이다.
조선시대 경상도慶尙道의 중심은 경주와 상주尙州였다. 형산강 분지에 자리한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는 고려시대부터 한반도 동남부 행정의 중심지로 역사가 유구하다. 낙동강 지류인 북천과 병성천 유역의 커다란 분지에 위치한 상주는 고대국가 진한의 여러 소국 중 사벌국의 중심지였으며, 조선시대에도 경상도 내륙의 중심이었다. 오늘날 도청에 해당하는 경상감영이 경주에 설치되었다가 상주를 거쳐 대구로 이전했는데, 감영이 옮겨진 이후에도 상주는 경상도의 중심 도시로 계속 기능했다. 낙동나루에서 출발하는 뱃길이 낙동강 하류까지 이어졌고, 북으로는 죽령을 통해 한강 유역과 연결되는 교통의 길목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 P-1

전주와 나주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 바로 전라도全羅道이다. 전주천 주변 분지에 형성된 전주는 견훤이 후백제의수도로 삼은 도시다. 전주 이씨의 본관이라 조선시대에는 태조의어진을 봉안한 경기전을 전주에 설치했으며, 전라감영도 이곳에 배치했다. 나주는 영산강 옆에 자리한 도시로 배를 이용해 서해로 뻗어나갈 수 있는 교두보였다. 조차가 큰 서해의 영향으로 배가 오가기 편리하고, 영산강 하류에 비옥한 나주평야가 자리해 도시의 성장 동력이 되었다. 나주는 고려시대 성종이 전국에 설치 - P-1

한 행정구역 12목 중 하나로서 호남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으며, 조선시대에도 전라도에서 전주 다음으로 큰 도시로 발달했다.

하천이 도시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강경의 흥망성쇠다. 금강변에 자리한 강경포구 주변에서 열리는 강경시장은 대한제국 당시 평양시장, 대구시장과 더불어 전국 3대 시장으로 꼽힐 만큼 번영을 누렸다. 강경에 포구가 설치되고 시장이 발달한 원동력은 강경과 뱃길로 이어진 서해의 커다란 조차에 있었다. 밀물과 썰물 때 바닷물 높이의 차이를 조차라고 하는데, 조차가 큰 바다와 하천이 만나면 바닷물이 하천을 따라 내륙 깊숙한 곳까지 흐른다. 조차가 큰 서해의 바닷물은 금강을 타고 강경을 지나 부여까지 이동했다. 이렇게 내륙까지 바닷물이 흐르면 배를 움직이기 무척 편리하므로, 강경에 포구를 설치하고 뱃길을 이용한 것이다.
강경은 금강의 지류인 강경천과 충청남도 제일의 식량창고었던 논산평야를 배후에 두고 성장했다. 금강의 뱃길을 이용해 논산평야와 내륙에서 온 농산물과 서해에서 들어오는 수산물이 강경시장에서 거래되었다. 경기도 남부의 안성, 충청남북도, 전라북도와 전주의 상인들까지 강경시장을 이용했다. 강경 황산대교  - P-1

인근에는 강경포구로 들어오는 배를 안내했던 등대가 남아 있다. 얼마나 많은 배가 강경포구를 오갔으면 바다도 아닌 금강변에 등대까지 만들었을까.
일본이 한반도를 수탈하려고 군산항을 개항하면서 강경은 전성기를 맞았다. 군산항을 통해 내륙으로 거래되는 상품의 80퍼센트가 강경을 지났다. 덕분에 강경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제일의 상업 도시로 발돋움했다. 충청남도에서 가장 먼저 상하수도와 전기가 설치된 지역이 강경이었다. 전기 공급을 위해 100평 규모 - P-1

의 화력발전소가 세워졌고, 1911년에는 처음으로 극장도 생겼다. 관공서와 은행도 자리를 잡았는데, 강경우편취급소는 충청남도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우체국이다.
금강의 편리한 뱃길 덕분에 크게 성장했던 강경은 경부선과 호남선 같은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급격하게 쇠퇴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논산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내는 거점으로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며 더는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오늘날 강경은 인구 1만 명을 유지하기도 어려워 읍에서 면으로 격하될 위기에 처해 있다. 도로교통의 발달과 1990년에 건설된 금강 하굿둑의 건설로 포구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린 결과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패배에 대하여


나는 패배가 고맙다
내게 패배가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패배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한때는 패배했기 때문에
분노의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싶었으나
분노도 가을바람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무조건 항복하지는 않았다
인생의 패배자는 없다는 말도
믿지 않았다

내게 패배가 없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패배했기 때문에 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정호승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으며, 경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詩)‘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당신을 찾아서 슬픔이 택배로 왔다』, 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 ‘내가사랑하는 사람」 수선화에게』, 영한시집 「부치지 않은 편지」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외 일본어 중국어 에스파냐어 러시아어 조지아어 몽골어 베트남어 등 번역시집이 있고,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동시집 「참새』, 우화소설집 『항아리」 「연인」 「조약돌」 「산산조각』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구에 ‘정호승문학관‘이 있다. - P-1

나는 언젠가 정호승 시인에 대해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의 상상력을 길어 올리는, 아주 오래된 시인이자 동시에 아주 새로운 시인"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는 시업 50여년 동안 진부함이라는 함정을 잘 피해왔다. 신선한 상상력이 있고 역설의 언어가 있고 선(禪)적인 일탈이 있고 반전의 힘을 지닌 덕분이다. 정호승 시의 상승과 비약의 지점에는 늘 역설과 일탈과 반전이 개입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정호승 시인은낯익은 시인이자 낯선 시인이고 오래된 시인이자 새로운 시인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번 시집에서도 역설의 언어, 선적인 일탈, 반전의 힘이 느껴져, 마치 의미와 무의미의 정류장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게패배가 없었다면/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내가 패배했기 때문에 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봄이 오면 나는 천벌을 받을 것이다/사랑은 천벌이므로/기꺼이 당신의천벌을 받으며 행복해질 것이다" 등에서 보듯 일상성을 아득히 뛰어넘는 역설의 힘이 여전히 강렬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익숙한 사물의 이름표를 떼어내고 그 본질을 향해 낯선 질문을 던진다. 그의 시선이 닿으면 편의점은 더이상 편의점이 아니라, 어느 때는 지친 영혼의 시간을 재는 시계가 되고, 어느때는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사랑은 기꺼이 감당하는 천벌이자 어두운 부두를 밝히는 등불이 된다. 바로 그렇게 편의점이 편의점이 아닐 때, 정호승은 다시 한번 낯익고도 낮선 시인이자 오래되었지만 가장 새로운 시인이 되는 것이다.

김승희 시인 - P-1

ㅣ시인의 말


신작 시집으로는 열다섯번째, ‘창비시선‘으로는 열두번째 시집이다. 시인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시집을 출간하는 일이 가장 기쁜 일이다. 내 인생에 열다섯번의 큰 기쁨을 선물해주신 절대자에게 감사드린다.
특별히 이번 시집 출간의 기쁨은 크다. 지난번 슬픔이 택배로 왔다』 출간 이후 더이상 시를 못 쓰게 될 줄 알았다. 50여년 동안이나 시를 써내 시의 샘이 말라버렸다고 여겼다. 누가 그 샘을 파묻어버린 게 아니라 아예 수원지(水源池)가 고갈되었다고 여겼다.
그래서 한동안 시의 샘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물과 밥을 먹어야하듯 시인도 죽지 않으려면 시를 생각하고 써야 했다.
시를 쓰기 시작하자 말라버린 시의 샘에 조금씩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 물을 꾸준히 퍼내자 샘은 마를 듯하다가 마르지 않았다. 퍼내면 퍼낼수록 샘물이 자꾸 고여 이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제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 한 내 시의 샘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시를 사랑한다기보다 시 - P-1

가 인간을 사랑한다는 믿음이 더욱 커졌다.
시인은 시를 통해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한다. 나 또한 시를 통해 이 시대를 사는 인간과 인생의 비밀에 대해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은유의 숲에 숨어 진실을 숨긴 침묵의 부분이 없지 않다.
무함마드는 "두조각의 빵이 있는 자는 그 한조각을 수선화와 맞바꿔라. 빵은 몸에 필요하나 수선화는 마음에 필요하다"라고 했다.
나는 이 시집이 당신의 마음에 필요한 수선화가 
되길 바란다. 사랑이 결핍되고 증오가 팽배한 이 시대에 시의 모성적 사랑의 가슴은 따뜻하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 백스물다섯편은 스물다섯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발표 신작시다. 시집 출간도 신작시를 발표하는 하나의 장(場)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2025년 가을을 기다리며
정호승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김가경


1965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다. 
동아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6년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 P-1

소재를 선택하는 안목이 개성으로 확장되는 작가들이 있다. 김가경의 경우가 그러하다.
김가경은 소재를 알아보는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눈을 가졌다. 소재 하나에 소설 한 편이꽃핀다. 소재에는 작가의 기질, 작가의 지향성 작가의 인간성이 스며들어 있다. 김가경의 인물들과 서사의 진정성은 그녀가 취하는 사람 냄새 나는 소재의 힘에서 비롯된다. 그녀가 이끄는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살았을 법한 삶의 장면 속에, 무심히 지나쳐왔을 법한 삶의 세부 속에 문득 처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가가 마주보고 싶고, 두손을 맞잡고 싶은 짠한 사람들이 거기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비껴나 있는 마음들에 대한 그녀의 각별한 애정과 배려는 남루함을 다채로움으로 아스라함을 웅숭깊음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러한 미덕은 우리가 소설에 기대하는 몇 가지 중 하나이고, 그 중심에 김가경이 있다.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 P-1

김가경은 마름질된 세상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타자를 우리의 감성과 지성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그러한 타자는 무플론이나 몰리모를 부는 사내처럼 참신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문학적상상력을 동반하여 등장하기에 그 의의가 더욱 크다. (...) 김가경이 창조해낸 서늘한 감미로움 속에 떠오르는 여러 존재들은 우리 시대가 멀리 쫓아버린 타자들의 문학적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 소설은 새로운 빛이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그늘을가지게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해설‘에서 
이경재 문학평론가·숭실대 교수 - P-1

작가의 말


소설을 써오면서 나는 수많은 문장과 수많은 인물을 낙오시켰다. 끊임없이 버리는 작업을 병행하며 소외시킨 이면의 존재들. 첫 소설집을 준비하다가 문득 그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가 궁금해졌다. 며칠 전 거리를 걷다가 한 여자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그녀는 막 택배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감청색 회사 조끼에 요즘 유행하는 냉장고 바지를 입고 머리를 질끈 묶은 상태였다. 스물네다섯은 넘어 보였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해를 피해 칠월의 벚나무 아래로 뛰어들었다. 막상 그늘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지 나무 아래 선 그녀는 수줍고 부끄러운 표정이었다. 그 자세가 이상하게도 세상과 분리되어 있는 듯 보였다. 그녀가 여느 사람들의 주파수를 갖지 않은 존재처럼 여겨졌다. 어쩌면 그녀 자신에게서조차 분리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좀 과한 상상을더해갈 즈음 그녀가 온몸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제 이야기 - P-1

가 들리나요? 무언가 간절하게 다음 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의 말을 알아들으려면 내 안에서 작동하는 모든 채널을 꺼야 했다. 나를 꺼본 적이 없어 허둥대는 사이 그녀가 감쪽같이 그늘에서 사라졌다. 그녀와의 교신은 그렇게 끊겼다. 그들의 안부도 거기서 끝이 났다.
물밑으로 사라져간 그들 덕에 한 권의 소설집을 묶게 되었다. 이후 나는 내 안에서 내가 완벽하게 사라지고서야 그녀를,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8월
김가경 - P-1

수록 작품 발표 지면


다이아몬드 브리지 「한국문학」 2013년 여름호
라인 블록 ‘현대문학』 2012년 4월호
몰리모를 부는 화요일 좋은소설, 2014년 겨울호배회의 기술 ‘도요문학무크」 8집 2015년 11월보리수 여인숙 부산일보 신춘문예 2009년
비둘기를 키우는 시간 문학에스프리」 2012년 가을호
여가를 즐기는 방법 「좋은소설」 2012년 봄호
첫눈 작가와사회」 2015년 겨울호
홍루 서울신문 신춘문예 2012년
회생 수련기 한국소설」 2012년 7월호 - P-1

그는 울프의 목줄을 느슨하게 잡았다. 의뢰인의 집으로 가기전 동네를 돌며 전단이라도 붙일 생각이었다. 골목마다 개 짖는소리가 들려왔지만 조련 문의 전화는 한두 건이 다였다. 성사된것도 N아파트 한 건이 고작이었다. 의뢰인은 초등학교 2학년 꼬마였다. 개를 조련하다 보면 주인 머리 꼭대기에 앉은 양 앞질러생각하고 행동하는 영악한 종들이 있다. 꼬마가 그랬다. 어린 녀석이 은근슬쩍 어른을 떠보려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방문 시간을 확인하며 바닷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택가라 해도 한두 블록 내려오다 보면 이내 바닷가와 마주쳤다. 그는종종 아무 대책 없이 자신이 묵는 모텔을 지나쳐 바닷가까지 와버리곤 했다. 제대 이후 여기저기를 떠돌며 조련사 생활을 한 그에게 마당이 있는 집은 가당찮은 조건이었다. 소주 한 병 사들고신세 비관차 광안리 바닷가에 왔다가 여기다 싶었다. 울프에게 - P9

백사장은 초원과 다름없을 거였다.
그가 우연히 넘어지지만 않았더라도 이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 셰퍼드가 달려들어 그의 허벅지를 사납게 물어뜯었다. 조련 첫날 녀석과 팽팽하게 힘겨루기를 하다 생긴 일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짱돌을 주워들고 녀석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누군가 그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고 있었다는 것을 동영상이 퍼진 후에 알았다. 그 인간 탓에 인터넷은 물론 뉴스에도 나왔다. 동물보호단체로부터 지탄을받았을 뿐 아니라 조련협회에서 제적까지 당했다. 천방지축 견공들을 바른 생활로 이끈 그였다. 그의 손길을 거쳐간 많은 견공이 명견의 자리에 등극도 했다. 애정을 갖고 조련사로서 사명을 다한 그에게 동물학대죄라니. 그 이상 가혹하고 불명예스러운 죄목은 없었다. 이제 제대로 된 조련원에서는 그를 써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복날 개집이나 기웃거리는 개장수로 전락하고싶지는 않았다. 조련 생활 십여 년 만에 그에게 남은 거라고는 개에게 물린 상처와 울프뿐이었다. 그래도 경찰견 조련사로 있을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속에서 쓴물이 올라왔다. - P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바다와 인접해도 물 스트레스가 높을 수 있나요?


지표면적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바닷물은 사람에게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어요. 짠 바닷물은 수자원으로 이용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에요. 강수량이 적고건조한 기후의 나라는 내륙이든 바닷가든 물 스트레스가 큰 편이에요. 예를들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쿠웨이트, 카타르 등 서아시아 나라들은 바다를접하고 있지만 강수량이 적어 수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요.


바다를 수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나요?


해수담수화海水淡水化, Desalination 시설을 통해 바닷물에서 염분을 제거하여우리가 먹고 마시는 담수로 바꿀 수 있어요. 이로써 물 부족 문제를 어느 정도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요. 우리나라 기업인 두산중공업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해수담수화 시설 수출계약을 체결했는데, 2023년까지 150만 명이 사용할 수 있는 해수담수화 설비를 완공하기로 했어요. - P131

황사나 태풍의 피해를 줄이려는 국제적인 노력에 무엇이 있을까요?


황사를 줄이려면 황사 먼지가 발생하는 중국 내륙 지역의 사막화 진행을 막아야 해요. 이를 위해 우리나라는 중국, 몽골 정부와 함께 건조한 중국과 몽골내륙에 나무를 심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또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가 환경장관회의TEMM를 통해 대응책을 함께 논의하거나, 한국·중국·일본·몽골 네나라가 지구환경기금GEF에 참여해 황사 예보기능을 개선하는 등 주변국이함께 황사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편서풍 때문에 한반도는 방사능 피해로부터 정말 안전할까요?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상청은 한반도에는 편서풍이 불기 때문에 방사능 물질이 한반도로 확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어요. 하지만 편서풍만 믿고 안심하기에는 일러요. 편서풍을 타고 일본동쪽 태평양으로 날아간 방사능 물질이 대기 흐름에 따라 다시 한반도에 도착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에요. 한편 중국 해안가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도리어 편서풍의 영향으로 한반도가 직접적인 피해를 받을 우려도 있어요. - P1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