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년 영국 런던에서 당대 저명한 학자이자 문필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과 어머니 줄리아 프린셉 덕워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남자형제들처럼 공식 대학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서재에서 많은 책을 탐독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화가인 언니 버네사와 함께 블룸즈버리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케임브리지 대학교출신의 지식인, 예술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버지니아가 주축이 되어 활동한 이 모임은 훗날<블룸즈버리 그룹>으로 알려진다. 
1912년 그룹의 일원이던 레너드 울프와 결혼했다. 
1915년에 첫 소설 「출항」을 발표했고, 이후 모더니즘문학의 대표 걸작으로 평가받는 댈러웨이 부인(1925), 등대로(1927) 등의 소설들과 훗날 페미니즘의 필독서가 되다시피 한 자기만의방(1929) 등을 발표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시골집으로 피신하지만, 심해지는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던 버지니아는 이른 아침 강가로 나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서재에서 보낸 시간

먼저 한 가지 선입견부터 없애기로 하자.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곧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낡은 등식 말이다. 그 둘 사이에는 아무 연관도 없다. 박학자란 죽치고 앉아책에 몰두해 있는 외로운 열정가로, 그는 책들을 뒤져 가며자신이 추구하는 특정한 진리의 알갱이를 찾아 헤맨다. 만일그가 독서의 열정에 사로잡힌다면, 그의 이득은 줄어들고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갈 것이다. 반면 독서가는 처음부터 지식에 대한 욕망을 자제한다. 만일 지식이 남는다면 잘된 일이지만, 지식을 추구하여 체계적인 독서를 하고 전문가나 권위자가 되려 하는 것은 순수하고 사심 없는 독서에 대한 좀 - P11

커튼 사이로 내다볼 때 낯설게 다가오던 안개 속의 나무들을 우리는 평생 기억할 것이다. 아이들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해 이상한 예감을 갖는 법이니까. 하지만 위의 목록에서 보는 바와 같은, 좀 더 나중의독서는 전혀 다르다. 아마도 처음으로 모든 제약이 풀어져읽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읽을 수 있고, 아무 도서관이나 드나들 수 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와 같은 처지인 친구들이 있다. 며칠이고 연이어 우리는 책만 읽는다. 극도의흥분과 고양의 시기이다. 도처에서 새로운 영웅들이 나타나는 것만 같다. 우리 마음속에는 자신이 정말로 이 일을 하고있다는 일종의 경이감이 드는 한편,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가장 위대한 인간들과 이렇게 친숙해졌다는 것을 으스대고싶다는 우스꽝스러운 자만심이 일기도 한다. 이 시기는 지식욕이 가장 열렬하고 또 가장 자신만만할 때이며, 위대한 작가들이 인생의 가치에 대해 우리와 견해를 같이하는 것만 같다는 뿌듯함에 한층 더 열렬히 매진하게 된다.  - P15

 우리의 의식에서 이 모든 것을 걸러 낸다면 우리는 정말이지 가난해질 것이다. 그리고 자연이나 역사에 관한 책들이 있다. 꿀벌이나 말벌에 관한 책, 산업과 금광과 여제(女帝)와 외교책략에 관한 책, 강과 야만인,
노동조합과 의회 제정법에 관한 책을, 우리는 노상 읽고 -아쉽게도! - 노상 잊어버린다. 이렇듯 서점이 문학과는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온갖 욕망을 만족시킨다고 말하는 것이서점에는 별 칭찬이 못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에는진행 중인 문학이 있음을 기억해 두자. 이 새로운 책들에서우리 아이들은 우리를 영원히 기억되게 해줄 만한 한두 작품을 골라낼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알아볼 수만 있다면 -우리 시대에 대해 다른 시대들에게 말해 줄 시나 소설, 역사책이 있으니, 우리에게 셰익스피어 시대의 군중이 그의 작품속에서만 살아 움직이듯이 우리 또한 다음 세대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진정 그러하리라고 우리는 믿는다.  - P19

요즘은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는 말도 자주들려온다. 아마도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그처럼 쏟아져 나오는말의 홍수와 거품, 이 무절제하고 속되고 하찮은 수다의 한복판에는, 그중 소질 있는 저자만 만나면 장구히 이어질 형태로 표현될 수 있을 어떤 위대한 정념의 열기가 있으리라는것을 의심할 수 없다. 이 격랑을 지켜보는 것, 우리 시대의사상 및 비전과 드잡이하는 것, 그중 우리에게 소용될 것을포착하는 것, 무가치하게 생각되는 것을 없애 버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눌할망정 최선을 다해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이들에게 관대해야 함을 깨닫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되어야 한다. 어떤 시대의 문학도 우리 시대 문학처럼 그렇게 비권위적이고, 고전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우며, 제멋대로경의를 표하고 변덕스러운 실험을 하지 않았다. 예의 주시하는 이들에게도 우리 시대의 시인들과 소설가들의 작품에는이렇다 할 유파의 흔적이나 목표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비관론은 피할 수 없다.  - P20

예술의 본질에 관한 이론을 제시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예술에 대해 우리는 원래 아는 이상으로는 결코 더 알지 못할 수도 있고, 경험이 쌓여 가며 알게 되는 것이라고는 단지우리의 모든 즐거움 중에 위대한 예술가들로부터 얻는 즐거움이 단연 최상의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그 이상은 알수없다. 하지만 아무 이론도 제시하지 않더라도, 그런 작품들에서는 우리와 동시대에 만들어진 책들에서 발견하기를 기대할 수 없는 특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세월 그 자체에는 나름대로의 연금술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이것만은 사실이다. 고전들은 아무리 자주 읽어도 그 장점이 전혀 줄어들지않으며 무의미한 말잔치가 되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다. 그 주위에는 어떤 연상의 구름도 무관한 - P22

생각들을 쑤석이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경험의순간에 그렇듯이 우리의 모든 기능이 그 순간에 집중되며,
그들의 손으로부터 우리 위에 일종의 축성과도 같은 것이 내려온다. 우리는 그것을 더욱 선명히 느끼고 더욱 깊이 이해하며 삶에 돌린다. - P23

책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

우선 나는 이 제목 끝에 붙은 물음표를 강조하고 싶다. 설령 내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대답은 나에게만 적용될 뿐 당신에게는 아닐 것이다. 정말이지 독서에관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은 아무 조언도 따르지 말고 자신의 본능에 따라, 자신의 이성을사용하여, 자신의 결론에 이르라는 것뿐이다. 만일 우리 사이에 이 점이 양해된다면, 나는 좀 더 자유롭게 몇 가지 생각과 제안을 여러분과 나눠 보겠다. 다시 말해, 그런 생각이나제안이 당신의 독립성을 구속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립성이야말로 독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니 말이다.  - P25

책에는 분류가 있으니 - 소설, 전기, 시, 하는 식으로 -그 분류에 따라 각각의 책이 우리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바를 얻으면 된다고 말하기는 간단하다. 하지만 책에서 그것이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구하는 사람은 드물다. 흔히 우리는 막연하고 산만한 마음가짐으로 책을 접하며, 소설이 진짜이기를, 시가 거짓이기를, 전기가 아부하기를, 역사가 자신의 편견을 강화해 주기를 요구한다. 책을 읽을 때 그 모든 선입견을 추방해 버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시작이될 것이다. 읽고 있는 책의 저자에게 그가 해야 할 말을 불러주지 말고, 그가 되려고 해보라. 그의 공저자, 공범이 되는것이다. 처음부터 물러앉아 뒷짐을 지고 비판부터 한다면,
읽고 있는 책으로부터 가능한 최대의 가치를 얻어 낼 수 없다. 하지만 가능한 한 넓게 마음을 연다면, 첫 대목부터 문장들이 미묘하게 꼬이고 휘어지는 데서 거의 알아채지 못할 만큼 세미한 신호와 기미 들이 당신을 다른 어떤 사람과도 다른 한 인간의 면전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이 일에 숙달되면저자가 독자에게 주는, 또는 주고자 하는 훨씬 더 확실한 것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 P27

우선 소설을 읽는 법부터 살펴보자. 어떤 소설이 서른두챕터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모든 챕터는 무엇인가를 건물처럼 지어 올리고 다스리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말[言]은 벽돌 - P27

처럼 손에 잡히지 않으므로 책을 읽는 것은 건물을 보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리고 복잡한 과정이 된다. 아마도 소설가가하고 있는 일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읽는 것이 아니라 직접 써보는 것이다. 말의 위험과 어려움을 가지고 직접실험을 해보는 것이다. 당신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긴 어떤사건을 되새겨 보라. 길모퉁이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장면을 지나쳤다면, 그때 나무가 흔들렸다든가, 전깃불이 춤추었다든가, 대화의 어조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비극적이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전체적인 장면을 그 순간에 담긴인상 전체를 말이다.
하지만 사건을 말로 재구성하려 해보면, 그것이 수천 가지 모순된 인상들로 부서지고 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은 억제해야 하고 어떤 것은 강조해야 하며, 그과정에서 당신은 아마도 그때의 감정 전체를 그려 낼 수는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P28

하지만 디포에게는 대자연과 모험이 전부였던 반면, 제인 오스틴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녀의 세계는 응접실과, 사람들의 이야기와 이야기가 거울처럼 세세히 비추어 주는 그들의 성격으로이루어진다. 그렇듯 응접실과 그 거울상에 익숙해진 다음 하디에게로 돌아서면, 또 판이 바뀐다. 우리 주위에는 황무지가 펼쳐져 있고, 머리 위에서는 별들이 반짝인다. 마음의 이면이 드러난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밝은 면이 아니라고독 속에서 고개를 쳐드는 어두운 면 말이다. 우리의 관계는 사람들이 아니라 대자연과 운명을 향한 것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세계는 서로 다를지라도 제각기 일관성을 지니고있다. 각 세계를 만든 사람은 자기 관점의 법칙을 면밀히 준수하므로, 아무리 큰 긴장을 조성하더라도 동일한 작품 안에상이한 두 종류의 리얼리티를 도입함으로써 ㅡ 이것은 이류소설가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인데 독자를 혼란케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한 대가(大家)에서 다른 대가로, 말하자면 제인 오스틴에서 하디로, 피콕에서 트롤랩‘으로 ‘
서 메러디스로 넘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로의 이동이며뿌리 뽑혀 내동댕이쳐지는 일이다.  - P29

 그러니 그저 친구 집에서 친구 집으로, 정원에서 정원으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다니다 보면 우리는 영국 문학의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넘어가게 되며, 그러다 다시 여기 현재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지금 이순간을 구별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런 것이 우리가 전기와 서한집을 읽는 방식 중 하나이다. 우리는 그런 책들을 통해 과거의 많은 창문들을 밝힐 수도 있고, 고인이 된 유명인사들의 익히 알려진 버릇을 지켜볼 수도 있고, 때로는 아주가까이서 그들의 비밀을 상상으로나마 폭로해 볼 수도 있으며, 그들이 쓴 희곡이나 시 한 편을 꺼내 와 그것이 저자의면전에서는 어떻게 읽히는지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한다. 한 권의 책은 저자의 생애에서얼마나 영향을 받는가 하는 것이 그 질문이다. - P33

하지만 우리는 그런 책들을 또 다른 목표를 가지고 읽을수도 있다. 문학을 조명하기 위해서라거나 유명 인사들과 친숙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창조력을 새롭게 연마하기 위해서 말이다. 서가 오른쪽에 열린 창문이 있지 않은가? 책을 읽다 말고 창밖을 내다보는 것은 얼마나 상쾌한가! 그럴 때 눈에 들어오는 광경 - 망아지들이 들판을 뛰어돌아다니고, 여자는 우물가에서 물동이를 채우고, 당나귀는고개를 뒤로 빼고 구슬피 울어 젖히는 - 은 독서와는 무관한 그 무의식적이고 끊임없는 움직임이 얼마나 자극적인가.
어떤 서재에서든 거기 꽂혀 있는 대부분의 책들은 남자들,
여자들, 당나귀들의 삶에서 이처럼 스쳐 가는 순간들의 기록일 뿐이다. 모든 문학은 세월이 가면 폐지 더미가 되어 버리며, 그 사라진 순간들과 잊힌 삶의 기록들은 더듬거리는 힘없는 말투 속에 스러진다. 하지만 이 폐지를 읽는 데 맛들이게 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정말이지 내버려져 썩어 가는 인간 삶의 유물에 압도될 것이다. - P34

그들은 완전히 숙련되어 뜻대로
재단하는 예술가의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삶에 대해서조차 온전한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들은 아주근사할 수도 있었을 이야기를 망쳐 놓았다. 그들은 기껏해야사실들을 제공하는 데 그치거니와, 사실이란 허구의 아주 열등한 형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쪽짜리 진술과 추정을 끝장내고픈 마음이 든다. 인간 성격의 미세한 음영을 찾기를그치고, 더 추상적인 것을, 허구라는 더 순수한 진실을 즐기고 싶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세부를 제쳐 놓고 분위기를, 일반적이고 강렬한 분위기를 창조하며, 규칙적이고 일정한 박자를 찾는다. 그 자연스러운 표현이 시이다. 시를 읽을 때가된 것이다. 우리 자신이 거의 시를 쓸 수 있을 때야말로 시를읽을 때이다.

서풍이여, 그대 언제 불어오려는가?
가는 비 내려도 좋으리,
오 내 사랑 내 품에 있다면내 다시 침상에 있다면!

16세기 작자 미상의 시 - P36

 그럴 때 우리는 얼마나 심오한 깊이를 체험하는지! 얼마나 갑작스레 완전히 몰두하는지! 여기서는 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비상 속에는머물 데가 전혀 없다. 허구가 불러일으키는 환상은 차츰 퍼져 나간다. 그 효과는 준비된 것이다. 하지만 누가 이 넉 줄을 읽을 때 이것을 쓴 이가 누구냐고 묻거나, 존 던의 집이나시드니의 비서를 떠올리거나, 과거 여러 세대에 걸친 복잡한일과 연관시키려 하겠는가? 시인은 항상 우리와 동시대인이다. 우리 존재는 개인적 감정의 격렬한 충격 속에서 으레 그렇듯 잠시 집중되고 수축된다. 그러고 나서 감각은 우리의정신을 통해 좀 더 넓은 원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며, 더 먼감각들에도 기별이 간다. 이 감각들이 소리 내어 토를 달기시작하고 우리는 반향과 반영 들을 깨닫는다. 시의 강렬함은광범한 감정을 포괄한다. 시인의 다양한 기술을 알아차리기위해, 우리는 몇 편의 시를 비교해 보기만 하면 된다. 다음과같은 시행들의 힘과 직접성을

나는 나무처럼 쓰러져 내 무덤을 찾으리
오직 내 슬퍼하는 것을 기억하며

프랜시스 보몬트, 존 플래처 <하녀의 비극> - P37

다음 시행들의 떨리는 요동이나

떨어지는 모래알이 분초를 헤아리는
모래시계에서처럼
세월이 우리를 닳아뜨려 무덤에 이르게 하는 것을
우리는 지켜본다.
쾌락의 시절은 흥청망청 탕진된 후 마침내
고향에 돌아와 슬픔으로 끝난다.
하지만 인생은 법석에 지쳐 모래알을 헤아린다.
한숨지으며 마침내 마지막 한 알을 떨구고
하여 안식 속에 비운을 마무리 짓는다. 

존 포드 <연인의 우수> - P38

다음 시행들의 명상적인 고요함과

젊었거나 늙었거나
우리 운명, 우리 존재의 심장이자 집은
무한과 함께 있다. 오직 거기에
희망, 죽지 않는 희망과 함께 있다.
노력, 그리고 기대, 그리고 욕망
그리고 아직도 되고자 하는 무엇

윌리엄 워즈워스 <서곡> - P38

그리고 다음 시행의 완전하고 소진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나

움직이는 달이 하늘에 올라가
어디에도 머물지 않았네.
달은 부드럽게 올라가고
그 곁에는 별이 한두 개 

S. T 콜리지 <노수부의 노래> - P39

다음 시행들의 눈부신 환상과 비교해 보라.

그리하여 저 숲속을 쏘다니는 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으리.
그럴 때 어느 언덕 아래 멀리
온 세상이 타오르는 가운데
솟아나는 여린 불길 하나가
그에게는 그늘 속
크로커스로 보이리.

에버니저 존스 <세계가 불탈 때> - P39

시인에게는 우리를 배우이자 관중으로 만드는 능력이, 마치 장갑에 손을 넣기라도 하듯 등장인물 속에 들어가 폴스타프가 되었다 리어왕이 되었다 하는 재주가, 단번에 압축하고확장하고 진술하는 재능이 있는 것이다.
그저 비교하기만 하면 된다고? - 이 말로 들통이 나버렸다. 독서란 실로 복잡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첫번째과정은 작품이 주는 인상들을 고도의 이해력으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는 독서의 전반부일 뿐이다. 만일 우리가 책에서 온전한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면, 이 절반은 다른 절반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 다양한 인상들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그 스쳐 가는 형태들로 단단하고 영속적인 것을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바로는 아니다. 독서의 먼지가 내려앉기를 기다리자. 갈등과 질문이 죽어 없어지기를 기다리자.
걷고, 말하고, 장미에서 죽은 꽃잎을 떼어 내고, 잠드는 거다.
그러면 갑자기 우리가 의도하지 않고도 - 자연은 그런 식으로 이행을 일으킨다  - P40

우리는 더 이상 작가의 친구가 아니라 그를 판단하는 자이다.
우리는 친구로서 아무리 다정해도 지나치지 않듯이, 판관으로서 아무리 엄격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은 우리의 시간과공감을 낭비하게 했으니, 심판을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거짓 책, 날조된 책, 공기를 부패시키고 병들게 하는 책을 쓰는자들은 사회를 타락시키고 더럽히는 가장 불온한 적들이 아닌가? 그러니 우리의 판결에 엄격해지기로 하자. 모든 책을그 분야의 최고와 비교하기로 하자. 우리 마음속에는 우리가읽은 책의 형태들이 우리가 내린 판단에 의해 굳어진 채 매달려 있다. - P41

위해 책을 읽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그 자체로 좋아서 하는 일들, 그 자체가 목적인 즐거움들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독서야말로 그중 하나가 아닌가? 나는 때로 꿈꾸었다.
심판의 날이 밝아 와 위대한 정복자들과 법률가들과 정치가들이 보상을 받을 때, 그들이 왕관과 월계관과 영원히 썩지않을 대리석에 각인된 이름을 얻게 될 때, 하느님께서 우리가 책을 끼고 들어서는 것을 보시고는 베드로를 향해 부러움이 섞인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말이다. <저들에게는 상이 필요 없어. 여기서 그들에게 더 줄게없어. 저들은책 읽기를 사랑해 왔으니 말이야.> - P46

자신의 작품을 관습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에기초할 수 있다면, 플롯도 없어지고 희극도 비극도 전형적인스타일의 사랑 이야기도 파국도 없어져서, 단추 한 개도 본드가(街)의 양복쟁이들이 다는 방식으로는 달려 있지 않을것이다. 삶은 규칙적으로 배열된 일련의 마차 등이 아니라빛무리이며, 의식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를 둘러싸고있는 반투명한 외피外皮)이다. 이 다양한, 알려지지 않고 한정 지어지지 않은 정신을 설령 그것이 어떤 탈선이나 복잡성을 보인다 하더라도 가능한 한 외적이고 이질적인것이 섞이지 않게끔 전달하는 것이 소설가의 직무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저 용기와 성실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고유한 재료는 우리가 관습적으로 믿어 온 것과 다소다르다는 점을 제시하는 바이다.
- P54

분명 그들은 우리보다 멀리, 우리가 가진 중대한 시각 장애없이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그들이 보지 못하는 원가를 보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왜 이 암울함에 저항의목소리가 섞여 들겠는가? 이 저항의 목소리는 또 다른 오래된 문명의 목소리이니, 그것은 우리 안에 고통을 감내하며이해하기보다 즐기고 싸우는 본능을 함양해 온 듯하다. 스턴에서 메러디스에 이르기까지 영국 소설은 유머와 희극에서지상의 아름다움에서, 지성의 활동과 육체의 발랄함에서 우리가 누리는 천성적 기쁨을 증언해 준다. 하지만 영국 소설과 러시아 소설처럼 동떨어진 것들의 비교에서 얻어지는 어떤 추론도 그것이 우리에게 소설이라는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고 그 지평선에는 한계가 없으며 허위와 가식외에는 아무것도 - 어떤 <방법>이나 제아무리 자유분방한실험도 금지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는 점을제외하면 다 부질없는 것이다. <소설에 걸맞은 재료 같은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소설에 적합한 재료이다.
모든 느낌이, 모든 생각이, 두뇌와 정신의 모든 특질이 동원될 수 있다. 어떤 지각도 그릇된 것이 아니다. - P60

시, 소설, 그리고 미래

대다수의 비평가들은 현재에 등을 돌리고 과거를 응시한다. 분명 현명한 일이겠지만, 요즘 글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런 임무는 서평가라는 부류에게 - 서평가라는 직함 자체가 이들 자신이나 이들이 탐사하는 대상의덧없음을 시사하는 듯하다 ㅡ 넘겨 버린다. 하지만 때로는자문하게 된다. 비평가의 의무란 항상 과거라야만 할까? 그의 시선은 항상 등 뒤를 향해 고정되어야만 할까? 그도 때로는 돌아서서 앞을 보고,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처럼 눈 위에 손 그늘을 만들어 미래를 내다보며, 그 희미한 시야 가운데서 언젠가 우리가 도달할지도 모를 땅의 희미한 윤곽을 그려볼 수는 없는 걸까? - P101

지금껏 소설가를 피해 온 영향들, 즉 음악의힘, 시각적인 자극, 나무의 형태나 색채의 유희가 우리에게미치는 효과, 군중이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는 감정, 어떤 장소 어떤 사람들로부터 불합리하게 오는 모호한 두려움과 증오 움직임의 환희, 포도주의 도취 같은 것들을 극으로 만들기에 이를 것이다. 모든 순간이 중심이며, 지금껏 표현되지않은 막대한 지각들이 마주치는 장소이다. 삶은 항상, 그리고 불가피하게,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보다 더 풍부하다.
지금까지 개략적으로 제시한 것을 하려고 시도하는 이에게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그리 큰 예언의 재능이 필요치 않다. 산문은 아무나 시키는 대로 새로운 스텝을 배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징조들을 아주 무시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발전에 대한 필요를감지할 수 있다. 오늘날 영국, 프랑스, 미국 등지에는 거추장스러운 예속에서 풀려나 작업하려는 작가들, 다시금 자신의힘을 중요한 것들 위에 온전히 풀어놓을 위치에 서기 위해태도를 재조정하려는 작가들이 있음이 확실하다.  - P121

서평 쓰기

런던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여드는 쇼윈도가 몇 개 있다.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완성품이 아니라 헝겊을 대고 깁는낡아빠진 옷들이다. 사람들은 여자들이 작업하는 것을 구경한다. 거기 쇼윈도 안에 앉아서 그녀들은 좀먹은 바지 같은것에 보이지 않는 바늘땀을 심고 있다. 이 친숙한 광경은 이글의 삽화가 될 만하다. 우리 시인들, 극작가들, 소설가들은말하자면 그렇게 쇼윈도 안에 앉아서 서평가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을 받으며 일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평가들은 길거리의 무리처럼 말없이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 P123

이처럼 19세기의 위대한 시인과 위대한 소설가는 방식은다를지언정 모두가 서평가의 힘을 인정했으며, 그들 뒤에는민감하는 강인하든 다 같은 방식으로 ㅡ 물론 그 방식은 복잡하고 분석하기 어렵지만ㅡ 영향받았을 무수한 군소 시인과 소설가들이 있었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이 안전할 터이다.
테니슨과 디킨스는 둘 다 상처 입고 분노했으며,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데 대해 스스로 부끄럽게 여겼다. 서평가는 빈대요 그가 무는 것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물리면 역시 고통스럽다. 서평가의 독설은 허영심에도 명성에도 상처를 냈으며, 매출에도 물론 그랬다. 19세기 서평가는 무시무시한 곤충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저자의 감수성은 물론이고 대중의 취향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작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고, 대중을 설득하여 책을 사거나 안사게 만들 수도 있었다. - P127

적당히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두 극단사이를 빠져나간다. 나는 서평의 대상이 된 책의 저자들에게말을 걸어 왜 내가 그들의 책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런 대화로부터 일반 독자도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는 정직한 고백이며, 그 정직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서평이 개인적 의견의 표현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마감에 쫓기는 필자, 지면의 압박을 받는 필자, 그 옹색함가운데서 다양한 이해관계에 부응해야 하는 필자,  - P131

끝으로, 이 모든 문제중에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가 남는다. 즉, 서평가를 없애는 것이 문학에는 어떤 영향을미칠까 하는 것이다. 쇼윈도를 부숴 버리는 것이 저 손닿지않는 곳에 있는 여신의 건강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이유들은 이미 시사된 바 있다. 작가는 공방의 어둠 속으로 물러날 것이고, 더 이상 수많은 평자들이 유리창에 코를 박고들여다보면서 한 땀 한땀마다 호기심 많은 군중에게 논평을하는 가운데 옥스퍼드가에서 바지를 깁는 어렵고 미묘한 임무를 계속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자의식은 줄어들고 평판은쪼그라들 것이다. 더는 바람이 들었다 빠졌다 하지 않으면서자기 일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더 좋은 글을 쓸수 있을 것이다.  - P140

서평은 자의식을 고조시키고 힘을 약화시키며, 쇼윈도와 거울은 사람을 가두고 주눅 들게 한다. 그대신 토론을 두려움 없고 사심 없는 토론을 도입함으로써작가는 폭과 깊이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궁극적으로 대중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작가라는 인물, 공작새와 원숭이의 잡종은 더이상 조롱 대상이 아니라 공방의 어둠 속에서 자기 일을 하는 이름 없는 장인, 존경받아 마땅한 장인이 될 것이다. 이전보다 덜 치졸하고 덜 개인적인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고 있다. 문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 새로운 경의가 따라올 수도 있다. 재정적 이익을 별도로 한다면, 그것은 어떤 빛을 가져올것인가, 비평적 안목을 갖춘 배고픈 대중은 공방의 어둠 속으로 어떤 순수한 햇빛을 가져올 것인가. - P142

현대 에세이

리스 씨의 지당하신 말씀대로, 에세이의 역사와 기원을- 그것이 소크라테스에게서 비롯되었는지, 아니면 페르시아 사람 시란네이에게서 비롯되었는지 - 깊이 파고드는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모든 살아 있는 것이 그렇듯이, 에세이도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가계는 아주 넓게 퍼져 있어서, 그중 대표적인 몇사람은 세상에서 성공하여 위세를 떨치는 반면, 어떤 이들은플리트가 근처의 빈민가에서 불안정한 삶을 살기도 한다.
에세이는 형태도 다양하다. 길 수도 짧을 수도 있고, 진지할 - P143

수도 시시껄렁할 수도 있으며, 신이나 스피노자‘를 다룰 수도 있고 거북이와 치프사이드를 다룰 수도 있다. 하지만1870년부터 1920년 사이에 쓰인 에세이들이 실린 이 다섯권의 작은 책을 뒤적이다 보면, 그 혼돈 가운데서 몇 가지 원리가 눈에 뜨이며, 그 길지 않은 기간 동안에도 역사의 진보라고나 할 만한 것을 감지하게 된다.
문학의 모든 형식 가운데 에세이는 긴 단어의 사용을 가장 덜 요구하는 형식이다. 에세이를 지배하는 원리는 요컨대즐거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가에서 에세이집을 꺼낼때 우리는 단지 즐거움을 얻으려 할 뿐이다. 에세이에서는모든 것이 이 목적에 따라야 한다.  - P144

에세이는 그 첫마디로 우리에게 주문을 걸어야 하며, 우리는 그 마지막 한마디에 상쾌한 기분으로 깨어나야 한다. 그 중간에 우리는 재미와 놀람, 흥미, 분노 등 아주 다양한 경험을 거치게 될 것이다. 램‘
가 더불어 판타지의 정상으로 솟구치기도 하고, 베이컨과더불어 지혜의 심연에 뛰어들기도 하겠지만, 결코 흥분해서는 안 된다. 에세이는 우리를 넉넉히 감싸고 세계를 가로질 - P144

러 장막을 드리워야 한다.
그런 위업은 좀처럼 달성되지 않는다. 물론 그 잘못은 작가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있겠지만 말이다. 습관과 무기력이
독자의 입맛을 둔하게 한 것이다. 소설에는 이야기가 있고 시에는 리듬이 있는 데 비해, 에세이스트는 그렇게 짧은 산문에서 대체 어떤 기술을 동원해야 우리로 하여금 정신이 번쩍 들게 하고, 황홀경 - 잠이라기보다는 더 강렬한 삶이라고나 할 상태, 모든 기능이 깨어 있는 가운데 감미로운 일광욕을 즐기는 듯한 상태에 빠지게 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그는 제대로 글 쓰는 법을 알아야 한다.  - P145

이 승리는 문체의 승리이다. 왜냐하면 문학에서 자아를활용하는 것은 글 쓰는 법을 터득함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아란 문학에서 본질적이면서도 가장 위험한 적이다. 결코 자기 자신이 되지 않되 항상 자기 자신이라야 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리스씨의 선집에서 몇몇 에세이스트들은솔직히 말해 이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우리는 인쇄된 글의 영원성 가운데 분해되는 시시한 개성들을 보며 욕지기를 느낀다. 물론 잡담으로서는 매력적이었을 터이고, 그것을 쓴 사람도 맥주 한잔을 사이에 놓고 만나기에는 기분 좋은 사람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문학은 엄격하다. 매력적이거나 덕이 높거나 심지어 학식이 많고 총명하다 해도, 글 쓰는법을 알아야 한다는 문학의 첫째가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문학은 거듭 말하는 듯하다. - P155

 삶은 솟아나고 변화하고 더해진다. 책장에 꽂힌 책들도 살아 있는 한 변화한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과 만나기를 원하며, 만날 때마다 그들은 달라져 있다. 우리는 비어봄 씨의 에세이들을 한 편 한 편 반추해 보며, 9월이 오든 5월이 오든 그 글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하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에세이스트가 모든 작가중에서 여론에 가장 민감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응접실은 오늘날 많은 독서가 이루어지는 곳이며, 비어봄 씨의 에세이들도 응접실 탁자 위에 놓인 덕분에 절묘하게 돋보인다. 주위에는 술잔도, 독한 담배도, 말장난도, 술주정이나 미친 짓도 없다. 신사 숙녀는 함께 이야기하며, 물론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도 더러 있다. - P156

어떤 이들은 힘들게 간신히 통과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순풍을 타고 날아간다. 하지만 벨록 씨와 루커스 씨와 스콰이어 씨는 어떤 것에도 그 자체에 강한 애착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오늘날의 딜레마, 즉 집요한 확신의 결여이다. 그런 확신만이누군가의 언어라는 희미한 영역을 통해 덧없는 말소리를 영속적인 결혼, 영속적인 화합이 있는 땅으로 들어 올리는 것인데 말이다. 모든 정의(定義)가 막연하다고는 하나, 좋은 에세이란 이런 영속성을 지녀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장막을 치되, 우리를 밖에 두지 않고 안에 들이는 장막이라야 한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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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의 선택이 다른 선택을 배제한다는 자각, 그 어떤 순간도 다른 순간을 대체할 수 없다는 자각, 한순간의 의미는 그로 인해 포기하는 모든 것이라는 자각만큼 중대한 깨달음의 순간도 없다. 그것이 향상의 순간이다. 아름다움과 중요성은, 젊은 시절은 예외지만, 상실에서 탄생한다. 마지막 자각은 그런 상실에 대한 자각 또한 사라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세상이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관념은 청소년기의 고통이자 위안의 출처다. 어른이 되어서 얻는 유일한 이득은, 그런 가능성의 세계를 포기함으로써 얻은 유일한 정의는 실재,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일한세계의 진실, 그 세계가 존재하며, 내가 그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 주는 고통과 위안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스탠리 카벨 Stanley Cavell, 『눈에 비치는 세계 The World Viewed』


가지 않은 길과 간 길, 갈림길의 순간, 우리가 여행과 교육과일과 육아에 대해 하는 이야기들, 무엇이 진실이었는가를 둘러싼불확실성, 무능한 천사,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다 만들어진점심을 앞에 두고 앉은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없는 곳이 없다는생각이 든다. 탈출은 불가능했다. - P125

 그런 이야기는 나를 위해.
나와 함께 의미를 만든다. 의미를 만드는 과정은 각기 다른 속도,
다른 리듬에 맞춰 진행된다. 나는 떠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다.
의미와 같은 시공간에 머물지만 그것을 소유하지는 못하는 그런마음 상태를 찾아 또다시 길을 나선다. 무엇이 중요하고 왜 중요한지를 알아낼 수 있는 곳, 그것을 한 번 또는 다시 알아낼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서. - P130

여기 괴로워할 새로운 기회들이 등장했다. 데이비드가 다른길을 갔다고 해도 그의 삶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수 있다. 그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더라도 여전히 밤마다 구슬픈 음악 소리를 들었을 수 있다. "만약 ~했더라면"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철학자 넬슨 굿맨Nelson Goodman이 반사실적 문장이라고 부르는것을 만들어낸다. 당신은 다른 길을 갔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물론 당신은 그 선택이 매우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그 선택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가끔은 이런 생각에 안도하게 된다.  - P132

플롯에서 시간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각각 분리된 별도의단위가 된다. 살지 않은 삶은 사건이라는 개념의 토대가 되고, 더나아가 극적 요소가 된다. 흐르는 시간에서 한 지점이 선택된다.
마치 그 순간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듯이. 우리의 문화적 관습도 이를 돕는다. 문화적 관습은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특정 순간들에 중요성을 부여한다. 이를테면 데이비드처럼 우리는 결혼으로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필립라킨은 이런 믿음은 조롱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 P136

살지 않은 삶을 상상하는 것이 내가 여러 길 중 하나를 따라내려가면서 느끼는 단독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살지 않은 삶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런 단독성과 여러 길이 존재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일 것이다. 그럴 때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다른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이 삶을 되돌릴 수 없고 나라는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은 언제인가? 이 질문에 대한답은 개인적이지만, 또한 역사적이고 사회적이다. 프로스트의 시에서 나그네가 선택한 길은 앞서 그 길을 지나간 이들의 발자국으로 뒤덮인, 누군가가 이미 지나간 길이었다. - P159

근대의 시장 자본주의가 우리가 살지 않은 삶을 먹이고 키웠다면 그런 살지 않은 삶이 휘두르는 힘이 10년 주기로 바뀌는 이유는 특정 역사적·사회적 조건 때문이다. 더 적확히 말하자면,
변화하는 역사적·사회적 조건과 내가 연구하는 살지 않은 삶의이야기 형식의 끊임없는 변주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그 힘도 달라진다. 깊은 내면을 소유한 자아는 자신의 특별함과 평범함을 동시에 자각하고 있으므로 성찰과 비교를 통해 좁은 일방통행로를 걸어내려 가면서 실현되지 않은 것들과 대면할 준비가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자아는 왜 특정 순간에 스스로를 이런식으로 바라보게 되는 걸까? - P162

역사가들은 근대적인 전문직 사회가 19세기에 출현했다고 말한다. 이전의 농업사회와 산업사회와 달리 전문직 사회는 전문화된 직업들로 구성된다. 개인의 성공 사다리는 물려받은 재산이나 축적된 자본이 아니라 개인의 역량과 교육으로 좌우된다. 특히 영국에서는 전문직 종사자가 사회의 주류 계층이 되었다. 스스로를 직업인 또는 잠재적 직업인으로 여기는 사람이 점점 더늘어났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런 전문직들에는 엄격한 경계가생겼다. 역사가 해럴드 퍼킨Harold Perkin 이 "울타리 전략"이라는심심한 명칭을 붙인 이 현상은 대개 지원자들을 탈락시키기 위한 시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상적으로는 모두에게 개방되어야하지만 현실에서 전문직은 배타적이다.  - P162

살지 않은 삶의 탄생 조건이 모두 갖추어졌다. 다만 길 대신사다리가 주어지고 길을 걷는 대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사다리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사다리는 포기해야 한다. 변호사를 선택하면 의사나 은행원은 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분리하고 자신의 미래를 향해 올라간다. 물론 지금 사다리를 다른 사다리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아주 고된 노력이 필요하다. 또다시 밑바닥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고정한 채 한발 한 발 사다리를 오르고, 우리 주위의 모든 이들도 똑같이 그렇게 한다. - P163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상상력을 유독 자극하는 직업이 있다. 앞서 작가와 영화감독이 그런 직업이라고 말했는데, 법조인도 그중하나다. 용의자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여러 대안을 제시해 의뢰인에 대한 기소 주장에 의심의 여지를 부여한다. 내 의뢰인이이런 행동을 했고,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런 가능성들도 있다는 식이다. 예컨대 내 의뢰인은 그 시각 다른곳에 있었다거나 범죄에 사용된 무기가 다른 것이었다거나 더 그럴듯한 범행동기를 지닌 다른 용의자가 있다거나…. 찰스 디킨스가 살지 않은 삶에 집착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가 자신의 소설에 변호사를 그토록 자주 등장시킨 것도 이해가 된다. 『위대한유산』에서 재거스 씨는 소설이 한창일때법정에 등장해 자신의의뢰인들을 위해 다른 과거들을 상상해내는 마법과도 같은 힘을발휘한다. 그는 이야기꾼이다. - P164

그런 선택지들은 하나같이 좋은 미래를 약속한다. 당신은 각 선택지가 어떤 미래를 약속하는지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렇게 상상하는 동안 덫이 모습을 드러낸다. 현재의 상상 속 대안들은 당신이 살지 않은 과거가 될 것이고 결국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미래의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갈림길 앞에 선 당신이 각길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머릿속으로 그리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후회로 이어지는 길이 생겨난다. 이런 의미에서 직업은 천직과 다르다. 천직은 사명이다.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의 본질을보여준다. 다른 천직을 원하는 것은 단순히 당신의 삶을 바꾸고싶은 것이 아니라 아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직업은 사명이 아니다. 일의 근대적인 분류에 따른 하나의 유형일 뿐이다. - P165

결혼은 어떤 면에서는 직업이다. 직업처럼 왼쪽 길과 오른쪽길이 확실하게 구분된다. 그러나 결혼은 직업보다 살지 않은 삶에 대한 더 절박한 고민을 낳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개 우리가누구인지에 결혼이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살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이 취하는 양식에 결혼이 훨씬 더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직업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더 극적인 형태로 결혼은 배타적이다. 한 사람과 결혼하면 다른 많은 사람과결혼할 수 없게 된다. 직업을 끝낼 때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더 극적인 형태로 결혼을 끝내려면 아주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예전에도 법적으로 이혼이 허용되었다. 다만 실제로 이혼하기는 불가능했다.) 직업처럼 결혼도 아주 먼 미래까지 이어진다. 게다가단순히 은퇴할 때까지가 아니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이어진다. 만약 이혼하거나 별거하거나 서서히 사랑이 식는 등우리가 갈라서게 되면, 단독성이 더욱 강하게 휘몰아치면서 되돌아오기도 한다. - P171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연한 얘기지만, 이따금씩 아주 비참해지는 순간이 없다는 건 아니에요. "내가 내 인생을 망쳤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순간이요. 누구나 그럴 때면 다른 삶에 대해, 내 것일 수도 있었을 더 나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죠. 저 같은 경우에는 스티븐스 씨 당신과함께였다면 살았을 삶에 대해 생각합니다.
가즈오 이시구로 Kazuo Ishiguro, 남아 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 - P178

결혼의 불가역성과 배타성이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상상을 자극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 결혼이 특히 자주 등장하는 데는 더 흥미롭고, 더 아픈 이유가 있다. 성경과 기독교 문화는 누군가와 결혼한다는 것은 당신이 더는 다른 사람과 분리된 한 사람이 아니라 배우자와 하나가 된 사람, ‘일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르친다.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이야기는 부부의 삶을 두 사람의 삶이 아니라,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두 사람이 합쳐져 하나가 된 사람의 삶으로 취급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결혼생활의 실패(그리고 결혼하는 데 실패하는 것도 실패라고 믿는다면 미혼)는 독신의 삶을 더 볼품없는 것, 더 불행한 구속으로 만든다. "그 누구도 다른누군가가 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애덤 필립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결혼은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에 최대한가까이 다가가는 셈이다." 당신이 결혼하기를 원하고, 결혼할 수있고,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 - P179

살지 않은 삶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요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다른 속도로, 다른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변했다. 눈에 띄는 변화도 있고, 확실하지 않은 변화도 있다. 그래서 살지 않은 삶의 진화 과정을 정확하게 기록하기는 어렵다. 동성애자들을 둘러싼 조건도 지난 50년간, 때로는 그 변화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릴 만큼 빠르게 변했다. 우리는 역사가 과거로 우리에게 멀어지면서 보내는 음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1963년과 이 소설이 발표된 1997년 사이에 조건들이 급격히 변했다. 1997년부터 현재까지도 계속 변했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쓰는 지금부터 당신이 이 책을읽는 순간까지도 계속 변할 것이다. 그런데도 프루가 들려준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로 이해된다. - P182

결혼, 직업, 자녀 양육을 둘러싼 조건의 변화가 지난 몇십년 동안 집중되면서 이런경험들이 훨씬 더 치열해졌다. 그것도특히 여성에게 직업적으로 성공하기를 원하는 엄마들은 아이가없는 직장 여성, 경력을 포기한 엄마들, 아이 양육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남자 동료들을 곁눈질한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스스로일을 그만두었거나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엄마들은 여전히 일을하는 주변의 여성들을 곁눈질한다.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아이가없는 여자들은 아이가 있는 여자들을 곁눈질한다. 정답인 길은없는 듯하다. 모든 좋은 길은 나머지 길을 배제한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매기 넬슨 Maggie Nelson 이 말한다. "나는 글을 쓰면서동시에 아이를 안아줄 수 없다." 그녀가 쓴 모든 문장은, 내가 읽는 그녀의 모든 문장은 그녀가 아이를 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암묵적으로 전달한다. 결과물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바로 내려놓기인 듯하다. (넬슨의 저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내 책을 한 줄로 요약했다고 느꼈다.) - P186

글쓰기(화자의 글쓰기와 존슨의 글쓰기)는 운 좋은 소수만이경험할 수 있는 그런 양가감정을 담기에 안성맞춤인 그릇이다.
그가 만난 대다수 흑인은 여자건 남자건 그런 장자의 권리를 애초에 부여받지 못했다. - P188

우리의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 자녀, 형제자매로 인해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생각이 특별한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우리의 몸이우리가 단지 우리 자신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인 동시에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족이 되면 우리는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단독성에서 벗어나 둘이 된다. 이런 점에서 가족은 결혼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성경이펼치는 고집스러운 주장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들은 모든 사랑노래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진정한 의미에서 두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은유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의 자녀는, 우리가 낳은 자녀, 우리가 낳지 않은 자녀, 우리가 낳았지만 지금은 곁에 없는 자녀는 은유와 직설의 경계가 늘 명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 P190

지금 나는 진부하거나 기발한 일을 벌이려는 게 아니다. 내 분야가 아닌 주제에 대해 전문가를 자처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흔히 시인들이 고통스러운 압박감을 느낄 때면 우리가 겪는 혼란을기록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체화된 정체성에 대한 사실들, 우리의 삶. 임신 · 무덤의 시작과 끝, 그리고그 사이를 채우는 모든 복잡한 순간들에 우리가 겪는 당혹스러움을 기록한다. 나는 언어가 이런 혼란의 경험을 전달하기에 적합한매개체라는 그들의 믿음을 충실히 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 P211

초반에 나는 우리의 단독성이 우리의 필멸성과 별개의 관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단독성은 그 자체의 차별화된 사유, 차별화된 정서를 지닌다. 물론 단독성과 필멸성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단독성에 대한 생각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삶이 끝난다는 사실이 더 구체적으로 다가올수록 현재의 당신은 과거의 살지 않은 삶들에 대해 더 자주,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살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은 당신자신의 죽음보다는 다른 이들의 죽음을 곱씹게 만든다. 다른 이들의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는 것, 요컨대 죽음이 아닌 계속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 P213

내가 누구인지 발견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면 어디서 그를 찾을수 있을까? 친구? 동료? 부모, 배우자, 자녀? 친척? 죽은 자? 나의거리를 재기 위해 나는 얼마나 멀리까지 갈 각오가 되어 있는가?
「나방의 죽음 The Death of a Moth」은 버지니아울프의 대표적인 에세이 중 하나다. 이 에세이는 다섯 단락으로 구성된 엘레지다. 울프는 9월 어느 아침 나방과 죽음에 대해 노래하면서 부서지기 쉬운 구체성과 묵직한 추상성 두 가지를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조심스럽게 다룬다. 울프는 서재 창문틀에서 나방을 발견한다. 창문 너머로는 서식스의 들판이 펼쳐져 있다. 울프의 눈길을 끈 것은 나방이 내뿜는 에너지였다. "그 에너지가 떼까마귀와밭 가는 농부, 말, 그리고 심지어 메마른 구릉까지 깨우는 것 같았다." 나방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모든 것과 하나다. "나방을 보고 있자니, 이 세상의 거대한 에너지로 만들어진, 아주 가늘지만정제된 섬유 하나가 나방의 여리고 자그마한 몸에 꿰인 것 같았다. 나방은 자주 유리창을 가로질렀고, 그때마다 나는 생명의 빛줄기 한 가닥이 내 눈에 보이는 거라고 상상할 수 있었다. 나방은거의 온전한 생명이었다."
나방은 날개를 퍼덕이다 추락한다. 다시 날아오르지만 또 추락해 창틀에 떨어진다. - P218

나방이 어려움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방은 더는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다리를 버둥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나방이 몸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돕고자 연 - P218

필을 내밀었지만, 그때 문득 그런 헛된 몸짓과 서툰 동작은죽음이 가까워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연필을 도로 내려놓았다. 

울프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들판은 이제 고요하다. 오후가 되자 일손들이 멈췄다. 새들은 먹이를 찾아 개울로 떠났다.


말들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나 그 힘은 여전히 그대로거기에 있었다. 무심하게, 무정하게, 그 무엇도 딱히 보살피지 않은 채 바깥에서 한 덩어리로 모여 있었다. 어쩌면 그힘은 자그마한 누런 나방과 대치하고 있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저 다가오는 최후에 맞서는 그 작디작은 다리들의 놀라운 투쟁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최후는마음만 먹는다면 도시 하나를 통째로, 아니 도시 하나뿐아니라 인류 전체를 집어삼킬 수도 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 무엇도 죽음 앞에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 P219

울프는 이 세상의 거대한 에너지가 짓누르는 연약한 몸을, 가느다란 실과도 같은 한 생명의 투쟁을 무기력하게 지켜본다. 그녀는 무능한 수호천사다. 능숙하게 기록을 남기는 수호천사다. "나방이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더라면 살 수 있었을 모든 가능한 삶에 생각이 미치면 나방의 소박한 행위를 연민의 눈으로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울프의, 당신의, 우리의 운명도 나방의 운명과 다를 것이 없다. - P219

나는 말과 글이 드러내는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말과 글이 감추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요컨대 나는 내가 말과 글로 인해 어떤 책임을 얼마나 지게 될지 완벽하게 알 수 없다. - P221

아예 시작하지 않거나 끝을 맺지 않으면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시작하지 않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불가능해졌고, 끝을 맺지 않음으로써 얻는 위안은 그새 시들해졌다. 이제 이책의 결함을 받아들일 때가 왔다. - P247

잠시 내 생각을 정리해보겠다. 때로는 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한계로 느껴진다. 나는 단 한 사람으로, 단 하나의 인생을 살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또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인생에 대해 생각할 때는 이런 단독성이 분리됨으로 다가온다.
나는 다른 사람, 다른인생과 분리된 한 사람이다.  - P247

 나는 내가 왔던 길을 되짚어갈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누구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수많은 경로 중에서 하나의 길을 따라왔고, 되돌아갈 수 없다. 우리 모두 특별하고 평범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것들을 늘 곱씹고 있는 것은아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때만 그렇게 한다. 그런데 유독 이런 생각에 빠지게 하는 경험들이 있다. 진로, 결혼, 임신, 육아, 죽음, 형제자매, 생존 등. 이런 경험은 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에서형성되기 때문에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생각을 더 강하게 이끌어내는 시대와 문화가 존재한다. 평생직장의 쇠퇴,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 피임의 보편화, 낙태의 합법화, 대리모와 입양 증가, "성인 진입기emerging adulthood"에 대한 지식 확장, 동성 결혼의 합법화, 트랜스젠더의 음지탈출, 나이 든 부모를 돌보는 성인 인구증가, 소셜 미디어의 발달과 그로 인한 타인과의 비교 심화. 이런모든 조건들은 각기 다른 속도로, 다른 역사적 논리에 따라 변했지만 이런 맥락들이 한데 모여 현재 우리 주변에 가득한, 살지 않은 삶들을 만들어냈다.  - P248

일찍이 나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과장된 시, 체념의철학을 노래한 시라고 말했다. 속죄』는 허구적 진실을 충실하게이행하면서 모든 것을 극한으로 몰고 간다. 세계대전 이전의 영국이라는 먼 세계, 강간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됭케르크 철수 작전, 정교한 자기기만에 빠진 아이, 그 아이의 반짝반짝 빛나는 끝없는 죄책감, 기발한 속임수임이 드러난 소설 자체 브리오니가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생각들로 고립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갈망으로 말라 죽는 것 또한 가능하다. 「가지 않은 길」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극단적인 시이면서도 가벼운 시인 것이다. 그런 가벼운 극한을 사는 것은 어떤느낌일까? - P249

 그러나 오늘 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잿빛 하늘을 바라보면서, 싸늘한 냉기를 느끼면서, 나는 생각한다. 어제 날씨가 훨씬 더 좋았는데.
경이, 즐거움, 슬픔, 화, 두려움, 기쁨, 짜증, 절망, 비애, 분노, 사랑.…. 이런 감정은 즉각적이고 순수하다. 그런 감정은 그 자체로곧장 내 안을 파고든다. 그러나 후회와 안도는 그렇지 않다. 후회와 안도의 사촌인미련, 아쉬움, 애도, 남의 불행함에 대한 고소함이나 쾌감, 연민, 질투, 억울함, 그리고 먼 친척인 자만과 예찬은 그렇지 않다. 이런 감정도 즉각적으로 내 안으로 들어와 퍼진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내가 만들어낸 감정이다. - P250

우리는 이를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아무도 이것이 특별하다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각자 자신의 삶을 산다. 하루 24시간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달리 무엇을 하겠는가,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겠는가? 그러나 우리 인간은 한 발 물러서서 자신과 자신이 저지른 삶을 탐구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있다. 그것도 모래 더미를 오르느라 사투를 벌이는 개미를바라보는 구경꾼처럼 무심한 경이로움으로 자신이 자신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입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환상 없이도 말이다. 인간은 이 모든 것을 ‘영원의 관점‘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관점에서 본 광경은 엄숙하면서도익살맞다‘ - P253

그때 (어젯밤 러셀 광장을 가로질러 가는데) 하늘의 산을 본다. 거대한 구름들을, 그리고 페르시아 위에 뜬 달을.
나는 거기에 무언가가 있다는 압도적이고 놀라운 감각에휩싸인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아름다움은 아니다. 그 자체로 충분한 그런 것이다. 충만한 것. 완성된 것 - P271

그리고 그렇게 자신과 분리된, 완성되고 충만한 무언가에 대한 감각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경험도 바뀐다. "지구 위를 걷는내 자신의 기묘함에 대한 감각도 거기 있다. 저기 위에 뜬 달과,
저 산 구름들과 함께 러셀 광장을 종종 걸어가는 기이한 인간의위치에 대한 감각도" 이것은,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대한 인식을 내 기대를 뛰어넘을 정도로 아주 강렬하게 묘사한 글이다.
울프는 단순한 사실이 불러일으키는 경이와 기묘함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그 자체로 충분한 그런 것이다." 다른 세계는 멀어지고 이 세계만 남는다. 울프의 머리 위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달만 남는다. 높은 곳에서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다. 그저 이 이상한 지구에서서 올려다본 풍경이다.
그런데도 그 자체로 충분한, 충만한, 완성된 이런 순간들에도무엇이 아닌지에 대한 생각을 완벽하게 떨쳐낼 수는 없다. 울프는 인간의 변덕스러움으로 만족과 갈망을 함께 붙들고 있다. 때로는 만족을 느끼다가, 때로는 갈망을 느끼고, 때로는 (이것이울프의 천재적인 면인데) 만족과 갈망 모두를 느낀다.  - P271

하늘에서 거기에 있는 구름과 거기에 없는 산을 본다. 그리고달은? 울프가 단순히 달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달이 여기 런던의 러셀 광장을 비추듯이 페르시아도 비추고 있다고, 페르시아는 그녀의 연인인비타 색빌웨스트Vita Sackville-West가 두 달 전 배를 타고 향한곳이다. 달은 여기에도 있고, 거기에도 있다. 울프를 비추고, 울프가 사랑하는 여자를 비춘다. 두 갈래 길을 모두 걷는 한 명의여행자가 된다.
이것이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은 아름다움 이상이다. 아름다움이자 상심이다. 살지 않은 삶에서 가장 익숙한감정은 후회와 안도인지 모르나 나로서는 이런 가슴 저리는 아름다움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다. 이것이야말로 중년이 느끼는 자유와 고독이기 때문이다. - P272

나는 블랑쇼가 헨리 제임스의 단편소설이 내뿜는 찬란한 빛에 대해 한 말을 생각해본다. 그는 헨리 제임스의 단편들이 완전한 작품이면서 또한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담고 있다고, "모든 시작 전에 늘 그렇듯이, 다른 형태들을 보여주고, 다른 가능했던 서사들의 무한하고 가벼운 공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나는제임스의 소설을 통해 이런 뒤섞인 아름다움을 처음 접했다. 마찬가지로 울프의 글이 이제 내가 이 책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울프는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인식하고, 그 과정에서세상에 대해 증언한다. 울프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움직이는 것 - P272

으로 만들고, 그러면서도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알아보고확인한다. 울프만큼 그런 아름다움을 우아하게 전달하는 이도없기 때문에 나 또한 여기서 멈추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울프가 백 년 전에 낸 음은 지금도 들을 수 있다. 성급하게 달려들다가도 갑자기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는 울프의 리듬은 사회성과 이미지의 흐름이 위태롭게 질주하는 오늘날에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리듬이다. - P273

한순간의 선택이 다른 선택을 배제한다는 자각, 그 어떤 순간도다른 순간을 대체할 수 없다는 자각, 한순간의 의미는 그로 인해 포기하는 모든 것이라는 자각만큼 중대한 깨달음의 순간도없다. 그것이 향상의 순간이다. 아름다움과 중요성은, 젊은 시절은 예외지만, 상실에서 탄생한다. 마지막 자각은 그런 상실에 대한 자각 또한 사라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세상이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관념은 청소년기의 고통이자 위안의 출처다. 어른이 되어서 얻는 유일한 이득은, 그런 가능성의 세계를 포기함으로써 얻은 유일한 정의는 실재,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일한세계의 진실, 그 세계가 존재하며, 내가 그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 주는 고통과 위안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스탠리 카벨 Stanley Cavell, 『눈에 비치는 세계 The World Vie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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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순간 우리가 되는 데 실패했지만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온전한 인간이 우리들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될수도 있었을 모든 것, 우리가 놓친 모든 것을 보았다. 그래서 한순간 다른 사람의 몫을 아까워했다. 마치 케이크를 자를 때처럼,
단 하나뿐인 케이크를 자를 때 자신의 몫이 작아지는 것을 지켜보는 아이들처럼.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파도The Waves』

부자가 되어서 행복해졌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미국 가수닐 다이아몬드 Neil Diamond는 돈 때문에 자신의 삶에 달라진 점은 별로 없다고 답했다. "돈을 쓰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뭘더 하겠어요? 점심을 두 번 먹을까요?"

남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선생 또는 작가라거나, 습관이나 외모를 설명하거나, 가족이나 내가 사는동네, 고향에 관해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건 그런 것들은 내가 누군지를 알려준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나 자신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때나는 내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내가 누가 아닌지로 시선을 돌린다. 만약 과거에 뭔가가 달랐더라면 내가 살았을 삶들에 대해, 내가 될 수도 있었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그런 과거의 순간들이 있다.  - P6

내가 현재 살고 있지 않은 삶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 나는 왜 내가 살지 않은 이 삶 또는 저 삶에 유독 집착하는 걸까? 또 왜 이 삶이 내 삶이 아니라는 사실은 전혀 개의치않는 걸까? 나는 발치료 전문의도 아니고, 조경사도 아니고, 플루트를 연주할 줄 모르고, 캐나다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다. 나는캔자스주에 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내 영혼을 갉아먹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아내만큼 너그럽지 않다는 것, 친구만큼 영리하지 않다는 것, 동생만큼 유머 감각이 없다는 것, 그리고 내가 젊지 않다는 것・・・. 이런생각들은 나와 함께 살아가고, 내가 집을 나설 때마다 따라나선다. 내가 어떤 사람이 아닌지 말할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함께 말하고 있는 것이다. - P8

철학자 버나드 윌리엄스Bernard Williams는 내가 다른 사람이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매우 원초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기본적이고 지극히 본질적인 차원의 생각, 애초에 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한 생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그런 생각이 워낙 기본적이다 보니 우리는 여기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 위에 다른 것들이 쌓이고 그 생각은 감춰진다. 윌리엄스가 그런 생각이 막연한 것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이라고 말할 때지나치게 강조하는 듯한 느낌이다. 오히려 그것이 윌리엄스가 스스로에게 애써 일깨워 줘야 하는 사실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렇듯 살지 않은 삶이 자연적이면서도 애매한 관념이다 보니 글로쓰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내 생각들이 말로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멀리 그리고 깊이 나아간다. 때로는 너무나 진부해서 차마글로 옮길 수가 없다. 이런 어려움을 감안하면 내가 문학으로 눈을 돌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심리학자와 철학자도 살지 않은 삶을 연구하지만, 작가들이야말로 살지 않은 삶의전문가다. 살지 않은 삶은 언어의 일반적인 관행을 혼란에 빠뜨린다.  - P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étre』에서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이렇게 말한다. "내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나의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인물을 똑같이 사랑하고, 또 모든 인물을 똑같이 두려워한다. 모든 인물은 각각 내가넘지 않고 돌아섰던 경계 너머로 나아간다. 내가 가장 끌리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넘어선 경계다(그 경계에서 ‘나‘는 끝난다). 왜나면 소설이 파헤치는 비밀은 그 경계 너머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소설의 실제 이야기가 펼쳐지면, 그 이야기가 펼쳐지는 페이지마다 실제 이야기와는 다른,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될 수도있었을 이야기를 전하는 여백도 함께 생겨난다. 그것은 희곡, 영화, 시도 마찬가지다. 허구는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현실을 담고있으면서도 우리의 것과는 조금씩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 P10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이야기에는 여행이 많이 나온다. 등장인물이 집을 떠나거나, 하천을 따라 내려가거나, 기차를 타거나, 택시에 합승하거나, 낯선 대륙으로 날아간다. 이렇게 여행을 하는것이 놀랍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길에 관한 이야기들이지 않은가.
그러나 의아한 모티프들도 있었다. 처음 살지 않은 삶에 관한 이야기들을 살펴볼 때는 다양한 신들이 자꾸 등장하는 것이 눈에띄었다. 무대에 직접 나서지는 않더라도 날개를 펄럭이며 계속 맴돌았다. 도대체 왜일까?  - P11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책을 쓰다 보면 당연히 쓰지 않은 책에관해 생각하게 된다. 다룰 수 있었던 모든 주장들, 갈 수 있었던모든 방향들, 다시는 열어보지 않을 게 뻔한 컴퓨터 폴더에 남겨진 모든 자료들. 나는 다른 나라 문학에서는 이 주제를 어떻게다루는지 살펴보지 않았다. 미국이나 유럽 문학에 비해 영국 문학에서 더 흔히 접할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하지만 확실하지는않다. 내가 계획했던것만큼 영화를 많이 살펴보지는 않았다.  - P15

내 삶에 시작과 끝이 있다는 생각에 나는 기꺼이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익숙해졌다. 나는 길을 따라 걷는 중이다. 어느 날길을 걷기 시작했고, 어느 날 멈출 것이다. 그러나 책의 페이지처럼 길에도 여백이 있고, 페이지의 여백처럼 길의 여백도 한계를 표시하는 역할을 한다. 내 삶에 끝이 있고 언젠가는 끝난다는 미래의 한계만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에도 내 삶에 한계가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나는 하나의 삶, 이 삶을 산다. 이 삶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삶 이외의 다른 삶도 없다. 나는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왜 내게는 이것이 아주 큰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내가 갈 수 있었던 길이 너무나 많았고,  - P17

내가 살 수 있었던 삶이 너무도 많았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6월의 어느 화창한 날,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거주하는 중년 남자로, 폭이 좁은 이 책상 앞에 앉아 산딸나무가보도에 드리운 그늘에서 노는 두 아이를 내다보면서 미지의 독자에게 이 글을 쓰고 있다. 확률적으로 따져본다면 정말 기막힌우연 아닌가?
나는 나 자신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친밀하고, 그 친밀함 안에서 나는 혼자다. 내 기억은 나만의 것이다. 그해 초봄 어느 저녁에 리치먼드가의 들판을 가로질러 막 꽃망울을 터뜨린개나리들을 헤치고 달렸고, 친구가 바로 등 뒤까지 바짝 따라붙었고, 종아리가 터질 것 같았고, 휘어진 가지가 날아들어 온몸을 때렸고,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굴렀고・・・ 나 이외에는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기억들이다. 그런 경험들이 곧 나다. 그렇게말하고 싶다.  - P18

 그리고 시 전체의 마지막 행의 첫 단어로 돌아온다. 매번 새로운 "그리고"가 나올 때마다 나는 시가 이끄는 길을 따라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런데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내 귀는 앞서 나왔던 모든 "그리고"를 떠올린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이미 읽은 것들을 품고 간다.
나는 화자와 마찬가지로 미래로 발걸음을 내디디면서도 과거를완벽하게 떨치지는 못한다.
그런 반전이 운문의 일이다. 시는 반복적으로 회귀하면서 완성된다. 그런데 갈림길에서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한 시가 왜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걸까?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과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은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이런 것들이 프로스트의 시구 사이에서 내가 찾은 질문들이다. - P24

 하루를 보내는 동안 어떤 식으로든 잠시멈추고 성찰할 시간을 낼수있다. 우리는 잠시 멈추고, 그 자리에서 시선을 밖으로 돌려 우리가 없는 곳을 본다. 물론 책을 읽는다는 것도 이와 같다. 우리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확실하게 가늠할 수 없는 곳에서 허구의 인물들은 조용히 우리 자신을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이야기들은 특정 유형의 사고와 감정을부추기고, 특정 유형의 사고와 감정을 차단한다. 어떤 질문들은제기하고, 어떤 질문들은 감춘다. 어떤 경험들은 증폭하고, 어떤경험들은 덮어버린다. 우리가 굳이 이런 식으로 삶에 대해 생각할 이유는 없으며, 대개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잠시 당신의 삶이 갈림길이 아닌 포커게임이라고 생각해보자. 다른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했는가에 따라 당신에게 이런저런 기회가 생겼을 것이고 게임이 잘 풀렸을 수도, 잘 풀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 P29

이런 말을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살지 않은 삶은 중년의 관심사다. 살지 않은 삶이 있으려면 먼저 삶을 어느 정도 살아야만한다. 미래에 다른 삶을 살 가능성들이 거의 사라졌다고 느낄 때면 어김없이 과거에 선택하지 않은 길들을 떠올리게 된다. 존 치버John Cheever가 어두운 숲 속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 잠시 멈춰 선 것은 그가 인생의 중반에 다다랐을 때였다. - P47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여기 당신이 있다.
누구나 알듯이 현대 문화는 흥미롭게도, 그리고 진부하게도젊음에 열광한다. 지난 수십 년간 로맨틱 코미디, 청소년 소설, 성장소설 등이 성행했다. 그래서 청년기가 이야기가 되기에 최적인 시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현대인이 푹 빠진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는 대개 노인이다. 젊음에 관한 노래를 작곡하는 것은 중년들이고, 그들은 그 노래를 부르면서 젊은이들을 바라본다. 우리는 삶의 경로가 확정되기 전 주어진 선택지들을 비교하고 위험을 가늠하던 그 시절을 어떤 식으로든 되돌아본다. 청년기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아서 선택이 의미가 없는 유년 시절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 확정되어서 선택지가 사라진중년도 아닌, 다양하고 새로운 가능성들로 넘치는 세계다.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에서는 한 등장인물이 이렇게 논평한다. 젊은시절에는 "모든 것이 부글부글 끓고 요동쳤다. 우리는 무엇이든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변화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우리는 묶였다…. 우리는 지금을 선택했다. 때로는 누군가 우리를 대신해서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집게 같은 게 목 아래쪽을 꽉 잡고 있는 게 느껴진다." - P49

우리는 이미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살펴보았다. 우리가 다룬 이야기들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우리가 내다볼 수 있는 길, 선로, 경로, 물길로 연결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처럼 우리가 과거를 확실하게, 즉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처럼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우리는 과거를 실제로 볼 수없고, 내가 아는 과거가 진짜 과거인지 확신할 수 없을 때가 더많다. 과거는 때로는 색과 모양이 제각각으로 비치는 어지러운만화경으로, 때로는 흑백사진으로, 때로는 냄새로, 때로는 피부를 따라 흐르다 마음을 옥죄는, 어디서 밀려왔는지 모를 감정의파도로, 때로는 얼굴에 번지는 작은 미소로 다가온다. 역광을 받은 텅 빈 도로처럼 아주 선명하게 다가오는 경우는 드물다. 이것이 신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을 등장시킨 덕에 당신은자신이 살아온 삶에 비현실적인 확신을 갖고, 당신이 살지 않은삶에 그보다 더 비현실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다. - P56

 모두 격식을 차리지 않은, 꾸밈없는 일상의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아예 시 같지 않기도 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때로는 데니스가 질 좋은스카치 위스키 한 잔을 손에 들고 의자에 편안히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자신이 쓴 시를 되돌아보면서도 그 시의 모든 구석구석이 의미로 충만한지, 그렇지 않은지를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끔은 그런 예술성의 부재가 이 시가 올린 진정한 성과라는 생각이 든다.
순응함으로써 권위를 얻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이 시는 그런 무심한 가벼움을 통해 순응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의 미덕일 것이다. 그것이 이 시의 의도라고치자. 이 시에 얼마나 만족하는가? 지금 이대로가 아닌 다른 시를 원하는가? - P64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우리는 서로서로 분리되어 있다. 여기에 한 사람이 있고, 여기에 또 한 사람이 있다. 여기에 내가 있고, 거기에 당신이 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이 당혹감에 휩싸인 화가에게 주어진 과제하나는 그런 당혹감을 우리도 똑같이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도 화가처럼 그 수수께끼를 탐구하게 하려면 우리 안에 그런 분리되었다는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것은 시인과 소설가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과 소설가의 매체는 공간적인것이 아니어서 화가처럼 물리적인 거리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그런 거리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쉽게 묘사할 수도 없다. 이는 한계로 작용하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글 쓰는 작가에게도 나름의 자원이, 도구와 재료가 있고 작가는 그 자원을 활용해 비공간적인 거리를 잰다. 공간이 빠지면 거리는 비교의 문제가 된다.
유사성과 차이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 P73

나는 지금까지 화가와 시인이 인간의 보편적 특성인 단독성,
즉 우리가 서로서로 분리된 존재라는 사실에서, 그리고 그런 단독성을 이해하고 때로는 탈출하려는 인간의 시도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단독성에 매료되는 건 화가와 시인만은 아니다. 소설가와 영화감독도 단독성에서 영감을 얻는다. 앞으로 더 살펴보겠지만 심리학자도 다른 삶을 테마로 하나의 산업을 일궈냈고, 철학자도 처음부터 다른 삶에 집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모든 좋은 것을 다 갖춘 삶(마치 신처럼 좋은 것을 완벽하게 갖춘 삶)이라 할지라도 다른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면 그 삶을 선택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여전히 자신으로서 그 삶을 누릴 수 있어야만 그런 삶을 선택할 것이다." 아리스텔레스가 이런 주장을 한근거는 심리적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기를 포기하고 싶어 하지않는다. 그로부터 훨씬 뒤에 라이프니츠 Leibniz 는 같은 주장을 논리적으로 도출한다. "당신이 누구였는지를 모두 잊어야만 한다는조건이 붙는다면 중국의 왕이 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것은 마치 신이 중국의 왕을 창조하면서 당신이라는 사람을 제거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 P78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때 나는 진정 무엇을 원하는걸까? 내가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일 리는 없다. 그것은 교체이지 변화가 아니다. 마침내 내가 망토를 펼력이며 왕좌에 앉고 왕관이 내 눈썹에 닿을 때, 그런 왕위 수여식을즐기는 나도 나의 일부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어느 부분인가? 나 자신에게 애착을 느낄 때 나는 나의 어느 부분에 애착을 느끼는 것일까? - P80

 엠프슨의 시선은 마르셀 프루스트『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의 한 구절에 닿는다. 소설의 화자가 우리 인간은 현재 다른 장소에 살면서도 특정 장소에서 우리가 살았던 삶을 기억하는 능력이 있다고지적하는 부분이다. 엠프슨은 프루스트가 매듭짓지 않은 질문을계속 이어간다. "한 장소(환경, 정신상태)에서의 삶은 언제나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두 장소에서의 삶은 환희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바람직한 전환은 둘이라는 숫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믿어야 할까? n+1개의 장소에서 사는 것은 n개의 장소에서 사는것보다 무조건 더 가치가 있을까?" 엠프슨의 글은 우리가 어디에서 사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는 우리가 말하고 쓰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왜 의미로 흘러넘치는 단어들을좋아하는 걸까? 왜 어떤 사람들은 평생 그런 단어들을 발굴하는가? 엠프슨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프루스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는 스타일에서 얻는 즐거움을 바로 그렇게 풀면서묶는 이중성으로 계속해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통합된 것들은 구문에서 하나로 묶인다.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가치 이론을 제외하면 n+1 이 n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믿어야만 한다." - P83

 그는 은유를 설명하기 위해 은유를 만들어낸다. 그의 구문은 그가 논리적으로 통합한 것들을 하나로 묶는다. 나는 그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논리적 주장의결혼식에 은유의 밀월이 축복을 내리면 그 결과로 태어난 후손은 우리를 묶는 동시에 풀어준다. 구속하는 동시에 해방한다. 단어가 그러하듯이, 자녀가 그러하듯이. - P84

집에 있으면서 학교에도 있다. 두 장소, 환희. 아이는 자신의말 속에서 자신에게 없는 모든 것을 가진다. 모든 것을 다 한다! 아이의 말을 들은 필립스는 아이가 하지 않은 모든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만 전부 따라갈 수가 없다. 필립스는 의미와공존하고 있지만 이를 소유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래서 아주짜릿하다.

내가 갈 수도 있었던 다른 길들을 상상하는 것은 나를 위한더 많은 삶들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것 저것, n+1. 나는 이 세계 안에서 또 다른 세계, 내가 거의 만질 수 있고 거의 맛볼 수있는 세계를 본다. 그 다른 세계는 이 세계의 일부다. 그림자가 사물의 일부이듯, 기억이 인식의 일부이듯, 꿈이 일상의 일부이듯. - P85

나는 아무도 아니면서 특별하다. 흔하지만 고립되어 있다. 나는 내가 유일하고 분리된 존재라고, 그리고 아마도 구속되고 갇혀 있는 존재라고 느낄지 몰라도, 나는 또한 여러 집단에 속한구성원이기도 하다. 나와 유사한 사람들, 그리고 내 삶과 유사한 삶, 나의 삶일 수도 있었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집단을 이룬다. 아마도 그 집단은 재럴과 재럴의 단짝 친구만으로이루어진 작은 집단일 수도, 모든 사람으로 이루어진 큰 집단일수도, 모든 살아 있는 생명으로 이루어진 엄청나게 큰 집단일수도 있다. 대개 우리가 속한 집단들은 그 중간 어디쯤에 해당하는 집단일 것이다. 우리는 형제자매 또는 이복형제자매, 급우또는 동료, 한 여자의 연인, 같은 도시의 거주민일 수 있다.  - P88

초반에 나는 시가 의미의 직전까지 가는 한껏 고조된 경험을제공한다고 말했다. 이제 나는 시가 흔하면서도 고립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절정의 경험도 제공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시를 이해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한 가지(유일한 한 가지는 아니다)는 고립으로부터의 탈출이다. 난해한 시를 읽으면서 정신적폐소공포증에 빠진다. 조각난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운다. 그러나 시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공간이 열리고, 빛이 들어오고, 빛과 함께 다른 사람들이 들어온다. - P89

소설을 읽는 행위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애착을 탐색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앤절라는 처음에는 스스로에게 만족했고, 다음에는 동네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절망한다. 물론 사람이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스스로를 웃기다고 생각할 수도, 진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무모하다, 실험적이다, 거만하다, 호기심이 많다, 편견이 많다. 가끔은지루하다 등 그 목록은 길다. 소설은 그런 태도에 대한 비전형적인 분류체계를 제공한다. 더 나아가 소설은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구한다. 소설 읽기에 충실하다는것은 우리 자신으로 있기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의 알레고리가된다. - P93

참여한다는 것은 일부가 된다는 것이다. 다만 오직 일부만을경험한다. 나는 온전히 아우스터리츠에 있지 않고, 이각모를 쓰고 있지도 않으며, 결코 키가 작지도 않다. 나폴레옹의 입장이되어도 여전히 나인 채로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마치 참여가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소설을 읽는 동안 참여는 무의식중에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에마가 베이츠 양에게 무례하게 굴 때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내가 그런 감정을 인식하기 이전에 그런 감정을느낀다. 이런 참여를 나타내는 또 다른 단어는 공감이다. 공감은 이미 오래전부터 소설의 윤리적·미학적 덕목의 본질로 꼽혔다. 조지 엘리엇은 "예술은 삶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삶 자체가 아니라 삶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경험을 증폭하는 방법이자 개인의 운명이라는 한계를 넘어 동지인 인간과의 접점을 늘리는 방법이다."  - P96

당신이 가장 외롭고도 외로운 때 악마가 그 틈을 파고들어 이렇게 말한다.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삶과 살았던삶, 이 삶을 당신은 한 번 더, 그리고 수도 없이 반복해서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삶에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당신이 이 삶에서 경험한 모든 고통과 모든 즐거움과 모든 생각과 한숨, 모든 형언할 수 없는 삶의 크고작은 것들이 당신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그것도 같은순서와 속도로-이 거미와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이 달빛조차도. 그리고 이 순간과 나조차도 존재의 영원한 모래시계를 반복해서 뒤집고 또 뒤집는다. 그리고 그렇게 당신도, 그저 하나의 모래알이 될 것이다!" - P113

이런 말을 들으면 이렇게 말한 악마에게 달려들어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저주하지 않겠는가? 과연 한 번이라도 이런끔찍한 순간에 그에게 이렇게 답할 수 있을까? "당신은 신이요, 나는 이보다 더 성스럽고 황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이 삶 이후의 새로운 삶도, 이 삶 이후의 다른 삶도 아니다. 오직 이 삶을 늘 똑같이 거듭해서 산다. 이 거미와 나무들 사이로 - P113

비치는 달빛까지, 모든 점에서 동일한 삶을.
아무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 위협이라면, 오직 한 사람이 되는 것이 성과라면, 두 사람이 되는 것은 (심지어 그중 한 사람은캐리 그랜트) 꿈만 같은 일일 수 있다. 우리가 영화배우들을 보면서 환희를 느끼는 것은 그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쉽고자연스럽게 우리 인간의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능력을 발견했고, 그것은 바로 우리를 발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벨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우리가 여전히 발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허세와 비겁함의 가면 뒤에 숨은 우리를 누군가,
아마도 우리의 자기파괴를 파괴할 수 있는 신이 발견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영화배우들을 보면서 환희를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우리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단독성에서 벗어나는 것을의미한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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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부커상후보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지 않았다면 절대 읽지 않았을 장르고 생소한 작가였다. 그.러.나. 정보라작가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10편의 단편들이 섬뜩한 공포와 서늘한 감각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흡인력으로 몰두하게 만들었다. 대단한 작가를 이제야 만났으나 이제라도 알게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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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저주 토끼》는 쓸쓸한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출판사에서는불의가 만연한 지금 같은 시대에 부당한 일을 당한 약한 사람(들)을 위해 복수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서 이 단편집을내기로 했다는 다분히 진취적인 의견을 준 적이 있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작품을 쓸 때의 의도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나는상당히 놀랐다.
《저주 토끼》에 실린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외롭다. 세상은 대체로 사납고 낯설고 가끔 매혹적이거나 아름다울 때도있지만 그럴 때조차 근본적으로 야만적인 곳이며, 등장인물(혹은 등장토끼 혹은 등장로봇)들은 사랑하거나 기뻐하기보다는 주로 좌절하고 절망하고 분노하고 욕망하고 분투하고 배신하고 배신당하거나 살해하거나 살해당하는 방식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세상과 교류한다.
원래 세상은 쓸쓸한 곳이고 모든 존재는 혼자이며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 혹은 복수는 경우에 따라 반드시 필요할지모르지만 그렇게 필요한 일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쓸쓸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로우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을 통해서, 낯설고 사나운 세상에서 혼자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독자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조그만 희망이다.



정보라


S12878호는 전원을 넣자마자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번에 새로 추가된 기능이다. 섬세하고 작은 변화이지만 무척이나 정교하게 구현되었다. 앞으로 나올 모델들은 기종에 따라 수줍게 웃거나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가 쳐다보거나 대담하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등 여러 가지 행동양식을 추가해서
‘성격‘을 시뮬레이션해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이런 사항들을
‘비고‘ 란에 간단히 입력했다.
이제 상호작용을 시험해봐야 한다. ‘첫인사‘다.
"안녕."
내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 안녕, 내 사랑 - P121

그런 면에서 D0068호는 편하다. 데릭은 거의 웃지 않는다.
더 오래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익숙해진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의미 없이 웃는 쪽보다는 무표정하고 조용한 쪽을 선호하는 내 취향을 D0068호가 이미 파악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도 동기화가 완료된 뒤에 D0068호는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조용히 거실을 나간다. 이제 데릭이 지난 두 달 반 동안 나와 함께 지내면서 알게 된 정보는 전부 세스도 알게 되었다. 나의 기본적인 하루의 일과,
음식 취향,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의 위치, 가까운 사람들의 연락처, 옷이나 이불을 원단 종류에 따라 상하지 않게 빨래하는방법까지. 그리고 양쪽 다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있으니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과 받아들이는 모든 정보에 대해서도 세스와 데릭은 실시간 동기화가 가능할 것이다. 말하자면 두 개의 서로 다른 몸체로 연결된 하나의 전자두뇌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마지막 한 가지 테스트가 남았다. - P125

3개월의 시험 가동 기간이 끝난 뒤에 나는 그를 구입했다.
회사 방침상 충분히 허용될 뿐 아니라 장려되는 일이라 직원할인까지 받아서 정가의 70%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이후로 회사를 두 번인가 옮겼다. 여러 회사에서 만든 수많은 인공 반려자를 이 집에 데려와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석 달까지 함께 지냈다. 인공 반려자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점점 다양해졌다. 외모도 이삼십 대쯤의 젊은이로 보이는 모델뿐 아니라 청소년이나 중년 남녀 혹은 노인형 모델도 출시되었다.
(어린이 모델도 있지만, 특별 허가를 받아야 데려올 수 있고 무엇보다 내 분야가 아니다.) 어느 연령대의 어떤 모델이든 후속 기종으로 갈수록 더 매력적이고 아름다워졌고 친절하고 상냥하고 정교하고 인간다워졌다. 주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주인에 대해 ‘배웠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이해‘ 했다.
그래서 인공 반려자는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주인의 취향과 성정에 가장 알맞은 동반자로 변화하고 ‘성장‘ 했다.
그러므로 인공 반려자를 개발하고 시험하는 것은 무척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 - P127

그러나 아무리 발전된 후속 모델을 데려와도 나에게는1호가 가장 소중했다. 아무리 섬세하고 정교하더라도 이후 기종들은 그저 내가 검사해야 하는 제품이고 업무일 뿐이었다.
1호는 달랐다. 내 첫사랑. 그는 내게 ‘인공‘이 아닌 진짜반려자였다. 평균적인 사용 연한이 지난 뒤에도 나는 1호를버릴 수 없었다. 기종이 오래되어 네트워크에 접속할 때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중단했고 나중에는 오류가 계속 나서 네트워크 접속 자체도 포기하고 차단해버렸다. 결국 1호는 ‘반려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스마트 책상이나 냉장고보다도 기능이 떨어지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내게 1호는 언제나 1호였다.
- P128

당신은 은빛 강물을 따라 흐르고
나는 사라진 과거를 향해 걸어가야지
내 심장은 당신과 함께 강물속으로
그러니 안녕, 내 사랑안녕, 내 사랑...

"그 노래를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물었다. 지나치게 높고 지나치게 큰 소리로 물었다.
세스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동기화된 자료입니다. 가장 좋아하시는 노래로 저장되어있었습니다.」나는 긴장이 확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 동기화가 완료되었다고 했다. 당연한 얘기다.
세스는 예의 바르게 잠시 기다렸다. 내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돌아서서 이제는 버섯을 썰기 시작했다. - P132

「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존재했습니다. 당신에게만은 대체할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이고 싶었습니다.」셋이 동시에 나를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세스의 손이 1호의 목덜미를 잡고 데릭이 1호의 허리를 잡은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셋이 전원과 중앙처리장치를 연결해 쓰고 있다.
그래서 맛이 가 버렸던 1호가 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저런 게 가능할 줄은 몰랐다. 아니 물론 가능한 건 알고 있었지만, 수리나 실험을 위해 공학자가 실험실에서 일부러 연결해놓은 모습이 아니라 기계가 스스로 자기들끼리 연결한모습은 처음 보았다.
가능과 불가능을 따지자면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불가능했다. 로봇이 인간을 칼로 찌르다니. 자신을 폐기 처분하려 했다는 이유로날 찌른 것은 어느 쪽이었을까. - P141

나는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가 침대 전체를 적시는 것을 느끼며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침실 창문 밖으로 셋이 밤의 거리를 걷는 모습이 보였다.
여섯 개의 다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가로등 아래를 지나갈 때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가로등 불빛이 흔들려 셋의뒷모습이 어둠에 가려졌다.
그것이 내가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 P143

이것은 오래 전에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이다.

옛날에 어떤 남자가 겨울에 눈 덮인 산길을 가다가 덫에 걸려 몸부림치는 여우를 보았다. 여우의 털가죽은 돈이 되므로남자는 여우를 죽여서 그 가죽을 가져가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여우가 고개를 들고 마치 사람처럼 남자에게 말했다.
"나를 풀어주시오."
남자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동시에 남자는 덫에 끼인 여우의 발목에서 번쩍이는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여우는 피가 아니라 황금과 같은, 황금처럼 보이는 것을 흘리고있었다. 

-- 덫 - P147

황금빛으로 빛나는 아이가 무심하게 입을 반쯤 벌리고 뾰족한 위아래 송곳니를 드러낸 채 동네 사람을 쳐다보았다.
동네 사람은 젊은 남자를 뿌리치고 붙잡힌 발목을 빼냈다.
그리고 돌아서서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쳤다.
집에 돌아와서 동네 사람은 쓰러져 있던 젊은 남자가 붙잡은 바짓단에 번쩍이는 황금빛 자국이 묻어 있는 것을 보았다. 동네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가 뜬 후에 다시 가 보았으나 산길은 눈이 녹아 질퍽질퍽할 뿐, 황금빛 아이도 배가 갈라진 남자도 이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 P166

소년은 동굴 안으로 끌려갔다.
이유는 모른다. 자신을 끌고 들어가는 사람이 누구인지도모른다. 사실 소년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확실히 몰랐다.
벌판을 배회하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그대로 끌려간곳이 산속의 동굴이었다.
소년은 동굴 안에 묶였다. 쇠사슬에 휘감긴 손발이 완전히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을 확인하고 소년을 그곳으로 데려왔던사람들은 서둘러 떠나 버렸다.
암흑 속에서 얼마 동안 울고 소리쳤으나 아무도 와 주지않았다.

-- 흉터  - P169

지 못했다. 어머니가 누구이고 아버지가 누구이며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를 떠돌고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고, 희미하게 남아 있던 기억의 잔상은 동굴 속에서 지낸 암흑의 시간속에 흩어져서 모두 망각의 심연으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소년은 누군가, 누군지 모르지만 아무나 좋으니까 누군가 자신을 이곳에서 꺼내 주기를 간절히 빌었다. 어딘지 몰라도 여기가 아닌 곳, 이 고통과 암흑이 없는 곳으로데려가 주기를, 온 마음을 다하여 무기력하게 빌고 또 빌었다.
물론 아무도 오지 않았다. 소년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였으므로, 소년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 또한 아무도 깨닫지 못했다. - P172

세상의 모든 소년은 살아남아 성장하면 청년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년은 쇠사슬이 어쩐지 점점 짧아진다고 느꼈다. 잠든 채로 자기도 모르게 팔이나 다리를 뻗으려했다가 날카로운 쇠가 살을 파고드는 감촉과 갑자기 당기는느낌에 깜짝 놀라 깨어나는 일이 많았다. 동굴 밖으로 끌려나가 얼음장처럼 차갑고 번득이는 대기 속을 가를 때 자신이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몸부림치자 그 힘에 못 이겨 자신을 물고날아가는 ‘그것‘이 함께 휘청거리는 순간을 체험하기도 했다. - P174

 손목과 발목에 아직도 걸려 있는 족쇄와 쇠사슬이 거추장스러웠다. 그는 반쯤은 엎드려서 손발로 기어가다가 나뭇가지를 잡고 매달리기도 하고두 발로 서서 버티기도 하면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을 사용하는 법을 다시 익혔다.
그는 늘 먹던 날고기가 어디에서 오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생풀과 나무 열매를 먹는 법은 알고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입에 넣고 씹으며 어딘지 모를 곳으로 계속 전진했다.
그는 도망치고 있었다. 힘들고 아팠지만, 이 순간 그는 자유로웠다. 그래서 그는 어디로 가는지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최대한 서둘렀다.
다시는 잡히고 싶지 않았다. 잡혀서는 안 되었다. 다시 그동굴 속의 어둠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번에야말로 ‘그것‘이자신을 죽이리라. 그는 그렇게 확신했다. - P177

대머리 남자가 주는 정체불명의 액체를 마시고 사람을 상대로 싸움하게 된 뒤로 그는 서서히 망가져 갔다.
강한 냄새가 나는 액체는 자꾸 마시다 보니 토하는 횟수가줄었으나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이 점점 더 심해졌다. 구토를억누르며 비틀거리면서 상대와 맞서다 보니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확실히 몸이 상했으므로 액체가남긴 후유증에서 회복되는 속도 또한 점점 느려졌다.
물론 마지막 순간에 그는 ‘그것‘이 남긴 흉터에서 단단한 비늘이 돋아나와 자신을 보호해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신이 몽롱해서 반응이 느려지다 보니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속도조차 점점 느려졌고, 기력이 떨어지고 몸이 망가져 감에 따라서 이전처럼 강력하게 반격할 수 없게 되었다. - P198

대머리 남자가 그를 버리고 떠난 것은 그가 마침내 제대로일어설 수 없게 되었을 때였다. 아무리 때리고 차고 목덜미를 짓누르고 밟아도 그는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대머리 남자는 침을 퉤, 하고 뱉은 후에 일행 중 한 명을 시켜 그를 어깨에 둘러메고 산속으로 데려가게 했다. 숲을 헤치고 안쪽으로들어가서 대머리 남자의 부하는 그를 나무 밑에 적당히 눕힌뒤에 돌아서서 가 버렸다.
그는 하늘을 보며 누워 있었다. 하늘이라고 해도 높이 솟은 빽빽한 나무 꼭대기 사이로 조금씩 보이는 파란 조각일 뿐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파란 조각을 쳐다보며 땅에 깔린 낙엽의 냄새를 맡고 있다 보니 끊임없이 울렁거리던 속이 어쩐지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는 몽롱하고 느긋한 기분이 되어 그대로계속 누워 있었다.
나무 꼭대기 사이로 보이던 파란색이 흐려졌다. 회색이 되고 이어서 짙은 잿빛으로 변하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땅에 깔린 낙엽 위로, 그의 얼굴과 몸 위로 굵은 빗방울이 사정없이 떨어졌다.
- P201

그리고 이제 다시 동굴 안으로 돌아와서, 그는 이성이나감정으로 어쩔 수 없는 몸의 감각이 익숙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동굴 안은 그의 세계였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는 돌벽의 주름 한 개, 바닥의 움푹 파이고 솟아오른 부분 하나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익숙하다면 그 자신도 이 동굴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떠올렸을 때, 쇠말뚝이 손에 닿았다.
여자의 헛간에서 여자의 오빠가 그의 오른손 수갑 고리에끼워놓았던 쇠사슬을 그는 일부러 가지고 왔다. 이제 어린 시절의 감옥에 도착해서 그는 쇠말뚝의 고리 옆에 쇠사슬을 접어서 내려놓고 그 시절에 늘 그러했듯이 쇠말뚝 옆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 자리는 그의 자리였고, 그를 위해 아직 비어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가 운이 좋아 성공한다면 앞으로 영원히 다시는 그 누구도 갇히지 않게 될 자리였다. - P221

‘그것‘은 아름다웠다. 처음으로 태양 빛 속에 ‘그것‘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생각했다. ‘그것‘은 기괴하게 아름다웠다.
햇살 아래 나타난 ‘그것‘은 검은색이 아니라 짙은 회색이었다. 잿빛 깃털에는 잘 단련한 쇠 같은 생기 없이 차가운 윤이흘렀다. 발톱과 부리는 은빛이었고, 그 은빛 부리 한가운데에짧지만 깊은 흠집이 불그스름하게 나 있었다. 자신이 휘두른쇠사슬이 부딪친 자국일 것이라고 그는 짐작했다.
부리 옆에는 새파란 눈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푸른색은 처음 마주 대하는 자에게 충격을 줄 정도로 깊고 맑고, 그리고 잔혹했다. - P223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것‘은 그를 허공으로 한 번 던져 올렸다가 부리로 다시 받았다. 그는 이제 하늘을 보고 누운 모습으로 부리에 물려서 얼굴은 ‘그것‘의 새파란 눈을 정면으로향하게 되었다.
짐승의 눈에도 표정이 있다면 그 눈에 나타난 것은 그가읽은 것은 분명 만족감이었다. 다만 사람과 달라서 짐승은 상대를 겁주고 괴롭히는 데서 즐거움을 얻지 않는다. 야생 짐승에게 다른 동물이란 내가 죽이거나 아니면 나를 죽이거나 둘중의 하나일 것이다. 일단 상대가 나를 죽이지 못하게 하고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를 죽이기 위해 잡아왔다면 상대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그냥 잡아왔다. 이겼다는 그 사실 그대로가짐승에게는 삶의 만족일 뿐이다. - P224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침이었다.
여자와 그 오빠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집의 뒤쪽,헛간이 있었던 부근에 남자의 시신일 듯한 조각들이 대량의피와 함께 흩어져 있었다. 그는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재촉하여 그곳을 떠났다.
산길을 내려와서 보니 마을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분명 어제까지 집이 있고 사람들이 다니던 자리에 수백 년은 묵었을 법한 고목이 마치 원래 자기 자리였다는 듯 자라나있었다. 혹은 울타리가 있던 곳에 덤불이 우거지고 대장간이있던 자리에는 말라붙은 풀밭만이 펼쳐져 있었다. 주민들은거의 사라졌다. 남아 있던 두세 명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때 그들의 터전이었던 장소를 헤매다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겁에 질려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었다.
그는 절망했다.
그가 원했던 것은 복수가 아니었다.  - P229

그리고 마침내 눈물이 멈추었을 때, 세상 어딘가에 있을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그는 해가 뜨는 쪽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P230

다만 그 건물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래된 동네의 낡은 건물이니 어쩔 수 없다고 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설득했다. 아파트 한 채 값으로, 작지만 어엿한 건물 하나를 사려다 보니 아무리 낙후된 동네라지만 더 좋은 물건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이 건물은 다른 집들에 비해 값이아주 쌌고, 큰길로 나가는 골목 입구에 자리 잡았으며 전철역과 버스 정류장에서도 멀지 않으니 위치도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과 함께 짧게 상의하고 잠시 망설인 뒤에얼른 결론을 내렸다.

-- 즐거운 나의 집 - P236

진짜 문제는 건물을 산 뒤에 시작되었다.
건물은 지상 4층이고 예상외로 넓은 지하실이 있었다. 1층에는 커피숍이 있고 2층에는 조그만 사무실이 세를 들어 있었다. 3층은 얼마 전에 세입자가 나가 버려서 비어 있었고, 4층은 이전 집주인의 살림집이라고 ‘복덕방 사장님은 말했다. 남의 살림집을 함부로 들어가 보기는 뭣하다고 복덕방 사장님은그녀와 남편에게 비어 있는 3층만 보여주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여주는 곳만 보고 고분고분 나와서 덜컥 계약해버린 것은 초보자의 실수치고도 너무 큰 실수였다.
이전 집주인이 이사 나간 뒤에 4층에 들어가 보니 쓰레기도 쓰레기지만 먼지와 쥐똥이 쌓이고 얼마 안 되는 가구는 다썩어서 허물어져 가는 모습이 흉가가 따로 없었다.  - P236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다. 결혼해서 가정이 있는 경우에는더욱 그렇다. 집 밖의 문제를 피해 가정으로 돌아와도 가족이집 안에서 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순댓국집 권리금 문제가 해결(꺼림칙한 경로를 거쳤지만 그래도 해결은 해결이다)되고 나자 여자가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사실은 그 전에도 전화가 계속 왔지만, 남편은 일부러받지 않았고 그녀는 도저히 거기까지 상대할 여력이 없어서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래서 상대방은 더 악에 받쳤고, 그리하여 그녀의 남편뿐만 아니라 어떻게 번호를 알아냈는지 그녀에게도 전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P259

아이는 그녀의 얼굴을 진지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아이는 처음부터 이 집과 함께 있었다. 그러니 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아이와 함께 있는 한 그녀도 이 집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리 와."
그녀는 팔을 벌렸다. 아이가 그녀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힘에 떠밀려 그녀는 뒤로 넘어질 뻔했다.
처음 만났을 때 아이는 지하실의 희끄무레한 그림자에 불과했다.
지금 아이는 분명한 형체를 가지고 체온과 살갗의 촉감이확연히 느껴지게 되었다. 더 커지고, 더 무거워지고, 더 뚜렷해졌다.
그녀는 그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엄마하고 둘이 살자."
그녀가 하얀 그림자 아이를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 - P265

"엄마하고 둘이서 행복하게 살자."
속삭이며 그녀는 아이의 희끄무레한 이마에 입 맞추었다.
어두운 콘크리트 건물의 검은 지하실에서 오랫동안 엄마를 기다렸던 조그만 아이의 흔적이 드디어 찾아낸 그녀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 P266

모래사막 위 허공에 황금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배가 떠 있었다. 배를 이루는 수천, 수만 개의 톱니바퀴가 째깍째깍 움직일 때마다 햇빛이 톱니 하나하나에 반사되어 황금 톱니바퀴 배는 태양 그 자체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위풍당당하게 번쩍이는 황금 톱니바퀴 배는 일렁이는 햇빛과 톱니바퀴에 반사된 금빛 섬광의 파도에 둘러싸인 채 모래사막 위의 뜨거운허공을 가로질러 천천히 움직여 갔다.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 P269

아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자기 나름대로파악한다. 어린아이의 지각에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에 대한 세상의 호의와 인간의 신뢰 여부를 아이는 어른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한다. 왕자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친절하고 예의 바르지만 진심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왕자가 아는 한, 그것은 세상과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었다. - P271

왕자가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얼굴을 더듬는 동안 공주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낯선 남자의 손끝이 얼굴을 만지는 것이 공주는 쑥스럽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하고 기분 좋기도 했다. 금지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감각이 당황스럽고조금은 무서우면서도 동시에 즐겁고 들뜨기도 했다. 그래서왕자의 손가락이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질 때마다 공주는 조금씩 뺨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왕자가 손가락을 떼었을 때, 공주는 이미 완전히 사랑에 빠져 있었다. 다만 그 사랑의 대상이 왕자인지 사랑 그 자체인지자기 자신의 흥분된 감정인지는 공주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당신은 아름답군요."
왕자가 속삭였다.
"내가 앞을 볼 수만 있다면.…. 단 한 번이라도 내 아름다운신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왕자의 눈에서 커다란 눈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울지 마세요." - P274

물고기가 깨뜨린 밤하늘 사이로 물이 쏟아졌다. 공주는 일어섰다. 하늘에서 차갑고 신선한 물이 쏟아져 온몸을 적셨다.
공주는 입을 벌리고 물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충분히 목을 축이고 나서도 공주는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린채 계속 물을 받아먹으며 기쁨의 춤을 추었다.
눈먼 물고기가 광대한 바다로 돌아갔고, 사막의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다.
공주는 행복했다. 죽음의 공포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모두 잊었다.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이 모래사막 한복판에 와 있는지조차 전부 잊을 정도로 공주는 행복했다. - P288

"나는 인간으로 살고 싶어요."
공주가 마침내 대답했다.
"나와 같은 인간 남자를 만나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그 아이가 또 어른이 되어 짝을 찾고 자손을낳는 모습을 보고…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그런 삶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
바람과 모래의 주인이 조용히 말했다. 공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하지만 죽음이 오기 전까지는 살아갈 테니까요."
"그렇다면 인간의 시간이 끝난 뒤에 나에게 오라."
황금 배의 남자가 제안했다.
"공주에게 인간의 삶은 줄 수 없지만, 대신 인간이 알지 못 - P293

하는 평온과 무한을 약속하겠다."
공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텅 빈 왼팔 소매가 움직였다. 공주는 산들바람과도 같이 시원하고 부드러운 공기가 오른쪽 뺨을 스치는 것을 느꼈다.
황금 배의 톱니가 끼릭끼릭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황금 배가 불꽃처럼 햇빛을 반사하며 방향을 바꾸었다. 황금 톱니바퀴의 배는 태양을 등지고 뜨거운 사막의 하늘을 가로질러 공주의 고향인 초원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 P294

오래전 광장에서 나는 그를 처음 만났다. 폴란드의 여름은 덥고 건조했다. 나는 한 손에 차가운 음료수를 들고 그늘에 앉아 있었다. 삶은 불안했다. 나는 그 불안으로부터 잠시나마 도망치고 싶었다.
광장은 시끌벅적했으나 들려오는 목소리 중에는 폴란드어보다 영어와 독일어가 더 많았다. 이곳은 관광도시다. 

-- 재회 - P298

남자를 다시 만난 곳은 도서관이었다.
그때 나는 대학원 학위과정을 끝내가는 중이었고, 논문을쓰기 위해 폴란드의 도서관에 자료조사를 하러 온 참이었다.
학교에서 약간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으나 그 돈으로는 비행기 표 값을 대기도 모자랐다. 숙식과 시내에서의 교통비와하다못해 도서관에서 책을 복사하는 비용까지 모두 내가 충당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돈을 들여서 폴란드까지 와서 과연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시작했으니 끝을 보아야 했고, 그 끝을 보는 방법 중에서 그때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이었다.
동유럽의 도서관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내가 찾아간 대학의 도서관도 폐가식이었다. 다시 말해 필요한 자료의 서지번호를 찾아서 신청서를 일일이 작성해서 제출하면 담당 사서가보관서고에 가서 책을 찾아다 주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신청서를 썼다. 그리고 해당 카운터에 가서 내밀었다.  - P303

 다만 그 대본은 그의 것이었으므로 나는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표면상으로는 내가 묶는 쪽이고 그가 묶이는 쪽이었으나실제로는 그가 명령을 내리는 쪽이고 나는 그가 상정한 대본대로 명령에 따르는 쪽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어떤 가상의 대본에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나의 방법이나 행동이 "올바르다" 혹은 "틀렸다"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침대에서 애인이 요구하는 대로묶어주는 방식이 원칙적이고 객관적인 의미에서 옳거나 틀릴수는 없다. 나는 올바르거나 틀렸다는 그의 주관적인 판단 기준을 잘 이해할 수 없어서 상당히 고생했다.  - P207

"할아버지는 이미 지나간 전쟁을, 이미 사라져버린 수용소를 평생 두려워하면서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낸 수용소 안에서 살고 있었던 거야. 할아버지는 죽고 난 뒤에야 정말로 자유롭게 자기 도시의 거리를 걸을 수 있게 됐어."
그가 중얼거렸다.
내친김에 나는 물어보았다.
"그때 광장에서 한 방향으로 걸어가던 나이 든 신사분은누구야?"
"전쟁 때 광장에서 총을 맞은 사람일 거야."
그가 말했다.
"거기서 자주 봤어. 길을 건너서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아마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길에서 죽었을 거야."
"어째서 그런 불행한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산사람도, 죽은 사람도."
내가 중얼거렸다.
"트라우마라는 거겠지."
그가 대답했다. - P312

 그 뒤에는 이런 관점을 극복하기 쉽지 않다.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내 부모가 자식의 삶을 파괴하고 미래를 갉아먹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무리하게 확장시키려고 애쓰는 것도 이러한 강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키워줬으니 감사하라는 말 앞에는, ‘죽이거나 죽게 내버려두지 않고‘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아마그들에게는 진심일 것이다. 내 부모와 그들의 부모 세대, 한국 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세대에게 가장 큰 화두는 언제나,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세대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이아니라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생존이기 때문이다.
이해와 용서는 전혀 다른 문제다. - P320

좋은 시간은 이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으나 나쁜 시간을소원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무엇을기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미래는 없었다. 그와 내가 알았던 모든 삶의 유형들은 전부 과거에 갇혀 있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삶이란 거대한 충격과 명료한 생존본능이 동시에 찬란하게 떠오른 과거의 어느 시간에 갇힌 채, 유일하게 의미 있었던 그 순간에 했듯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되풀이해 확인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 순간은 짧지만, 순간이지나간 뒤에도 오래도록 자신의 생존을 그저 무의미하게 반복해서 확인하는 동안 좋은 시간도 나쁜 시간도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간다. 삶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과거에 고정되어버린 사람들, 그도, 그의 할아버지도, 그의 어머니도, 나도, 살아 있거나 이미 죽었거나,
사실은 모두 과거의 유령에 불과했다.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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