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한동안 망설였다. 4년여의 시간이 흘러, 아무래도 이 글들을 나의 것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고쳐 쓸 수도 없었다. 생각과 감정의 틀 자체가 변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거나 쓰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렇게 여러 날의 여러 마음 끝에, 결국 이렇게 책을 묶게 되었다. 최종 원고를 보내기 위해 오래 전의 나와 조우한 며칠 동안 나는 좀 어리둥절했다. 이런 나도 있었구나. 꽤 밝았구나. 마음이 가볍고 담담했구나. 단순하고 낙관적이었구나. 심오할 것도 무거울 것도 없이. 고통스럽게 파고들어간 자기 응시의 흔적 없이.
1998년 여름의 일이다. 첫 장편소설을 낸 지 열흘 만에, 나는 혼자서 여행가방 두 개를 끌고 미국의 소도시 아이오와시티로 날아갔 - P6

다. 그곳에서 3개월간 체류하며 아이오와 대학 주최의 국제창작 프로그램(IWP)에 참가했다. 세계의 열여덟 나라-주로 제3세계에서 온시인, 소설가들과 기숙사 8층에 함께 묵으며, 빠듯하지 않은 일정 속에서 자유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동료 작가들이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간 뒤에도 잠시 그곳에 머물다가, 한 달쯤 이곳저곳을 여행한 뒤 돌아왔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때의 경험들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국제창작 프로그램이나 미국 여행에 대한 보고서는 아니다. 실상 문학에대한 얘기조차 별로 없다. 그저 내가 만난 사람들짧게 스쳐가며 내면을 열어 보여준 이들에 대한 스케치, 혹은 크로키라고 하면 될까. - P7

그 거친 연필 자국 아래 서른 전의 젊은 내가 숨어 ㅡ생략되어 ㅡ 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생각하고, 이해하려 애쓰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생생히.
잡지에 이 글들을 연재하던 때부터, 오랫동안 재촉하고 원고를 기다려준 이영희 주간께 마음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책이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다감하게 애써주신 편집부의 여러분께도 감사한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한 모든 이들에게 그립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이 처음 나올 때 이렇게 써놓고서, 그 뒤로 시간이 6년 더 홀렀다. 그러니까 벌써 그 무렵으로부터 성큼성큼 10년을 떨어져나온 - P8

셈이다. 그래도 아직 가끔 그곳, 그 사람들의 꿈을 꿀 때가 있다.
책을 되살려 펴내주신 열림원의 민병일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감히 생각지도 못했는데 표지의 글을 써주신 정현종 선생님, 임철우 선생님께 부끄럽게 머리 숙여 인사 드린다. 오래도록, 애틋하게 감사드리게 될 것 같다.
새로 태어난 이 책으로 만나게 될 독자들께 반가운 안부인사 드린다.
2009. 겨울, 韓江 - P9

그녀는 네바다의 죽음계곡 안에 있는 아파치 보호구역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했다. 나는 좀놀랐다. 백인 중류층 일색인 중서부의 아이오와에서만 석 달을 보낸나에게 그녀는 내가 직접 대면한 첫 인디언이었다. "버스에 오르면내 옆에 앉을 건가?" 그녀는 물었다. "왜요?" "네가 마음에 들어서. 인상 쓰고 정면만 바라보고 말 한마디 건네려 하지 않는 인간들은 질색이야, 인생을 미워하는 사람들이지."
그래서 우리는 버스의 중간쯤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한국어에대해 물었고 영어를 중고등학교에서 배운다고 내가 설명하자 미소를지으며 말했다.
"나한테도 영어는 모국어가 아냐. 보호구역의 미션 스쿨에서 배 - P16

웠지. 내가 아파치말을 쓸 때마다 수녀들이 날 때렸어……. ‘노 아팟치!‘ ‘노 아팟치!‘ 하면서 한 수녀는 내 새끼손가락을 세 번 분질렀어"
그녀는 관절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여줬다. 아연한 나에게 그녀는 이어 말했다.
"내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아버지 어머니가 
백인들에게 살해됐어.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붙여줬지. 태양의 딸이라고, 태양의 딸, 살리달,"
그 할아버지도 그녀가 여섯 살 때 죽었고, 그 ‘나쁜‘ 미션스쿨에서 8학년을 마친 뒤 살리달은 켄터키의 목장에 갔다. 거기서 말을 돌 - P17

보며 밥과 숙소를 빌어 고등학교를 마쳤다. 인디언 남자와 결혼을 한것은 열여덟 살 때였다. 남편과 네바다에서 버지니아까지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리던 중 그가 철길 사고로 죽었다. 그때, 남편의 시신에서 물건들을 빼앗아 가는 백인들의 팔을 그녀는 부러뜨려버렸다고했다.
"나는 미쳤었어! 알겠어? 나는 미쳤었어."
달려온 경찰이 그녀의 허벅지와 허리 사이를 쐈고, 당시 임신 4개월이었던 그녀의 아기는 그 자리에서 사산됐다.
"그 뒤로 결혼을 안 하셨나요?" 내가 묻자 그녀는 대답했다. "결코!" 결혼을 안 한 것은 물론 그녀는 누구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 P18

하지 않았다. 안아주며 "네가 좋다"라는 말까지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건 상처를 주니까,
아프니까"라고 그녀는 이유를 설명했다.
몸을 회복한 뒤 그녀는 여러 주의 보호구역을 전전하며 방황했다. 처음으로 바다를 본 것은 플로리다에서였다. 그 위에 떠 있는 요트들을 봤을 때 그녀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저거다!" "난 저걸 몰 거다!"
그녀는 항해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전문대에 들어갔다. 졸업한뒤, 스페인의 선박회사에서 만든 대형 요트를 직접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까지 운반해 오는 일을 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만한 고래가 - P20

지나가는 것을 보기도 했고, 태풍을 만나 배가 가라앉은 적도 있었다고했다.
"배가 가라앉다니, 그럼 어떻게 살아남은 거죠?"
"아니, 나는 그때 죽었어."
짐짓 유령처럼 무서운 얼굴로 나를 겁주더니, 살리달은 구명보트를 타고 구조를 기다리던 긴박한 순간들을 묘사하다 말고 갑자기 침묵했다. 창밖 밤하늘의 무수한 흰 별들이 우리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침묵을 깨고 그녀는 말했다.
"......여기가 세도나야, 붉고 아름다운 암석들이 있는데...... 낮에 왔으면 네가 보고 좋아했을 텐데. 하지만 별이 좋지? 난 한 번도 - P21

별을 바라보는 데 질려본 적이 없어."
그녀는 느닷없이 고개를 쳐들더니 조그만 소리로 코요테 울음을 흉내냈다.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난 별을 좋아해."
그녀는 이어 말했다.
"그리고 여행을 좋아해∙∙∙∙∙∙. 1년 이상은 한 곳에 있을 수 없어. 유목민 체질이라 그래."
여행하는 동안 외롭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자신의 왼쪽 어깨에는 죽은 어머니가, 오른쪽 어깨에는 죽은 아버지가, 가슴에는 죽은 남편이 함께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고 했다.
- P22

"나는 삶을 사랑해. 난 자유로워 이렇게 여행하다 보면 사람들을만날 수 있잖아? 오늘 너를 만난 것처럼.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가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느껴. 인디언 바구니 짜는 법을 백인들에게 강습한 적이 있지. 그때마다 난 말했어.
당신들이 만든 바구니에 기쁨을 담으라고."
"백인들을 증오하지 않나요?"
"다 지난 일이야."
그녀의 얼굴은 어두웠고, 조금 외로워 보였다. 잠시 후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다시 별을 향해 코요테 울음소리를 냈다. 질주하는차창 밖의 어둠이 별빛에 실려 어지럽게 흔들리던 밤이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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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가 전화보다 좋은 것은 오래오래 생각해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편지로 하는 버릇이 있다. 영원히 증거로 남아도 좋을 얘기만 써보자, 하는 마음가짐이 오히려 이야기를 잘 풀어준다. 글쎄요...... 하고 머리를 긁적거리거나, 먼산만 바라보거나, 웃음으로 대충 얼버무리거나 할 수 없는백지 앞에서 상대방을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가끔 그렇게 옛날의 감각으로, 아주 오래 모니터 앞에 앉아 이메일을 쓴다.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도 이렇게 쓸까, 아니면 저렇게 쓸까,
고민하며 몇 분을 보내버릴 때가 있다. 글쓰는 사람이어서라기보다는, 오랫동안 편지를 쓰던 습관 탓이지 싶다.
오래된 노래가 좋은 까닭은, 혹시 오래된 마음이 좋아서일까? - P119

어떤 슬픔이나 고통은 곧이곧대로 말하려 하다가는 말하는 사람의 몸뚱이를 으스러뜨려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가슴에 눌러두면 시름시름 앓게 될 테니, 방법은 하나다. 리듬에 맞춰 노래하는 것. 세자리아 에보라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사람, 이렇게 인생을 넘어가는구나. 이토록 깊은 슬픔과 리듬 사이의 서늘한 낙차 속에서, 그저 흔들리며 넘어가는구나.
케이프 베르데의 민델로 항구에서 태어난 세자리아 에보라는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를 아홉 살 때 잃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 속에선술집들에서 노래하며 성장했다고 한다.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 끊기지 않는 가난 후에 프랑스에서 음반을 내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그것이 그녀의 근원을 달래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무대에서 맨발로 노래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발벗은 마음의 자유를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뻐근해진다.
가사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모든 것이 전달되는 이 노래. 리듬 속에 몸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리는 동안, 우리의 삶이라는 게 워낙에 흔들리는 것임을, 그러니 너무 슬퍼할 것도, 후회할 것도 없 - P124

음을 어느 틈에 서늘히 알게 되는 노래.

대학에 다닐 때 잠깐 풍물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북을 둘러메고 지쳐서 간신히 행군을 따라가고 있는 나에게 선배가 다가와 말했던 기억이 난다.
힘들면 무릎을 더 꺾어서 흥을 내봐. 춤을 춘다고 생각해. 가락을 타봐. 그러면 오히려 안 힘들어.
그 말대로 해보자 정말 힘이 들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유난히 지치고 마음 둘 데 없을 때 이 노래를 듣게 되는 것도 아마 비슷한 까닭일 게다. 막막하던 마음으로 흥겨운 기타 소리, 타악기의소리, 코러스들의 목소리, 깊고도 낮은 그녀의 목소리가 스며들어오면, 잠들어 있던 생명이 서서히 요동치며 꿈틀거린다. 살 거야. 살아야지. 살고 싶어. 춤추고 싶어. 더 무릎을 꺾어야지. 더 리듬을 타야지. 더 부딪혀야지. 더 껴안아야지. 더 담대하게 무너져야지. - P125

12월의 이야기


눈물도 얼어붙네
너의 뺨에 살얼음이

내 손으로 녹여서 따스하게 해줄게
내 손으로 녹여서 강물 되게 해줄게

눈물도 얼어붙는
12월의 사랑노래



가족과 함께 내가 서울로 올라온 것은 80년 1월이었다 (26일이라는 날짜도 기억한다). 서울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넓고 춥다‘는 것이었다.
유리창의 성에 얼어붙은 길. 딱딱 소리치며 이가 부딪히는 추위. 그것들은 아마 나에게 서울의 인상이자 삶의 인상이 되었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겨울만 되면 필요 없는 새 스웨터를 사고 싶어지는 건, 추위에 대한 두려움이자 따뜻함에 대한 갈망 탓인지도 모르겠다. - P130

나무는 


언제나 내 곁에 있어
하늘과 나를 이어주며 거기
우듬지 잔가지 잎사귀 거기
내가 가장 나약할 때도

내가 바라보기 전에
나를 바라보고
내 실핏줄 검게 다 마르기 전에
그 푸른 입술 열어

언제나 나무는 내 곁에 있어
우듬지 잔가지 잎사귀 거기
내가 가장 외로울 때도
내가 가장 나약할 때도
음ㅡ 음ㅡ - P138

저기 자작나무가 심어져 있었구나. 한 그루, 두 그루, 세 그루.... 숨을 골라가며, 하나씩 세며 걸으니 모두 스물두 그루였다. 흰 우듬지,
흰 줄기, 흰 가지, 반짝이는 잎잎의 푸른 잎사귀들. 살아 있다는 것이 벅차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너무 벅차 오히려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누군가는 죽는다는 것이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듣지 못하는 거라고했다던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더 이상 나무를 보지 못하는 거라고 대답하고 싶다. 겨울날 뼈대를 드러내고 하늘을 향한 활엽수들, 봄날 연푸른 잎을 돋워내는 나무들. 그 줄기와 가지의 아름다움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그 잎사귀의 빛과 소리를 그 꽃과 냄새를 열매의 빛과 맛을.
우리가 가장 나약할 때, 가장 지쳤을 때, 때로 억울하거나, 서럽거나 후회할 때, 가장 황폐할 때,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나무는 그자리에 있다. 땅속 캄캄한 곳에서부터 잔뿌리들로 물줄기를 끌어올려 잎사귀 끝까지 밀어올리며,
그러니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때로 이들을 바라보기 위해서라도. 고요한 몸, 더욱 고요한 눈길로 이들을 떠올리기 위해서라도. 어느날 거울을 보았을 때, 내 그을린 얼굴 대신 한 그루 낮고 푸른 나무가비칠 때까지. - P142

더 읽을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픈 것은, 그의 운명을 미리 알기 때문입니다. 그가 동경에 가고자 하나 관의 허락을 못 받으면 마음이놓이고, 기어이 동경에 오고 말았소‘라고 하는 편지에서는 숨을 멈추게 됩니다. 하루하루 말라가며 저녁의 발열과 각혈, 가솔린 냄새로인한 구토를 견디는 대목은 그가 곧 죽을 것임을 내가 알기에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는 아직 모르나 나는 날짜까지 알고 있는 그의 미래말입니다. 한 달쯤만 있다 돌아가야겠소, 라는 다짐도, 돌아갈 수 없소 ㅡ 이대로는 결코, 라는 다짐도 부질없이 안타깝습니다.
밖으로 나오면 마음이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도처에서 그의 독백이 들리는 듯합니다. 짐짓 괜찮은 척 김기림의 안부를 묻고, 얼마 전시작했다는 배구가 재미있느냐며 너스레를 하고, 저녁에 듣고 온바이올린 연주에 대해 평하는 목소리입니다. 그러나 처절하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와주오. 제발 이리 와주오. - P176

카페 왈츠에서 곡들을 추리며 빼게 된 노래의 가사들은 더러 어두웠습니다. 차라리 우물 속처럼 아주 어두우면 그 어둠에 빛이 어리기도 할 텐데, 어떻게 보면 설어두운 노래들이었습니다. 빼면서는 조금아쉬웠지만 이제는 잘한 것 같습니다. 이 책의 글들도, 같은 마음으로 많이 덜어내며 썼습니다.
저는 제 운명을 미리 알지 못하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빛을 던지는 것뿐일까요. 아주 찬란한 빛이 아니라 해도 어슴푸레한, 빛의 어린아이 같은 무엇이라 해도…… 오직 생의 가운데에만 있는 무한한기쁨이, 어렴풋한 따스함으로라도 제 서툰 노래들에 배어 있기를 빌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의미 없는 바람이라는 걸. 하지만 바로 그 의미 없음으로써만 가까스로 살아남는 바람이라는 걸..... 이젠 조금은 알 것 같아서요.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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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여 고마워요 Gragias à la vida


인생이여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어서
나에게 준 두 개의 밝은 별
그것을 열면
흑과 백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으니까
높은 하늘 깊이 별들이 보이고
군중 속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네요

인생이여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어서
나에게 준 귀로 전부 새겨 넣게 되는
밤과 낮의
귀뚜라미와 카나리아 소리
망치 소리와 물레방아 소리, 공사장 소리와 소낙비 소리
그리고
마음 깊이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러운 목소리

인생이여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어서 - P86

나에게 소리와 문자를 주어서
내가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할 수 있는 언어를 주어서
어머니 친구 형제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영혼의 길을 비춰줄 빛을 주어서

인생이여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어서
힘차게 뛰는 심장을 주어서
인간의 두뇌가 이룩한 성과를 보며
선이 악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게 해주어서
그의 맑은 눈 깊은 곳에 내 시선이 가 닿게 해주어서

인생이여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어서
웃음을 주고 눈물을 주어서
덕분에 행복과 슬픔이 구별되고
그것들이 내가 노래를 만드는 재료
당신들의 노래, 그것도 같은 노래, 모두의 
노래
그것은 나 자신의 노래 - P87

인생이여 고마워요



얼마 전, 요즘은 안 들고 다니는 가방을 창고에서 꺼내 정리하다가 여러 번 접은 A4용지를 발견했다. 펼쳐보니 이 긴 메모가 적혀있었다.



내가 가진 것.

눈이 있어, 세상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표정을 볼 수 있고책을 읽을 수 있고
그림을 볼 수 있고
나무를 볼 수 있다.

귀가 있어,
바람 소리, 빗소리,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음악을 들을 수 있다. - P88

코가 있어,
모든 냄새ㅡ쑥냄새, 아기 냄새, 풀냄새, 흙냄새,
군고구마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고소하고, 향긋하고, 은은하다.

입이 있어,
말할 수 있고,
노래할 수 있고,
맛볼 수 있다.

피부가 있어,
바람을 느끼고, 따뜻한 물의 감각을 느끼고,
아이의 살결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만 느끼고,
생생히 받아들이며 살 수 있어도 좋은 것.

어두운 것. - P89

무거운 것.
이 모든 감각을 잊게 하고, 금가게 하는 것들ㅡ 두려움, 후회, 근심, 갈등.
을 극복할 것.
그 길을 찾을 것.

살 수 있는 길을 찾아갈 것


마지막 줄, ‘살 수 있는 길을 찾아갈 것‘ 아래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잊고 있었는데 그때야 기억이 났다. 춤추며 <Let it be>를 듣던 바로 그 즈음에 쓴 메모였다. 내가 정말 모든 걸 잃은 건가, 소설을 못쓰게 되었다고 정말 그렇게 느껴도 되는 건가, 의문하며 백지를 펴놓고 차근차근 써내려갔었다.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들만을써보자. 라고 생각하며 쓰다 보니 이런 목록이 완성되었다.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들의 목록. 제목처럼 ‘내가 가진것‘들의 목록.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의 시작인 오감.
그때 나에게는 사실상 자존감이라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내면이황폐했었는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런 목록을 작성할 마음을 먹 - P90

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얼마간 신기하다. 더 신기한 것은, 이 목록이 <인생이여 고마워요>의 가사와 아주 조금 닮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노래의 시적인 가사는 풍요한 생명과 감사, 축복으로 가득 차있고, 그에 비하면 일상적인 언어로 씌어진 내 목록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것들을 기억하자는 첫걸음, 아니, 첫걸음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이 노래를 처음 알게 된 건 2년쯤 전이었다. 우연히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반을 갖게 되었고, 마지막에 실린 이 노래를 들었다. 유일하게 아는 스페인어가 고맙다는 말이고, 고등학교 때 불어를 조금 배웠으니 대략 인생에 고마워하는 내용이려니 짐작만 할 수 있었다. 전체적인 가사는 전혀 몰랐지만 반복되는 그 말, Gracias à la vida를 들을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였다. 그 후 세계음악에 대한 책을 읽다가 거기 실린 이 가사를 보았고, 칠레 가수 비올레타 파라가 부침 많은 삶을 겪은 뒤에 쓴 곡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불렀는데, 그중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성이 가장 정직하고 깊다. 세계음악을 좋아하는 친구가 들려준 존 바에즈와 메르세데스 소사가 함께 부른 노래도 감동적인데, 라이브의열띤 생생함이 마치 삶 전부를 벅찬 축제로 만드는 듯하다.
대학시절 은사이신 정현종 선생님의 시들 중에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제목의 시가 있다. 시창작론 시간에 내가 냈던 시에 ‘내 - P91

청춘이 하룻밤 흙탕물처럼 떠내려가버렸어요‘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강의 시간에 나에게 물으셨다. "정말 청춘이 가버렸다고 생각하나?" 내가 대답을 못하자 선생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 난 아직도 밤마다 달밤이야."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달밤을 느낄 시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은지도. 이 노래처럼 인생에게 고백할 시간이 많지 않은지도, 실은 너에게 고맙다고. 이렇게도 많은 것을 나에게 베풀어주어서.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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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1970년 11월 광주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이 되던 해 겨울,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수유리에서 자랐다. 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고 졸업한 뒤 3년쯤 책과 잡지 만드는 일을 했다.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4편을발표하고,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달이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예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을 냈다. 오늘의젊은 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버리고싶은 것은 한숨 쉬는 습관, 얻고 싶은 것은 단순함과 지혜, 입고싶지 않은 것은 길을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버릇이다.

새벽이면 걷다 오는 물가에 버드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라는 시집도 있지만, 버드나무들의 모습을 보면 식물에게도 감정이 있으리란 생각이 실감난다. 특히 그중 한 그루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이는데, 뭔가 나에게 말을 하고 있는것 같아서다. 뭘까. 뭐라고 하는 걸까. 그걸 들으려고 한참 서 있을때가 있다. 언어로 하지 않는 말이니 설령 들었다 해도 옮겨 적기는어렵다. 굳이 억지로 옮겨 적자면 …… 하루는 이렇게 말하더랬다.
울지 마라고. 그럴 거 없다고.
그 말이 맞다.
그럴 거 없다. - P5

소월의 시에 곡을 붙였다는 것도 모르며 이 노래 <엄마야 누나야>를 배운 것이 바로 그 방학이었다. 막내고모가 불러주었는데, 처음들은 순간부터 이해했고, 곧 좋아하게 되었다. 노래를 배우던 바로그때에도 뒤안의 바람 소리가 들렸으니까. 겨울 내내 뒷숲의 동백나무 잎사귀들이 솨솨 흔들리던 그 소리.
그러고 보면 바람이라는 단어도, 햇빛이라는 단어도 없이 얼마나햇빛과 바람으로 가득 찬 노래인지. 지금도 가끔 흥얼거리곤 하는데,
읊조릴수록 사무치는 소월시의 주술적인 힘과 함께 단순한 선율은 - P40

고요히 빛나며 몸을 채운다. 식물들처럼 사람에게도 향일성이 있어,
이렇게 빛나는 것에 끌리는 걸까. 빛나는 기억, 빛나는 유년, 빛나는시간, 빛나는 모국어 ...... 살아 있으니 다행이라고 속삭여주는 것 같은이 낮은 노래. - P41

지금도 그렇지만, 젊은 날 어머니는 눈물이 많았다. 한번은 아버지가 주무시는데 옆자리의 기척이 이상해, 팔을 뻗어 어머니의 얼굴을더듬어보니 손바닥이 젖었다고 했다. 철든 후 나는 가끔 그려보곤 했다. 소리내지 않고, 옆에 누운 사람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이를 물고,
눈물이 귓속으로 흘러들지만, 들킬까 봐 손을 들어 닦지도 못하고, 어둠 속에서 혼자 우는 여자. 그 밤은 어쩌다 아버지가 깨어 손을 뻗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밤이 훨씬 많았으리라.
이제 어머니는 예순세 살이다. 곧 아흔이 되는 할머니를 모시고 아버지와 함께 바닷가에 사신다. 피곤하면 입술이 먼저 붉게 부르트고,
무릎이 아파 무거운 것을 들거나 계단 오르내리는 것을 힘들어하신다. 올해 들어서는 어째선지 부쩍 쓸쓸해하시는데, 가끔 밭일을 버려둔 채 바닷가에 혼자 앉아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신다고 한다.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다만 짐작한다. 그렇게 때로 물살에 맡겨두어야 하는 당신 삶의 고단함을, 젊은 날의 그 노래처럼 바닷물이 출렁출렁, 당신 대신 목메어주는지. - P44

하지만 산울림의 노래 중에서 꼭 한 곡만 꼽으라면 아무래도 이 노래, <청춘>이 될 것 같다. 돌아가신 김현 선생님이 즐겨 부르셨다는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이라는 가사에는 정말 푸르른 청춘을 앓고 있는 사람의 애틋한 육성이 느껴진다. 후에, 누군가 이 가사를 바꿔 ‘갈 테면 가라지, 푸르른 이 청춘‘으로 부르는 걸 듣고 웃은 적이 있다. 그 노래를 들은 지 벌써 십년이 지났는데, 그 사람은 이제 어떻게 그 가사를 바꿔 부르고 있을까. 이젠 다 가버렸지, 푸르른 그 청춘? 가고 나니 애잔하네, 푸르던 그 청춘? 아니, 차라리 이렇게 갔어도 좋다네, 푸르른 그 청춘..
그런 것, 다시 돌아가기는 싫은 것. 그만큼 혹독했던 것. 언제나 가버리려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 그러나 돌아보면 이상하게도 달 무척 밝던 밤의 한 순간으로 기억되는 것. 청춘, 피었다 지는 꽃잎 같은. - P67

나는 한번 좋아하는 물건이 생기면 해지거나 잃어버릴 때까지 쓰고, 마음에 든 시디는 백 번도 더 듣고, 한번 나에게 감동을 준 작가나시인은 어떻게 변한다 해도 끝까지 이해하고 포기하지 않는다. 송창식도 그렇다. 어렸을 때, 두 팔을 허수아비처럼 활짝 벌리고 <피리 부는 사나이>를 부르는 허허실실한 모습에 반해 좋아하기 시작했고, 사춘기 땐 ‘그 헤벌쭉한 아저씨가 뭐가 좋아? ‘이상한 한복 좀 안 입었으면 좋겠어! 라는 친구들의 핀잔과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이제는 어쩌다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모습으로 여전히 바보처럼 커다랗게 웃으며 노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니..... 오, 위대할손 나의 끈기!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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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 영혼의 자유


언젠가 바르르뒤크에서 몽테뉴는 시칠리아의왕 르네가 손수 그린 자화상을 보고는 "그가 크레용으로 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모든 사람이 펜으로 자기 자신을 그리는게 타당하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누군가 무심코 그건 타당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할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교묘히 피할 수도 있지만 우리자신의 특성들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기 때문이다. 시작해 보자. 그런데 우리가 그 작업을 시도하자 펜이 우리 손가락에서 떨어져 버린다. 그 작업은 심오하고 신비하며 압도적인 어려움을 지닌 일이다.
어쨌든, 문학 전반을 통틀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 - P324

들이 펜으로 자기 자신을 그리는 데 성공했을까? 아마도 몽테뉴와 피프스, 그리고 루소뿐일 것이다. 토머스 브라운의 《의사의 종교Religio Medici》는 채색된 유리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질주하는 별들과 기이하고 요동치는 영혼을 어렴풋이 보게 된다. 그 유명한 전기에서는 환하게 닦인 거울이 다른 사람들의 어깨들 사이로 조금씩 드러나는 제임스 보스웰의 얼굴을 비춘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는 것, 자기 기분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 혼란스럽고 다채롭고 불완전한 영혼의 전체적인 지도와 무게, 색깔, 그리고 주변을 제시하는 것, 이런 기술은 오직단한 사람에게만 있었다. 바로 몽테뉴였다. 수세기가 흐르는 동안, 그 그림 앞에는 언제나 그 깊이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 비치는 그들 자신의 얼굴을 보는 군중이 있다. 그들이 더 오래 바라볼수록 더 많은걸 볼 수 있지만, 자신이 보는 게 무엇인지는 결코 말하지 못한다. 새로운 판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 - P325

속되는 매력을 증언한다. 영국의 나바르 협회에서코튼이 번역한 몽테뉴의 《수상록>을 다섯 권 전집으로 재인쇄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루이 코나르 출판사가 몽테뉴의 전집을 아르맹고 박사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다양한 읽을거리들과 함께 묶은 판본으로출간하고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진실을 말하는 것, 바로 가까이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 P326

(몽테뉴가 말했다.) 이 길을 닦아 놓은 고대인 두서너 명에 관해 듣는다. 그 이후론 아무도 그 경로를 따라가지 않았다; 마치 영혼의 걸음걸이가 그렇듯 그토록 구불구불하고 불확실한 걸음을 따라가는 것, 그 뒤얽힌 내면적 굽이침의 어두운 심연에 침투하는것, 그토록 많고 작은 민첩한 움직임을 선택하고 붙잡는 것은 보기보다 훨씬 더 울퉁불퉁한 길이다. 이것은 새롭고 특별한 과업이며 세상의 평범하고 가장권장되는 일들로부터 우리를 물러나게 한다.

우선, 표현의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모두 생각이라고 불리는 이상하고 즐거운 과정을 탐닉한다. 하 - P326

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걸 말하려고 하면 심지어 바로 맞은편에 있는 사람에게조차 우리가 전달할 수있는게 얼마나 적은가! 그 유령은 우리가 그 꼬리에소금을 뿌릴 수 있기도 전에 우리 정신을 통과해 지나가서는 창문을 통해 나가 버리거나 그게 어슬렁거리는 불빛으로 잠시 밝혀 줬던 깊은 어둠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으며 되돌아간다.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억양은 우리의 말을 보충해 주고 말투에 담긴 개성으로 언어의 미약함을 좋은 인상으로 바꾼다. 하지만 펜은 경직된 도구다. 말할 수 있는 게 아주 적다. - P327

펜은 자기만이 가진 모든 종류의 습관과 예법이 있다. 그것은 독재적이기도 하다. 언제나 평범한 사람을 예언자로 만들고 인간 말하기의 자연스러운 비틀대는 실수를 펜들의 엄숙하고 위엄 있는 행진으로 변화시키곤 한다. 수많은 죽은 사람 중에 몽테뉴가 그토록 억누를 수 없는 쾌활함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책이 바로 그 자신이란 사실을 결코 한순간도 의심할 수 없다. 그는 가르치길 거부했다. 그는 설교하길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그저 다른 사람들과 같다는 걸 계속 말하고 있었다. 그의 모든 노력은 자기 자신을 기록하고 소통 - P327

하고 진실을 말하려는 것이었으며 그 일은 ‘보기보다 더 울퉁불퉁한 길‘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전달하기‘의 어려움을 넘어서 ‘자기 자신이 되기‘라는 최고의 어려움이 있기때문이다. 이 영혼 또는 우리 내부의 삶은 우리 바깥의 삶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만약 용기 내 영혼에게 무엇을 생각하는지 물으면 영혼은 항상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의 정반대로 말한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들은 늙고 허약한 신사들은 집에 머물면서부부의 충실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를 교화해야만 한다고 오래전에 결론지어 버렸다.  - P328

반대로, 몽테뉴의 영혼은 나이가 들면 우리는 여행해야만 하며 정확히, 사랑에 기초하는 경우가 매우 드문 결혼 생활은 인생의 종말로 가면서 끊어지는 게 더 나은 형식적인 구속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치에 관해서도 정치인들은 항상 제국의 위대성을 찬양하고 미개인들을 문명화하는 도덕적 의무를 설파한다. 하지만 몽테뉴는 분노를 터뜨리며 멕시코 속 스페인 사람들을 보라고 외쳤다. "너무 많은 도시가 파괴됐고 너무 많은 민족이 몰살됐으며...... 세계의 가장 풍요롭고 가장 아름다운 지역이 진주와 후추 - P328

를 운송하기 위해 다 뒤집어 엎어졌다! 무정한 승리들!" 그러고는 농부들이 찾아와 상처로 죽어 가는 한사람을 발견했는데 재판관이 그들에게 죄를 묻는 건 아닐까 두려워서 그를 버려 두었다고 말했을 때, 몽테뉴는 이렇게 물었다.

내가 이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인류애적인 임무는 그들을 곤란에 빠뜨렸을게 분명하다... 법률처럼 그토록 많이, 그토록 심하게, 그토록 일상적으로 결함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 P329

여기서 몽테뉴의 영혼은 침착성을 잃고 그에게 더욱 감각할 수 있는 형태의 큰 걱정거리들, 즉 인습과 예법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주된 건물로부터 떨어져 있지만 사유지 전체가 보이는 넓은 전망을 지닌 탑의 안쪽 방에서 영혼이 불을 지키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 영혼을 주의해서 보라. 실제로 영혼은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생명체다. 그것은 영웅적이기는커녕 풍향계처럼 변덕스럽고 "수줍어하면서 무례하고, 정숙하면서 욕정이 가득하고, 재잘재잘 지껄이면서 말이 없고, 근면하면서 섬세하 - P329

고, 기발하면서 진지하고, 우울하면서 유쾌하고, 거짓말하면서 진실하고, 아는 게 많으면서 무지하고, 자유로우면서 탐욕스럽고, 방탕하다." 한마디로, 너무 복잡하고 너무 불명확하며 사람들 있는 데서 그녀를 대신해 의무를 다하는 버전과 거의 일치하지않으므로 어떤 사람은 그녀를 찾아내려고 애쓰는데만 그의 평생을 보낼 수도 있다. 그 추적이 주는 즐거움은 세속적인 전망에 끼칠 수 있는 어떤 피해보다 더 많이 보상해 준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이후로는 독립적이다. 그래서 그는 결코 지루할 틈 없이 삶이 그저 너무 짧을 뿐이며 깊지만 온화한 행복에 푹 젖어 있다.  - P330

다른 사람들은 예법의 노예로서 일종의 꿈속에서 삶이 그들을 슬쩍 빠져나가 버리도록놔두는 동안에 그는 혼자 살아 있다. 일단 순응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걸 한다는 이유로 그들이 하는 걸하면 혼수상태가 영혼의 모든 예민한 신경과 기능에 몰래 스며든다. 영혼은 순전히 외면적인 쇼가 되고내부는 텅 비어 있게 된다. 둔하고 무감각하며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이 삶의 예술에 있어서 위대한 장인에게 그의 비밀을 말해 달라고 부탁한다면 - P330

그는 우리에게 우리 탑의 안쪽 방으로 물러나서 거기서 책들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공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굴뚝 위로 올라가듯이 공상들을 계속 좇으며 세상의 통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라고 조언할게 분명하다. 물러나기와 명상하기, 이런 게 그의 처방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인게 틀림없다. 하지만 아니다. 몽테뉴는 결코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무거운 눈꺼풀이 덮인 두 눈에 꿈꾸는 듯 야릇한 표정을 한 그 미묘하며 반쯤 웃고 반쯤 우울한 남자로부터 명백한 대답을 끄집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 P331

책과 채소와 꽃과 함께하는 전원에서의 삶은 지극히 따분한 게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녹색 완두콩이 다른 사람들의 완두콩보다 훨씬 더 낫다는 사실을 알수 없었다. 파리는 그가 온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장소였다. "그 결점과 흠까지도." 독서에 관해 말하자면, 그는 어떤 책도 한 번에 한 시간 이상 읽을수 있는 경우가 드물었고 기억력이 너무 나빠서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걸어가는 동안 그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잊어버렸다. 책으로 학습하는 일은 전혀 자랑할 만한 게 아니다. 학문적 성취의 경우, 어느정도에 달할까? 그는 항상 똑똑한 사람들과 어울렸 - P331

고 그의 아버지는 그들에게 긍정적인 존경심을 품었다. 하지만 그는 비록 그들에게 그들의 뛰어난 순간들과 열정적인 표현, 그리고 그들의 비전이 있을지라도 가장 똑똑한 사람들도 어리석음의 가장자리에서 흔들린다는 사실을 관찰해 왔다. 당신 자신을 관찰해 보라. 한순간 당신은 높이 상승한다. 다음 순간 깨진 유리가 당신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한다. 극단적인 건 모두 위험하다. 아무리 진흙투성이더라도 바퀴 자국이 흔한, 길의 가운데에 있는 게 최상이다.
글을 쓸 때 평범한 단어들을 선택하고 열광적 문장과 웅변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시는 감미로우며 최고의 산문은 주로 시로 가득찬 게 사실이다. - P332

따라서 우리는 민주적인 단순성을 목표로 하려는듯 보인다. 우리는 채색된 벽과 널찍한 책장이 있는, 탑 안의 우리 방을 즐길 수 있지만 아래 정원에서는 오늘 아침 자기 아버지를 묻은 한 남자가 땅을 파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삶을 살고 진정한 언어를 말하는 이는 바로 그 남자나 그와 동류인 사람들이다. 확실히, 그 안에는 진실의 요소가 있다. 테이블 아래쪽에서는 사건들이 아주 세세하게 말해진다. 어쩌면 많이 배운 사람들보다 무지한 사람들 사이에 중 - P332

요한 자질들이 더 많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또, 하층민은 얼마나 비열한가! "무지와 부정, 그리고 변덕의어머니. 현명한 사람의 삶이 바보들의 판단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게 타당한가?" 그들의 정신은 약하고안이하며 저항의 능력이 없다. 그들이 무엇을 알아야 편리한지 말해 줘야만 한다. 그들은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않는다. 진리는 오직 "고귀하게태어난 영혼"만 알 수 있다. 그런데 몽테뉴가 좀 더 정확하게 우릴 깨우치려고 한다면 우리가 본받아야하는, 이 고귀하게 태어난 영혼들은 누구인가? - P333

하지만 아니다. 그는 "나는 가르치지는 않고 이야기할 뿐이다."라고 한다. 사실, 그가 자기 영혼에 대해 "혼동도 혼합도 없이 완전히 단순하고 확실하게한마디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때, 실제로 자기영혼이 자신에게 매일 점점 더 어둠 속에 있게 될 때그가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한 가지 특성 또는 원칙은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바로 규칙을 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16세기 프랑스 수필가 에티엔드라보에티처럼, 우리가 닮고 싶어 하는 영혼들은 언제나 가장 유연한 영혼들이다. "단 하나의 방식에 구속되고 필요 - P333

로 인해 강요받는 건 존재하는 것이지 살아 있는 건아니다." 법률은 인습일 뿐이지 인간 충동의 광범위한 다양성과 혼란을 따라갈 능력은 전혀 없다. 습관과 관습도 자기 영혼에게 자유로운 놀이를 허락해줄 용기가 없는 소심한 기질의 사람들을 지지해 주기 위해 고안된 편의일 뿐이다. 하지만 사적인 삶을 살면서 그런 삶을 우리 소유물 중 가장 사랑하는 것으로 한없이 여기는 우리에게는 점잔 빼는 태도만큼 의심스러운 게 없다. 우리가 확언하고 점잔 빼고 법률을 정하자마자 우리는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남들을 위해 살고 있지 우리 자신을 위해 살고 있지 않다.  - P334

우리는 공적인 업무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명예롭게 여기고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한 타협을 허용한 걸 가엾게 여겨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경우엔, 명성과 명예, 남들에 대한 의무 아래 놓인 모든 임무를 날려 버리자.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가마솥 위에 우리의 매혹적인 혼란, 충동의 잡동사니, 끊임없는 기적을 부글부글 끓이자, 영혼은 매초 경이로움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움직임과 변화는 우리 존재의 핵심이다. 경직성은 죽음이다. 순응성은 죽음이다. 우리 머릿속에 떠 - P334

오르는 것을 말해 보자, 우리 자신을 그대로 말해보자, 우리 자신을 반박해 보자, 가장 무모하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뱉어 보자, 그리고 세상이 행동하거나생각하거나 말하는 걸 신경 쓰지 말고 가장 환상적인공상들을 쫓아가 보자. 삶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물론 질서가 있다.
이 자유는 우리 존재의 본질이지만 통제돼야만한다. 그런데 우리를 돕도록 어떤 권위에 호소해야할지는 알기 어렵다. 개인적 의견이나 공적 법률의모든 규제가 조롱받아 왔고 몽테뉴는 인간 본성의비참함과 나약함, 그리고 그 허영심에 대해 경멸을퍼붓길 그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쩌면우리를 안내하도록 종교에 의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어쩌면‘은 몽테뉴가 매우 좋아하는 표현 중 하나다. ‘어쩌면‘과 ‘내 생각에는‘, 그리고 인간적 무지의경솔한 가정들을 제한하는 그 모든 단어가 그런 표현들이다. 그런 단어들은 대놓고 말하기에는 매우무분별할 수 있는 의견을 감추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모든 걸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암시만 하는게 적당한 일들이 있다. 우리는 이해할수 있는 아주 소수의 사람을 위해 글을 쓴다. 분명히,

오르는 것을 말해 보자, 우리 자신을 그대로 말해보자, 우리 자신을 반박해 보자, 가장 무모하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뱉어 보자, 그리고 세상이 행동하거나 생각하거나 말하는 걸 신경 쓰지 말고 가장 환상적인 공상들을 쫓아가 보자. 삶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질서가 있다.
이 자유는 우리 존재의 본질이지만 통제돼야만한다. 그런데 우리를 돕도록 어떤 권위에 호소해야 할지는 알기 어렵다. 개인적 의견이나 공적 법률의 모든 규제가 조롱받아 왔고 몽테뉴는 인간 본성의 비참함과 나약함, 그리고 그 허영심에 대해 경멸을 퍼붓길 그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우리를 안내하도록 종교에 의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어쩌면‘은 몽테뉴가 매우 좋아하는 표현중 하나다. ‘어쩌면‘과 ‘내 생각에는‘, 그리고 인간적 무지의 경솔한 가정들을 제한하는 그 모든 단어가 그런 표현들이다. 그런 단어들은 대놓고 말하기에는 매우 무분별할 수 있는 의견을 감추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모든 걸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암시만 하는게 적당한 일들이 있다. 우리는 이해할수 있는 아주 소수의 사람을 위해 글을 쓴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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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수를 써서라도 신적인 인도를 구해야만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감시자, 내면의 보이지 않는 검열관, 즉 ‘마음속의 주인‘이 있다. 그는 진실을 알고 있으므로 그의 비난은 다른 어떤 비난보다 훨씬 더 두렵다. 그가 인정해주는 소리는 그 무엇보다 더 감미롭다. 이게 우리가 복종해야만 하는 재판관이다. 이게 우리가 고귀하게 태어난 영혼의 은총인 그 질서를 달성하도록도울 검열관이다. "이게 절묘한 삶, 개인적인 생활속에서도 질서가 유지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이 마음속 검열관은 자기만의 빛에 따라 행동할 것이고 어떤 내적 균형에 의해 위태롭고 변화무쌍한 평형을 달성할 것이다. 이 평형 상태는 통제하는 반면 영혼이 탐색하고 실험하는 자유는 전혀 방해하지않는다. 다른 안내도 없고 선례도 없어 확실히 공적인 삶보다 사적인 삶을 사는게 훨씬 더 어렵다. 그것은 각 사람이 따로따로 배워야만 하는 예술이다. 어쩌면 고대인 중에 호머와 알렉산더 대왕, 에파미논다스, 그리고 근대인 중에 보에티 같은 두세 사람의 사례가 우릴 도울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의 예술이 - P336

다. 그리고 그 예술이 효과를 발휘하는 재료 자체가변화무쌍하고 복잡하며 한없이 신비롭다. 바로 인간본성이다. 우리는 인간 본성과 가깝게 지내야만한다. "......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야만 한다." 우리를 동료 인간들과 끊어 놓는 어떤 기이한 행동이나 고상한 태도를 두려워해야만 한다. 이웃 사람들과 자신의 운동이나 건물, 또는 다툼에 관해 편하게 담소를 나누고 목수와 정원사의 이야기를 정말로 즐기는 사람은 축복받았다.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주된 본분이다. 교제와 우정이 우리의 주된 기쁨이다. 독서는 지식을 획득하거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시대와 지역 너머까지 우리의 교제를 확장하려는 것이다. 그런 기적들이 세상에 있다. 어쩌면 평화를 불러오는 신화속 새들과 미지의 땅들, 가슴에 개의 머리와 눈을 가진 남자들, 그리고 법률과 관습이 우리 자신보다 훨씬 우월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는 결핍된 어떤 감각을 지닌 존재들에게는 명백하게 보이는다른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모든 모순과 모든 제한에도 불구 - P337

하고 확실한 무언가가 있다. 이런 산문들은 한 영혼을 소통하려고 시도한다. 최소한 이 점에 있어서 그는 분명히 말한다. 그가 원하는 건 명성이 아니다. 앞으로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그를 인용하게 되는것 역시 아니다. 그는 시장 한가운데 동상을 세우고있는 게 아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영혼을 소통하길 바랄 뿐이다. 소통은 건강이고 소통은 진리며 소통은 행복이다. 나누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무다. 가장 병들어 있는 감춰진 생각들로 대담하게 내려가거기에 불을 밝히는 것,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것, 아무것도 가장하지 않는 게 우리 의무다. 만약 우리가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무지하다면, 만약 우리의 친구들에게 그걸 알게 할 정도로 그들을 사랑한다면 말이다.

...... 왜냐하면 내가 아주 확실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듯이, 우리의 친구들을 잃었을 때 가장 다정한 위안이 되는 건 우리가 그들에게 해야 할 어떤 말도 잊지 않았고 그들과 완벽하고 완전하게 소통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 P338

여행할 때 "알지 못하는 공기의 전염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면서" 침묵과 의심으로 자신을 감싸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저녁 식사할 때 집에서 먹는것과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 모든 풍경과 관습도 자기 마을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다면 나쁘다.
그들은 오직 되돌아오기 위해 여행한다. 그것은 여행을 출발하는 완전히 잘못된 방식이다. 우리는 밤을 어디에서 보낼 건지, 또는 언제 돌아오자고 제안할지 아무런 고정된 생각 없이 출발해야만 한다. 그 여행만이 전부다. 무엇보다 가장 필요하지만 가장 드문 행운으로서, 출발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와 함께 가고 우리 머릿속에 처음 떠오르는 대로 말할 수있는 우리와 같은 종류인 어떤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즐거움은, 우리가 그것을 나누지 않는다면, 제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감기에 걸리거나 두통이 생길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이 있긴 하지만 즐거움을 위해서 약간의 질병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는건 언제나 가치 있다. "즐거움은 수익의 주요 종류중 하나다." 게다가 우리가 좋아하는 걸 한다면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좋은 걸 하는 것이다. 의사들과 현명한 사람들이 반박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 P339

음울한 철학에 내버려두자. 평범한 남자와 여자인 우리는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한 감각 중 하나를 사용해서 자연에게 그 너그러움에 대해 감사를 되돌려주자. 가능한 한 많이 우리의 상태를 바꿔주고 지금은 이쪽을, 지금은 저쪽을 번갈아 따뜻하게 해주며 해가 지기 전에 젊은이의 키스와 로마 서정시인 카탈루스를 노래하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메아리를 충분히 만끽하자. 모든 계절이 좋아할 만하다. 비가 오든 맑든, 적포도주 든 백포도주 든, 함께든 혼자든 삶의 기쁨을 한탄스럽게 단축하는 잠조차도 꿈들로 가득차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산책, 담소, 자기 과수원에서의 고독처럼 가장 흔한 행동들도 정신과의 결합으로 고양되고 빛나게 될 수 있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으며, 아름다움은 선함에서 고작 손가락 두개 너비만큼 떨어져 있다. 그러므로 육체적 정신적ㅈ건강의 이름으로 여행을 끝내는 걸 숙고하지 말자.
양배추를 심고 있든 말 잔등에 타고 있든 우리에게 죽음이 찾아오게 하자. 또는 어떤 오두막으로 몰래들어가 거기서 낯선 사람들이 우리 눈을 감게 하자. 하인 하나가 흐느끼거나 손길 하나가 닿아서 우리는감정을 주체 못하게 될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좋은 - P340

것으로, 우리가 전혀 항의하지 않고 애통해하지도 않는 소녀들이나 좋은 친구들과 함께 있고 우리가 평소 업무를 보고 있을 때 죽음이 우리를 발견하게 하자. "게임과 축제, 농담, 흔하고 인기 있는 대화, 음악, 그리고 사랑의 시를 즐기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하자. 하지만 죽음 얘기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중요한건 삶이다.
이 산문들이 그 끝에 도달하지 않고 전속력으로 질주하다가 중단되면서 점점 더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삶이다. 죽음이 다가오면서 우리의 자아, 우리의 영혼, 존재의 모든 사실을 점점 더 열중시키는 게 삶이다. 여름과 겨울에 실크 스타킹을 신는 것, 포도주에 물을 타는 것, 저녁 식사 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 정해 놓은 유리잔으로 마셔야 하는 것, 안경을 써 본적 없는 것, 목소리가 큰 것, 한 손에 잘 휘는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것, 혀를 깨무는 것, 발을 안절부절못하는 것, 귀를 긁는 습관이 있는 것, 맛이 변하기 시작한 고기를 좋아하는 것, 냅킨으로 치아를 문지르는것(감사하게도 치아들에는 좋다!), 침대에 커튼을 달아야만 하는 것, 그리고 좀 별나게도 처음엔 무를 좋아했다가 싫어하게 됐고 이제 다시 좋아하는 것 등 모 - P341

든 사실을.
어떤 사실도 손가락들 사이로 빠져나가게 할 만큼 지나치게 작지 않으며, 사실 자체의 흥미 외에도 우리는 상상력의 힘으로 사실을 바꿀 수 있는 이상한 권능이 있다. 어떻게 영혼이 항상 자신의 빛과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실체적인 것을 텅 비게 만들고 약한 것을 견실하게 만드는지, 드넓은 대낮을 꿈들로 채우는지, 현실만큼 환영들로도 잔뜩 흥분하는지,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도 사소한 것으로 장난치는지 관찰해 보라. 영혼의 이중성과 복잡성도 관찰해 보라. 영혼은 어떤 친구의 상실에 대한 소식을 듣고 동정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슬픔 속에서 달콤씁쓸하고 심술궂은 즐거움도 느낀다. 영혼은 믿음을지니면서 동시에 믿지 않는다. 특히 젊은 시절에 영혼은 기분에 대단히 영향을 받기 쉽다는 걸 관찰하라. 부유한 사람도 소년일 때 그의 아버지가 돈을 부족하게 주었기 때문에 도둑질한다. 이 벽은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건축하길 좋아했기 때문에 세운다. 한마디로 영혼은 자신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과 동정심으로 온통 꾸며져 있다. 하지만 1580년 당시에도 영혼이 어떻게 작 - P342

동하는지 또는 영혼이 무엇인지에 관해 어떤 분명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무엇보다 영혼이 가장 신비롭고 우리의 자아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괴물이며 기적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그렇게 겁쟁이고 평탄하고 인습적 방식들을 좋아한다. "나 자신을 더 추적하고 알수록 내 결함이나를 더욱 놀라게 하고 나 자신을 더 이해하지 못하게된다." 관찰하라, 끊임없이 관찰해 보라, 그러면 잉크와 종이가 존재하는 한 몽테뉴는 "그침 없이 애쓰지도 않고" 글을 쓸 것이다.
하지만 이 삶의 예술에 대한 위대한 장인에게 우리가 던지고 싶은 마지막 질문이 하나 남아 있다. 짧고 끊어진, 길고 박식한, 논리적이고 모순된 진술들로 된 이 빼어난 전집 안에서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투명해지는 베일을 통해, 매일 매년 계속 울리는 영혼의 맥박과 리듬 소리를 들었다. 여기에 삶이라는 모험적인 일에 성공했던 어떤 사람이 있다. 그는 자기 조국에 봉사한 뒤 은퇴해 살았으며 지주이자 남편, 그리고 아버지였다. 왕들을 즐겁게 했고 여성들을 사랑했으며 옛 책들을 읽으며 홀로 몇 시간동안 명상에 잠겼다. 가장 미묘한 것들에 대한 끊 - P343

임없는 실험과 관찰로써 그는 마침내 인간 영혼을 구성하는 이 모든 변덕스러운 부분들에 대한 기적적인 조정을 해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손가락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붙잡았다. 그는 행복을 성취했다. 그가 말하길, 만약 자신이 다시 살아야만 했다면, 또 똑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의 두 눈 아래 공공연히 살아 있는 영혼의 매혹적인 장관을 지켜보면서 질문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즐거움 이 모든 것들의 목적인가? 영혼의 본성에 대한 이 압도적인 관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남들과 소통하고 싶은 이 지배적인 욕구는 왜 생기는가? 이 세상의 아름다움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저기 다른 어딘가에 이 신비에 대한 어떤 설명이 있는가? 이에 대해 어떤 대답이 있을 수 있을까? 없다. 오로지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질문이 하나 더 있을 뿐이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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