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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책에 목말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전통 있는 학교답게 도서관이 꽤 잘 되어 있었고 읽을 책도 많았다. 그마저도 육학년에 올라갈 무렵엔 다 읽고 말았지만, 중학교에서는 빈곤했다. 1학년 봄, 따끔따끔 보리가시에 찔리면서 보리 베기 동원을 나갔다. 우리 반에 배정된 수입으로 담임은 삼중당 문고판 씨리즈를 사자고 제안했고 서른 권짜리던가 이광수의 대표작품등이 있는 글씨가 깨알 같던 세로쓰기 그 책들을 기억한다. 그렇게 문학전집을 접하고 좀 살던 친구들 집이면 으레 한질 씩 놓여있던 세계문학전집등 갖가지 장식용 양장 판형의 전집들을 접수해서 읽어 치웠다. 내용도 모르고 뜻도 모르면서 화장실에 앞 뒷장이 다 찢겨 나간 책들까지....... 아마도 활자중독증 이었던 듯싶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읽은 책 중에는 '데미안', '25시',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등이 있었다. 처음엔 처음인 듯 몰입하다가 어느 부분부터 익숙해지는 책들은 대개 그렇게 첫 만남을 했던 것이다.
열일곱, 고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상경해서 처음 들어간 곳이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바꿈 한 방직공장이었다. 고작 6개월인가를 채우고 그만 두었지만 첫 월급을 타서 내 자신을 위해 한 첫 번째 일이 월부로 들여 놓은 근현대사 한국문학전집 20권짜리 한 질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황홀한 기쁨은 두툼한 양장본 표지의 책을 한 권 한 권 다 꺼내 읽을 때까지 새롭게 차오르고는 했다. 20여 년 전 까지 가지고 있다가 책 좋아하는 큰 언니가 가져갔는데 이제 그 집에서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때 만났다. 선우 휘, 홍성원, 박경리, 이청준, 김승옥, 윤흥길, 김원일. 서정인, 박범신, 한승원, 송기원등의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을. 그렇게 몇 년을 소설 속에 빠져 있다가 같이 공부하던 선배 언니한테 푸념한 한 대목은 어제 나눈 대화처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국전쟁과 분단 상황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작가들은 대체 뭘 썼을까'였다. 그랬다. 그때의 내가 만난 책들은 대다수 전쟁 상황이었고 분단으로 인해 파탄과 결핍의 위기에 놓인 주인공들이었다. 아류들에 좀 질렸을 것이다. 내 자신의 하루하루의 삶도 어둡고 무거운데 대체로 소설 속 주인공들도 그러했으니.
그런 시절을 지나가고 있었다. 포스가 장난이 아닌 왕고참 언니의 '야 깽깽아' 소리만 빼면 제법 직장에도 익숙해져서 충실했고 나름 미래의 꿈에 발을 내밀기 시작한 1980년이 되었다. 친구들은 고2가 되었고 그 해 봄, 산업체 고등학교에 진학하라는 상사의 말에 잠깐 고민도 했지만 그랬으면 작년에 고향에서 상고를 장학생으로 갔을 거라고 오만은 하늘을 찌르면서 이제 막 시작한 스무 권짜리 '대망'에 코를 박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보다 '오다 노부나가'가 내겐 더 매력적인 인물로 읽히더라는 편지에 친구는 재미있는 역사 소설인데 번역이 너무 형편없더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녀의 대학생 언니, 오빠들의 영향이었을 테지만 유일하게 편지로나마 소통하던 친구였기에 그 파장은 쳐들고 다니던 고개를 땅으로 처박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해 4월, 꽤 열심히 준비한 고졸검정고시를 치루지 못하고 말았다. 졸업증명서가 필요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진학으로 표기 되어 서류를 안 해 준 것이다. 절차는 절차여서 이유나 사정은 설득되지 않았다. 많은 길들을 발끝만 내려다보고 걷게 되었다. 쉬는 날이면 주머니에 돌아 올 차비만 남겨두고 갈 수 있는 곳까지 차를 타고 떠나서 낯선 동네, 비슷비슷한 골목들을 헤매다 돌아오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었다. 그래보았자 전철의 끝, 인천의 어느 동네이거나 근교 시외버스가 다니는 곳들에 한정되었지만 익명이 보장되는 길에서 만나는 바람이 좋았다. 낮선 들판 미루나무 아래 볕 바라기가 자울자울 좋았다. 이렇게 한 세상을 살아도 괜찮겠네였다.
[1980년 5월, 광주]는 그렇게 내게 왔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따위는 없던 내게 고참 언니는 언제나처럼 '니네 깽깽이들이 기어이 일을 내 버렸다'고 내가 가해자고 당신이 피해자이기라도 한 것처럼 다구 칠 때에서야. 내가 좋아하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 소수옥dj가 있는 광주mbc 사옥이 불타고 있는 뉴스를 보았다. '폭도'가 점령한 무법의 도시가 되어버렸다는 보도들만 무성한, 고향으로의 소식은 두절된 상태로 애간장을 끓였다. 고립 되어버린 도시에 누가 폭도이고 누가 간첩들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안위를 알지 못하는 가족들의 생사여부가 전부였다. 전화국 시외전화박스를 날마다 들락거린 끝에 모두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무사하고 다행히 내가 아는 사람중 다친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해 추석, 고향에 가서야 알았다. 언론과 정권이 지목하는 폭도들이 바로 그 도시에 속해있는 우리 가족, 내 친구들, 선배들, 이웃들이었다는 사실을. 그 도시에 연관이 있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그 '폭도'들의 배후 세력이기도 하다는 것을. '깽깽이'가 왜 생겼는지도 모르는 내게 그렇게 부르는 고참 언니의 호칭도 왜 가해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도 그때서야 비로소 짐작되었다.
미안했다. 내가 사랑한 도시, '광주'에게 미안하다. 내가 많이 걸어 다녔던 '충장로'에 '금남로'에 '무등산'에 심지어 호기심을 자극하던 유흥가 골목 '황금동'에 까지 미안하고 미안했다. 하물며 죽어 간 사람들한테 부채감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특히 부러워하던 교복을 입은 또래의 소녀들에게, 그 선택할 길 없는 공포의 상황에 놓인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아직도 같은 무게로 남아있다. 모른다는 것, 몰랐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못한다. 피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광주'는 단지 지명만이 아니고 '80년 5월'은 시간의 단위만이 아니다. 많은 누군가에게 피 맺힌 고유명사다.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창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런 통과의례를 거친다. [소년이 온다]는 그런 '광주' 다.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닌, 소년이면서 소년이 아닌, 우리들의 사과문이고 기록문이고 픽션이고 논픽션의 경계에 서있다는 느낌이 강렬했다. 더불어 작가가 이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오래 힘들었겠구나, 이제 홀가분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사설이 길었다.
마르시아 심, 지금은 심상대의 [망월]도 그렇고, 박상률의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도 한창훈의 [꽃의 나라]를 읽을 때도 그랬다. 한명 한명이 나였다가, 너였다가 우리들 모습으로 읽힌다. 시체들 더미 속에서 썩어가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있는'정대'이기도 하고 검열관에게 일곱 대의 뺨을 맞는 '은숙'이 되어 뺨을 부풀린 채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기도 한다. '동호'를 찾아, 당시의 '동호'의 행적을 찾아. '동호'를 찾는'동호 가족'을 따라가는 여정은 육십갑자를 넘고도 넘는 먼 여정이면서 동시에 단숨에 우리를 세월, 팔십년 오월 광주의 세월로 끌고 갔다가, 진도 앞바다 '세월'로 데려 갔다가 용산의 망루로 대추리로 우리를 내다 꽂는다. 어쩌면 '정미'일 수도 있는 내 그림자는 공포로 일그러진다.
"너무 험하지 않게만 대강 수습해놓은 시신을, 유족들은 목화솜으로 코와 귀를 막아주고 깨끗하고 좋은 옷으로 갈아 입혔다. 그렇게 간단한 염과 입관을 마친 사람들이 상무관으로 옮겨지는 걸 장부에 기록하는 까지가 너의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애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p17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랏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p114
"그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가전에서 희생되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 기억하는 건 다음 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게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P116
"다음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기억하라고 나에게 말할 권한은 이제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선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건 겁니다." p117
"군인들의 명령대로 이층 복도에 머리를 박고 있던 우리들이 도청 마당으로 끌려 내려간 건 동틀 무렵이었습니다. 뒤로 손이 묶인 채 마당 가장자리에 일렬로 무릎 끓고 앉은 우리들에게 한 장교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흥분해 있었습니다. 한사람씩 군화로 등을 밟아 흙바닥에 머리를 박게 하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씨팔, 내가 월남 갔다 온 사람이야. 내 손으로 죽인 베트콩 새끼들이 서른 명도 넘는다. 더러운 빨갱이 새끼들. 그때 김진수는 내 옆에 있었습니다. 장교가 김진수의 등을 밟자, 하필 자갈에 찧은 이마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다섯 명의 어린 학생들이 이층에서 두 손을 들고 내려온 것은 그때였습니다. 계엄군이 대낮같이 조명탄을 밝히며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소회의실 캐비닛에 숨으라고 명령했던 네 명의 고등학생과, 소파에서 김진수와 짧은 실랑이를 벌였던 중학생이었습니다. 더 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김진수의 말대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러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한 발을 여전히 김진수의 등에 올린 채 그는 M16을 들어 조준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습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 않냐.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 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p133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부마항쟁에 공수부대로 투입됐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내 이력을 듣고 자신의 이력을 고백하더군요. 가능한 한 과격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그가 말했습니다.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한 군인들에게는 상부에서 몇십만원씩 포상금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중략)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
날마다 이 손의 흉터를 들여다봅니다. 뼈가 드러났던 이 자리, 날마다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들어갔던 자리를 쓸어봅니다. 평범한 모나미 검정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립니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길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p135
“너는 도청 안마당에 모로 누워 있었어. 총격의 반동으로 팔다리가 엇갈려 길게 뻗어가 있었어. 얼굴과 가슴은 하늘을, 두 다리는 벌어진 채 땅을 향하고 있었어. 옆구리가 뒤틀린 그 자세가 마지막 순간의 고통을 증거하고 있었어.
숨을 쉴 수 없었어.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어.
그러니까 그 여름에 넌 죽어 있었어. 내 몸이 끝없이 피를 쏟아낼 때, 네 몸은 땅속에서 맹렬하게 썩어가고 있었어.
그 순간 네가 날 살렸어. 삽시간에 내 피를 끓게 해 펄펄 되살게 했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의 힘, 분노의 힘으로.” p173
열다섯 살 ‘동호’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소년에게 총을 쏘라 명령한 자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인구 40만의 도시에 군인들에게 지급된 실탄은 80만발이었다는 나라. 이것이 우리의 나라일 수는 없다. 그들의 그들만을 위한 나라에 우리는 산다. 전쟁의 여파를 그린 작품들처럼 ‘광주’도 좀 지겹게 느껴지도록 글로 만나질까. 여전히 빈곤한 문학, 4.3처럼 그렇게 ‘세월’과 함께 특정지역의 특정인들의 한풀이로 매도되어 버릴까봐 두려운 마음이다. 내게도 내재된 성향이 다분히 ‘폭도의 배후세력’일 테니까.